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 - 지금껏 말할 수 없었던 가족에 관한 진심 삐(BB) 시리즈
김별아 지음 / 니들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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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도 때로는 무례가 된다중략.

그런 무지와 무례 속에서 우리의 가족은 남몰래 아프다.

기대는 실망으로실망은 분노로 바뀌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죽도로 미워하게 된다.”

 

2009년 출간된 <가족 판타지>의 개정판이라니! 2009년도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원통한 심정이다꽤나 지난 이야기이지만 서로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양가를 감동시키고 결혼한 친구들(부부가 모두 친구)이 상대방의 숨소리조차 소름 끼치게 미워하게 되고 별거를 거쳐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본 경험이 떠오른다.

 

문제는 이혼을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니라 결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다결혼을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까지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몰아넣어야 속이 후련한 사회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이상 상태로 분류하고서야 안심하는 사회에 먼저 이혼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한 만큼 이 분석은 무척 유의미한 통찰이다사는 일에 끝까지 정해진 순서가 있다는 생각은 어쩌다 하게 된 일일까.

 

뭐라도 쓴다는 일은 자꾸 누군가를 팔아넘기는 일 같지도 느껴지지만어쨌든 또 친구 얘기를 하자면결혼과 아이에 대해 아무런 욕망이 없다는 것을 비교적 일찍 알게 된 친구가 그렇게 잘 살다가 문득 혼자 살기가 지긋지긋해졌다고 했다나름 합리적으로 자신과 아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를 소개 소개받아 서로가 상세하게 계약서를 작성하듯 제안하고 합의하고 좀 더 신나는 미래를 꿈꾸며 결혼을 했다.

 

재밌게 같이 놀 친구가 생겼다고 무척 좋아했는데재미가 없었던 것인지 일상을 함께 하는 일은 재미를 목표로 해서는 도저히 짊어질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었는지결혼하던 풍경과 비슷하게 이혼을 했다결혼하기 전에도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고 이혼하기 전에도 친구들을 모아 함께 식사를 했다.

 

뭐랄까온갖 뜨거운 감정들말들행동들이 오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사는 일이 애써 봐도 이렇게 쓸쓸한 시행착오의 연속이라는 것에 더 쓸쓸한 기분을 인정해야 할지 복잡한 기분이었다. ‘가족이 된다는 일은 결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 경험이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지난한 기대이자 무거운 짐은 벗어버리되 인류애로 접근해 보면어쩌면 나와 닮은 이 이상한 사람들을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이해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부모님과 나와 내 동생은 심지어 닮은 부분도 참 없다. 4인이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모두 제각각이라비유하자면 앙케트 문항들 중에 일치하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식구라는 말이 널리 의미하는 바처럼 같은 식사를 한다는 것이 가족을 이루는 중요한 일상이자 본질의 일부라면 그 점에서도 우리 가족은 집단으로 묶이지 못한다음식 취향이 제각각이라 밥의 곡물 구성국의 재료전통 음료명절 전의 종류 등등 거의 모든 것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를 시킨 것처럼 각자의 음식 풍경이 달랐다.

 

내게는 의례적인 풍경이었는데 의외로 흔한 일은 아니었을까. 이후 다른 모임들에서 단 한 번도 짜장면으로 통일!”이란 말에 유쾌하게 웃지 못했다짜장면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비밀이 없는 사이는 성숙한 인간관계가 아니다.

사람 사이에는 엄연한 경계가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은밀한 영역 속에서 휴식하고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외모가 붕어빵처럼 닮았거나 의견 일치를 잘 하고 음식 취향이 같은 친구들과 가족들의 모습이 궁금하고 부럽기도 했다언젠가는 벅차고 버겁지만 외로울 틈 없는개인이라고 자신을 인식할 여유도 없는 끈끈하고 질척한 관계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한 적도 있다그 역시 부러웠을 것이다그랬다면 나도 타인들과 으쌰으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나는 얼마 전까지 이런 나쁜 품성은 모두 성장 환경의 탓이라 생각하고 있었다중략스스로를 괴롭히는 결핍이 성장기에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중략그래서 사춘기 시절의 나는 그토록 엄마에게 가혹한 딸이어야 했던 모양이다중략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같은 반이었다면 친구가 되지 않았을 사람들이 모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일은 신기하고도 힘든 일이다사랑하지만 좋아지지 않는 이들이 가족이랄까그래도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가정 폭력과 학대와 차별이 일상인 관계는 아니었으니까우리는 그럭저럭 서로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타인이자 성인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며 각자 살아가고 있다.

