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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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틱낫한 승려를 만나고 나서이다함께 명상을 시작하기 직전당돌하게 시끄러운 마음으로 조용한 방에 앉아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물었다무례를 탓하지 않고명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고 알려 주셨다그 중 걷기 명상나의 걷기는 그 조우와 함께 시작되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함께 대화하며 걸어주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하지만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삼십분 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지금 고통받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곧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혹시 내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수시로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답이 없을 때마다 나는 그저 걸었다생각이 똑같은 길을 맴돌 때는 두 다리로 직접 걸어나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그러니 힘들 때는 대자로 뻗어버린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걷는 사람의 이미지를 머리에 떠올려보면 좋겠다죽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에겐 아직 최소한의 걸을 만한 힘 정도는 남아 있다.”

 

힘들다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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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S. K. 본 지음, 민지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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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요죽음은 해결할 수 없어요삶이 있다는 것그것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장밋빛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는 SF 작품은 드물지만이 책의 원제를 보면 그 중에서도 우주 공간을 미지의 두려운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짐작이 된다Across the void, void란 단어는 과학적 사고를 유지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비어 있다는 것만으로 피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허를 느끼게 한다물론 책을 제대로 읽기 전의 느낌일 뿐이다.

 

영원함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모든 것이 헛되게 보이는 법이다

허공은 상대적으로 원시적인 인간의 뇌에 그러한 영향력을 갖는다.

 

독자가 느끼는 느낌과는 별개로 주목할 점은 작품 속 인물들주인공이 처한 입장이다저 빈공간을 가로질러 미션을 완수하고 귀환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극한의 어려움과 고난이 가득할 것은 자명하다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계절감을 잃어버린 이상한 날에 목요일처럼 한껏 지쳐서현실의 뉴노멀을 고민하는 시간은 유예하고 작품 속으로 피신해본다.

 

이 작품 속 현실 반영이 유용한 해석 툴이 될 지도미래의 모습이 영감이 될 지도과학기술이 열쇠가 될 지도 모른다고 위안을 하며과거도 미래도 긍정도 부정도 혼재하는 자유로운 시공간 속의 세계에서 느긋하게 저자가 보는 미래 사회의 삶의 방식가치성찰을 엿보고 싶었다왜냐하면 이 소설의 배경은 아주 먼 미래가 아니다. 2067경우 46년 후의 이야기이다.

 

나사의 임무 수행 중 유일한 생존자의 귀환즉 재난 속 인간의 모습을 통해 가능한 갖가지 이야기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S.K.VAUGHN이라는 필명의 저자는 각본가이자 영화제작자로서 스릴러 소설을 이전에 발표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 역시 반전과 스릴러적 재미가 충분하다. SF적 상상력은 워낙 좋아하는 소재들이고 나로선 SF작품 내에서는 반가움보다 염려가 드는 로맨스 설정도 애틋한 면이 없진 않다.

 

모든 사랑에는 궁극적으로 희생이 따른다중략

주요 문학작품의 주인공들도 유사한 운명을 따랐다

왠지는 모르지만 낭만적인 사랑은 운명적 배신에 맞서 싸우는 전쟁터와 같다.

 

어머니는 남자와 장기간 교제하는 것을 강력하게 제지했다

어머니는 항상 그런 일을 방해’ 요인으로 간주했다

위스키라도 한두 잔 마시면어머니는 이 방해’ 요인이 꿈을 죽이는’ 요인이라고 했다

그러니 메이가 누군가와 오래 교제를 하고 결혼까지 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흑인 공군 어머니의 영향으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자라 유로파 탐사미션 충지휘관이 된 주인공직업적 압박감임신남편과 불화유산관계의 삐걱거림우주에서의 사고이렇게 갈등은 복합적이고 치밀하다.

 

2067년 크리스마스.

어두운 우주공간을 떠도는 난파된 우주선에 성탄 음악이 울려 퍼진다.

 

의식을 잃고 깨어난 선장이자 단기 기억 상실증까지 걸린 유일한 생존자 메리엄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나사의 우주기지에서 유로파 미션을 지휘했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이다스티븐은 수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에 있고주선 내 통신장치에서 흘러나오는그의 목소리가 유일한 희망이다. ‘이브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 가는데... 어떻게 될 것 같나요?

