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 자연주의자의 일기 - 지구에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은 한 소년의 기록
다라 매커널티 지음, 김인경 옮김 / 뜨인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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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하니 곧 바로 낭패다 싶은 생각이 스며들었다남의 일기를 몽땅 필사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았다기막힌 묘사가 이어지고 아프고 아름다운 정서가 문장 마다 느껴지고 구체적이고 다양한 많은 지구생명체들이 등장한다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온전히 굴복하게 되는 글이다마음의 무릎이 스륵 접힌다.

 

"내 이름은 다라다도토리를 맺는 참나무처럼 커다란 나무로 자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라는 뜻이다엄마는 예전에 나를 론두라고 불렀다(론두는 아일랜드어로 대륙검은지빠귀라는 뜻이다). 엄마는 요즘도 가끔 그렇게 부른다."

 

"나는 자연주의자의 심장과 (지금은 장래희망인과학자의 머리와 자연에 가해지는 무관심과 파괴에 지칠 대로 지친 뼈를 지녔다."

 

"잊고 있던 장소가 갑자기 기억날 때의 느낌을 아는지나는 작은 숲에서 막 걸음마를 배우던 때로 돌아갔다엄마가 나를 들어 올릴 때까지 라일락꽃을 밟아 뭉개고 있었다그 기억을 뒤로하고 빠르게 두 해 정도가 흐르더니 쇠똥구리를 찾으려고 쇠똥을 뒤적이고 이끼 낀 둑에 올라가 뭔가를 찾던 때가 떠올랐다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땅바닥에 누워 참나무 가지를 올려다본다. 그림자로 얼룩덜룩한 빛이 우거진 가지 사이로 비치고, 나뭇잎이 고대부터 내려온 주술을 속삭인다.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오면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광경을 보고 소리를 들었을 이 나무는 숱한 멸종과 전쟁과 사랑과 상실을 목격했을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사람에게 학교는 뭔가 학습하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다소음을 걸러 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집중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든다나는 오후 3시 정도면 완전히 진이 빠진다하지만 집에 와서 숙제를 해야 하고 기상 알람을 맞춰야 한다그리고 다음 날 이 모든 것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뒷문 계단에 앉았는데 새소리의 힘과 강렬함이 이전보다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뭔가 절박함이 부족했다봄과 이른 여름의 업무가 끝나 가고 있었다."

 

"대륙검은지빠귀와 다른 모든 새들은 내년에 다시 시끄럽게 노래할 것이다돌쟁이 때부터 침실에서 그림자를 바라보며 알게 된 사실이다노래는 멈추지만 항상 다시 시작된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며 해 질 녘의 향취를 맡았다어둑어둑한 그림자가 휙 날아갔다박쥐가 각다귀를 잡아먹으려고 나오고 있었다나는 눈을 감고 간질간질 스치는 만족감을 만끽했다오늘을 버텨 낸 나 자신이이 하루가 씁쓸하게 끝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어두운 마음이 나를 완전히 삼키도록 놔두지 않았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Anne Hailes: Young naturalist Dara McAnulty has certainly proved naysayers wrong 

출처www.irishnews.com


작가는 자신만의 예민함으로 아주 날카롭게 관찰하고 통찰하지만 전하는 방식은 무척 솔직하고 따뜻하다의도적으로 배려하는 기획이 아니라 할지라도 위로를 받는다야단법석을 떨며 온 세상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종류의 예민함이 아니다.

 

외부로 향하지 않은 모든 에너지들이 갈고 닦은 능력일까, ‘글쓰는 법을 배운 것 같지도 않은데 아주 잘 다듬어진 예민함을 자연스러운’ 문장들로 폭발하듯 넘쳐흐르듯 기록했다.

 

봄과 여름을 읽다문득 (만약 있다면 혹은 아직 남았다면나의 예민함은 어떤 모습이었는지지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고민에 빠졌다.

