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수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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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쓸쓸함권태허무...... 이런 단어들이 등장해서 기분이 함께 쓸쓸해진다늘 달갑지 않게 달라붙어 있는 감정들이기도 하고 치워도 치워도 다시 채워지는 달갑지 않은 에너지들이기도 하다사는 일은 가장 좋을 때라도 늘 좋을 수만은 없는데 전 세계가 공통 질병에 시달리며 사망을 매일 보도하는 시절이라 뭐든 위로가 쉽지 않은 때이다.

 

어릴 적 부모님과 잠시 방문한 곳 하와이의 흐릿한 단상들과 반가운 친구와 함께 간 새로 생긴 카페 바리스타가 권해 준 놀라움으로 기억에 남은 코나 커피가 떠오르는 주소지를 보며 저자의 권유처럼 본질의 나에 대해 먼지를 걷어내는 일에 대해물리 환경의 제약이 어떻더라도 정신만은 조금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며 그렇게 천천히 읽어 본다.

 

원래 훌륭한데 그간 훌륭해지려고 애썼음원래 아름다운데 그간 아름다워지려고 애썼음나의 존재는 사랑 그 자체인데 사랑받으려고 애썼음.”

 

우리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온전히 사랑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새로운 감상은 전혀 아니지만색채가 없는 흑백이 전하는 강렬함과 짙음이 존재한다전시회를 즐길 수가 없어서 자꾸만 예전 전시회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달갑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작품을 기억한다란 실상 그 무엇도 아닌 일이니까.

 

이 책의 그림들을 전시회 도록인 듯 한참 보았다선들이 감정을 가득가득 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나도 무작정 그리는 시간을 가져보면 무언지 좀 풀릴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가족


(...)

날 묶고 있는

이 줄은

구원의 줄인가

구속의 줄인가





함께2


모두 떠나고 다시 처음처럼

우리 둘이 되었다.

오래 함께 했어도

우리 둘 살아야 할 날들은

처음인 양 낯선데,

(...)

 

저자는 글수다를 떤다고 했지만 글의 비중 못지않게 그림에서 풀어 놓은 것들이 많다고 느낀다자기 인식이 글에서 그림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감상일 뿐이지만).

 

타인만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공감 역시 분출하고 표현할 수단들이 중요하니 그런 가능한 창구를 구비해 두는 것이 절박하고 위급할 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살짝 조급해지는 마음도 생겼다너무한다 싶은 독서 말고 내가 가진 진정제들은 무엇인지 점검하게 된다.

 

견디는 것만으로도 최선일 때가 있지.”

 

발 없는 말은 너를 어쩔 수 없어두려워하는 마음만이 너를 해칠 수 있지.”

 

깊이를 가진 대신 찌르거나 파들어 오는 날카로움과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건 아닌가 읽기 전에 잠시 겁이 났지만보고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따뜻하고 맑은 긍정이었다만나고 떠나고 돌아오는 삶에 대한 위로가 되어 감사한 책이다다음에 읽으며 어떤 모습이고 목소리일지 기대되는 책이다.

 

정확히 어느 나이부터남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한지금까지의 삶을 두고 새로운 선택을 한 이들을 맘껏 지지하고 응원해줄 수 있는 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모두가 이거다라고 하는 길, ‘평균이라 여겨지는 좀 더 안전한 길로 가지 않아도 괜찮다괜찮다정도의 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짜장으로 통일!”이라거나 귀 밑 3cm’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은 지가 꽤 오래인 걸 감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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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다는 것 (양장)
김중미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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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라니. ‘빈곤 체험관이라니뭘 체험하겠다는 것인지 담당공무원 업무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싶다그러고 보니 영화 기생충의 흥행과 수상 이후 반지하 체험관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도 기억이 설핏 난다마음을 놓고 느긋하게 살 수가 없네부끄럽습니다제발.

 

영화가 아무리 인기를 끌어도 세상은 그 엄청난 사기 사건의 피해자인 노인주부가난한 사람들의 삶에는 주목하지 않았다우리의 삶은 영화에서처럼 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아무리 구차하고 힘들어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그래서 하루하루를 이 악물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은강동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타인과의 어깨동무로 살아남았다슬픔이든기쁨이든노동이든공간이든무엇이든 나누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은강동이다그 가난을 모르는 이들이 쪽방 체험관 따위의 터무니없는 구상을 만들어 냈다가난은 진열대 위에 전시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제일 좋은 것을 잘 알아보고 골라 선택하는 일만 반복하며 살아야 한다고 우리는 실제로 그런 교육을 받았다 생각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공동체와 연대를 이야기하는 이 글 속의 열아홉 살 청년들을나는 이제 청년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라도 슬쩍 이들 옆에 앉아 보고 싶다.