 

그들은 나를 믿지 않아

메이는 생각했다

유일한 생존자는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그 대신 수많은 질문과 의심을 받는다.

 

외우기 힘들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들도 없고 지나치게 복잡하고 산만한 서사가 많지도 않고 유쾌하게 잘 읽을 수 있는 세련된 작품이다유치하지도 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코스모스유니버스스페이스(우주공간)라는 용어들은 자주 사용했지만갤럭시라는 용어는 또 오랜만이다문득 휴대폰 상품명으로는 잘 안 어울리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작명 의도나 철학 같은 게 있었나 잠시 쓸데없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사에서는 늘 광활한 우주공간보다 더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곳은 없다고들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우주의 무한함진공의 냉기와 지독한 고요를 결코 품을 수 없다고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다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커진다

그 갈망은 사람을 돌아버리게 할 수도 있다.

 

언급했듯이 먼 미래가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주인공의 입장에 가깝게 느끼며 읽었다준자가격리에 준하는 생활을 한 지라그 재난이나 이 재난이나재난의 모습은 개인을 얼마 안 되는 사적 공간에 가두는 모습으로 나타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오늘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매일 살 수는 없지만결국 지금오늘현재 하나만 남는구나 싶기도 하고메리엄이 귀환한 지구는 이 지구가 아니었음 하는 생각도 든다


꽤 늦은 시간인데 머리가 띵울리는 맥주 생각이 난다잠시지만 느긋하게 행복했고 재밌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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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문장들 - 7년 차 카피라이터의 방향이 되어준 메모
오하림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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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주는 좋은 물건들로 내 방을 천천히 채워간다중략그런 물건으로 가득한 나만의 방과 그 방에 잘 어 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이렇게 내 주변의 물건들은 나를 말해주고 나만의 정체성을 완성시켜 나간다대세의 흐름 따르지 않고 나만의 방향을 만드는 힘내 세계를 스스로 구축하는 뿌듯함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는 기쁨취향이 있는 사람에겐 이런 주체적인 기쁨이 쌓인다.

 

물건을 사는 일을 아주 힘들어한다오래 고민하고 결정하기까지 확신이 필요하다대단한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함께 살’ 물건을 고르는 일이어서 그렇다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불편한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듯이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은 물건과도 함께 살 수 없다지독하게 괴로운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결정하는 과정을 비로소 정리되었다그러니 누가 책을 제외한 - ‘물건을 선물해주면 몹시 당황하게 된다그러다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용도를 다하고 사라지지 않는 물건 선물을 하지 않게 된다뜻하지 않게 미니멀리스트라고 놀림을 받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물건들이 공간을 차지한다는 기분이다.

 

그건, “우리를 배려해 준 말이 아닐까

그간의 해석과는 정반대의 의견에 나는 우선 화를 덜어내고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그래그 사람의 의도는 그가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그럼 내가 판단한 건 뭐였던 거지그때 리틀포레스트의 대 사가 떠올랐다. ‘남의 단점이 보인다는 건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

 

역지사지혹은 오래 전 들은 제 속 짚어 남의 속이란 표현과 결이 살짝 다르기도 하고 통하기도 한다어쨌든 독일 철학자 흉내를 내보면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투영한 대로 이해한다는 것이다많은 경우 정확한 분석이고 또 많은 경우 그보다 더 심한 오해와 곡해가 발생한다현실은 생각보다 자주 웃프다문득 문득 다 포기하지 않고 매번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 어떻게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서로 소통하며 살고 있는지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비밀을 아시는 분저도 알려 주십시오진심입니다.

 

가늘어진 팔보다 단단해진 허벅지를 더 뿌듯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 운동이란 사람의 마음가짐까지 단련시킨다는 생각이 든다전시하는 몸에서 기능하는 몸으로의 변화얼마나 멋진 변화인가나는 이 변화를 오래가능하면 평생 즐기고 싶다.

