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작품의 재구성
강용수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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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읽어 본 적 없는 철학자에 대한 ~카더라 식 이야기들 중 니체 관련 내용은 초인과 권력에의 의지가 있었다맥락 없는 짧은 인용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솔직하고 엘리트주의에 대해서도 긍정하는 위험하지만 무척 매력적인 이미지로 해석되었다이는 일종의 해방적 역할은 하는 지라 우아하고 고상하고 아닌 척하는 기성질서에 대한 저항과 반감에 복무하면서 근거 없는 내용치고는 꽤 오랜 세월 널리 회자되었다.

 

20대에 읽어 보고 싶었지만 무척 존경하는 교수님이 니체를 먼저 읽고 나면 철학사에 중요한 다른 저작들을 읽기가 힘들어진다고 만류하셨다신뢰하는 분의 말씀이라 진지하고 성실한 기분으로 칸트의 이성비판을 먼저 읽었다후회는 물론 없다칸트 선생 역시 무척 신뢰하고 존경할만한 분이고, 특히 저술에 있어 치장과 과장과 억측이 없는 아름다울 정도로 정직한 고찰을 하신 분이었다.

 

이후 분야를 달리하는 전공 공부로 인해 니체를 잊고 살다가, 2005년 한국의 니체 전공자들이 니체 전집 2권을 완역/완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읽어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지만 조각나고 왜곡되고 오도된 것들은 시원하게 바로 잡힐 거란 기대를 했다아래 인용은 니체편집위원장 정동호 교수의 출간 당시 인터뷰 내용이다출처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78763.html

 

니체는 초월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이념과 신앙은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생의 의미는 이 땅 위에 있다고 했죠그런데 초인이란 번역어는 그 본래의 뜻을 왜곡하고 말았죠니체는 초월적 존재를 반대했는데 말이죠독일어 위버맨시는 형이상학적 미몽에 쌓인 지금의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형이라는 뜻으로 쓰였는데도 미국에선 수퍼맨’ ‘오버맨으로우리말에선 초인으로 바뀌었어요.”

 

전집에서 위버멘시는 적당한 우리말을 찾지 못하고 원어의 발음대로 표기됐고 권력에의 의지는 힘에의 의지로 수정됐다고 한다.

 

권력힘을 뜻하는 독일어(Macht)를 니체는 정치사회적 힘뿐 아니라 에너지생명물리법칙 같은 자연의 힘을 말할 때에 주로 썼습니다권력이란 번역어는 그 뜻을 왜곡합니다.”

 

니체 사상은 생명윤리학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그는 내세의 소망이라는 짐을 잔뜩 지고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의 정신이 자유의 쟁취를 만끽하는 사자의 정신으로 변했으나이제는 기만과 미몽을 벗은 순수긍정의 어린이’ 정신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왜곡되지 않은 생명순화되지 않은 자연 생명을 강조했습니다.”


2

 

그리고 2021기분으로는 백만 년 만에 니체작품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니체의 문화철학으로 독일 뷔르츠부르크(Würzburg) 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강용수 교수께서 대표 작품 다섯 개를 현대어로 친절히 풀어 재구성한논리적 순서로 글을 재배치해서 비전공자인 나와 같은 독자도 읽을 수 있는(?) 글이다입문서나 해설서가 아니라 좋다.

 

고심 끝에 그는 인간은 약속이 허용되는 동물이라고 규정한다.”

 

그리스 비극 예술의 균형이 깨어지게 된 원인은 음악에 대한 가사(언어)의 과도한 지배다.”

 

몸을 더럽히지 않고 더러운 강물도 모두 받아들이려면 사람은 먼저 바다가 되어야 한다.”

 

영원 회귀는 (...) 인간의 선택과 결단을 통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인간의 지위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겸손함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유사하며 정신은 교활함의 결과일 뿐진화나 창조의 궁극적인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능력들의 서열거리적대시키지 않으면서도 분리하는 기술, (...)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함을 갖지만 카오스와는 반대되는 것이 니체의 (...) 본능의 전제 조건이다.”

 

차라투스트라에 따르면 선한 인간은 사실 악한 인간이다. (...) 그들은 진리와 미래를 희생시켜 자신의 존재를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니체의 윤리관예술관인생관종교관자서전을 다는 아니지만 잘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선정되었고 설명은 상세하다나로선 무척 흡족한 한 상 차림 같은 책이다니체가 망치를 들고 어떤 것들을 깨부수며 살았는지 신나게 재밌게 읽었다.