 

가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다만 달라질 뿐이다.”

 

“...... 가족 붕괴와 해체의 책임을 비정상에게 돌리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당신의 가족은 정말 행복한가 묻고 싶다호주제 때문에 남편과 아내는 서로 더 존중했는지소위 결손가정의 자녀와 친구 관계를 맺지 않은 아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지동성애를 혐오하고 장애인을 멸시하기에 당신의 가족은 더욱 안락하고 안전한지......”

 

쓰다 보니 생활이 분리된 시간이 걸어서인지 어느새 나의 첫 번째 가족에 대해 남은 감정도 못 다한 말도 별로 없구나 싶다책의 내용은 무척 풍부한데부모와 나의 관계에 집중해서 쓰다 보니 빈약한 소개 글이 되었다이 책은 제목도 압권이고 내용은 기대 이상으로 재밌다거침없지만 거칠지 않게 써 준 저자에게 감사하다.이러 저리 얽힌 부모 자식의 여러 형태와 부부사회적이고 성적gendre 존재로서의 풍부한 이야기들이 재미나니 재밌게 읽어 보시길 바란다.*

 

피할 수 없는 노화와 기저 질환을 감당하시느라 매일 일정량의 통증과 함께 지내시는 부모님 역시상황에 비해 무척 잘 지내고 계신다는 생각도 새삼스럽게 든다다들 늙어 가느라 기운이 왕창 빠져서 날 선 기운으로 딱딱한 에너지로 부딪치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 살짝 서글프면서도 안심이 되는 비교적 정확한 분석일 듯하다어쨌든 나 역시 구원도 절망도 아닌 가족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이들과 서로 열심히 봐주며 살아간다. 거듭 말하지만 무척 운이 좋은 편이다.

 

........................

 

맛보기 발췌

 

“...... 아이가 아니었다면나는 누군가를 먹이고 어르기 위해 한밤중에 꿀 같은 잠을 억지로 밀쳐 내며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중략 아이가 아니었다면나는 우리 주변에서 그토록 많은 턱과 계단이 존재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

 

어떤 심리학자는 현대의 아이들이 불행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부모의 눈에 너무 잘 띄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게 태어나요아이들은 각각 자기만의 밑그림을 가지고 있다고요엄마가 할 수 있는 건그 밑그림이 어떤 것인지 가만히 살펴봐 주는 것뿐이에요엄마가 할 일은 없는 재능을 만들겠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아무리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재능이라도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북돋워 키워주는 게 전부라고요.”

 

부모와 자식의 투쟁은 한 인간이 성숙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중략특히 반성할 줄 모르는 부모자식의 인생을 자기 소유라고 여기는 부모에겐 타협과 이해가 없다사랑이라는 이름도 때로는 가혹한 상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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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돈을 말하다 - 당신의 부에 영향을 미치는 돈의 심리학
저우신위에 지음, 박진희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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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일면 유행에 민감하게 살아온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한 때 합리적 이유를 달고 유행하던 유서쓰기운동에 참가한 뒤 매년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연말연시 날을 정해 수정하는 것은 아니고 필요가 있을 때 그러긴 하지만 어떤 해는 딱히 고칠 게 없어 일 년 내내 정체되어 있었나 하는 뜻밖의 평가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해를 거듭하며 사라지는 내용추가되는 내용새롭게 바뀐 제도 덕에 전체 정비가 필요한 내용 등이 있다신체 기증의 내용도 변했고 이 상태로 늙어간다면 결국엔 기증할 게 별로 없을지 모른단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존엄사법 시행 이후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추가되었다그 밖에도 소소한 것들이 있는데 삶이 변해야 유서도 변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되기도 한다.

