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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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 처음 만나는 아르헨티나 작가의 국내 첫 출간작이다주요 등장인물은 카를라의 아들인 다비드와 니나의 엄마 아만다이고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상황 설명이나 묘사는 없다.



대강 짐작만 해보면아름답고 조용하고 평화롭고 휴식이 되는 자연이란 없다는 익숙한 환상과 오해를 역전시키는 배경은 있다이유는 모르지만 도시에 살다 시골로 온 모녀가 죽게 되는 이유가 벌레인 듯하다잘 몰라서 주의하지 못했던 작은 상처가 치명적인 불행으로 치닫는 일다비들의 엄마 카를라도 도시에서 왔고 자식을 잃었다.

 

카를라에게 일어난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거든중략그 애한테 이르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계산하는 중이야나는 그걸 구조 거리라고 불러딸아이와 나를 갈라놓는 그 가변적인 거리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가변적인 구조 거리라는 개념이 낯설어서 원제를 찾아보았다Fever Dream (Samanta Schweblin novel), a 2017 English translation of Distancia de rescate. 그러니까 이 책의 스페인어 원작의 원래 제목이 Distancia de rescate, 즉 “Distance to rescue”이다일반적으로 “rescue distance”란 표현을 사용하니까 이걸 한국어로 번역하면 구조 거리가 된다.

 

그러니까 아만다는 닥칠지 모를 미래의 재난을 기다리고 있는데나는 읽으면서 그 재난 조차 피버 드림즉 고열로 인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인지 실제인지가 헷갈렸다어쨌든 그는 죽어가면서도 딸인 니나를 구하러 갈 생각에 사로 잡혀 거리를 계산하는 중이다시골 병원에 누워 공황 상태에 빠진 아만다는 다비드에게 계속해서 니나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다이 긴장과 불안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이다.

 

챕터도 섹션도 없는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아만다의 시점이 이어지는 책어제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단편을 잃고 어렵지도 두렵지도 않다고 했는데다시 입장을 바꿔야할 것 같다이 의식의 흐름은 강박이 느껴질 만큼 강렬하고 밀도가 높고 계속 읽게 되는 힘은 있지만 이해가 쉽지 않다그 점에서 피버 드림이란 제목이 뜻밖에 위안이 된다독자인 나 역시 열병에 시달려 허둥대는 입장이라 변명하고 싶어지니까.

 

낯선 곳에서 죽어가면서도 자식을 구할 수 있는 거리에 자신의 열에 들뜬 의식이라도 놓아두려는 끊임없이 집착하는 부모의 모습은 원인도 배경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이 아팠다내 자식은 내가 구할 수 있다는 혹은 구하고 싶다는그런 희망조차 판타지이고 현실은 스릴러와 호러의 혼재라고 냉정하게 누군가 평한다면 완전히 반박할 말은 없다하지만 나는 아픈 마음을 다해 구조 거리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모든 부모들의 열병을 치르는 것과도 같은 힘겨운 삶을 늘 응원할 것이다.

 

오독인지이해 부족인지 모르겠지만독자로서 어떤 식으로든 감정에 빠졌다 헤어 나오게 하는 힘만으로도 문학으로서 만난 기쁨과 감사함은 언제나 있다첫 만남이라 하더라도 구성과 서사가 대단히 독특한 작품이다.

 

넷플릭스에서 스페인어 원제로 방영예정이라고 하니마테차를 따끈하게 혹은 시원하게 마시며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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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혁명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70
최윤혜 지음 / 시공주니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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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작가 소개를 읽고 자꾸만 감동을 먹고 폭소를 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분이다.

팬심이 막 생긴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우스운 이야기는 아니다절체절명심각한 사안이다.

소개에 방귀를 소재로 한 사회 풍자라고 해서 척척을 하는 군상들을 놀리고 골리는 이야기인가 했는데 그보다 더 심각하다.

 

방귀를 금지하는 사회법이 시행되었다



방귀를 뀌면 경찰들이 왕집게로 엉덩이를 집어 체포한다가만... 생각해보면 이 법만큼 웃기지도 않지만 막대한 피해를 양산하는 법들은 많았다일례로 유태인이라고 체포당하는 것이 합법인 사회에서 육백만 명이 살해당했다. 방귀를 뀌지 못하는 폐해란...... 잠깐 상상해봤는데 진짜 끔찍하다. 의학적으로도 방귀를 잘 못 뀌면 세포가 오염된다던데......