 

예전의 오독자들과 이유는 다르지만 위험하고도 매력적인 인물임에는 확실하다여러 평가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현대적인 인물인지는 몰랐다기본기와 깊이와 탁월성을 가진 철학자가 정면으로 덤벼드는 체제 전복을 위한 지적 사고여전히 그리고 오랫동안 니체와 그의 철학은 거듭 그 매력을 재평가 받고 인정받을 것이 분명하다.


3

 

마지막으로 이번이 아니면 할 수 있는 다른 기회가 없을 지도 몰라 무척 사적이고 감정적인 이야기를 덧붙여본다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운명애파티피플이 되어 요란한 반주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고 연애하라는 뜻이 아니다.

 

살면서 내게도 경직되고 오만한 생각들이 많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은 순간은 없지만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그 노래를 처음 우연히 들은 순간 마치 모욕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착실히 들어 가사가 다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니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아모르파티가 젊은 시절 자신을 흔들어 놓았다며 간단 설명한 작사가에게 심층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라 성실한 비판을 할 순 없지만 마음에 든다고 학자의 사상에서 한 구절을 떼어와 맥락 없이 희화해도 좋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지 않나그 대상이 오래전 사망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면 더구나.

 

자신의 철학을 왜곡한 21세기 한국대중문화사의 이 현상이야말로 니체가 뜻한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와 운명을 받아들이는 고통이라는 부정성을 포함하는 긍정을 담고 있는 일화로 보인다.

 

니체가 전하는 철학적 성찰은특히 자신에 대한 성찰은 삶의 여정을 통해 낯설고 고민스럽게 평생 마주해야할 질문이며자신의 행동이 선악에 휘둘리거나 좌우될 때의 선택과 결단과 책임으로 이어진다.

 

매 순간 선과 악의 근원에 대해주류의 지위를 성취한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가치를 끈질기게 따져 묻는모든 것을 전복하라!’는 다소 격한 구호로 연상되기도 하는 사상적 성취이다.

 

상업대중문화에서 주류로서 성공한 사례들을 자랑하는짜릿한 작업을 즐긴다는백 억 대 수익 구조가 어떻다느니 하는 그런 내용들과는 섞일 수 없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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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 병원 밖의 환자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양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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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건강염려증건강정보건강식품신비한 완치체험 등등을 믿지 않는 지라 아프면 의료면허가 있는 의사가 진료하고 치료하는 병원에 간다는 질환에 관한 나의 유일한 상식이고 태도이고 해법이다판데믹 시절 백신 개발에 대한 어려움과 과정이 자세히 보도되는 미디어 상황을 보면서 나는 이제야 온갖 의학 미신들이 사멸하고 의학과학적 사고방식이 득세할 것이란 기대를 했다내가 기대하는 것이 기대대로 잘 구현된 사례가 드물다는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현 상황이 어떤지는 다들 아시니까 구구절절 보고는 넘어간다.

 

그러니 내가 보는 세상은 의학과학을 신뢰하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이었다그리고 이 책을 만나 일부러 한 짓은 아니지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염두에 두지 못한 세상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고 배운다아프면 병원에 간다는 상식을 따를 수 없는 이들병원에 도착하지 못하는 아픔통증보다 더 어렵고 힘든 병원 가는 여정열 장도 못 읽고 일단 조금 울었다반성과 감동과 안타까움과 속상함과 무심함과 안도와 기타 등등이 섞인 눈물이 났다.

 

목 디스크로 팔이 저린 김 할머니의 침실에서 너무 낮은 베개를 보았을 때허리 디스크로 다리를 들 수조차 없던 박 할아버지가 앉은뱅이 밥상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식사하는 걸 보았을 때무릎 관절염으로 오전에 통증주사를 맞고 온 송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방에 걸레질하는 걸 보았을 때.”

 

아주 오래전 진폐증으로 병원을 오는 광부들을 치료해주던 의사가 똑같은 병이 재발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환자들을 돌려보내면서 약을 처방해주기만 하는 자신에 대해의료방식의 한계에 대해 무척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일도 떠올랐다한 개인이 괴로워하는 것 말고 뭘 더할 수 없게 두는 사회가 함께 원망스러웠다.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방과 방의 경계선이 점점 사라졌다여기가 안방인지 부엌인지 거실인지 알 수 없었다먹다 남은 찬거리와 음식들이 펼쳐놓은 이부자리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그러다가 집과 집 아닌 것의 경계선도 점점 사라졌다멀리서 보면 집인데 가까이서 보니 움막이었던 곳도 있었고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분들도 만났다.”