 

이렇게 쓰면 꽤나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대비도 하고 살았던 듯싶지만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대부분의 시간에는 사는 일만 생각한다시절이 변하고 지인들의 별세 소식도 드물지 않게 듣는 해이다바로 이틀 전에도 친구 아버님 떠나신 소식어제는 오랜 지병으로 무척 고생한 친구가 좋은 봄날 비로소 편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장 위에 올려 둔 책들의 무리 중 돈과 화폐증여에 관한 책들이 눈에 띈다이제 와서 학위 공부하듯 할 것은 아니지만 유서 하나 달랑 작성하는 것보단 조금 더 알아둬야 할 것들이 있다는 불안이 마음에 번지는 것도 사실이다대단한 자산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도 높지 않지만 이것저것 약속한(?) 것들이 많아 정리는 필요하다.

 

긍정 환상이란 소위 말해 스스로를 실제보다 더 똑똑하고 예쁘고 고상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전 세계 84%의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큐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90%의 대학교수들이 동료보다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며대부분의 사람이 포토샵을 거친 얼굴을 진정한 자신의 얼굴이라 생각한다.”

 

그 무리의 책들 중 이 책은 제일 재밌어 보인다심리학 실험을 이렇게 많이 한 것도 재밌고 열심히 실험 결과를 정리해서 발표한 것도 재밌고 적극적으로 매체들을 이용해서 열심히 강의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The Psychology of Money란 분야가 있고 관련 연구자들의 BBC 자료들이 있어 놀랐다목차들을 보면 먼저 펴보고 싶은 재미난 내용들도 있다.

 

더러운 돈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얼굴값은 도대체 얼마일까

운을 위해 투자하는 대신 좋은 일에 써라

돈을 달라고 하기 전에 시간을 달라고 하라

기부하는데 얼굴이 왜 중요해

행복해지고 싶다면 물건보다는 경험을 사라

시간을 황금 보듯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경제학 지식이 도덕에 미치는 영향

 

죄책감은 한번 잃고 나면 다시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사람들은 도덕성의 하한선을 뛰어넘으면 그 뒤로는 예전 상태로 돌아가기 힘들다.”

 

이전에도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윤리학은 경제학으로부터 기원한다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나눠 써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원래의 경제학이다그러니 나누는 방식과 기준에 대한 준거가 필요할 것이고 관련된 갖가지 태도와 개념이 윤리를 구성한다실질적인 경제 활동을 하는 인구보다 투기 인구가 더 많을 지도 모르는 사회 환경이지만경제 활동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의 돈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라.”

 

한 사람의 인생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닌 무엇을 했느냐로 정의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마음 가는데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하고저자 역시 밝혔듯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알면 적어도 그 사람이 말로 설명하는 자신보다는 그 사람의 실체를 더 잘 알 수 있다누구나 각자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반복되는 신념에 따른 행동은 곧 자기 자신이 되고 매일 어떻게 살아갈지 역시 결정한다비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80% 정도행복을 사주진 못하지만 진통제의 역할은 한다는 돈.

 

금전적 보상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만들 순 있어도 책을 좋아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돈은 이러한 자기중심적 경향을 더 강력하게 만든다.”

 

금속화폐에서 지폐에서 신용화폐로 바뀌었지만일상의 우리는 늘 돈을 보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돈으로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며 산다너무 뻔하지 않을까 해서 뭘 썼을까 궁금했다나로서는 전문가가 연구자의 자세로 연구 결과들을 모아 스토리를 풍성하게 늘리지 않고 건조하게 집필한 문체가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자신에게 해당하는 분야만 찾아 읽기에도 편하다.

 

돈을 써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면제대로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문득 돈 좀 쓰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데 그냥 나만 겪는 독서 부작용인가. 결제의 쾌감은 어쩐 이유인지 약해지지 않는다. HUMAN-P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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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정의 - 표창원이 대한민국 정치에 던지는 직설
표창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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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안 드는 장관이나 기관장에게는 대놓고 당신 때문에 그 부처(기관예산이 최대한 깎일 것이라고 공언하는 일도 흔히 보인다의원실로 장차관이나 국장혹은 실무 공무원들을 호출하거나 전화를 걸어 호통치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일 등국민이 볼 수 없는 곳에서의 갑질은 더욱 잦고 심하다.

 

! ‘정치적 테러’ 범죄의 발생은 대부분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인다.