 

지우는 내가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고 걱정하지만 나는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그 착한 사람들이 다 나처럼 가난하고 힘이 없는 게 문제이긴 하다그래도 마음이 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고만고만한 사람들의 숫자가 늘면그것도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동생이 무척 좋아하는 작가시라 오래 전엔 반가운 강연에도 함께 가곤 했다오래 전이라 써서 그런지 참으로 옛 일 같다다시 그런 환한 빛 아래서 육성을 듣고 얘기를 나눌 시절이 오려나출간해 주셔서 기쁘다책을 읽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

 

모르는 건 약이 못 되고 누군가를 깊이 벨 칼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들려주면서도 여전히 빛나는 것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글로 담은 작품이다. ‘김중미.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출간되고 20년이 지나는 동안 주변의 이웃들은 정규직 노동자에서 계약직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역사 속 어떤 시대도 가난한 이들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하지만 그래서 미래도 가난한 자들의 편이 아닐 거라고 체념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우리는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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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라 그래 (양장)
양희은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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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에세이라고 쓰고 나니 더 할 말이 없다.

 

읽어 보세요이런 덧 말 정도?



챙겨주고 싶은 이들을 불러 갓 지은 밥을 맛나게 먹이는 걸 좋아한다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밥심이 조금은 보탬이 된다고 믿는다.

 

사람은 세월이다친구 역시 함께 보낸 시간과 소통의 깊이로 헤아려야 한다. (...) 모두 나를 양희은 답게 만들어 주는 소중한 사람들더 챙기고 아껴주며 살 작정이다.

 

집에 계시는 남의 집 엄마들이 부럽기만 하다가 머리가 크고 나서야 엄마는 비교 대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박이 터지는 건 어쩌면 운이지만정성은 이쪽 몫이다잊지 말자.

 

내 삶에도 틀림없이 저렇게 중요한 부분을 옥죄고 있는 편견열등감자격지심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이 우리를 위로한다기보다 진심 어린 말과 눈빛이 우리를 일으킨다는 걸 배웠다.



이토록 힘찬 위로이게 양희은 방식!

 

https://www.youtube.com/watch?v=d8fiENcFkzI


오래전 방송복귀(?) 하실 때 반주는 기타 하나면 충분해요!”하시고

목소리로 무대를 다 채운 공연을 잊을 수 없다그때도 지금도 멋지다.

성시경씨 파트가 먼저 나오고 1분 50초 정도에 등장하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6WIRQKiSI8


어쩌면 산다는 건 말야
지금을 추억과 맞바꾸는 일
온종일 치운 집안 곳곳에
어느새 먼지가 또 내려앉듯
하루치의 시간은 흘러가
뭐랄까 그냥 그럴 때 있지
정말 아무것도 내 것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가만히 그대 이름을 부르곤 해
늘 그걸로 조금 나아져
모두 사라진다 해도 내 것인 한가지
늘 그댈 향해서 두근거리는 내 맘
오늘이 멀어지는 소리
계절이 계절로 흐르는 소리
천천히 내린 옅은 차 한잔
따스한 온기가 어느새 식듯
내 청춘도 그렇게 흐를까
뭐랄까 그냥 그럴 때 말야
더는 아무것도 머무르지 않는 게 서글플 때
숨 쉬듯 그대 얼굴을 떠올려봐
늘 그걸로 견딜 수 있어
모두 흘러가 버려도 내 곁에 한 사람
늘 그댄 공기처럼 여기 있어
또 가만히 그댈 생각해
늘 그걸로 조금 나아져
모두 사라진다 해도 내 것인 한가지
늘 그댈 향해서 두근거리는 내 맘
늘 그대 곁에서 그댈 사랑할 내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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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심리학 - 서운한 엄마, 지긋지긋한 딸의 숨겨진 이야기
클라우디아 하르만 지음, 장혜경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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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어렵고 멈칫하게 되는 주제이다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면 심리학이라는 학문으로 접근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든다만약 책을 읽고 배우고 생각하고 결심을 하거나 행동을 바꾸는 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야말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단계일 것이다다행히 그런 심각한 상황은 아니고 별 다를 바 없이 간혹 마음이 부대 끼는 것들이 있으니 다시 책을 읽어 본다.

 

독일 작가가 쓴 책이고 한국 작가가 옮겼다딸의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이해와 화해를 위한 책이다얼버무리기 보다는 솔직한 입장을 솔직하게 옮긴 책이고 8장의 <더는 못하겠다면>을 읽고는 조금 놀라기도 했다잘 지내든 그렇지 못하든 그럴 수 있다는 정확한 현실에 대해 가감 없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처음인 듯도 하다.