저자가 이 책의 주인공으로 현실의 방송계에서 숙이점을 만들었다는 연예인 김숙씨를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하셔서 그 시원한 생각과 발언이 책에서도 들리는 듯했다방귀 시위!를 주도해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주인공 숙이씨


방귀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여정과 소란스러운 폭발음을 더 많이 상상할수록 떠들썩하게 재미난 이야기가 된다특히 4단계 총천연색 방귀 폭발을 기대하시라!


오토바이!ㅎㅎㅎ


방귀 금지라는 충격적이고 극한인 상황을 설정해서잘못된 법은 어떻게 깨는 것인지인권과 자유는 무엇인지사회를 변화시키는 용기란 또 무엇인지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이 모든 묵직한 주제들을 색색의 다채로운 그림들에 담아준 멋진 창작물이다신인 작가이고 첫 그림책이라는 설명이 무색하다.


.....................................

 

주의소리 내어 읽으면 더 재미있습니다만 아이들이 웃다 기절 직전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방귀만 말고 다른 금지된 것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일도 좋겠습니다.


저는 요즘에 미얀마 상황을 찾아보는게 참 힘이 드는데 도울 방법도 마땅치 않아 안타깝습니다.


https://www.independent.ie/world-news/asia-pacific/myanmar-soldiers-revel-in-protest-brutality-401936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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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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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도 하드보일드는 안 먹는다고 했다가 친구에게 혼쭐이 날 뻔했다일본 하드보일드의 전설하라 료를 만날 기회라는데 말 안 듣는다고책소개 첫 줄이…… 신주쿠 뒷골목을 누비는 낭만 마초탐정 사와자키……무엇인가, 80년 대 어디메쯤 있었을 듯한 이 인물은<아담스 패밀리 2>의 펍에서 울려 퍼지던 마초마초마초!”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고고하고 시크한 오십대에 접어든’ 하라 료는 무려 1946년 생이고 1988년 마흔이 넘어 등단했다80년 대 맞다! 14년 만의 신간이라니 애독자들에겐 정말 기쁜 소식일 거라 공감한다온갖 찬사로 어질어질하지만나는 첫 만남이니 차분히 예의를 차려보련다사회파 미스터리 작품도 추리소설도 좋아하니 변사가 읽어 주는 느낌이 물씬 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는 이 작품의 하드보일드 감성에 적응하면 되리라.


소설의 진정한 재미그것만을 생각하며 쓰고 또 썼다.”

 

정직하고 고집스럽고 성실하고 똑똑한자기 일을 훌륭히 해치우는 그런 매력이 있는 남성으로 설정된 인물이 사와자키이다달리 말하자면 남자답다!’라고 20세기 미디어에서 평가할 만한 인물이다휴대폰을 사용하지 않고 전화 사서함 서비스 무엇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간다 를 이용하는 개인이, 10m마다 CCTV가 설치되고 위치추적이 가능한 들고 다니는 컴퓨터와 같은 휴대폰그리고 공권력의 조력 없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까 마음이 짠해진다혹여 무능하다고 평가받거나 희화화될까그런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와자키의 현실은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뢰인 조치즈키 고이치를 만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이었다.

 

의뢰인이 아니다그것이 내 첫인상이었다중략탐정 업무라면 내가 더 낫겠지만탐정에게 부탁해야만 하는 문제가 발생하다 해도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사람으로 보였다.

 

의뢰인이 사라진 이후부터 한동안 어두운 신주쿠 뒷골목을 줄담배를 피는 사와자키를 따라 다니며 아무 단서도 수확도 없이 지칠 때까지 걷는 기분이 들었다하드보일드란 장르와 더불어 연상되는 숨이 턱에 차는 추격화려한 액션칼질과 총질이 전혀 없다.

 

사와자키란 인물의 배경에 대해 전혀 모르니스토리에서 확장되는 상상마저 제한된다과거에 소중한 누굴 잃었다거나세계 최고로 악랄한 살인마가 원한을 품었다거나꼭 이 정도로 자극적이지 않더라도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맥주 한 잔 하다 잠시 흘리는 분위기나 말 한 토막 같은 그렇게 힌트가 되는 그런 장치들이 필요하지 않나 한다.

 

이런 투박한 깔끔함이 진정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고, 나는 트릭에 익숙해진 추리소설 독자라 그럴 수도어쨌든!

