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레벨 업 -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17
윤영주 지음, 안성호 그림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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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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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지겹게 소문이 자자했다본 사람들도 안 본 사람들도폴란드 작가가 쓴 로맨스 소설을 영어권에서 영어판 내놓으라고 닦달을 했다니무슨 일인가 싶었다코로나로 현실 연애가 힘들어져서 그런가 근거 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19금이든 29금이든 연애세포가 사망하고 탈상까지 한 듯한 내게는 흥미 없는 이야기였는데재밌는 기록을 보고야 말았다,

 

로튼토마토지수 0%

이런 수치도 가능한가.

 

영화 평점 5.0 소설 평점 9.4

이 차이 뭡니까.

 

원작이 있는 영화를 맘 편히 신뢰하지 못하는 지병이 있는지라, 영화 안 본 편견 없는 깨끗한(?) 눈으로 떠들썩한 베스트셀러 작품을 읽어 보자 싶었다책이라면 읽히기만 해도 된다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주말 오후 읽기 시작하는 순간이 즐거웠다.

 

베이비걸또 뭘 알고 있지?”

 

넌 설명을 들을 자격이 있어꼭 알아야 하는 만큼은 말해주지중략넌 모르면 모를수록 좋아.”

 

이건 제안이 아니야중략내가 원하는 걸 반드시 갖고 만다는 걸 아직도 몰라?”

 

가끔 당신은 내가 누군지 잊어버리는 것 같아중략난 원하는 게 있으면 가져야 해그날이 아니었더라도 머잖아 널 납치했을 거야.”

 

내가 명령할 때마다 자꾸 반대로 행동하려고 한다면중략네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야그러니 그 점 명심하고 나에게 반항하지 마넌 벌써 이 싸움에서 졌으니까.”

 

너무 너무 웃긴다뭔가 시대착오적인 극강의 희극공연 대본을 보는 것처럼 웃긴다통증이 올 만큼 미칠 듯이 웃었다. 누가 들을까 난감하다큰일이다범죄 조직 보스가 당당히 범죄 예고를 하는데 웃기만 해선 안 될 텐데…… 이러는 내 정서와 법감정에 문득 고민과 의문도 생긴다……어쨌든 이러려고 읽은 게 아닌데, 29금 로맨스는 어디 가고 웃다가 얼굴에 29금 생길 듯.

 

비 온다는 사실이 좋아서 커피도 두 잔이나 마시며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Jacqueline's Tears, 베르너 토마스 첼로 연주를 배경으로 듣고 있던 중이라이 모든 불화와 불협이 너무 웃긴다몰입해 보자.

 

지금껏 그 어떤 여자도 나를 이렇게 만든 적이 없었어.”

 

드디어 나왔다! 이런 톤의 문장이 나오길 기다렸다기보다 기대했던 것 같다이 정도로 대표적인 궁극의 클리셰는 오히려 유쾌하다알던 유머인데 들을 때마다 크게 웃을 수 있는.

 

새롭지도 세련되지도 않았는데 전형적인 면들이 끝없이 등장하는 게 소리 내어 웃지 않을 도리가 없이 재밌다환상 속의 여자를 만나 납치 계획을 세운 남자가 뜻밖에 365일의 시간을 준다는 설정도 뭔가 싶고통계 상 0.0001% 정도로 예의 바른 제안이 아닌가.

 

이 남자는 정말이지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였다온화한 야만인이라고 해야 할까.”

 

대반전은 여주이다무례하기 짝이 없는 전남친은 해탈한 생불처럼 다 참아 주더니 소위 잘생기고 부유하고 매너 있는 갱단 보스에게는 겁도 없이 마구 대든다전남친과의 관계에서 뭔가 큰 깨달음과 내공을 얻은 것인가아님 다 지겨워서 이도 저도 싫다는데 자꾸만 사귀자고 제안받는 상황에어디 죽여 봐라 싶게미칠 듯 싫은 것인가저기, 모순으로 가득한 존재는 언니 같아요.

