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1만 년 나이테에 켜켜이 새겨진 나무의 기쁨과 슬픔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옮김 / 부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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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좋아하시지요혹 나무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는 좋아합니다바라만 봐도 즉각 기분이 좋아집니다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 묘목도 한 그루 심어 주셨습니다나무가 저보다 빨리 자라 고가의 지붕을 넘어섰지요.

 

어릴 적 단독 주택에 살 때는 아침에 새소리에 잠이 깨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아파트에 살면서 그런 아침이 사라졌는데사라진 줄도 모르고 살다가 유학 시절 기숙사에 살면서 아침마다 수다스러운 새들을 다시 만나고서야 비로소 그 단절을 알아 차렸습니다.

 

2층 기숙사 방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비로운 떡갈나무Oak tree가 계셨거든요수령이 오래되면 가지가 땅으로 휘어져 굴곡져서 한 그루가 숲처럼 공간을 이루기도 합니다그 가지 하나에 올라가 책을 읽기도 하고 그냥 숨어 있기도 하고반지의 제왕의 그 숲이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던 국립공원에 현장 조사 나가던 시절도 그립습니다.



당시 무척 인상적이었던 나무껴안기, Tree Hugging 혹은 칩코Chipko 운동이 있었습니다인도 히말라야 칩코 지역 여성들이 벌목산업에 대항해 자발적으로 나무를 껴안고 벌였던 조용한 저항운동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친구가 시애틀에 사는데 워싱턴주 사람들 별명이 Tree hugging hippie people이라고 합니다자연친화적이고환경운동에 열심이고매우 진보적인 정치 성향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책과 무관한 얘기를 지나치게 한 셈인데나무이야기가 즐거워서 그렇습니다그러니 나무에 관한 이 책도 반갑고 궁금하고 행복하게 잘 읽었습니다아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직업과 연구 분야가 있다니뭔가 제 정보지식을 과신하다 다시 한 번 크게 놀란 내용이 가득한 책입니다조금 소개하겠습니다.

 

첫 문단부터 눈길을 사로잡는 멋진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연륜연대학Dendrochronology’이란 학문 분야를 아시나요나이테에 생장 연도를 부여하고 나이테에 저장된 다양한 환경 정보를 밝히는 학문(옮긴이)입니다


Dendro는 나무라는 뜻이고, ‘Chronos’는 시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입니다. ‘연륜은 나이테라는 뜻입니다(옮긴이). 즉 나무의 나이테가 담고 있는 정보들을 찾아 읽어 내는 분야입니다기후나 토양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관련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했습니다.



저자 역시 나이테가 과학의 한 분야가 될 정보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합니다잠시 상상해보니 나무와 함께 하는 연구란 참 좋을 것만 같습니다나무들은 정말 근사하니까요요즘은 특히 인간의 수명이 짧디 짧게 느껴집니다그러니 몇 천 년 씩 살아가는 나무들이 부럽고 경이롭습니다.

 

나는 연륜기후학자이다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 매년 우리는 기후에 대해그리고 우리가 태운 화석 연료가 기후에 초래한 대혼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 그러나 해를 거듭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억제하거나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가 가져올 최악의 결과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심지어 196개국이 모여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야심 찬 노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한 2015년 파리 기후 협약 이후에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연륜연대학은 생태학기후학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밝힐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연속적인 나이테 기록은 독일의 참나무-소나무 연대기로 지난 1만 2650년 동안 한 해도 건너뛰지 않았다.”

 

세계적 규모의 네트워크 덕분에 과학자들은 나무가 자라던 지구 표면의 과거 기후는 물론이고지표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대기권의 과거 기후까지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연륜연대학이 정확하게 밝혀낸 한 해 한 해의 나이테는 인류와 기후의 역사 사이에서 일어난 복잡한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데 필요한 발판과 정박지가 된다.”