 

사가라 오라버니가 사와자키 씨에게는 허세를 부려도 안 되고거래는 더 안 되고거짓말은 절대로 안 된다더군요.

 

사와자키의 인물됨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듯한 문장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그리고 신주쿠 경찰과 폭력단 세이와카이의 하시즈메와는 악연으로 설정되어 위협을 받고 의심을 받기도 하는데이 역시 머리 아픈 트릭들이 전혀 없이 솔직한 정면 대결과 같은 긴장구도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단지 사와자키의 수사 방식으로 보이는 탐문단서추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반복되어서살인은 이 모든 인물들이 팀을 이뤄 자행했다란 결말을 보는 것인가 잠시 당황했다관련 인물들의 개인사가 주인공의 이야기보다 더 정성스럽고 길게 펼쳐져서추리 속에 또 다른 미스터리가 출몰하는 건가 잠시 길을 헤맸다복선이거나 결말을 직조하는 중요한 재료들일 지도 모른단 생각에 성실하게 열심히 읽었다책 앞의 등장인물 설명 페이지를 들춰가며조금은 원망스럽다물론 저자의 의도를 다 파악하지 못해 이럴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래도 오십 대가 되어서야 나는 처음 만난 사와자키는 반짝반짝 별처럼 영민해서 독설도 영리하게위트 가득한 비아냥도 독창적으로대화 역시 생각의 속도에 뒤지지 않게 빨라서 지겹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다 읽을 수 있었다이런 문장들이 하라 료의 독특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면 독자들이 일찌감치 발견한 지독한 매력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기대한 사회파 미스터리는 없었지만 - 혹은 못 찾았지만 - 기대 이상의 문장들은 발견했다.

 

거리의 불빛이 어둠과 경쟁하는 탓에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고 없는 것이 보이는 듯한 시간이었다.

 

뜻밖에 수미쌍관처럼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신주쿠의 뒷골목으로 이 묵직하고 담배향이 나는 탐정과 다시 걸어 들어가며 낮고 울리는 목소리로 그가 건네는 말을 듣는 기분이 든다.

 

오십 년 이상 살다 보면 놀랄 일이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이었다중략땅속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폭력이 상대라면 악담을 내뱉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에 들린 담배를 다시 물고 연기를 천천히 빨아들였다나는 아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읽는 내내 뽀오얀 담배 연기가 따라 붙는 기분이 뭉게뭉게 들었다평생을 기관지가 엉망이라 담배는 무리이고 맥주나 한 잔 해야겠다그나저나 제목을 이해하려면 더 애써 읽어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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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트릭 미러 [할인]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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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지아 톨렌티노

Trick Mirror, Reflections on Self-Delusion, Jia Tolentino


국내외 추천사 라인업이 어마어마해서,

 

강화길김금희김하나이길보라이다혜이슬아장혜영황선우 추천

*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_리베카 솔닛

*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_워싱턴포스트

* “문화 비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마스터클래스”_록산 게이

 

데뷔작인 에세이가 최고의 문학작품의 위치에 오를 수도 있는가 살짝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추천을 너무 자주 받아서 오히려 망설이게 되었던 책추천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 읽어 본다.

 

트릭 미러(왜곡이 있는 거울)는 내 몸매에 단점이 없다는 환상을 제공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내야만 하는 자기 형벌이 된다.”

 

그 문장이 나 개인에 대해 설명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어쩌면 나는 이제까지 내가 주워 먹을 빵 조각을 뿌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내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나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그저 명확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몇 년은 걸릴지언정 가치 있는 과정이라고 믿으려 한다.

 

우리 모두 인터넷이 한때는 나비였고 연못이었고 꽃다발이었던 때를 기억하고... 다시 한번 변하여 우리는 놀라게 하고 다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기다린다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인터넷은 인터넷과 교류하는 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이득을 취하는 구조다미래의 우리는 필연적으로 경박해질 것이다나의 일부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재난을 함께 마주 보고 해결해가는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나도 사라질 것이다아티스트이자 작가인 제니 오델Jenny Odell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How to do nothing>에서 주의 산만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썼다. “집중하거나 소통하지 않는 사회 집단은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하지만 여성이 결혼하고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아이를 낳고 기타 등등을 모두 한다 해도 여전히 그들은 결핍되어 있다고 하면서 솔닛은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긴다. “여성이 되는 데에 정답 같은 건 없다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기술은 그 질문 자체를 어떻게 거부하느냐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떤 목적을 문학적으로 선언한 것이다얼마 후 솔닛은 여성이 오직 가정에 속박되는 결정을 하는 것도 문학적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단 하나의 줄거리만을 받았는데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른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나쁜 삶을 살게 되는데도 그러했다우리는 하나의 모범적인 플롯에서 하나의 행복한 결말이 나올 것처럼 말하지만 무수히 많은 삶의 형태가 우리 주변에서 피고 또 질 수 있다.”