 

와인 한 잔을 들고 온 주인 할머니는 이탈리아어로 무어라 말하며 내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이럴 수가무슨 말을 하는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도 뜻은 너무 잘 통했다남자란 하나같이 개자식이라 여자의 눈물이 아깝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반전! 480쪽이 넘게 밀당만 하다 끝난다결정은 빠르고 밀당은 길게로맨스 소설이란 원래 이런 것인지본격 로맨스 소설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 안 읽어서 이게 당연한 건지새로운 건지 모르겠다어쨌든 황당해서 또 크게 웃었다이게 왜 29금인가. 혹시 영화만 그랬나성행위 장면들이 자주 나와서무성애자Asexual들을 제외하고는 발정기가 따로 없는 인간이 늘 하는 일 아닌가. 365일을 성행위 없이 밀당을 했으면 논란이 될 법하겠지만.

 

와..... 엄청 웃었다다 읽었으니 웃음도 멈추고 잠시라도 진지하고 재미없는 얘기를 덧붙이자면각자의 로맨스는 형식도 내용도 천차만별인 것이 당연하겠지만아무리 이 소설이 보고 싶은 장면들이 많은 현실과 동떨어진 해피엔딩을 향하는 순둥순둥한(?) 이야기라고 할지라도여주의 반응이 사랑인지 스톡홀름 증후군인지는 의심해 봐야 한다나는 확신한다그러니 나랑 사귀어야 한다말 안 들으면 가족도 죽이고 너도 좋지 못할 것이다이렇게 말하던 사람이니까.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29금이 맞다. 위험하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웃어 놓고 평점은 딱 절반만 드리겠다. 

 

오늘 오전에는 영상을 시청했고 오후엔 책을 읽었다분명 세상에서 가장 느린 미디어매체는 책인데영상이 더 지루했다내게 한정될 경험일지 모르지만읽고 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덜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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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읽기의 힘 - 책 읽기로 인생을 바꾼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복 독서법
김범준 지음 / 반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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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보다 행복한 것은 없다아니다.

책 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이다.

보르헤스

 

3번 읽으면 이 생기는 법을 알려 주는 책일까어떤 힘일까정독하는 좋은 방법을 알려주려나 기대가 높았다. 며칠 여러 책들을 너무 슬슬 읽는다 싶어 잠시 쉬고 대신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작정하고 반복해서 독서를 한 건 아니지만 어릴 적(?) 사로잡힌 책들 중 십 수번 읽어 낱장으로 홀홀 떨어져 나간 책들 기억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내 책만 파본이 아니라면이 책은 독서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책이다. 3번이나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내용들은 만났는데, 3번 읽기의 힘에 대한 부분은 잘 못 알아보겠다우선책은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본인은 어떻게 독서하는 지에 대한 방법그리고 책을 다루는 방법이 가장 많이 배분되어 있다.


특히 책의 모퉁이를 접고밑줄을 치고뜯어내고책장을 정리하고’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책장 정리뿐이다나는 책이 완성된 예술품이라 인지하는 버릇이 굳어져서 접거나 밑줄을 치거나 뜯어내거나 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문제집이나 퍼즐용 도안들이나 실용서들은 가능!

 

나의 성공에 독서가 기여하는 정도를 묻는가?

절대적이다.

왜 책을 읽느냐고?

책을 읽는 동안에는 청춘이니까.

빌 게이츠

 

성공보다 청춘이 부럽다진심이다.

 

남의 책을 읽는데 시간을 보내라.

남이 고생한 것에 의해 쉽게 자기를 개선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현명하십니다선생님.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메시지들이나 관련 격언들은 인상 깊게 읽었다그저 내가 기대한 힘이 생기는 실용적인 비법같은 것은 없었고 어쩌면 저자가 3번 읽기의 대상으로 삼는 책의 장르가 살짝 다를 지도 모른단 생각도 든다인문학 책이나 소설 읽기가 아닌듯...... ?

 

내게 추억하는 것만으로 일종의 힘이 되는, 3번 이상 읽은 최초의 책은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이다분량이 상당하고  1962년 정기수 교수 완역본을 부모님께 물려받아 10대에 처음 진지하게 - 정말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으로 - 읽기 시작해서 20대까지 무척 여러 번 읽었다이후에 이번 생에는 불어 원작으로는 못 읽겠구나 깨닫고 서러웠지만 진지하게 배울 엄두는 나지 않았다어쨌든 인문학 도서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3번 읽자는 메시지는 아니다.