 

물론 나를 사로잡은 나이테 이야기들도 들려줄 것이다이 이야기들은 나무 착취와 산림 파괴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연륜연대학자들로 하여금 과거를 연구하게 만들고미래에도 지구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과학기술은 멈추지 않고 최고의 속도로 자신의 닿을 다음 천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지만 과학 진보에 대해 인류는 또한 불신과 무관심도 동시에 높습니다젊을(?) 적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혼란스럽고 이해를 잘 못했습니다예외가 아닌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오답이 아닌가 생각했지요그런데 같은 연도를 살지만 우리 모두는 또한 각자의 연도를 살고 있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예외도 잘못도 오답도 아닌 팩트였지요항상 그럴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저자처럼 과학적 발견을 재미있어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을 즐거워하는 저자는 짜릿함이라 했지만 그런 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과학의 동력은 발견의 즐거움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궁무진하게 재미있습니다. 1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문득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영상 자료로도 기록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나무라는 단일 대상에 관한 과학 분야이지만역사를 오르내리는 풍부한 문명적 사건들을 담고 있고 문장 자체가 아름다운 문학처럼 읽힙니다무려 지난 2,000년 동안의 지구 날씨와 인류 문명과 생태계의 변화를 저자가 나무와 함께 밝히고자 노력한 기록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폭우와 모로코의 가뭄나이테의 넓이와 해적선여름 추위가 닥친 것과 로마 제국의 멸망나이테에 기록된 어느 해의 화재가뭄추위와 같은 나무의 불만과 우울 증상들나무인데 사는 일은 사람 사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경쟁과 공격이 없고 식량과 물이 풍부할 때 나무도 행복하게 살고 자랍니다그리고 그 행복을 기록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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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의 타이밍
이선주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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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취보다 너의 상처에 닿는 일이 더 아름답다.

 

무루 작가의 추천사에서 만난 문장에 청소년 시절에 가진 마음이 화석이 녹듯 꿈틀거렸다당시에는 진실하고 당연했던 말이었다막 세상의 경계가 넓어지고 현실의 모습들이 보이고 아름답거나 밝지 않은 것들도 직시할 힘이 붙고 용감한 생각도 해보고 함께 하는 친구들이 무척 중요한 시절이다


열여섯 살다섯 명.

 

표지를 보고 그래픽노블인가 했는데 장편 소설이다자주 경험하듯 청소년 문학은 때로 몹시 깊고 날카롭고 직설적이라 예상치 못한 혹은 기대 이상의 충격을 받기도 한다살짝 겁을 내다 읽어 본다.

 

카톡을 하는 데 무슨 의의가 있는 건 아니다그냥 편하기 때문이다편한 이유는친구들 대부분이 하기 때문이다이런 걸 사회 시간에 배운 문화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조별 과제를 하는데 카톡을 안 하는 친구 남주가 있다안 할 수도 있고 하기 싫을 수도 있는 문제일까이기적이고 고집스럽고 이상한 것일까혹은 신념일까.

 

다행히 정윤은 남주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일단 나는 카톡 안 하는 게 노력해서 이해하고 이해받고 할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무척 놀랍다저는 안 합니다했다가 엄청 놀라서 안 합니다그렇게는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톡카톡카톡...... (...)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쉴 새 없이 카톡이 울렸다. (...) 단톡방에 제일 많이 올라오는 글은 ㅋㅋㅋㅋㅋㅋ” 였다지겹다고 생각하면서도 카톡이 오면 기계처럼 답했다.”

 

세상은 온라인 쌍과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뉘어 있고온라인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오프라인에서도 서서히 존재가 지워졌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결코 그냥 넘기지 않는다이해하지 못하면 악으로 만들어서라도 이해하고 싶어 했다. (...) 대결만큼 명확한 구도는 없으니까아이들은 (...) 남주를 악의 영역에 두려고 했으며근거를 찾으려 했다그 근거는 대개 실체가 조금 섞인 거짓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사고방식이 무시무시하다방어 기제인지 공격 방식인지 조금씩 헷갈리기도 하지만 차별과 혐오에 관한 인간의 반응 속도는 멈칫 거리는 법이 없다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배운 것들이라 창작물이지만 현실은 더 대단할 듯해서 두렵고 미안하다.

 

단톡방은 진지하게 성찰해야할 문제이지만 첫 번째 순서답게 충격을 유예한 소재이기도 하다다른 아이들이 직면한 문제들 중 아주 심각한 범죄에 이른 사건을 접하면서는 무척 끔찍했다. 이야기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역시 현실이 더 대단할 듯해서 더 두렵다


한 방에 인생이 결정 나기도 한다고 협박 비슷한 강요를 당하는 시기, 실수를 해서도 안 된다고 강박적으로 훈련받은 아이들의 시기는 팽팽하고 뜨겁다. 아이들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극히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깊이 느낀다.