 

우선 널리 알려진 정치인정당학자종교인 등 소위 공인의 계산된’ ‘혐오 발언(hate speech)’이 먼저 나온다.

 

두 번째 단계로 신문방송 등 대중매체가 이를 보도하거나,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구독자를 가진 소위 인플루언서가 동일한 취지맥락의 내용에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이나 허위 사실 등을 교묘히 섞어서 전파한다.

 

세 번째 단계는 이에 자극받은 소위 악플러(keyboard warrior)’들이 우후죽순 관련 기사나 영상맨션게시물 등을 퍼 나르고고조된 분노 감정과 공격성을 드러내 공유하며 이를 증폭시킨다.

 

마지막으로 평소 신뢰하거나 자신과 성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유사한 분노와 공격성을 표출하는 분위기에 고무된다그리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왜곡된 정의감에 사로잡혀, ‘나도 뭔가 기여를 하고 싶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각 당 대변인이나 원내 대변인들은 수시로 기자들에게 상대 당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뭐라 대응하시겠어요?’라고 묻는 전화를 받는다무대응하면 일방적으로 상대방 얘기만 보도될 테니 여론전에서 불리할 것이란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다당연히 강력 대응이 나오게 되고 한동안 후속 기삿거리가 될 싸움판’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리고.......



정말 새로운 내용도 아닌데...

내가 짐작해서 생각한 내용과는 다른 것이...

또 다른 현장의 경험을 정리한 문장들로 읽으니...


현실감에 현실감이 더해지면서...

저자가 느낀 갑갑함이 읽은 분량만큼 전이된다


문제는 분명하고 해결 방법도 있을진대

실행력인지 의지인지가 없다는 것이 최대의 걸림돌인 걸까.


가까운 베란다에 나가 잠시 바람이라도 마시며 어두운 하늘이라도 보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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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강화 섬의 소년들 오늘의 청소년 문학 30
이정호 지음 / 다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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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의 나이가 열네 살열두 살입니다읽기도 전에 이들이 겪을 고초가 아픕니다강화라는 장소도천주교 박해 현장도가난도 아이들은 무관한 일인데 휘말리고 고통 받고아무리 사소한 소망이라도 모조리 집어 삼키는 무감한 화마는 변별력이 없으니까요.

 

문득 몇 주 전학위도 있는 어른이 열서너 살 여아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 계약을 했다는 X소리를 부끄럼 없이 해대던 일이 떠오릅니다그런 자가 학자연하고 살고 있는 세상이라니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남의 나라 일만도 아닙니다만.

 

전쟁에서 얻을 이익도 없고 명분도 필요 없던 이들에게 예고 없이 닥친 전쟁굶주림을 면하기도 어려운 가난에 여동생은 무장한 배를 몰고 온 서양인들에게 팔려갑니다아비가 팔았습니다열네 살 오빠 득이는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열두 살 바우는 목숨 걸고 천주교를 믿는 부모로 인해도피 계획마저 어긋나서 미끼로 붙잡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입니다.

 

한 아이는 가기 싫은 낯선 섬으로 끌려가고다른 아이는 자기가 나고 자란 섬으로 동생을 데려오려다 끌려갔다마침내 바우와 득이가 만났다강화라는 섬육지로부터 닫힌 곳이자 바다를 향해 한없이 열린 곳에서.”

 

아무 힘도 없는 열두 살 자식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아비에게 저는 왜 감정이입이 안 될까요제가 너무 속물적이라 경건함과 순교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까요순교당한 이들을 비난하려는 건 아닙니다그저 지극히 폭력적인 방식과 동행하는 종교의 역사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심적으로 즐기며 읽을 수 없는 내용이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각자의 전투함들을 배치하고 총질을 하는 어른들의 싸움 속에서 두 아이는 오갈 데도 없이 모든 것을 겪어내야 합니다살기 위해 끝까지 애쓰고엄청나게 의지가 강했지만 모두가 원하는 방식의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이런 세상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희망적인 일이었을까요.

 

1866년 1월 병인박해, 1866년 9월 병인양요로 기억하던 사건들을 한 가운데서 휘말리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으니…… 혼란과 고난과 시련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들의 우정’ 이런 표현에 화가 납니다.