 

그럼에도대부분의 책은 30페이지만 읽어도 된다고 하는 내용에선 잠시 눈이 번쩍 뜨였으며퇴근하고 무조건 3분 이내에 책을 집어 든다는 부분에선 이상한 경쟁심도 느꼈다한 시간마다 카페를 옮기며 한 권의 책을 읽는 건 못 따라 할 듯하지만한 권 읽을 시간으로 충분하다 싶어 무척 영리한 방법 같기도 했다.

 

“<총균쇠>를 독파했고

<죄와 벌>을 읽었으며

<논어>를 정독하고도 

우리의 모습이 그 모양그 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책을 잘못 읽은 겁니다.”

 

잘 못 읽었네...... 그 모양 그 꼴!에 나 쳐다보나 조금 놀랐다.

 

책을 잘 읽었느냐잘못 읽었느냐의 기준은 몇 권의 책을 읽었느냐를 갖고 판단한 문제가 아니라오늘과 내일그리고 그 다음의 시간에도 책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바로 이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내가 경험한 영국식 교육법과 평가 기준을 떠올리게 했다. 아시는 이들도 많겠지만 괴테는 문학 작가일 뿐만 아니라 빛의 이론을 발표한 과학자이기도 하다. Light and Colour (Goethe's Theory of light)를 주제로 학기말 논문을 써야했는데틈만 나면 영국을 떠나고 싶은 나로서는 괴테가 근무한 하이델베르크로 가서 3주 머물면서 쓰리라 계획하고 진짜로 실행하였다겨울의 독일은 좋기도 하고 춥기도 하다




어쨌든 매일 괴테를 떠올리며 무척 진지하게 2주를 바쳐 쓴 글을 담당 교수가 깊이가 없다고 평했다그 충격이란학기말 논문치고는 과분하게 충실한 글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차분히 이유를 물어보니 이것을 배운 후 당신의 무엇이 변했는지가 없어서라고 그런 배움과 글은 얄팍한 것이라고영국의 경험주의 전통을 영원히 혐오하게 될 듯한 광기어린 순간이 지나갔다그렇다고 낙제를 한 것은 아닙니다.^^ 


이후 철저히 경험만 있는 에세이를 써보마어디 한번 평가해봐라하고 3일 동안 쓴 글을아름답게 쓴 멋진 글이라고 최고점을 주는 바람에 당혹스럽게 학회에 실리고 대학 본부에서 감사도 받고...... 동일 교수 동일 학생인데 학점 평가 차이가 커서 그걸 또 조사하겠다고 우르르...... British!

 

삼천포도 모자라 유럽까지 또 갔다어쨌든 저자는 올바른 책읽기라면 성장 혹은 변화를 유도할 힘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무척 바람직한 일이지만 여전히 책을 찢고 분해할 수는 없다.


나를 팽개쳐두고 타인을 위해 산다는 건 거짓입니다중략

책을 통해 만나야 할 사람책을 통해 더 나아져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을 되돌아보기를 바랍니다

과연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중요한 점은 자신이 선택한 책이 자기 삶과 연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가치흥미 등과 책이 긴밀히 연관되어야 합니다.”

 

독서란 책과 함께 하는 모든 생활을 포함합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뀔 때까지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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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발견 (양장)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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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쪽이라는 분량만큼 대단한 것이, 다루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구상 자체를 했다는 것이 저자에 대한 무한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이제껏 등장하지 않은 신비한 문양을 갖춘 직조물을 만나게 될 수도 있고코가 빠지고 비뚤어지고 색조차 흐린 품질이 떨어지는 천 조작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어쨌든 놀랍고 부러웠다


소개에서 설명한 대로이 책이 다루는 시대는 1700부터 현재까지 4세기에 이른다과학과 문학의 문턱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성뿐만이 아니라 비평이든 역사이든 결국은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혼자 읽을 자신이 없어 지인들에게 랜선 책모임을 처음으로 제안했다전공과 관심사가 최대한 다양해야 뭐라도 붙여볼 이야기들이 조금이라도 나올 듯했다



표지를 보는데 첫 모임 시간을 다 썼다내 눈에는 블랙홀의 구조를 도표로 옮겨 계산해보려는 시도처럼 보였는데기하심리학자의 작품이었다그런 분야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인간 의식의 진화 과정을 형상화한 도표라니!. 의식의 출발점동물의 감각적 의식 그리고 의식의 정점인 초월성의 단계별 표현이다빅뱅과 진화와 의식Consciousness의 출현Emergence처럼 들리기도 한다자신의 틀로만 이해되는 바를 어쩔 수 없다.