 

이론을 풀어 적용하는 내용이라기보다는 심리치료사인 저자가 연구 결과들과 치료 경험을 통해 만난 사연들을 소개하는 자료에 충실한 책이다사연들마다 저자가 전하려 하는 메시지는 빠지지 않는다사례 중심의 이야기들이 주는 공감과 위로는 생각보다 기대보다 크다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상황들을 만나면서 일단 자기 비하와 비난과 위축 등의 축소되는 사고 판단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그로 인해 관계와 삶에 대해 공통적인 면면들을 이해하고 용기가 나기도 한다가독성 높은 대화 방식의 에세이처럼 읽힌다.

 

왜 가도 가도 끝이 없을까요?”

엄마와의 문제는 절대 끝나지 않는 걸까요?”

엄마에게 다가갈 때마다 그 모든 해묵은 상처가 화산처럼 폭발하는 듯한 분노를 느끼는 딸들의 이야기.”

내면아이의 깊은 상처

이 세상 모든 딸들과 엄마들이 지닌 상처의 백과사전이자 치유 모음집.”

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응원의 책.”

 

모두 다 낯설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단 하나의 선명한 정답도 못 만난 문제이기도 하고무섭지만 말 그대로 끝나지 않는’ 문제이기도 하다엄마라 해도 자식에게 완전히 충분하게 완벽하게’ 사랑을 줄 수는 없다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자식들에게 결핍성 욕구가 생길 수 있고 그 욕구는 살다가 불쑥 튀어나와 삶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저자는 엄마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딸에게 제안한다성장하고스스로를 치유하고원하는 삶더 나은 삶을 살아내고가능하면 엄마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존재가 되라고.

 

오늘 상처 입은 아이는 훗날 상처 주는 어른이 된다.”

 

딸에게만 가혹한 것이냐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나조차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 밖에는현재에서 출발해서 미래로 나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이런 여정을 살아가려면 우선 이해해야한다그리고 화해해야한다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서로의 삶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을수록 더 어려울 것이다.

 

작가 역시 심리치료를 하면서 가족의 애착과 관계 역학이 성인인 딸에게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여 연구하고임상 치료 시에는 신체지향적 심리치료와 대화치료를 가장 많이 활용한다고 한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영화를 보듯’ 엄마의 삶을 바라보고여성이자 인간으로 이해하고딸인 자신도 독립적이고 온전한 인간으로 인지하고그러면서도 유기체처럼 완전히 떼어지지 않는 관계라는 것도 이해하고이미 살아 온 엄마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아무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진실로 이해하고내 엄마는 완벽해야 한다고 기대하지 말고인정하고 존중하는 부분들을 늘리고가능한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하자는.



르누아르 풍 책 표지가 아름답고 평화로워 무척 슬프다. <Young Mother> 메리카스사트작품 제목을 알게 되니 더 슬프다표지 그림 속 엄마가 어려서내 나이로 짐작해 본 내 엄마가 엄마가 된 나이가 아득하게 젊어서저 말간 얼굴의 어린 딸이 성장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들이 쉽지 않아서.

 

세상에는 어떤 상처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하고 거듭나는 이들이 있다그에 비해 나는 대단한 상처도 대단한 부담도 없지만 작은 일에도 지치는 기분이 든다사랑을 간절히 구하지도 않고 원망과 비난을 쏟아내지도 않지만잘 엉키는 감정 덩어리는 사라지지도 않는다깜냥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변명처럼 자주 사용하지는 말아야겠다저자는 분명히 성장하라고 제안했다.

 

생각해보면 부모보다 해주는 것 없이 요구만 많고 무례한 이들도 만나게 된다다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쉽지 않은 어느 하루가 무한 반복되는 듯 난감한 기분은 어쩌면 사라지지 않고 어쩌면 옅어지겠지만일단 무척 마음에 드는 인용문을 만났다.

 

빛이 있는 곳을 바라보자어둠은 안 봐도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인리히 베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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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노자를 만날 시간 - 숨 고르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석한남 지음 / 가디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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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월요일 휴일을 몇 번 만나겠어신나는 휴일, ‘노자’ 뜻은 다르지만 책 읽으며 놀고 싶을 때 만나기 좋은 호칭이시라 읽었다동양철학과 노장사상에 대한 기본기도 없으니 맘 편하게저자께서 수백을 넘는 주석이 달린 글이니 단정도 말고 즐겁게 읽으라셔서 더욱 편하게 읽었다.