 

편리한 이유를 들어 애써야 유지할 수 있는 예민함은 적당히 밀쳐 두고 사는 건지세상을 인지하는 태도는 성실한지누구의 취향도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는 팔아넘기지 않았는지다른 일들로만 정신없이 바쁘면서 아직도 관심이 있는 ’ 다른 이들만 지적하며 예민하게 굴지는 않았는지고민이 커진다.

 

누군가의 고통이 멋져 보인다고 말하거나 함부로 닮고 싶다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예민함으로 충만한 저자의 멋짐을 닮고 싶다.

 

예민함은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인지……귀찮은 것 많고 게으른 나로서는 멋져서 부럽다가도 알 듯 모를 듯알고 싶기도 하고 모르고 싶기도 하고.

 

변화란 스스로 독려해도 어려운 일앞으로도 내가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은 말자는 교훈을 급하게 얻었다나는 원체 언제나 꿈이 작은 부류였다변화와 혁신 말고 조금씩 가다듬고 살자.



"지구의 공전 덕분에 특정한 시기에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오늘은 뻐꾸기 소리를 무척 듣고 싶었다나는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것에 집착하는 편이다모든 것의 처음은 매우 특별하다."

 

"막 날기 시작한 어린 새들조차 프랑스스페인모로코를 경유해 사하라 사막을 넘어 아프리카 서쪽 해안으로 돌아가거나 나일 계곡 동쪽을 거쳐 남아프리카로 가는 위험한 장거리 여행을 하는 어른들 틈에 낄 준비를 해야 한다."

 

"새들의 믿을 수 없는 여행을 생각하면 언제나 감탄이 나오는 동시에 용기를 얻는다이렇게 작은 몸집으로 굶주림과 탈진과 싸우면서 6주 동안 매일 300킬로미터를 날 수 있다니학교사람교실 같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걱정이 시작될 때면제비의 회복력과 투지를 생각한다."

 

"이상했다너무나 평범한 하루다평소에는 바람만 조금 불었다 하면 태풍으로 변하기 일쑤였다지금은 바람도 잔잔하고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다 해도 나는 웃을 수 있다행복하다동시에 좀 더 까다롭고 단단해진 느낌이다."

 

"햇살이 이 모든 것을 통과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내내 조심스러웠고 과연 얼마나 오래갈지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담장과 담쟁이넝쿨에 그늘이 드리우면서 의심도 자라났다나는 빛과 그림자 둘 다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둘은 내 일부고 그것을 바꾸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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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커널티란 저자 이름 발음 확인하신 것 맞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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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 - 지금껏 말할 수 없었던 가족에 관한 진심 삐(BB) 시리즈
김별아 지음 / 니들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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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도 때로는 무례가 된다중략.

그런 무지와 무례 속에서 우리의 가족은 남몰래 아프다.

기대는 실망으로실망은 분노로 바뀌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죽도로 미워하게 된다.”

 

2009년 출간된 <가족 판타지>의 개정판이라니! 2009년도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원통한 심정이다꽤나 지난 이야기이지만 서로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양가를 감동시키고 결혼한 친구들(부부가 모두 친구)이 상대방의 숨소리조차 소름 끼치게 미워하게 되고 별거를 거쳐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본 경험이 떠오른다.

 

문제는 이혼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니라 결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다결혼을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까지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몰아넣어야 속이 후련한 사회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상 상태로 분류하고서야 안심하는 사회에 먼저 이혼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한 만큼 이 분석은 무척 유의미한 통찰이다사는 일에 끝까지 정해진 순서가 있다는 생각은 어쩌다 하게 된 일일까.

 

뭐라도 쓴다는 일은 자꾸 누군가를 팔아넘기는 일 같지도 느껴지지만어쨌든 또 친구 얘기를 하자면결혼과 아이에 대해 아무런 욕망이 없다는 것을 비교적 일찍 알게 된 친구가 그렇게 잘 살다가 문득 혼자 살기가 지긋지긋해졌다고 했다나름 합리적으로 자신과 아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를 소개 소개받아 서로가 상세하게 계약서를 작성하듯 제안하고 합의하고 좀 더 신나는 미래를 꿈꾸며 결혼을 했다.