 

돈 없는 환자에 돈 없는 병원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는 내게 물었다만약 중환자실 입원 기간이 길어져서 입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감당할 수 있는가자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수술을 못할 것 같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릴 용기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600회가 넘는 왕진을 통해 한국에서 남의 집을 가장 많이 드나든 의사 중 하나가 된 저자가 왕진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찰을 이렇게 56편의 글로 만들어 주었다의사가 아픈 사람 만난 이야기일 뿐인데 56번 울컥한다.

 

진료실에서 나는 환자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질환과 마주한다. (...) 정체를 밝히는 데 성공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간혹 실패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실패에서 사람을 궁금해하지는 않는다궁금해할 여력도 없다진료실이라는 창백한 멸균 공간에 환자가 들어올 때 그는 자신의 맥락을 모두 버리고 들어온다. (...) 모든 것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오직 한 가지, ‘증상만 남는다.”

 

아마도 할아버지를 위한 20분 진료가 허락되지 않았을 대학병원은 약 부작용을 약으로 치료하려 했던 것 같다지금은 실력 없는 의사보다도 시간 없는 의사가 더 많다하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시간이 많은 의사도 필요하다.”

 

여력이 없다는 글이 핵심이다진료대기표를 볼 때마다 절감하는 문제이다보호자로 진료실 문 밖에 앉아 나는 진료실 안의 풍경에 난감한 기분이 들 때도 여러 번이었다의도하지 않아도 진료 시간에 대기명수를 보면 일인당 배정된 시간 계산이 되기 때문이다꼼짝 못하고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여타의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의사들의 근무환경은 모두의 처지를 안타깝고 불편하게 한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야 장의사처럼 나타나서 사망 선고를 하고 가버렸다는 전공의그는 결국 그런 수련 과정을 통해 무엇을 체득하게 될까.”

 

가족 친지들 중 의료인이 세 명이다심장 외과와 응급 의학 분야이니 소위 상대적으로 편할 수도 있다는 분야도 아니다보고 들은 일들로 짐작하건대 20살이 되자마자 의학서적을 독파하는 방식으로 학습하고 전문의가 될 때까지 테스트를 치러야하는소위 교양과정조차 허락하지 않는 교육시스템은 옳지 않다30살이 훌쩍 넘어 어느 날 직업 이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휴가는 어떻게 보내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상담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생각해보라는 말 이외에 해줄 말이 없어 몹시 난감하고 마음이 아팠다.

 

아무런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속에 갇혀서 오직 자신의 욕망자신의 고민만 들여다보는 사람그것이 내가 있었던 의사들의 세계다진료실은 의사를 자폐적 세계에 가둔다타인의 고통에 누구보다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둔감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에 가능해진다. (...) 진료실이란 공간은 단순히 환자를 증상의 덩어리로 보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 하여금 환자들의 삶에 눈을 감게 만드는 눈가리개 역할도 한다.”

 

현직 의사로서 저자가 제안하는 두 가지를 해법을 소개한다첫째, ‘의사들의 왕진 제도화.’ 왕진 수가를 현실화하고왕진 주체를 공공의료 영역으로 바꾼다방문진료 전담 센터를 만들고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둘째, ‘고령층의 정치세력화.’ 일상적인 요구를 정치화할 수 있는 어르신 정당이 절실하다.

 

대학병원에 인턴 수급이 되지 않았을 때 어떤 파국적 상황이 벌어지는지 누구보다도 의대생들이 잘 알고 있다의대생들이 승리를 자신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의료가 공공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 모두가 의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힘이 생기는 것이다정부가 의사들에게 군 입대를 공중보건의로 대체할 수 있게 허용한 것도의대생들이 의사고시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공공의료에서 일할 단 한 명의 의사가 아쉽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당하게 부과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온갖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가족 간병과 관련된 제안을 소개한다가족의 간병을 묵인하고 방치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비겁하고 비열한 사회이다부정적 결과로 발생한 사건을 두고 가족애니 효도니 그 따위 수준의 망발은 부디 누구라도 삼가길 바란다.

 

가족들에게 간병하지 않을 자유를 주지 못하는 사회는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사회다.

우리에겐 가족을 간병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그 권리를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가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

내가 그를 간병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그를 간병해줘야 한다.

만약 내가 간병을 선택한다면

사회가 치러야 할 공동체의 비용을 아무런 조건이나 장벽 없이 나에게 지불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택할 수 있다.

간병 받는 사람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인이나 가족의 '간병하지 않을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간병을 거부할 자유는 간병할 자유간병 받을 자유와 같은 말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치료받고 병원에서 죽어가는 삶이 중요한 공간과 시스템에 대한 치열하고 심도 있고 실용적이고 선한 의도를 가진무엇보다 누구의 희생도 담보하지 않는’ 방식의 논의와 대안과 정책을 기대한다.