 

4명이 하는 랜선모임 비대면임에도 5인 미만 -에서 무려 3명이 공통으로 지적한 내용은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해서 레이첼 카슨에서 맺은 구성이다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 인간이 모든 지성적 억지와 박해를 무릅쓰고 심지어 죽음을 각오하고 발견하고 연구하여 인간 세상의 테두리를 넓히던 시절로부터그렇게 얻은 지식으로 유일한 생존공간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 다행스럽게도 과학기술을 활용한 산업정책의 위험성을 깨닫고 경고하는 통찰로 이어지는 과정이 지극히 흥미롭다심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먼저 만나고 더 가까운 케플러의 발제와 전공을 바꾸고 인생을 전환한 레이첼 카슨 두 인물의 발제를 모두 떠맡아서 강조하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유명한 이 두 사람보다 더 중요한 인물들이며 메시지들을 전해준 그 사이의 모든 이들이 있다방대한 분량과 분야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이유는 등장하는 이들 중 8명을 만나봤다는 점도 있었는데나는 주로 그들이 남긴 지식과 저서들을 읽은 정도라서이번에 이들의 구체적인 삶과 시대상에 촉발되고 후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상에 집중해서 다시 읽어본 시간이 참 좋았다.


 대체로 남의 성애나 성정체성에 별 관심이 없이 살지만 편합니다관심이 적으면 편견도 적습니다특별히 저자가 마련해 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재미가 없진 않았다전면적인 존재의 교류와도 같은 관계는 성별 불문 누가 되었든 부러운 일이다그런 의미로 이 책은 전기의 형식에도 상당히 충실한 편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보면사상가란 이토록 대담한 존재들이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평생을 시대와 불화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 것인가좌절과 초월도 거룩하게 아름답다내용과 태도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별스럽게 대담하고평면에서 돌출된 입체처럼 이런 이들을 볼 때마다 진화가 신비롭고 인간에게 이런 복잡하고 복합적인 의식Consiousness이 출현한 이유와 쓰임이 무엇일까 다시 궁금해진다.

 

20여 년 전부터 궁금했는데막상 쓴 학기말 논문 주제는 동물의 의식Animal Consiousness이었다왜 그랬을까아마도 한국 사람들은 왜 개를 먹느냐인간과 가장 유사한 동물은 침팬지이다왜냐하면 개는 동물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친밀하고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등등처음 본 순간부터 만날 때마다 질문을 하듯 원망과 애원을 하던 제인 구달 선생에게 시달려 그래내가 한 번 제대로 배워 보마!” 오기와 결심으로 그랬던 것일 수도왜 그러셨어요심정은 이해하지만 개를 맛있게 먹지 않는 입장으로 할 말이 별로 없기도 했답니다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어쨌든 나는 자꾸만 물리학의 용어들이 이해와 설명에 튀어 나와 지인들에게 저항을 한껏 받으며 함께 읽는 책모임을 해나갔다지금의 우리가 때때로 혹은 항시 발목을 잡아당기는 일상과 삶과 의무와 책임과 불완전한 사회체와 현실적 제약들에 마치 중력과 관성의 법칙이 예외 없이 적용되어 옴짝달싹못하는 기분으로 애를 쓰고 비틀거리고 주저앉고 드러눕는 것처럼이들 역시 그렇게 살았고그런 한편 또 우리처럼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끝까지 발을 옮겨보려 했던 애틋한 기록들이다그렇게 읽혔다


장점은 이런 기록들이 내가 쓰는 일기 정도의 문장력이 아니라 불가리아 출신의 작가 처음 만남 마리아 포포바의 재능으로 탄탄하고도 창의적으로 쓰였다는 점이다읽는 중간에 등장인물에 대한 감탄 말고도 저자의 방대한 관심사와 이해력에 여러 번 감탄했다문화 비평가란 전공 수준의 이해 분야가 적어도 10여 개는 되어야 가능한 직업인가 보다.