 

재밌게 같이 놀 친구가 생겼다고 무척 좋아했는데재미가 없었던 것인지 일상을 함께 하는 일은 재미를 목표로 해서는 도저히 짊어질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었는지결혼하던 풍경과 비슷하게 이혼을 했다결혼하기 전에도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고 이혼하기 전에도 친구들을 모아 함께 식사를 했다.

 

뭐랄까온갖 뜨거운 감정들말들행동들이 오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사는 일이 애써 봐도 이렇게 쓸쓸한 시행착오의 연속이라는 것에 더 쓸쓸한 기분을 인정해야 할지 복잡한 기분이었다. ‘가족이 된다는 일은 결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 경험이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지난한 기대이자 무거운 짐은 벗어버리되 인류애로 접근해 보면어쩌면 나와 닮은 이 이상한 사람들을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이해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모님과 나와 내 동생은 심지어 닮은 부분도 참 없다. 4인이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모두 제각각이라비유하자면 앙케트 문항들 중에 일치하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식구라는 말이 널리 의미하는 바처럼 같은 식사를 한다는 것이 가족을 이루는 중요한 일상이자 본질의 일부라면 그 점에서도 우리 가족은 집단으로 묶이지 못한다음식 취향이 제각각이라 밥의 곡물 구성국의 재료전통 음료명절 전의 종류 등등 거의 모든 것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를 시킨 것처럼 각자의 음식 풍경이 달랐다.

 

내게는 의례적인 풍경이었는데 의외로 흔한 일은 아니었을까. 이후 다른 모임들에서 단 한 번도 짜장면으로 통일!”이란 말에 유쾌하게 웃지 못했다짜장면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비밀이 없는 사이는 성숙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사람 사이에는 엄연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은밀한 영역 속에서 휴식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외모가 붕어빵처럼 닮았거나 의견 일치를 잘 하고 음식 취향이 같은 친구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궁금하고 부럽기도 했다언젠가는 벅차고 버겁지만 외로울 틈 없는개인이라고 자신을 인식할 여유도 없는 끈끈하고 질척한 관계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한 적도 있다그 역시 부러웠을 것이다그랬다면 나도 타인들과 으쌰으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나는 얼마 전까지 이런 나쁜 품성은 모두 성장 환경의 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중략스스로를 괴롭히는 결핍이 성장기에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중략그래서 사춘기 시절의 나는 그토록 엄마에게 가혹한 딸이어야 했던 모양이다중략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같은 반이었다면 친구가 되지 않았을 사람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일은 신기하고도 힘든 일이다사랑하지만 좋아지지 않는 이들이 가족이랄까그래도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가정 폭력과 학대와 차별이 일상인 관계는 아니었으니까우리는 그럭저럭 서로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타인이자 성인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며 각자 살아가고 있다.

 

가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다만 달라질 뿐이다.”

 

“...... 가족 붕괴와 해체의 책임을 비정상에게 돌리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당신의 가족은 정말 행복한가 묻고 싶다호주제 때문에 남편과 아내는 서로 더 존중했는지소위 결손가정의 자녀와 친구 관계를 맺지 않은 아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지동성애를 혐오하고 장애인을 멸시하기에 당신의 가족은 더욱 안락하고 안전한지......”