 

나는 무관하다 말하는 순간 답은 없어진다. (...) 나는 늘 믿어왔다한 사람의 이웃이 국가보다 중요하다고그렇다면 나는 왜 그 한 사람의 이웃이 되면 안 되는가그런 질문들이 길을 만들어줄 것이라 믿으며 나는 다시 왕진가방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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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오가니즘 - 디지털 생태계의 거대한 지각변동
올리버 러켓.마이클 J. 케이시 지음, 한정훈 옮김 / 책세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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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를 통해 언론 산업은 새롭고 거대한 진화론적 도약을 이룬다나는 그것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만큼이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을 보고 살짝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오래 전 사회유기체론에 대한 논박을 벌이는 학회 분위기에 발만 담갔다가 미처 정리를 못하고 멀어진 경험 때문이었다사회적으로 실제적으로는 관심 있는 몇 명의 학자들만 합의한 정의분석비판평가들이 내게도 얼마나 오랜 세월 유의미하게 활용될지는 모를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제목처럼 이 책에서 다루는 소셜 오가니즘은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정의한 사회는 하나의 생명체사람들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작용을 한다라는 기본 개념을 수용한다.

 

20년 정도의 시간을 거치며 소셜미디어가 면모한 모습은 가치 천지개벽 수준이다지금은 매순간 전 세계 사람들이 이른바 실시간 소통을 하고해시태그로 사회운동을 진행시키기도 한다온라인에서의 움직임이 먼저 시작되고 오프라인으로 확장되는 순서도 어색함이 없다.

 

소셜미디어는 우리가 정보를 공유하고 사용하는 방법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사업을 조직하고정치적 결정을 내리고유대감을 쌓고서로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영원히 바꿔 놓았다.” 

 

인간이 활용하는 매체로서만 활발히 기능한다고 보았다면 굳이 유기체로까지 표현하지 않아도 무방했을 것이다저자가 보기에는 개인이 생성하는 정보가 유기체의 세포와 같다고 비유한다즉 세포 증식과 번식 기능처럼소셜미디어의 정보가 유사한 방식으로 증식하고 사멸한다고 보는 것이다더구나 속도의 가속화가 엄청 나서 지금은 매우 복잡한 유기체로 이미 진화했다고 판단한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그런 평가는 지금도 데이터가 쌓이고 갱신되고 있으며소셜미디어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이용자 혹은 정보 생산자의 여러 의도가 더 촘촘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이런 나로서도 현직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선동해 자국의 의회를 총기로 점령하고 발포한 사태는 정말 충격적이었다건국 이래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일진대왜 아직 처벌 관련 소식이 없는지이제까지의 모든 이슬람 테러 위협을 다 집어 삼키고도 능가할 테러가 아니었나극악한 위선!

 

저자는 소셜미디어에 대한 너무 많은 통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지만나는 좀 더 절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더구나 저자의 입장대로 이미 복잡한 유기체로 진화했다면물론 에너지원이 끊어지면 모두 중단될 것이지만에너지 복구가 되면 가장 먼저 정상가동될 것 역시 소셜미디어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어쨌든 그렇다고 근원적인 회의나 거부 말고 가능한 건강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한다다른 모든 인류의 문제들처럼자정하고 망가지고 재정립하고페이스북인스타그램트위터의 검열 기능은 경험상 만족스럽진 않지만 신고된 계정 처리에 비해 폭발적으로 등록되는 스팸의 수가 더 많은 것일 터이지만비유하자면늘 살인을 일삼아온 인류에게는 여전히 살인하지 말라라는 종교적사회적법적으로 합의된 규칙이 필요하다살인을 완전히 중단시키기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모든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의 복제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오래 전부터 동의한 나는 소셜미디어 역시 현실 사회의 모든 문제를 경험할 것이라 생각한다이미 여러 영역에서의 불평등은 뚜렷하다


가끔 소셜미디어 사용을 중단해 보기도 했지만판데믹 시절 나는 거의 매일 접속을 한다오래 못 만난 이들어쩌면 더 오래 못 만날 이들을 만날 세상이기 때문이다어쨌든 나는 최대한 건전하게 사용하려 애쓸 것이다투덜거리는 메모 수준의 일기와 편협한 독서감상문이 뭐 그리 큰 해악을 끼치리라고 기대(?)하긴 어렵기도 하다.