 

밀레니얼 시대에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은 착취할 수 있는 모든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서 현금을 쥐어짜내어 사회 구조를 붕괴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우버와 에어비엔비 또한 비슷하게 파괴적이다아마존이 주 판매세를 무시한 곳에서 우버는 지역 교통법규를 무시했고 에어비앤비는 규제받지 않는 호텔에 대한 법을 무시했다중략이 기업들 성장의 가장 큰 돌파구가 무엇인지 못 보게 한다즉 이들이 후기 자본주의의 치열함과 스트레스를 성공적으로 자본화했다는 사실이다회사가 아니라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이 경쟁하게 하여노동자와 소비자가 이 기업이 져야 할 책임과 리스크를 부담하는 패러다임을 일반화한 것이다에어비앤비는 뉴욕시의 이용자들에게 아파트를 빌리는 건 위법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우버 또한 아마존처럼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최대한 낮추었다가 결국 올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아무 장이나 펼쳐 필사를 해본다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이라는 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라고 리베카 솔닛은 평했지만나는 톨렌티노의 통찰보다 솔닛을 인용한 문장의 통찰이 더 와 닿는다재미있는 변화구가 여러 개이지만 묵직한 직구는 없는 느낌아주 새로운 통찰은 없지만 경험과 연결 지어 쉼 없이 이어지는 문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듣기 좋았다간혹 내용보다 문체로 인해 멈칫거리는 경우들이 있는데조금은 그런 점도 있다부제도 원제가 훨씬 좋다왜 이런 중요한 부제를 지워버리고 저런 평범한 부제를 정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Randomhouse의 출간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든다.

 

쓰다 보니 트릭에 걸려 자꾸 심사가 어그러지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톨레티노가 지적했듯이 내 자아는 내 관심사 외의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을 지도혹은 자기 기만적인 모습을 전혀 감추지 않은 타인의 혼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불편해하는 내 자아가 보이는 소심한 거부 반응일지도 모른다고로 나는 밀레니얼 여성이 아닌가보다 싶다.

 

자신의 통찰에 대해 용감하게 그것도 냉소적으로 가차 없이 거침없이 집요하게 성찰하고 그 모든 것을 서늘한 열정이 느껴지는 문장들로 써낼 수 있다는 것이 탁월함이고 가치 있는 에세이 문학일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니 또 모든 찬사가 잘 어울리기도 한다어쨌든 나는 못하는 일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내는 이들이 언제나 많으니 내가 찾은 이유들로 현재나 미래를 포기하거나 절망할 이유는 전혀 없다.

 

몽테뉴와 인터넷 세대의 모랄리얼리티 쇼에 대한 해부학과 같은 글이 있다는 평을 들었다다음번엔 좀 더 흐름을 함께 즐겁게 타는 기분으로 잘 읽어 보고 싶다. Until Next time, leave me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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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 - 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
지아 톨렌티노 지음, 노지양 옮김 / 생각의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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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 미러우리가 보기로 한 것과 보지 않기로 한 것들지아 톨렌티노

Trick Mirror, Reflections on Self-Delusion, Jia Tolen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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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김금희김하나이길보라이다혜이슬아장혜영황선우 추천

*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_리베카 솔닛

* “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_워싱턴포스트

* “문화 비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마스터클래스”_록산 게이

 

데뷔작인 에세이가 최고의 문학작품의 위치에 오를 수도 있는가 살짝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추천을 너무 자주 받아서 오히려 망설이게 되었던 책추천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 읽어 본다.

 

트릭 미러(왜곡이 있는 거울)는 내 몸매에 단점이 없다는 환상을 제공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내야만 하는 자기 형벌이 된다.”

 

그 문장이 나 개인에 대해 설명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어쩌면 나는 이제까지 내가 주워 먹을 빵 조각을 뿌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내가 어디로 가는지 언제나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그저 명확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몇 년은 걸릴지언정 가치 있는 과정이라고 믿으려 한다.