 

쓰다 보니 생활이 분리된 시간이 걸어서인지 어느새 나의 첫 번째 가족에 대해 남은 감정도 못 다한 말도 별로 없구나 싶다책의 내용은 무척 풍부한데부모와 나의 관계에 집중해서 쓰다 보니 빈약한 소개 글이 되었다이 책은 제목도 압권이고 내용은 기대 이상으로 재밌다거침없지만 거칠지 않게 써 준 저자에게 감사하다.이러 저리 얽힌 부모 자식의 여러 형태와 부부사회적이고 성적gendre 존재로서의 풍부한 이야기들이 재미나니 재밌게 읽어 보시길 바란다.*

 

피할 수 없는 노화와 기저 질환을 감당하시느라 매일 일정량의 통증과 함께 지내시는 부모님 역시상황에 비해 무척 잘 지내고 계신다는 생각도 새삼스럽게 든다다들 늙어 가느라 기운이 왕창 빠져서 날 선 기운으로 딱딱한 에너지로 부딪치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 살짝 서글프면서도 안심이 되는 비교적 정확한 분석일 듯하다어쨌든 나 역시 구원도 절망도 아닌 가족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이들과 서로 열심히 봐주며 살아간다. 거듭 말하지만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

 

........................

 

맛보기 발췌

 

“...... 아이가 아니었다면나는 누군가를 먹이고 어르기 위해 한밤중에 꿀 같은 잠을 억지로 밀쳐 내며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중략 아이가 아니었다면나는 우리 주변에서 그토록 많은 턱과 계단이 존재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

 

어떤 심리학자는 현대의 아이들이 불행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부모의 눈에 너무 잘 띄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요아이들은 각각 자기만의 밑그림을 가지고 있다고요엄마가 할 수 있는 건그 밑그림이 어떤 것인지 가만히 살펴봐 주는 것뿐이에요엄마가 할 일은 없는 재능을 만들겠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아무리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재능이라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북돋워 키워주는 게 전부라고요.”

 

부모와 자식의 투쟁은 한 인간이 성숙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중략특히 반성할 줄 모르는 부모자식의 인생을 자기 소유라고 여기는 부모에겐 타협과 이해가 없다사랑이라는 이름도 때로는 가혹한 상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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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돈을 말하다 - 당신의 부에 영향을 미치는 돈의 심리학
저우신위에 지음, 박진희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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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일면 유행에 민감하게 살아온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한 때 합리적 이유를 달고 유행하던 유서쓰기운동에 참가한 뒤 매년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연말연시 날을 정해 수정하는 것은 아니고 필요가 있을 때 그러긴 하지만 어떤 해는 딱히 고칠 게 없어 일 년 내내 정체되어 있었나 하는 뜻밖의 평가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해를 거듭하며 사라지는 내용추가되는 내용새롭게 바뀐 제도 덕에 전체 정비가 필요한 내용 등이 있다신체 기증의 내용도 변했고 이 상태로 늙어간다면 결국엔 기증할 게 별로 없을지 모른단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존엄사법 시행 이후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추가되었다그 밖에도 소소한 것들이 있는데 삶이 변해야 유서도 변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되기도 한다.

 

이렇게 쓰면 꽤나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대비도 하고 살았던 듯싶지만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대부분의 시간에는 사는 일만 생각한다시절이 변하고 지인들의 별세 소식도 드물지 않게 듣는 해이다바로 이틀 전에도 친구 아버님 떠나신 소식어제는 오랜 지병으로 무척 고생한 친구가 좋은 봄날 비로소 편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장 위에 올려 둔 책들의 무리 중 돈과 화폐증여에 관한 책들이 눈에 띈다이제 와서 학위 공부하듯 할 것은 아니지만 유서 하나 달랑 작성하는 것보단 조금 더 알아둬야 할 것들이 있다는 불안이 마음에 번지는 것도 사실이다대단한 자산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도 높지 않지만 이것저것 약속한(?) 것들이 많아 정리는 필요하다.

 

긍정 환상이란 소위 말해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똑똑하고 예쁘고 고상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전 세계 84%의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큐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90%의 대학교수들이 동료보다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며대부분의 사람이 포토샵을 거친 얼굴을 진정한 자신의 얼굴이라 생각한다.”