 

소셜미디어의 유용성과 의미가 사적으로 커지는 시절잠시 가만히 내 행태를 점검해보는 좋은 시간이 되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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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4천만 부가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
사사키 겐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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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에 읽던 책들을 어제까지 마무리하느라 4월 북클럽 책을 오늘이 되어서야 펼쳤다한다고 한 일을 중도 포기하거나 일정을 못 지키거나 하는 일이 없이 살아온 삶이라 4월 마지막 주에 못 읽을 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좀 놀랐다그런데 마치 그런 심정을 다 안다는 듯 김영하 작가가 믿음을 가지고 완독하라!” 하고 모임도 51일로 변경해서 덕분에 예외를 만들지 않고 나름의 사적 고유성을 지킬 수 있다.

 

원제: <사전이 된 남자-보 선생과 야마다 선생(辭書になった男 ケンボ-先生山田先生)>

 

신메이카이 국어사전과 산세이도 국어사전의 탄생과 진화를 둘러싼 실화를 다루고 있는 책

 

단어와 사전과 언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일본에 대한 지식이 얕은 탓인지 나는 언어가 품고 있는 역사성과 문화성에 관한 내용이 반가웠다예전에 본 사전 만드는 소재의 영화*가 충분히 재미있을 정도로 종이책을 좋아하기도 하고책 만들고 사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다. 


<행복한 사전>은 한국어 영화 제목이고 원제는 <배를 엮다>. 


날은 흐리고 비는 내리고 명랑 발랄한 에너지나 희망을 드높이는 이야기도 싫고 어쩐지 소설도 싫고 영민하고 진지한 이론서도 내키지 않은 날차분하게 별 일 없는 이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음에 든다모든 책이야기는 다 좋다자기 분야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한 이들이 좋다그러면서도 새 동향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이는 더 좋다.

 

전통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추악하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공통의 관심사이자 자신의 인생을 담은 로 잠시 하나가 되기도 하는서로를 인식하고 일종의 예의를 잃지 않은 방식으로 마음을 쓰는 사이라 좋다. 언제나 변화하는 존재인 의 본질이 있다고 믿고 파악하려는 노력그 어렵고 멋진 도전이 좋다존재의 함축어 이율배반*!

 

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에서 언급한 이성이 필연적으로 빠지게 되는 자기모순으로서의 이율배반 말씀인가요?

 

일견 사전이란 지극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어원과 용례의 평균치에 합치하는 내용으로 무미건조하게 정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사전편찬작업을 하는 켄-보 선생과 야마다 선생이 대비되는 무척 짙은 개성을 가진 분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궁금하기도 했다.

 

신메카이단어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위트있고 신선한 반면 사전에 실을 단어를 선정하는 것에서는 매우 보수적.

산코쿠단어 설명은 매우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싣는 단어에 대해서는 매우 오픈마인드.

 

[연애]


신메카이특정 이성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둘이서만 같이 있고 싶다가능하면 합체하고 싶다는 감정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나 이루어지지는 않아 심하게 마음이 괴로운 상태.

심하게 괴로워야만 하나요......?

산코쿠남녀 사이에 서로 그리워하는 애정(그리워하는 애정이 작용하는 것)

 

[독서]


신메카이연구조사를 위해또는 흥미 본위가 아닌교양을 위해 서적을 읽는 것. (뒹굴거리며 읽거나 잡지/주간지를 읽는 것은 본래의 독서에는 포함되지 않음)

내가 독서라고 생각한 많은 분량들이 제외되는 충격뒹굴거리면 안 되는 거였어...

산코쿠책을 읽는 것.

 

사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다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저절로 문면에 떠오르는 것이다.” 22

 

사전이란 우리가 이라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사용하기 위한 인프라이기 때문에 사전을 만들고 있는 개인을 표면에 내세워서는 안 된다.” 50


: 이 두 문장에서도 드러나는 이율배반. 저절로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내세우는 것은 안된다고 정리해본다. 


존엄한 인간이 하나의 인격으로 취급되는 것처럼사전 한 권에는 마땅히 편자 특유의 맛이 뭔가의 의미로 배어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4

: 계속되는 혼란. 마땅히, 란 표현이 강렬하면서도 시원하면서도 '일리'뿐이라는 비판도 당연하다 생각한다.