<도덕경>을 읽지도 않고 도덕경을 해석한 책을 읽어도 되나잠시 멈칫거렸지만 어차피 고문헌은 못 읽으니 언제 읽어도 직역에 가깝게 해석된 글을 읽어야 한다<도덕경>은 5600여 자, 81, 1-37장이 도경, 38-81장이 덕경이라 분류된다춘추시대 말기 실존 인물인 노자의 성명은 처음 알았다성은 이이름은 이(), 자는 담(). 신기하다이름은 이고 자는 귓바퀴 없음’ 2,600년 전 작명법인가.


Lao Tzu leaving the kingdom on his water buffalo

https://www.theschooloflife.com/thebookoflife/the-great-eastern-philosophers-lao-tzu/


나는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살아야겠다류의 욕망은 구체적으로 없었고비교적 일찍부터 경제적 독립과 정신적 독립을 이루는데 집착했다독립이라 적으면 거창하지만 실은 내가 필요한 생활비를 자급하고 그 덕분에 재정 지원에 따르는 불필요한 간섭을 줄이는 방식의 단순한 내용이었다알고 보니 다들 별 말 없이 하는 일을 별나게 선언하듯…….

 

그러니 노자께서 평균의 삶을 위해 애쓰는 것들을 말리시는 내용은 편안하게 읽고 지났다큰 소원이 없이 살아온 삶이 도움이 될 때가 간혹 있다.

 

有無相生(유무상생있음과 없음이 서로 생겨난다.

우주에 속하는 모든 일상이 모두 그러하긴 한데선생의 뜻은 헤아릴 방법이 없어 아쉽다.

 

咎莫大於欲得(구막대어욕득가지려는 욕심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내가 살아 보니 필요한 것 이상을 가지려는 욕심은 곤란하다언제나 반드시 필연적으로 화를 부른다하지만 그런 시도는 그치질 않는다그러니…….

 

無爲而無不爲(무위이무불위무위에 이르게 되면하지 못할 것이 없다.

무위에 이르고 싶다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 전지전능이 아님을 잠시 잊고 욕심이 막 났다이래선 노자께서 말하는 작위가 없는 유위가 아닌 무위에 이르긴 어려울 듯네게 맞는 방식으로 살아라는 것과 상통하는 것인가.

 

知者不言 言者不知(지자불언 언자부지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잘 모르는 혹은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말을 많이 하는 상황들은 지겹도록 보긴 했다정확히 알고 배우고 말을 줄이고 잘 듣자.

 

信言不美美言不信(신언불미 미언불신신뢰가 가는 말은 아름답지 않을 수 있고 아름다운 말은 믿기 힘들 수 있다.

아름다움이란 표현 때문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잘 꾸민보기 좋은이란 뜻으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화술화법 말고 발화자가 전하려는 내용에 더 집중하면 들릴 것이다오래 전 영어를 정확히 구사하지 못하는 분의 강의를 수십 명이 집중해서 무척 즐겁게 들었다감탄하고 배울 내용이 가득했다그러니 외국어 공부하실 때 발음과 문법에만 힘을 다 쓰지 마시길중요한 것은 늘 언제나 담고 있는전하려는 내용이다모국어도 마찬가지지만.

 

뭇 사람들이 평하듯 내용들이 부드럽고 다감하다공자의 <논어>를 오랜 시간 좋아한 지라 두 분의 차이가 잘 느껴지는 기분이 든다가볍게 읽었다어려운모르는 한자를 찾아보지 않고 계속 읽은 방식이 뜻밖에 편안했다.


해치는 법 없이 만물을 이롭게 하는 하늘의 도다툼 없이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는 성인의 도예전엔 높이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아예 고려 대상에서 제쳐 두었던 말씀들이 이제는 선후판단 없이 편안하게 생각해볼 심적 여유가 있다이해 수준은 별 다를 바 없더라도힘을 뺀 것이 아니라 나이 탓에 힘이 빠진 것이라 해도 다행이다 싶다그 덕분에 내 삶에서 다투고 해치는 일이 덜하리라는 그런 기대가 높아졌으니.


2,600년 전 스승의 글을 만나니 무해한 존재로 살아가길 원하는 2021년 어느 저자가 떠오른다무위에 이를지는 모르겠으나 삶의 방향은 무해를 향해 똑바로 보고 가보려 한다가능한 열심히 무해하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변하고 있는 방향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이든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쪽이라는 사실이 굉장한 안도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저 사는 대로 살아지기 전에

스스로 신념을 가꿔가며 사는 일이

오래오래 성장에 대한 영감과 안정감을 줄 거라고 믿는다.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 신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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