 

오래 좋아했던 이는 더 좋아졌고새롭게 좋아하게 된 이들도 생겼다내게는 설레고 화려하고 실속도 있는 선물 같은 책이다덕분에 감사히 잘 읽었지만 번역은 해석과 문체에서 생경하고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원제는 Figuring이라는 더욱 도발적이고 담대한 제목이고 요약본과 해석본이 나와 있을 정도이니 내용의 풍부함과 깊이를 짐작해볼 수 있다영어책으로 책모임을 했으면 좋겠는데 극강의 도전을 요구했던 전공책들 읽어보신 경험들 있으니이 책은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원하시는 분들은 참여 의사를 미리 신청해 주십시오발표숙제비난절교 등등 없으며 지성을 지닌 사람들끼리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본문을 인용해본다읽고 느낀 점들 간략히 나누면 멋질 듯하다


....................


1.


아름다운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성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운명의 차이는 천공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의 문화의 작용에 따른 성별 구조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잊곤 하는 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고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그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낼 때 우리가 지닌 가능성의 범위가 확장된다는 사실이다중략이는 인간의 본성에 있습니다낭만으로 시작해서 현실로 지어나가는 능력이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최초로 인간의 자만심에 도전장을 내민 위대한 사상이다그 후 몇 세기에 걸쳐 세계 질서가 여러 차례 새롭게 편성되는 동안 인간의 자만심에 대한 도전은 진화론부터 시민권동성결혼까지 수없이 많은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이 모든 도전에 사회는 케플러의 고향 주민들이 보인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우주의중심이든 권력 구조의 중심이든중심에 있는 것은 그 대가로 진실을 희생할지언정 계속해서 중심에 남아 있어야 한다.”

 

삶에 별빛을 섞으십시오그러면 하찮은 일에 마음이 괴롭지 않을 것입니다.”

 

라플라스를 번역하고, <천계의 구조>를 발표한 이 여성은 최초의 과학자이다윌리엄 휴얼은 당시 흔하게 사용된 과학의 남자man of science라는 표현을 적용할 수 없어 과학자scientist”라는 말을 처음으로 고안해냈다.

 

대화에 참가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규칙만이 존재했다반드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별의 주요 구성 성분이 수소가스라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수소를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의 지위에 올렸다.”

 

천문대 계산자로 합류한 지 10년 만에 자신이 직접 분류한 1만 개 별의 분포를 기록한 400쪽에 이르는 일람표를 발표했다.”

 

그녀의 계산 결과는 훗날 우주가 팽창한다는 에드윈 허블Edwin Hublle의 법칙을 증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2.

 

이 세계에서 남자 기사도는 소멸되었지만 여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사로서 편력을 이어나간다세르반테스가 좀 더 위대했더라면 돈키호테의 Don을 Dona로 썼을 텐데.”

 

“‘파랗다라는 것은 파란 양말bluestocking에서 따온 표현으로 당시 지적인 여성정신의 삶을 누리기 위해 여성성과 가정을 희생했다고 여겨지는 여성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말이었다.”

 

호스머의 걸작은 처음 런던의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에 전시되었다이곳에 여자가 학생으로 입학하기까지는 3년을 기다려야 한다중략이것에 여자가 교수로 입성하게 된 것은 2011설립된 지 243년 만의 일이다.”

 

누구를 희생해야 한다면 누구도 완전하게 자유롭고 고귀해질 수 없다중략하나의 창조적인 기운하나의 쉴 새 없는 폭로를 이어가도록 하자중략소외된 집단은 자신만의 노력으로는 사회의 중심으로 이동할 수 없다이것이 힘의 역설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힘과 특권에 가까이 있는같은 대의를 지닌 동류 집단이 이끌어주는 힘이 필요하다.”

 

어떤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인식하면서도 그 순간의 풍부함과 달콤함이 흐려지지 않게 하려면그 순간을 더할 나위 없는 존재의 충만함으로 순수하게 누리려면 얼마나 마음이 단단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시대에 메두사를 조각한다는 것은 선견지명이 있는 대담한 선택으로고대부터 여자를 보로해주지 않는 사법 제도의 끔찍한 결함과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를 고발하는 행동이었다모든 것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문화는 사실상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금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니 무시무시할 정도로 여자다운 기분이 들어왜 이렇게 거룩한 기분이 드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네.”

 

3.

 

재능이란애정의 연소이다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성이 아니라 헌신에서 비롯되는 고양감이다이를 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여 우리는 재능을 경험한다.”