 

작가는 차분하고 끈기 있게 모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지만나는 아이들의 삶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팽배한 에너지들이 불안해서 조마조마했다결합이 끊어지는 반응 속도가 빠른 물질의 해체를 우리 사회에서는 폭탄이라고 부른다


불안한 심정으로 비극을 목격하는 독서가 달갑지 않았는데, 다행히 작가가 이끄는 먼 곳의 방향이 각자에게 맞는 성장의 모습이라 아이들이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서는 모습이라 안도했다.

 

기억도 흐려졌고 내 시절과 이 시절은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 시기란 궁금한 것은 많지만 되는 일은 적어 힘든 마음을 털어 놓고 싶어도 누구에게 얼마나 솔직해져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시간임에는 분명하다진심을 정확히 전할 능력도 부족하고 나를 드러내는 일도 두렵다그런 시절이다


나이가 들면 내 마음에 드는 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덕분에 나도 남도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거나 그럴 수밖에 없다고 포기도 하게 된다. 비겁한 듯 들려도 덕분에 세상의 모순과 결핍이 조금 덜 고통스럽고 포기한 여백으로 인해 남은 에너지로 희망을 그려볼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마법이나 초능력이 등장하지 않는 한 해법은 우리가 아는 그 방법 밖에는 없다. 살면서 겪는 거의 모든 고통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지만 서로가 아니고서는 희망을 찾을 다른 곳이 없으니까


역지사지


나는 이럴 때 아프던데 저 애도 그럴까나처럼 저 애도 혼자 울었을까나처럼 저 애도 누군가 말을 걸고 마음을 내어주면 반갑고 위로가 될까이렇게 상상하고 용기를 내어 다가서 보는 수밖에 없다


어쩐지 경구만 읊는 것도 같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세상은 공고하고 변화에 대한 저항이 거세며 누가 되었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어른보다 현명한 아이들, 어른보다 실수가 적고 잘못이 적은 아이들, 미래를  살아 갈 아이들에게 희망을 두고 힘껏 응원한다. 무책임과는 다른 마음으로...  어른들은 부디 현실을 좀 더 잘 책임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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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악어 아빠 - 2021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소연 지음, 이주희 그림 / 비룡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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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태어날 무렵부터 아빠가 아주 많이 바빠져서

둘째는 한동안 아빠와 정서적 유대를 만들지를 못했습니다.

서먹하고 솔직한 얘기를 하지 않았지요.

그런 관계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주말 하루 아이와 신나게 놀아 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년쯤 지나자 아이가 아빠에게 진심으로 장난도 치고

신뢰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변화가 보였습니다.


바쁘고 지친 부모를 보며 아이들은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두었을 지 모릅니다.

악어라니! 저는 정말 무섭지만

잘 놀아 주는 악어 아빠라 다행입니다.

서로가 색다른 경험을 한 시간을 통해

서로가 조금씩 변해서


다시 인간 가족으로 만나게 되어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로

쉽지만은 않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보여주고 들려주는 책이라 감탄합니다.


실제로 읽으면 기대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채롭고 감동 가득일 것이라 

비룡소의 책들을 신뢰하는 만큼 기대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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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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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짧은 공부(?) 단상을 기록한 뒤 아쉬움이 남았다일 년에 하루나 이틀이라도 불교철학 강의를 듣거나 책모임을 하면 좋을 텐데부담도 없이 지속할 수 있는 일을 한 번도 생각을 못 했다 싶기도 했다맞춤한 강의를 찾기는 쉽지 않아서 불경 본격 강의는 부담이... - 지인들과 책을 한 권 읽기로 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경험한 한국불교의 모습이라 불교계 내부에서 눈치 보여 우물쭈물하는 이야기들도 적을 듯하고 그 시선에 비친 사찰들의 풍경도 궁금하고 순정파(?)답게 오로지 법정 스님만 읽은 내게 다른 학승들의 이야기를 두루 접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그게 깨달음이죠. (...)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알아요. (...) 쓸데없이 아는 건 많은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잘 모르고 살아가죠. (...) 내가 모르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그게 가장 큰 병입니다.” 성파