 

청순가련을 선망한 적도 없지만 나이가 들어 체력이 아깝고 아쉽고 소중해지면 몸을 가늘게 만드는 모든 팁들은 세상 가장 쓸모없는 말로 들린다여러 스포츠 종목을 좋아하고 (단축)마라톤까지 좋아하는 나로서는 30대의 어느 날 처음 해본 분석에서 보기보다 근육량이 많다는 수치가 당연하다 느꼈다 그 근육 다 어디 갔어운동을 더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데…… 체력저하에 노화에 질환에…… 뭐 이렇게 바쁘게 사라질 준비를 하는 건지 자주 서글프다.

 

원래 세상은 조금 더 착한 사람들이 조금 더 애쓰고 살 수밖에 없어요.

그게 막 엄청난 손해 같지만,

나쁜 사람들한테 세상을 넘겨줄 순 없잖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구를 지키고 있는 거야.

드라마 <멜로가 체질마지막화

 

책을 못 읽게 되면 그때부터 TV를 시청하리라 미루고 있는데이 드라마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 아주 조금 읽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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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 이야기를 통해 보는 장애에 대한 편견들
어맨다 레덕 지음, 김소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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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부재하거나 부족하면 사고는 한 치도 확장될 수 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한다잠시 느끼는 개인적인 민망함은 차치하고 그런 깨달음을 주는 연구와 성찰의 결과물들이 내게까지 도착하는 현실이 늘 반갑고 감사하다획득한 언어가 구성한 사고의 겉껍질은 때론 상상 이상으로 단단해서 내부에서 껍데기를 파쇄하려고 두드리는 이해력과 상상력이 있다고 해도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하다 쓰고 나니 언어를 통하지 않은 이해와 상상이 가능할까싶어 사고 오류인 것도 같다어쨌든 요점은 새로운 언어 표현이 의식 변화에 필수라는 것이 책이 내게 가진 가치와 의미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https://www.ox.ac.uk/news/2018-12-20-newborn-insects-trapped-amber-show-first-fossil-evidence-how-crack-egg



약자들을 위로하는 방법들 중에는 일 년에 하루 기념일을 내어주는 일도 있다마침 오늘은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이다어린이여성장애인……이 놀라운 책에 따르면 인간이 태어나 말과 글을 배우고 처음 접하는 이야기인 동화들에 이 모든 약자들을 비틀고 주저앉히고 제한하고 좌절시키고 죄책감을 씌우는 시각과 이데올로기가 가득하다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들이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 혹은 여성들을 등장시켜 서로를 향한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만들어내는 산실이라니.

 

<소란>의 저자 박연준 시인이 간곡히 추천한다는 문장들의 진정성이 절절해서 다 읽기 전에는 시인이 지적한 의식의 지각 변동이 가져올 실제 충격에 무감했던 것 같다오랜 세월 층층을 이루던 한 세계가 갈라진 지각처럼 동화의 건물들 털어내며 무너져 내렸다기억하는 동화들의 색채들은 부옇게 바라고 이야기들은 부서져 날린다슬프고 후련하다.

 

병에 분명한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가혹한 일은 없다.”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뇌성마비로 인한 장애를 가진 저자가 냉철하고 말끔하게 풀어가는 동화의 이야기는 반드시 당사자주의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고 해도 비장애인들 실제로는 여러 장애가 있지만 등록 부재인혹은 노화를 겪으며 언제든 장애가 생길 수 있는 역시 동화의 세계에서 저자와 당시의 시대와 오늘날의 세상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혼란 없이 차분하게 잘 이해할 수 있다논란과 논쟁의 여지가 없이 인정하고 만다는 점 또한 슬프다무지와 의도와 곡해가 버무려진 이야기 모형들을 우리 모두가 어릴 적부터 읽고 듣고 말하고 전하며 살았다니.

 

이야기는 그런 문화에도 불구하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화이기 ‘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도 계속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진짜가 된다.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사회가 해야 할 일들은 많고 그 중 많은 것들이 우리가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이기도 하다단 그런 변화는 단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끈질기게 변화를 요구하는 동안 각자의 사정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 시간을 견디기가 좀 더 수월해지는 경우도 있다자신의 불편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정말 좋다도착지가 어린이여성장애인 그리고 독자인 우리들을 향한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릇된 시선을 바꾸는 것이라면.