 

그 무리의 책들 중 이 책은 제일 재밌어 보인다심리학 실험을 이렇게 많이 한 것도 재밌고 열심히 실험 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한 것도 재밌고 적극적으로 매체들을 이용해서 열심히 강의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The Psychology of Money란 분야가 있고 관련 연구자들의 BBC 자료들이 있어 놀랐다목차들을 보면 먼저 펴보고 싶은 재미난 내용들도 있다.

 

더러운 돈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얼굴값은 도대체 얼마일까

운을 위해 투자하는 대신 좋은 일에 써라

돈을 달라고 하기 전에 시간을 달라고 하라

기부하는데 얼굴이 왜 중요해

행복해지고 싶다면 물건보다는 경험을 사라

시간을 황금 보듯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경제학 지식이 도덕에 미치는 영향

 

죄책감은 한번 잃고 나면 다시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사람들은 도덕성의 하한선을 뛰어넘으면 그 뒤로는 예전 상태로 돌아가기 힘들다.”

 

이전에도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윤리학은 경제학으로부터 기원한다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나눠 써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원래의 경제학이다그러니 나누는 방식과 기준에 대한 준거가 필요할 것이고 관련된 갖가지 태도와 개념이 윤리를 구성한다실질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보다 투기 인구가 더 많을 지도 모르는 사회 환경이지만경제 활동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의 돈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라.”

 

한 사람의 인생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닌 무엇을 했느냐로 정의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마음 가는데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하고저자 역시 밝혔듯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알면 적어도 그 사람이 말로 설명하는 자신보다는 그 사람의 실체를 더 잘 알 수 있다누구나 각자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반복되는 신념에 따른 행동은 곧 자기 자신이 되고 매일 어떻게 살아갈지 역시 결정한다비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80% 정도행복을 사주진 못하지만 진통제의 역할은 한다는 돈.

 

금전적 보상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만들 순 있어도 책을 좋아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돈은 이러한 자기중심적 경향을 더 강력하게 만든다.”

 

금속화폐에서 지폐에서 신용화폐로 바뀌었지만일상의 우리는 늘 돈을 보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돈으로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며 산다너무 뻔하지 않을까 해서 뭘 썼을까 궁금했다나로서는 전문가가 연구자의 자세로 연구 결과들을 모아 스토리를 풍성하게 늘리지 않고 건조하게 집필한 문체가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자신에게 해당하는 분야만 찾아 읽기에도 편하다.

 

돈을 써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면제대로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문득 돈 좀 쓰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그냥 나만 겪는 독서 부작용인가. 결제의 쾌감은 어쩐 이유인지 약해지지 않는다. HUMAN-P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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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정의 - 표창원이 대한민국 정치에 던지는 직설
표창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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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안 드는 장관이나 기관장에게는 대놓고 당신 때문에 그 부처(기관예산이 최대한 깎일 것이라고 공언하는 일도 흔히 보인다의원실로 장차관이나 국장혹은 실무 공무원들을 호출하거나 전화를 걸어 호통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 등국민이 볼 수 없는 곳에서의 갑질은 더욱 잦고 심하다.

 

! ‘정치적 테러’ 범죄의 발생은 대부분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인다.

 

우선 널리 알려진 정치인정당학자종교인 등 소위 공인의 계산된’ ‘혐오 발언(hate speech)’이 먼저 나온다.

 

두 번째 단계로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가 이를 보도하거나,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구독자를 가진 소위 인플루언서가 동일한 취지맥락의 내용에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이나 허위 사실 등을 교묘히 섞어서 전파한다.

 

세 번째 단계는 이에 자극받은 소위 악플러(keyboard warrior)’들이 우후죽순 관련 기사나 영상맨션게시물 등을 퍼 나르고고조된 분노 감정과 공격성을 드러내 공유하며 이를 증폭시킨다.