 

그리고 데니스 노블은 영국 유학 시절 내 지도 교수님들 중 한 분과 친분이 있었던 반가운 분이기도 하다오픈 대학을 제안해서 설립하고 생물학과 생태학자로서 활동하시던 지도교수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유명했던 리처드 도킨스와 논쟁적 대척에 서 있는 분이었다두 분의 맹렬한 논쟁 시간심지어 생물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나는 난간한 기분으로 버티다 만류하는 동기들을 뒤로 하고 무례하게 자리를 떠난 적도 있다연구 논의를 비판할 능력은 못되지만 데니스 노블이 이기적 유전자 이론을 정면 반박함으로써 논쟁이 잠잠해진 일은 개인적으로 안심이 되는 감사한 일이었다.

 

유전자라는 건 좋고 나쁜 어떤 이분법적인 존재가 아니고 이기적인 존재는 더더욱 아닙니다따라서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그렇습니다시스템 생물학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그런 사실들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대부분의 경우 자연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 속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이기적이지 않다데니스 노블

 

과학철학계의 대석학이 한국의 불교 사찰을 방문하러 오실 줄 몰라서 더욱 반갑고 기쁘게 읽었다깊고 넓은 철학에 온전히 담기진 못하고 이해가 가는 필요한 문장들과 단상들만 옮겨 본다.

 

고통의 본질을 깨닫고 제대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면 쓸데없는 고통의 연쇄에 매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도 어쨌든 연쇄에 매이는 일을 없애고 싶어 관련 내용에 집중해 보았다지나고 나면 쓸데없는 일에 소모된 모든 것이 새로운 고통으로 남는다그 또한 괴롭다.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내가 원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딱 정해두지 마세요.”

:안 그런다 하면서 반복하는 버릇이해하고 기억하는 인물정보라 착각하는 듯하다.

 

“‘지금 이 순간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즉각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매 순간 바뀌어도 문제이고 안 바뀌어도 문제란 생각이 드는 건 또 다른 미몽인가 싶다언제나 가장이 붙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했다그 또한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그런 듯.

 

지금 여기이미 완전한 나의 존재를 알고 온전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 인간은 본래 완전한 존재다인간이 곧 부처다라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그렇게 알고 살고 싶지만 최대 보상액 500만원 보험을 들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기업 현장에서 매일 사람들이 사고사를 당하는 현실에서는 나의 존엄성을 생각으로도 온전하게 지켜나가기가 힘이 든다매일의 현실이 인간이란 사실 무가치한 노동력이라고 보여주는 현실에서는무섭고 슬프다전 국민의 90%가 불교 신자라는 미얀마의 상황은 더 끔찍하다이 와중에 한국가스공사는 미얀마 군부와 투자 사업을 가속하고 있다.

 

탁한 마음을 씻어내고 초심으로 돌아가면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게 볼 줄 아는 지혜가 생깁니다우리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려면 마음을 푹 쉬어야 합니다그것이 바로 수행이지요.”

일종의 작은 깨달음이 느껴지는 감사한 구절이다수행이란 없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가려진 본성을 드러내는 일뭘 열심히 해서 쌓아가고 높여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반대로 덕지덕지한 것들을 벗겨내고 버리는 일. ‘마음을 푹 쉬는 일이 수행.’ 울컥했다.

 

나 아닌 다른 것을 다루는 기술도 역시 빼어나죠. (...) 온갖 최첨단 기계들을 잘 다루잖아요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을 다루는 실력은 별로예요.”

매뉴얼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면 혼날까하는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제품이야 사양이 똑같지만 인간은 모두 다르니 아무도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그러니 결국 스스로 열심히 자신을 보고 배우고 깨닫는 수밖에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우리는 늘 일상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떠나 지혜를 구한다이 책을 펼친 것도 그러한 여정의 하나일 것이다그렇다면 방황이 끝나고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거창하게 보일지 몰라도 실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문제다특히 아무도 보지 않는 자기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적은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나는 어쨌든 당분간 어쩌면 오래 매일 일상을 떠나 책을 펼칠 것이다때로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피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한다그런 시간이 지나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갈 방법은 확실하게 몰라도 심신으로 리셋이 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런 시간을 보내는 나는 누구인가…….