사전은 말을 비추는 거울입니다동시에사전은 말을 바르게 하는 귀감입니다.” 286

 

실체 없는 이라는 존재에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이 움직였고그 후 두 편찬자는 결별에 이르렀으며두 개의 국어사전이 탄생했고 발전해나갔다너무나도 아이러니한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여기서도 은 사람들을 농락하듯이 모습을 바꾸었다.” 375

 

말을 가진 인간은 자신의 심적 세계도 말로 분석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을 낳고 키웠다마음을 가짐으로써 자아가 싹트고 자존심이나 허영심시의심도 가졌다도덕심을 갖고 타인과 협력하게 되었지만타인에게 거짓말도 하게 되었다고뇌나 갈등도 안게 되었다.” 382

: 전복과 역전!으로 읽히는 문장. '말'을 가짐으로써 인간의 진화의 방향이 정해졌다니,  사전은 말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말'은 다른 주체를 '비추는' 반영물이 아니라 훨씬 강력한 것이었단 생각을 한다. 어쩌면 몰라도 매일 우리가 하는 일. 

 

일본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 없는데도 사전 두 권이 일단 탐이 난다 -몰론 자제할 것이다가능하면 좀 더 말을 줄이려고 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 사는 날이 거의 없으니그 많은 말 중에 가치가 있었던 후회하지 않을 말들은 얼마나 될지 고개가 숙여진다. ‘이 인생만큼 중요한 두 분이니 언젠가 어디에선가 을 나누게 되길, ‘’로 인한 이율배반을 '말'로 해체시킬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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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땅 -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유럽 걸작 논픽션 22
티머시 스나이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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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그 또한 선택인지 4월에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두 권 읽었다수용소에 갇혔다 구출된 이야기에 안도하고해방군 소련군에 의해 스파이로 의심받아 재판을 받고 15년 형을 받은 이야기에 숨이 막혔다


정직하게 회고해보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인명을 살상했다는 제2차 세계대전은 그리 오래 된 역사가 아니어서 그로 인해 찾아보고 배울 마음이 쉽사리 들지 않았다아무리 애써도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동종 인간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끔찍하고 두려웠다표정 없는 숫자마저 무거운 희생자들의 피가 흐르는 역사가 너무 뜨거웠다.

 

나는 읽고 싶지 않았던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에 드러난 인간의 모습과 기억해야할 역사에 압도당한 친구의 집요한 추천으로 <피에 젖은 땅>을 20일부터 함께 읽었다. 800쪽이 넘는 분량은 어느 한 쪽도 잠시의 휴식을 허락하지 않는 학자의 단단한 결단과 필사의 연구 결과들로 빼곡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버겁던 시절에 대한짐작보다 더욱 적나라하고 충격적인 야만성과 무참한 슬픔에피는 땅을 적시다 급류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참상을 느꼈다구역질나게 충격적인 스탈린의 자국민 살해 상황에 대해서도 까맣게 몰랐던 지라 이 책을 통해 상세히 목격하고 정확히 배웠다.

 

미국와 영국 입장에서는 카틴 대학살에 대한 소련의 거짓 주장을 받아들여 독일에 비난을 퍼붓는 것이스탈린을 설득하기보다는 폴란드에 타협을 종용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한 일이었다따라서 그들은 폴란드인들이 거짓즉 소비에트가 아닌 독일이 폴란드 장교들을 학살했다고 받아들여 주길 바랐다아울러 폴란드가 주권이 있는 정부라면 결단코 취할 수 없는 조치즉 자국 영토의 절반인 동부를 소련에 넘겨주길 원했다.”

 

피에 젖은 땅블러드랜드bloodland는 폴란드 중부러시아 서부우크라이나벨라루스발트연안국들이다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도 전에 멍청한 정책실패로 대기근이 발발했고강제이주대숙청대공포로 권력이 발광하면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날들이 이어졌다강제된 끝없는 굶주림은 우크라이나에서 부모가 자식의 인육을 먹도록 만들었다히틀러가 역겨운 환상 속에서 스스로 설계한 천국을 위해 타민족을 살해했다면 스탈린은 경제발전을 위한다는 거짓 명목 하에 자국민을 살해했다.

 

소련령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족이 가장 약한 식구를 잡아먹었다보통 어린애들이었다중략착한 사람부터 먼저 죽었다남의 것을 훔치거나 몸을 파는 일을 끝내 하지 않은 사람들시체 뜯어 먹기를 못내 거부한 사람들도 죽어갔다.”

 

정갈하고 깊이 있는 연구 결과를 읽으면서 이유가 되는 감정이 무엇이든 눈물을 참기가 힘이 들었다방금 전 읽은 문장들로 눈이 흐려지고 나면 이전에 읽은 문장들은 정말로 그 뜻 그대로 일까 믿을 수 없어 다시 읽어 보기도 했다희생자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다인간으로 살아왔던 일대기가 비참하다책을 붙잡고 흘리는 눈물이 언젠가 가 닿을 지도 모르는 먼 나라의 장면들마다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간 이들이 있었다.