 

죽을 바엔 뭐라도 값진 일을 하고 싶어.”

형을 위해 내가 미끼가 될게.”

 

약간의 합리성을 갖춘 얄팍한 저와는 달리죽음 앞에 내몰리면서도 인간다움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은 언제나 계셨겠지요어리게만 보이는 이 소년들 역시 우정과 용기를 잃지 않고도 버틸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작은 꿈만 꾸는 저는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 상황들이 달갑지도 거룩하지도 않습니다언제가 될지 모르지만다음 강화 여행길에는 그곳에서 지극히 애쓰며 살아 간 어린 사람들 생각이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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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인 볼가강의 영혼 클래식 클라우드 27
정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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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정하느라 의견을 묻는 기간이 있었는데열기가 식고 당시의 내 행태를 떠올려보니 그야말로 이불킥 백만 번에 달하는 짓을 했다는 자각이 들었다다른 후보들은 아예 생각도 안 나고 지금 표지 그림을 선택해야한다고 사생결단하듯 말을 쏟아 부었다부디 담당자께서 협박과도 같은 광기어린 독자의 민망한 방백 따위 한 올의 영향도 없이 결단을 하셨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다그래도 이 표지로 출간되어 무척 행복하다.




출판사가 다르긴 하지만 정준호 저자의 <스트라빈스키>를 읽고 번역서가 아닌 예술 거장들의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꼈다. 그런 점에서 클래식 클라우드는 깨닫지 몰랐던 이상형을 만난 기분이 드는 시리즈들이다. 027이라고 붙은 번호를 보면 이 세 자리 숫자가 다 채워질 때까지 영생을 살고 싶은 기분도 든다일 년에 두세 권 씩 출간한다고 해도…… 백 년도 못될 가능성이 높은 인간의 수명이 슬프다.

 

어마어마하게 재밌다이 책은 확고한 또 다른 세상이다애써 문을 찾을 필요도 없이 책만 펴면 마법처럼 입장이 가능하다니공연과 전시회가 사라진 내 세상이 간만에 떠들썩하고 음악 소리가 달다.

 

퀸딩거가 데려간 공연에서 차이콥스키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처음 들었다훗날 차이콥스키는 이렇게 기억했다그것은 완벽한 계시였다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열광했고 황홀경에 중독되다시피 했다몇 주 동안 나는 성악 피아노 반주 편곡으로 그 곡을 연주했다잠잘 때마저도 나는 이 신성한 음악과 떨어지지 않았다그것이 나를 달콤한 꿈으로 이끌고는 했다.”

 

얼른 모차르트의 <돈조반니>를 플레이해서 감상해본다그리고 차이콥스키 자서전의 발췌문을 다시 읽어 본다얼핏 두 거장은 대치되는 면이 있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있었지만과문한 내 느낌과는 별개로황홀과 신성함을 느낀 열일곱 살의 차이콥스키의 열광적인 평가는 참 달콤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XPYjqz7nToY


차이콥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이야말로 그의 전 작품 가운데 핵심이며러시아 음악의 결정적 한 방이다이 곡으로 러시아는 서유럽이 오랜 세월에 걸쳐 얻은 성과를 단박에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타티아나의 편지한곡만 외우면 오페라의 절반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해서 Krassimira Stoyanova. Tatiana's Letter scene from "Eugene data-onegin" by Tchaikovsky 를 들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P8K87bKYYog



1874년 완성된 파리의 튀일리 정원 쪽에 있는 잔 다르크 기념상이다차이콥스키도 이 앞을 지났을 것이다. <오를레앙의 처녀>란 제목은 실러의 작품이기도 하고 차이콥스키의 오페라이기도 하다이 인물은 <예브게니 오네긴>의 타타아니와 동일 인물인 듯 성격이 닮았다.