 

진정한 삶의 변화는 (...) 바로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 5월 마지막 주라니, 6월 일정이 벌써 채워지고 있으니…… 나는 아무 때나 울고 싶기도 하다짐작해보는 미래와의 거리가 멀수록 더 슬퍼진다. 5월을 잘 살았네~란 안도감과 보람은 느껴지지 않는다잘 해치우며 살았단 생각이 드는데도 감정은 요지부동이다이럴 때를 잘 넘기는 방법은 서글프게도 그냥 할 일을 하는 것이다아주 조금 더 부지런을 부려서 귀찮아서 마지막까지 미루자 했던 일을 처리하면 조금 더 힘이 붙는다이런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 다행이고 이런 식으로 사는 나에게, ‘너는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하는 낯선 느낌이 붙기도 한다.

 

인생에서 좋은 때라는 건 따로 없습니다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이 바로 가장 좋은 때이자 좋은 삶입니다.”

살면서 지금 참고 노력하고 포기하면 나중에 좋은 때가 온다고 사기 쳤던 어른들처음엔 미웠는데 세월이 지나니 그 때 그 어른들도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며 살았을 거란 생각을 하니 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지금이라도 누구라도 참 좋은 삶의 순간들을 만나고 계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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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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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란 얼마나 노력을 들였는가와 상관이 없었다.”

 

이 책은 어떤 의미로 매우 위험한 책일 수도 있다. ‘파리에 살며 친구들과 함께 술을 곁들이고 철학과 영화에 대한 다수의 강의를 하는’ 내 입장에서 느끼기에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사는’ 저자가 노력과 성공이 무관할 수도 있다는 말을 건넨다이쯤 되면 부러움을 넘어 질투와 분노가 생길 수도……내 깜냥에 비할 바가 못 되는 우아한 독자들이 많으실 거란 생각에 혼자 민망해지기도 한다.

 

노력과 성공에 관한 가장 유명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독된 명언이미 진의를 아는 분들도 많으실 테지만 인용해 본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1%가 없는 99%의 노력의 무용성을 전한 말이다. 99%를 다 채워도 안 된다는 말이다.

 

에디슨 전에 나는 신문 취재에서 그 기자에게 '1퍼센트의 영감이 없으면 99퍼센트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고 말한 거였소그런데 신문에는 1퍼센트의 영감에 대한 중요성이 아니라 99퍼센트의 노력에 중점을 두고나를 노력하는 사람으로 미화하여 진실을 잘못 전한 것이오정말이지 못 말리는 착각이지요.

 

하지만매일 최선을 다해 해치워야 될 일상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잘 하는 일이 드물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처지인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관성으로 인해 그런 노력이 고통을 가할 지라도 그 방법으로 애써보려는 이들이 많을 줄 안다가늘어지려는 눈을 뜨고 더 읽어 보면 저자가 스스로를 닦달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기도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더 효율적으로 행동하라는 뜻이다.”

 

이완된 몸이 긴장한 몸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 느긋함이란 개념이 아니라 자세다.”

 

언제나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훌륭한 선수는 경기 중에 긴장을 풀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정확하게 힘을 준다.”

 

휴식을 힘들어(?)하고 잘 쉬지 못하는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힘이 든다긴장을 풀면 불안해지기 때문에 확인을 거듭하고 확신을 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잠이 드는 유형이다일하는 방식 역시 계획확인다시 확인을 거듭하며 진행한다그래서 수북한 오타를 나중에 발견해도 조금 놀라서 고치기만 하는 글쓰기를 무작스럽게 하며 휴식을 취한다고 믿는지 모른다읽기와 쓰기는 정말 쉬운 놀이이다어쨌든잘 쉬고 잘 자고 불안을 좀 거두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이전 재택근무에서처럼 머지않아 일의 효율이 비참하게 떨어질 것 같다.

 

무척 좋아하는 김하나 작가의 추천에 마음이 마구 끌렸고며칠 전 넋두리 하듯 쓴 포스팅에 오랜만에 요다 스승을 소환한 반가운 우연을 더해 도발적이고 직설적이지만 회복을 위한 메시지들을 열심히 찾아 읽었다.