 

마지막으로 평소 신뢰하거나 자신과 성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유사한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는 분위기에 고무된다그리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왜곡된 정의감에 사로잡혀, ‘나도 뭔가 기여를 하고 싶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각 당 대변인이나 원내 대변인들은 수시로 기자들에게 상대 당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뭐라 대응하시겠어요?’라고 묻는 전화를 받는다무대응하면 일방적으로 상대방 얘기만 보도될 테니 여론전에서 불리할 것이란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다당연히 강력 대응이 나오게 되고 한동안 후속 기삿거리가 될 싸움판’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리고.......



정말 새로운 내용도 아닌데...

내가 짐작해서 생각한 내용과는 다른 것이...

또 다른 현장의 경험을 정리한 문장들로 읽으니...


현실감에 현실감이 더해지면서...

저자가 느낀 갑갑함이 읽은 분량만큼 전이된다


문제는 분명하고 해결 방법도 있을진대

실행력인지 의지인지가 없다는 것이 최대의 걸림돌인 걸까.


가까운 베란다에 나가 잠시 바람이라도 마시며 어두운 하늘이라도 보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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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강화 섬의 소년들 오늘의 청소년 문학 30
이정호 지음 / 다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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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의 나이가 열네 살열두 살입니다읽기도 전에 이들이 겪을 고초가 아픕니다강화라는 장소도천주교 박해 현장도가난도 아이들은 무관한 일인데 휘말리고 고통 받고아무리 사소한 소망이라도 모조리 집어 삼키는 무감한 화마는 변별력이 없으니까요.

 

문득 몇 주 전학위도 있는 어른이 열서너 살 여아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 계약을 했다는 X소리를 부끄럼 없이 해대던 일이 떠오릅니다그런 자가 학자연하고 살고 있는 세상이라니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일만도 아닙니다만.

 

전쟁에서 얻을 이익도 없고 명분도 필요 없던 이들에게 예고 없이 닥친 전쟁굶주림을 면하기도 어려운 가난에 여동생은 무장한 배를 몰고 온 서양인들에게 팔려갑니다아비가 팔았습니다열네 살 오빠 득이는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열두 살 바우는 목숨 걸고 천주교를 믿는 부모로 인해도피 계획마저 어긋나서 미끼로 붙잡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입니다.

 

한 아이는 가기 싫은 낯선 섬으로 끌려가고다른 아이는 자기가 나고 자란 섬으로 동생을 데려오려다 끌려갔다마침내 바우와 득이가 만났다강화라는 섬육지로부터 닫힌 곳이자 바다를 향해 한없이 열린 곳에서.”

 

아무 힘도 없는 열두 살 자식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아비에게 저는 왜 감정이입이 안 될까요제가 너무 속물적이라 경건함과 순교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까요순교당한 이들을 비난하려는 건 아닙니다그저 지극히 폭력적인 방식과 동행하는 종교의 역사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심적으로 즐기며 읽을 수 없는 내용이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각자의 전투함들을 배치하고 총질을 하는 어른들의 싸움 속에서 두 아이는 오갈 데도 없이 모든 것을 겪어내야 합니다살기 위해 끝까지 애쓰고엄청나게 의지가 강했지만 모두가 원하는 방식의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이런 세상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희망적인 일이었을까요.

 

1866년 1월 병인박해, 1866년 9월 병인양요로 기억하던 사건들을 한 가운데서 휘말리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으니…… 혼란과 고난과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들의 우정’ 이런 표현에 화가 납니다.

 

죽을 바엔 뭐라도 값진 일을 하고 싶어.”

형을 위해 내가 미끼가 될게.”

 

약간의 합리성을 갖춘 얄팍한 저와는 달리죽음 앞에 내몰리면서도 인간다움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은 언제나 계셨겠지요어리게만 보이는 이 소년들 역시 우정과 용기를 잃지 않고도 버틸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작은 꿈만 꾸는 저는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상황들이 달갑지도 거룩하지도 않습니다언제가 될지 모르지만다음 강화 여행길에는 그곳에서 지극히 애쓰며 살아 간 어린 사람들 생각이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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