 

삶이란 다른 삶과 얽힐 수밖에 없으며그 삶의 직물을 바깥에서 바라보아야만 인생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에 어렴풋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다.”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치우는 독자라면 정신의 바벨탑에 듀이 십진분류법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미로 같이 복잡한 서가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주 오래 전에 읽은 방대하고 수많은 책을 덮고 있는 티끌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토끼처럼 생각이 우리 앞으로 튀어나오는 법이다.”

 

이 집의 한쪽에 종이 공장을 만들 겁니다그리고 내 책상 위로 풀스캡판 크기의 종이가 끊임없이 풀려나오게 만드는 겁니다그리고 그 끝없이 펼쳐지는 종이 위에 수천 가지수만 가지수억 가지 생각을 적을 겁니다전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말이에요.”

 

우리는 평생 우리 존재가 어디에서 끝나는지나머지 세계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고자 애를 쓰며 살아간다우리는 존재의 동시성에서 삶의 정지 화면을 포착하기 위해 영원조화선형성이라는 환상에고정된 자아와 이해의 범위 안에서 펼쳐지는 인생이라는 환상에 기댄다그러면서 줄곧 우리는 우연을 선택이라 착각한다어떤 사물에 붙인 이름과 형식을 그 사물자체라 착각한다기록을 역사라 착각한다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며판단과 우연의 난파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에 불과한데도.”

 

허공에 성을 지어보지 못한 소년은 절대 땅 위에서도 성을 짓지 않게 됩니다중략꿈과 실천 그 어느 쪽도 희생하길 거부하고꿈꾸는 자와 실천하는 자로서 자신을 동등하게 엮어 존재의 충만함을 성취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중략또한 진실과 아름다움을 나누길 거부하면서 이 두 가지가 합쳐져 의미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한 세기 반이 지난 후 어슐러 K. 르 귄(SF 소설의 대가)은 말한다˝말은 무언가를 하고 무언가를 바꾼다말은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모두 변화시킨다말은 에너지를 전하고 되받으며 증폭시킨다말은 이해 혹은 감정을 전하고 되받으며 증폭시킨다.˝ 초월주의 운동에서 지고의 지성적 도구로 대화를 공식 채용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중략자유롭게 주고받는 말의 전류로 여성해방운동의 힘을 충전시킨 것도 의 공이다.”

 

혁명가가 된다는 것은 곧 상상력을 펼친다는 뜻이다친숙한 것의 한계를 뛰어넘고새로운 질서를 머릿속에 그리며새로운 질서 안에서 얻게 될 것이 잃어버릴 것이 주는 잘못된 위안을 뒤덮고도 남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일이다.”


4.

 

우리 안의 모든 창조적인 힘과 수학적 계산과 사납게 날뛰는 사랑의 감정은 수천년에 걸쳐 진화해온 신경조직을 따라 1초에 24미터의 속도로 진동한다이 사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정신의 작용 또한 일련의 전기 자극일 뿐이다.”

 

공시성이란 외부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과 관찰자 내면에서 일어난 상황의 유사성과 비인과관계를 정리하는 체계이다어떤 사건을 경험한 관찰자는 자신의 주관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자신과 그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는다즉 내면의 현실과 외부의 현실이 만나는 접점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진정한 부는 지구의 자원입니다바로 흙광물야생생물들입니다미래의 세대를 위해 이 자원을 보존해야 하는 한편 이 자원을 현재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려면 폭넓은 연구에 기반을 두고 정교하게 균형을 잡을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합니다자연 자원의 운용이 정치적 문제가 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그래서도 안 됩니다.”

 

반쪽짜리 진실의 안정제를 먹인다중략거짓된 확신을 어떻게든 끝장내야 한다입에 맞지 않는 불쾌한 진실에 대한 사탕발림을 끝장내야 한다중략시간과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미칠 결과를 진지하게 고찰하면서 단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기업 세력들의 고질적인 질병을 비판했다.”