 

노력하지 마하면 하고말면 마는 거지노력해보는 건 없어.” (<스타워즈>에서 요다가 스카이워커에게 한 말.)

 


책에 대한 복종심이 강한 독자라 판단하기 전에 열심히 읽고 듣고 믿어보는 편이다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를 따를 생각은 없지만저자 개인의 생각이 일반성을 그리 많이 얻지는 못하리란 생각이 드는 구절들도 몇 개 눈에 걸렸다물론 언제나 내 문해력의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뜨끔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구절들 역시 자주 등장한다어쩌면 저자 역시 무용하거나 비생산적인 노력의 전형을 따르지 않으며 이 책을 써나가서 인지도 모르겠다아주 열심히 보편적인 통찰을 찾아 애쓰지도 않고 많은 독자를 굳이 만족시키려 하지도 않고할 수 있는 하고 싶은 말을 적고 들으려 하는 독자에게 도착하면 된다는 해방적 태도물론 이 단락의 내용은 순전히 내 짐작일 뿐이다.

 

여러분에게 완벽해지기는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 이미 저지른 일을 굳이 추억하며 평가하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며 스스로를 해방하라는 얘기다.”

 

일단 시작해야 완성에 다가설 수 있다숙고망설임계산 따위는 미뤄두고 하던 대로 계속 하면 된다는 뜻이다. (...) 다짐 한번 하려고 새해 첫날까지 기다리는 짓은 그만하자.”

 

수많은 상황에서 어떤 대상을 떠올릴 때 우리는 두려움을 먼저 느낀다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놓이면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행동함으로써 두려움에서 해방된다.”

 

마지막으로 ~하지 않겠다라고 하면서 여전히 하고 있는 어리석은 일자는 시간을 여전히 얼마간은 아까워하는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호되게 야단맞는 구절을 만났다매일 푹 자는 일을 순순히 따라할 수 없다면 요일을 지정해서 아무 생각 말고 푹 자는 날을 정해둘까 하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스스로를 고심해서 설득해야한다는 점이승률이 높지도 않다는 점이이렇게 스스로에게 지고 마는 자신을 계속 목격하는 이 모든 병리적 습관이 기가 찬다어쨌든수면은 중요하다.

 

수면 시간을 줄이면 맨정신인 시간도 줄어든다충분히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은 말 그대로 분주함이라는 독에 취한다. (...) 휴식은 정신을 깨끗하게 씻어 주며 정신은 마치 파도처럼 자기 자신을 쇄신하게 한다.”

 

처음에 반감을 가졌던 독자가 이 책을 다 읽게 된다면 어떤 결론과 감상에 도달할까감탄을 위한 독서 태도 속에서도 기회를 엿보며 반박을 위한 준비도 해보려 했다그런데 친구와 담소를 나누다가 우연히’ 시작한 책이 이 정도로 충분히 훌륭한 결과물이라면최선의 노력을 하고도 실패하는 일과 적절한 노력으로 목표를 달성하거나 꿈을 이루는 일에 대한 저자의 주장들을 반박할 말이 없다그리고 책을 추천하고 싶은 지인이 떠오르기도 했으니까.

 

토요일, 속이 상하고 싸늘하게 화가 나고 조용히 갇힌 에너지가 울화로 치밀고…… 오늘까지도 불안과 두근거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이제는 발발의 이유나 정체에 상관없이 다 그만두거나 내다 버리고 싶은데 그렇게 말끔하게는 안 되고 열심히 묵묵히 자책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늘이 초록초록해지면 여름이라고 여름 하늘은 파랗지 않다는 친구의 말처럼 산책길에 만난 나무들은 신나게 살고 있었다나는 자라지도 신나지도 못한 채 뭐하나 싶을 정도로오늘의 마지막 독서로 이 책을 읽고 해당 감정을 돌돌 말아 분리수거를 한다뭐가 되었든 형태가 있든 없든 지나치게 애쓰는 건 아니다탈이 난다잘 하는 짓이 아니다올바른 일도 아니다……자연스럽게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해방되어 사는 면적이 늘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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