 

우리 모두 인터넷이 한때는 나비였고 연못이었고 꽃다발이었던 때를 기억하고... 다시 한번 변하여 우리는 놀라게 하고 다시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길 기다린다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인터넷은 인터넷과 교류하는 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이득을 취하는 구조다미래의 우리는 필연적으로 경박해질 것이다나의 일부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재난을 함께 마주 보고 해결해가는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나도 사라질 것이다아티스트이자 작가인 제니 오델Jenny Odell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법How to do nothing>에서 주의 산만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 썼다. “집중하거나 소통하지 않는 사회 집단은 자기 힘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

 

하지만 여성이 결혼하고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아이를 낳고 기타 등등을 모두 한다 해도 여전히 그들은 결핍되어 있다고 하면서 솔닛은 다음과 같은 명문을 남긴다. “여성이 되는 데에 정답 같은 건 없다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기술은 그 질문 자체를 어떻게 거부하느냐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어떤 목적을 문학적으로 선언한 것이다얼마 후 솔닛은 여성이 오직 가정에 속박되는 결정을 하는 것도 문학적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단 하나의 줄거리만을 받았는데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른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나쁜 삶을 살게 되는데도 그러했다우리는 하나의 모범적인 플롯에서 하나의 행복한 결말이 나올 것처럼 말하지만 무수히 많은 삶의 형태가 우리 주변에서 피고 또 질 수 있다.”

 

밀레니얼 시대에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은 착취할 수 있는 모든 삶의 현장 구석구석에서 현금을 쥐어짜내어 사회 구조를 붕괴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우버와 에어비엔비 또한 비슷하게 파괴적이다아마존이 주 판매세를 무시한 곳에서 우버는 지역 교통법규를 무시했고 에어비앤비는 규제받지 않는 호텔에 대한 법을 무시했다중략이 기업들 성장의 가장 큰 돌파구가 무엇인지 못 보게 한다즉 이들이 후기 자본주의의 치열함과 스트레스를 성공적으로 자본화했다는 사실이다회사가 아니라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이 경쟁하게 하여노동자와 소비자가 이 기업이 져야 할 책임과 리스크를 부담하는 패러다임을 일반화한 것이다에어비앤비는 뉴욕시의 이용자들에게 아파트를 빌리는 건 위법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우버 또한 아마존처럼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최대한 낮추었다가 결국 올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아무 장이나 펼쳐 필사를 해본다밀레니얼 세대의 수전 손택이라는 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에세이스트라고 리베카 솔닛은 평했지만나는 톨렌티노의 통찰보다 솔닛을 인용한 문장의 통찰이 더 와 닿는다재미있는 변화구가 여러 개이지만 묵직한 직구는 없는 느낌아주 새로운 통찰은 없지만 경험과 연결 지어 쉼 없이 이어지는 문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듣기 좋았다간혹 내용보다 문체로 인해 멈칫거리는 경우들이 있는데조금은 그런 점도 있다부제도 원제가 훨씬 좋다왜 이런 중요한 부제를 지워버리고 저런 평범한 부제를 정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Randomhouse의 출간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든다.

 

쓰다 보니 트릭에 걸려 자꾸 심사가 어그러지는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톨레티노가 지적했듯이 내 자아는 내 관심사 외의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을 지도혹은 자기 기만적인 모습을 전혀 감추지 않은 타인의 혼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불편해하는 내 자아가 보이는 소심한 거부 반응일지도 모른다고로 나는 밀레니얼 여성이 아닌가보다 싶다.

 

자신의 통찰에 대해 용감하게 그것도 냉소적으로 가차 없이 거침없이 집요하게 성찰하고 그 모든 것을 서늘한 열정이 느껴지는 문장들로 써낼 수 있다는 것이 탁월함이고 가치 있는 에세이 문학일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니 또 모든 찬사가 잘 어울리기도 한다어쨌든 나는 못하는 일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내는 이들이 언제나 많으니 내가 찾은 이유들로 현재나 미래를 포기하거나 절망할 이유는 전혀 없다.

 

몽테뉴와 인터넷 세대의 모랄리얼리티 쇼에 대한 해부학과 같은 글이 있다는 평을 들었다다음번엔 좀 더 흐름을 함께 즐겁게 타는 기분으로 잘 읽어 보고 싶다. Until Next time, leave me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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