 

나치와 소련 체제는 사람들을 숫자로 바꿔버렸다그들 중 일부는 단지 추정치가 되어버렸고나머지 일부는 우리의 정밀한 추계를 통해 복원될 수 있다이 숫자들을 찾고이를 통해 일정한 전망을 내놓는 작업이 절실하다인간의 마음을 가진 우리로서는그런 숫자들을 사람들로 돌려놓아야 한다우리가 그럴 수 없다면히틀러와 스탈린은 단지 우리의 세상을 마구 뜯어 고쳤을 뿐 아니라우리의 인간성마저 개조했다는 뜻이 되리라.

 

이런 일들을 겪고도 인간은 살아남고 또 기록했다피투성이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거운 흑백의 장면들을 보고 싶지 않아 읽고 기억하는 간단한 일을 외면하고 유예한 시간이 아팠다오늘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내일에는 희망이자유가해방이 있을 수 있다고 믿고 또 믿은 이들이 있었다몸이 살아남은 이들의 부서진 마음은 속도를 맞춰 회복되었을까거듭되는 악몽처럼 그 시절의 지옥에 사로잡혀 있을까상처가 트라우마가 자신을 유일한 죄수로 가두는 독방의 벽을 쌓아 올리지 않았길 간절히 바랐다.

 

여행자로 지나간 낯선 땅이자 친구를 만들지 못한 곳에서 살다 살해된 이들의 고통과 죽음에 어째서 공감할 수 있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통증을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으로 종의 가치를 변별하고표정을 읽을 수 없는 생물의 통증과 고통을 부정하는고통을 종의 필연과 보편의 기준으로 삼는 존재가 인간이라나는 아직 인간이구나 안심하고 또 서럽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 불가능하다고 보는 일은 이해를 포기하는 일다시 말해 역사를 버리는 일이다.”

 

울음소리를 조용히 삼켜가며 읽는 내게 희생자들과 생존자들은 피에 젖은 어두운 땅 속으로부터 또렷한 목소리로 끝까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맞고 채이고 짓뭉개지고 베어지고 찢겨지고 잡아 먹혀서 피로 녹아 땅 밑에 잠겨든 이들을 끄집어내며 저자는 어떤 눈물을 얼마나 흘렸을까.

 

희생자들은 사람이었다그들과 진정으로 동일시되고 싶다면그들의 죽음만 볼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봐야 한다정의상으로 희생자란 죽은 사람이며다른 이들이 그들의 죽음을 어떻게 이용하든 저항할 수가 없다희생자들의 죽음을 내세우며 어떤 정책을 미화하거나 스스로와 희생자를 동일시하는 일은 쉽다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별로 매력이 없다그러나 도덕적으로는 더 중요하다어쨌든 도덕적 위험은 누군가가 될 때보다 범죄자나 방관자가 될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살해한 후 목소리마저 빼앗아 조용히 잊히기를 기다리던 당대의 권력을 이어받은 현재의 권력에게 저자는 책임과 정의와 복수의 목소리를 높이자고 하지 않는다손쉬운 이 방법이 제시되면 할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을 골라 참여하고 방향을 틀어 탈출하려던 나는 그래서 난처하다.

 

악은 선에 의존한다는 간디의 말이 있다모여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헌신적이며 그 일이 옳다고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헌신과 믿음이 있다고 당시의 독일인들은 선량하다고 볼 수는 없다그러나 그들도 인간임을 알려 줄 근거는 된다다른 모든 사람들처럼그들은 윤리적인 사고를 했다비록 무시무시한 착오를 저질렀지만 말이다.”

 

저자가 정교하고 상세하게 먼저 들여다보고 들춰낸 진짜 기록들 학살자들의 문서 기록과 희생자들의 일기와 편지생존자들의 증언들 -을 읽으며 나는 어지럽고 울렁거려서 그만 읽고 싶다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모두다 인간이 만든 역사인데 인간적인 감동은 전무하다인간이 인간을 취급할 수 있는 최악의 역겹고 끔찍한 방식만이 또렷하다극과 극은 통한다는 가르침을 확인할 수 있는 점 정도는 유익하달 수 있다개인이든 집단이든 극우와 극좌의 합작품으로서의 학살이 어떤 모습의 비극인지를 확실히 배우게 된다방대한 자료 분석과 종합적 보고를 읽어 낼 수만 있다면 전모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된다.