 

권력이 부패할 때 시인은 정화에 나섭니다시와 과학을 서로 나누어 생각하기를 거부하며 살아온 카슨은 자신의 두 가지 재능을 결합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권력의 정화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재능으로 세계의 일원이 되었다나는 재능으로 세계에 속한다는 실존적인 상태가 인생을 실현하는데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완벽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의 작디작은 세계를 아득히 먼 곳에서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자만심과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훌륭한 증거도 없을 것이다나는 이 사진을 보며 우리가 서로에게 좀 더 친절해야 한다는 책임을이 창백한 푸른 점을 보존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책임을 다짐한다이곳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고향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신비와 현실에 우리가 좀 더 분명하게 주의를 기울일수록 파괴를 향한 인류의 성향이 약화될 것입니다중략경탄하는 마음과 겸허한 마음은 건강한 감정입니다이 감정은 파괴에 대한 욕망과 나란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한 아주 오래된 시간을 배경 삼아 마치 깜박이는 찰나 같은 우리 일생을 생각하니 불현 듯 우리 존재의 덧없음이 우리를 아프게 찌른다우리는 혼돈과 엔트로피가 혼재하는 우주의 강물 위에서 아주 잠깐 섬을 이루었다가 다시 비존재를 향해 영원히 떠내려가는 존재일 뿐이다.”

 

나도 죽으리라당신도 죽으리라우주적 관점에서 아주 잠깐 자아의 그림자 주위로 뭉쳤던 원자들은 우리를 만들어 낸 바다로 돌아가게 되리라우리 중에 살아남게 될 것은 기슭 없는 씨앗과 우주먼지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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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알래스카
안나 볼츠 지음, 나현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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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도 소재도 주제도 말랑한 책이 아니다발랄하고 간결한 제목에 짐작한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총격을 수반한 끔찍한 강도 사건으로 망가진 부모의 상황주인공 파커가 갖게 된 세상과 남자 일반에 대한 증오심뇌전증이라는 질병으로 인해 발작에 대한 불안과 갖가지 안전장치로 살아가는 스벤이별하게 된 반려견학교생활사이버폭력사이버윤리인권 그리고 우정심리적 문제들과 사회적 문제들이 골고루 등장하며 청소년의 삶을 진지하고 다각적으로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한 가지만 해도 벅찰 문제들을 한 데 아우르는 작가의 역량에 수상 이력과 찬사에 납득하게 된다.



새 학기새로운 반낯선 사람들과의 첫 만남그 시작부터 긴장되는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들키고 싶지 않은 뭐라도 낯선 이들에게 공개되는 일은 연령을 불문하고 끔찍한 악몽과 같은 일이다하물며……


위에서 언급했듯이 쉬운 거 하나 없는 환경과 조건 속에서 살아온 파커와 스벤의 시선들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니농도가 무척 짙고 앞으로의 한 걸음이 무겁다.

 

아이들은 어른들도 세상도 못 마땅한 것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불안한 심리가 강해서 한 문장 한 문장 아이들의 심리가 묘사된 글을 읽을 때마다시동이 멈춘 차를 밀어서 이동시켜야할 듯 마음이 힘겨웠다


언제나 효과가 별로라고 시큰둥해하긴 했지만꾸준히 묵묵히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심리치료 등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시행하는 분들 생각이 잠시 떠올랐다어렵고 효과가 적고 느린 것이 당연하다.

 

깊이 침잠한 듯한 감정적인 내용들이 많지만독자는 일부러라도 시선을 띄워서 이들을 객관적으로 끝까지 바라보며 읽어야할 의무가 느껴지기도 했다상처투성이라는 공통점만 빼면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눈은 전혀 다른 아이들이 교차 등장하기 때문이다그들의 눈에 당연히 세상은 비뚤어지고 기울어져 있다.

 

자신으로부터 비롯한 일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도 아니지만자신들이 처한 조건들을 모두 자신의 치부라고 여기는 아이들움츠려든 마음의 모양이 떠올라 가만 토닥여 주고 싶었다일부러 만든 일이 아니라지만어른들이 저지른 일의 대가를 아이들이 무겁고 오래 지고 가는 모습은 참 보기 힘겨운 장면이다


그러니 이런 뾰족한 아이들에게 깊은 관계를 맺고 애정을 느끼는 반려견이 존재한다는 것은 시원한 공기를 몸 속 깊숙이 들이마시는 것처럼 참 다행한 일이고 어른이인간이 하지 못한 효과적인 치유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게 믿고 싶다현실에서도.

 

반려동물은 인간을 분석하고 비교하고 평가하지 않으니까그 관계 속에서만은 파커도 스벤도 인간들의 빠른 평가를 내리는 시선들 속에서부터 자유롭게 맘껏 자신으로만 존재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으니까.

 

안녕알래스카우리 인간이 맘껏 사랑할 수 있게 먼저 사랑해줘서끝까지 사랑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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