 

내가 일상에 머물며 사적 공간을 유지하는 일에 체력의 대부분을 쏟고 사는 시간에도멈추지 않고 포기하지도 절망하지도 않고 묵묵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오신 분들이 아주 많을 거라 늘 믿는다세상은 저절로 바뀌는 법은 절대 없고뭐든아무리 작은 변화도 누군가가 애써 바꾼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기회가 될 때마다 깊은 감사를 드린다오늘지금현재도 덕분입니다이 책의 저자 어맨다 레덕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나이가 들수록 드물고 귀하게 경험하는 내가 딛고 선 지반을 흔들어 부수는 작품을 주셨으니.

 

그의 바람대로 멀지 않은 미래에 휠체어 탄 공주 이야기가 있기를마법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식하고 바깥을 봄으로써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에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친 남자의 이야기가 들려오기를!

 

이 책을 읽고 당혹스럽게도 토니 모리슨이 강연에서 한 말 을 모은 책 <보이지 않는 잉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써진 게 없다면 바로 당신이 써야 한다.”

 

정답!은 맞지만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지만도저히 그럴 깜냥이 안 된다할 수 있다면 왜 안하겠는가.

 

온라인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분류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나는 이들의 재능을 펼칠 무대를 사회가 감당할 수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그래서 누군가는 분명 어맨다 레덕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멋진 작품으로시원하고 후련한 새로운 동화를 세상에 데려와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어느 시점부터 세계의 모든 아이들은 더 이상 어린이와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어떤 모욕과 폭력도 가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거의 모든 내용을 필사발췌하며 읽어서 아예 내용 설명을 다 뺀 얼렁뚱땅 글을 올린다이 책이 궁금해지길읽게 되길생각을 글로 써보게 되길그래서 널리 회자되길 바라는 마음이 무척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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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 친절함과 상냥함이 여성의 디폴트가 아닌 세상을 위해
최지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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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큰 접점도 없는 사람들에게 받은 착하고 괜찮은 여성이라는 인정과 타이틀로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하나조차 바꿔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그래서 나는 차라리 웃어주지 않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중략더 이상 요구가 지나친 이 세상에 맞춰줄 생각은 없다중략라벨링하거나 말거나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은 표지가 맘에 들었다저 채도의 빨간색은 다소 어려웠지만 운동화를 신고 바지를 입은 여성이 훌쩍 높이 멀리 뛰어 유리천장을 깨는 모습이 그야말로 시원했다의식하지 않았는데 긴 숨이 큰 소리처럼 새어 나왔다.

 

긴 제목 외에도친절함과 상냥함이 여성의 디폴트가 아닌 세상을 위해란 부제와개소리는 음소거하고내 안의 목소리를 내는 법뒤표지의 당신이 참으면 상대는 용기를 얻는다란 문장들이 사방을 둘러 싼 병사처럼 성벽처럼 무기처럼 배치되었다메시지는 선명할 것이다이런 책을 읽으면 내가 갖지 못한 에너지 레벨에 잠시 접속하는 듯 기운이 난다.

 

위풍당당한 목차는 대응무시중심연대로 직진 주행을 한다길을 잃을 염려 없이 같이 시원하게 달려볼 수 있는자주 만날 수 없는 일독에 다 이해시켜주는 책일 지도 모른다.

 

핵심은 상대방의 공격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쩔쩔 맨다는 뉘앙스를 주기보다 불편한 침묵을 만듦으로써 상대의 발언이 잘못됐음을 전하고 차갑고 싸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생각보다 간단히 할 수 있다무표정한 얼굴로 상대의 눈을 3초간 빤히 바라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농담인데 왜 안 웃느냐는 식의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면 농담이면 재미있어야죠좀 재미있게 해보세요라고 말하자받아들이는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이미 농담이 아니다무례함을 웃어넘겨주다 보면 무례함은 계속될 것이며결국 나만 다칠 뿐이다.