 

그 해 봄 하루에 1만 명 이상씩 사망했다.” “연못의 낚시를 하다 학급 친구의 잘린 머리를 건졌다중략이런 일은 1933년 우크라이나에서 드물지 않았다.” “인육을 파는 블랙마켓이 열렸다.” “나를 죽이려고 칼을 갈던 아빠의 모습(생존한 여섯 살짜리 소녀).” “엄마가 자신을 먹도록 아이에게 강권하였다.” “사방에 거적때기나 담요를 덮어쓴 소년 소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그들은 자기 배설물을 먹으면서 죽음을 기다렸다.”

 

완곡한 것들로 골라 적어 본다저자가 어째서 흔들림 없이 극사실주의의 관점에서 모든 참상을 전하는 지 이해하려 노력했다. “히틀러는 스탈린으로부터 힌트를 얻고 스탈린과 각축을 벌이면서 살인 기계가 됐다.” 이런 신성한’ 동맹을 통한 독.소의 합동 작전은 재앙으로 확대되고 지상의 에덴동산’ 건설을 위해 필요한 목숨은 이곳에서 1,000레닌그라드의 사람들을 폭격으로 또 굶겨서 죽여 나머지 400만을 채웠다.

 

한 생존자는 농민이 무슨 일을 하든, “그들은 죽고죽고또 죽었다고 회상했다죽음은 느리고굴욕적이며넘쳐흐르고흔해빠진 일이었다페트로 벨디는 죽음을 예감한 날 안간힘을 써서 고향 마을을 기어 다녔다다른 마을 주민들이 어디 가냐고 물어봤는데그는 자신을 매장하러 묘지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그는 낯선 이들이 자신의 몸을 구덩이까지 끌고 가길 원치 않았다그래서 자기 무덤을 미리 파두었지만묘지에 도착했을 때는 다른 시체가 이미 그곳에 있었다.”

 

운이 좋아 평화로운 세상의 기억이 더 많은 내게 폴란드는 쇼팽의 나라였다쇼팽의 심장이 잠들어 있다는 성 십자가 교회(Holy cross church/Kościół św. Krzyża)는 성스러웠고그 심장을 한 때 가져갔다는 히틀러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더없이 역겨웠다바로 옆에 작은 공간으로 기록된 <Katyn 1940>이 소련이 카틴 숲에서 자행한 학살을 추모하는 곳이라는 것을 듣고도 수많은 비극과 폭력의 기록이라고 무심히 이해하고 끄덕였다.



이 책을 읽으며 찾아본 자료들에는 폴란드의 희망과 미래를 모조리 망치려고 지식인들과 장교들을 골라 학살한 사건의 전모가 있었다. 추모를 위해 이곳으로 향하던 폴란드 대통령 내외와 동승자들 97명이 러시아 변방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모두 사망했다는 비극적인 보도도 만났다안온한 추모가 가능한 시절은 오지 않은 비극이 핏빛으로 어두운 곳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대학살 역시 완벽하게 과문해서 편안한 시절은 사라졌다우크라이나를 울렸던 비명과 적셨던 피를 떠올리지 않고 이 나라를 다시 볼 수는 없다저자가 글 속에서 죽어간 우크라이나 소년의 이름을 부를 때 또 다시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이오시프 소볼레프스키어머니다섯 형제와 함께 아사했다여동생 한나만이 살아남아 과거를 증언한다.



표정 없는 숫자를 하나씩 떼어 이름마저 피에 젖어 잠긴 이들의 이름을 낱낱이 호명하는 방식으로 저자는 우리는 현장으로 초대한다역사란 재미있고 흥미롭고 배울 점이 가득한 옛 이야기만이 아니라고연속성을 잃는 법이 없는 역사를 몸이 덜덜 떨리고 마음에 통증이 번지는 현장으로 경험해보라는 초청이다


살해된 이들의 피로 젖어든 땅들은 여전히 마르지 못했을 것이다땅을 적시다 넘쳐흐른 피는 세상의 모든 곳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우리는 그들의 비명을 마시고 피를 맛보며 살아왔을 것이다. “모든 삶은 이름을 갖는다.” 죽음이 아니라 빼앗기기 전 그들에게 삶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죽음이 아니라 삶에 어울리는 이름을 내가 가진 인간의 온기로 불러주고 싶다.

 

...................

 

10일 간 읽으며 필사한 내용이 20쪽이 넘었다사이사이 넘쳐 난 감정들만이 조각난 문장들에 담겨 이어지지 않는 감상으로 남아 있었다저자의 바람대로 오롯이 정리할 수는 없어 한 순간 쓰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기록을 남기는 행위가 기억을 도울 것이라 믿어 뭐라도 두서 없이 써둔다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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