 

독일 교향곡은 높고 견고하게 쌓은 고딕 건축물에 비견된다탄탄한 토대에 견고한 기둥과 대들보를 올려 까마득하게 세운다그런데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은 그렇게 수직적이지 않다그는 엄청난 유량을 만들어 끝없이 흘려 보낸다구조는 엉성해 보일지 모르지만 마치 독일이 만든 둑을 허물기라도 하려는 듯한 거대한 물줄기에 듣는 사람의 넋을 앗아 가고 만다이미 앞선 두 교향곡에서 잔뜩 가둔 물이 둑까지 찰랑찰랑하더니 마침내 <교향곡 제3>에서 둑을 넘어 단숨에 대양까지 흘러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mYU3HZxmMEA


차이콥스키는 거의 죽을 때까지 모든 교향곡과 오페라발레를 지금까지 쓴 것 중 가장 좋다라고 했다그가 괜한 허세를 부린 것이 아니라면 우리 현실은 그가 쓴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대부분 뒤로 미루어 두고 있는 셈이다.”

 

이 말을 믿는다면 혹은 작곡가를 존중하고 싶다면 차이콥스키의 작품들은 연대순으로 감상해야 가장 좋은 것에서 새롭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이동하며 경험할 수 있다물론 제멋대로인 나는 그건 차이콥스키 생각에 가장 좋은 것이지이렇게 오만하게 무례를 무릅쓰고 늘 그렇듯 내가 좋은 것을 더 좋아라 할 것이다예전에도 지금도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선뜻 말하지 못하는 사고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가장 좋은 것들이 여러 개이거나 좋은 것들이 아주 많거나.

 

나는 제네바 호수와 알프스산맥바이런을 추억하는 시용성이 모두 보이는 산기슭에 섰다발아래에는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 시시의 동상이내 옆에는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밤은 부드러워라를 쓴 곳이라는 푯말이 서 있었다그곳에서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머릿속에 그린다무아지경의 연주가 끝나고 난 뒤 나는 위에 언급한 명사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https://www.youtube.com/watch?v=-Jtzq55kcQI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교향곡 제4>의 자필 악보와 그 아래 놓인 차이콥스키와 폰 메크 부인이 주고받은 편지들이다러시아어를 모르더라도 예쁘게 꽃을 그린 엽서가 부인의 편지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마지막 힘을 다한 <교향곡 제6번 비창’>의 악보는 마치 스페이드의 여왕이 부르는 것을 받아 적은 듯이 광기와 고통으로 얼룩져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0B3M0Oxq-Q


어린 시절 <차르에게 바친 목숨>을 관람하지 않았다면후원자 폰 메크 부인을 만나지 못했다면성정체성을 숨기고 죽음을 강요당했어도 행복했을까인간으로서의 삶은 행복했을까, <교향곡 제6번 비창>을 작곡한 후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을 맞은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이 모든 사실들을 알고 나면 차이콥스키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까달라질까높아질까무엇이 변할까.

 

공연장에 간 적이 언제인지 까마득하다성탄절 무렵에 연례 의식처럼 매년 <호두까기 인형공연을 보러 가는 일이 제일 재미난 일이었는데특히 간혹 어린이 관람객들이 잔뜩 오면 더 기분이 좋다근엄하고 불편하게 앉아 즐겁지 않다는 표정들인 어른들보다 백만 배 쯤 더 재밌게 공연을 즐기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xtLoaMfinbU


운명이 나를 모스크바로 이끌어 이곳에서 12년을 살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비창>만으로도 세계 최고이자 불멸이지만원한다면 몇 작품들로 제한된 차이콥스키라는 세계를 확장해 줄 수 있는 책이다공연장을 직접 가는 것처럼 두근거리진 않지만이 시절은 새롭게 제대로 공부하며 내공을 쌓다가 언젠가 마음 편히 일상을 즐기게 되면 꼭 한달음에 가보고 싶다그리고 나도 일기에 이렇게 적는 것이다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우랄산맥 입구에 있는 이젭스크공항에 도착했다.”

 

그에게는 국경과 장벽이 없었다여러 나라말에 능통했던 그는 세계인인 동시에 토착민이었다그의 우상인 모차르트처럼 된 것이다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따르기 마련이고그래서 차이콥스키는 모차르트 이후 처음으로 오페라와 교향곡에서 모두 최고봉에 오른 작곡가가 되었다.”

 

작품들만이 아니라 차이콥스키라는 인간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재능과 더불어 그의 성실함과 다정함에 반할 줄이야엄청 재밌다오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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