김수미의 시방상담소에서


당찬 제안이다깊은 이해와 측은지심을 염두에 두고 살고 싶었던 마음에 자주 해보진 않았지만간혹 심신 상태가 난조이고 다른 이유로 지쳐서 인내심이 없는 날배려고 뭐고 계속 이럴 거면 이딴 세상 다 망해버리든지 싶은 심정인 날침묵시위를 한 적이 수차례 있다절친들 조차 웃지 않는 옆얼굴만으로 수군댈 살벌한 인상이란 정평이 있으므로작정하면 언어 없이도 의사전달은 확실히 할 수 있다.

 

사회는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면서 운동했다간 건강한 돼지가 되고 말 거라고 조롱했다그렇다면 여성은 건강한 돼지가 될 바에 건강하지 않은 사슴이 되는 편이 맞다는 건가?

 

체력이 가장 중요한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부디 건강한 식사 잘 챙겨 드시고 가능한 부지런히 근육을 키우시길!

 

사회가 정의한 표준에서 벗어난 삶들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야망으로 득실거리는 여성의 삶자신만의 삶을 영위하는 어느 40대 여성의 일상욕망으로 가득한 노년의 사랑인생에 오직 한 가지 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걸생각보다 다양한 옵션이 있다는 것을 우리 여성 모두가 깨달을 수 있도록 떠들어야 한다.

 

적어도 눈길을 막 흘기진 않았으면 한다일면 여성들은 서로에게 너무 자주 옆 눈길만 보내며 살기도 하니까.

 

오랜 고민 끝에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기로 한 내 선택이 전체주의 사상에 따르지 않는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된다면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다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온전한 개인의 선택이며 나는 세상에 아기를 빚진 적도 없다.

 

빌 게이츠도 경험할 수 없는 일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육체가 독점하는 일이고부디 이 감탄스럽고 경이로운 경험이 온전하게 당사자의 몫이 되길 끝까지 응원한다.

 

내 꿈은 철없는 이모가 되는 것이다아마 주변에 이런 이모가 한 명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중략얼마간 안 보이는가 싶었는데 남태평양에 있는 어느 섬에 다녀왔다며 까맣게 그을려서 나타나고 친척 어른들에게 샤르도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의심을 사는 이모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지만 고등학생 조카들에게는 인기 만점인 그런 이모 말이다엄마가 되는 것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좀 더 많은 쿨한 이모들이 필요하다여성들에게 더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꽤나 많아지는 분위기인데골드 미스골드 미스터인지 뭔지 하는 우습지도 않은 호칭들은 얼른 꽉꽉 밟아 버려 주길!

 

어렸을 때만 해도 단단한 자존감을 세우지 못한 나를 책망했던 것도 같다그러나 이제는 안다중략자존감은 사실 별거 아니고 스스로와 관계를 맺으며 이 인간 말이야완전무결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예전 같았으면 비수를 꽂는 말을 들으면 잘 때까지 그 말을 곱씹었을 텐데지금은 코웃음 치며 지나치는 여유가 생겼다.

 

출처https://www.pinterest.co.kr

 

당신이 좀 더 재수 없어지길이겨먹길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길 바란다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담근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물살을 가르며 삶을 살아내자중략당신 스스로가 정의 내린 모습으로 존재하자거창하지 않아도 된다그저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을 입 밖에 꺼내는 것부터 시작하자.

 

물살을 가르는 건 힘겹게 느껴지는 표현이지만 일단 꾹 참고만 살지는 말자대면해서 당사자에게 정확한 의사 전달이 어렵다면 블로그에 글이라도 남기자읽게 된 누군가 공감과 댓글로 위로와 격려를 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진지하고 어려운 이론에 기초한 글들 말고 용감하게 사회에서 이리 저리 부딪히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적어도 불편함과 불쾌함에 대해서는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효용성 높은 글이라 평하고 싶다. '그렇구나그거였구나'그렇게 재밌어할 독자들을 상상해본다도대체남에게 웃어라 마라이런 무례는 누가 허락해준 일인지얼른 얼른 과거의 유물이 되길.

 

웃어 봐라용돈 줄게” 이런 극강의 모욕적인 말을 들어본 경험자로서 여러 일화들에 공감한다이 역겹고 무례한 발화자는 내가 졸업한 후 여러 해 지나 학생 성추행으로 직권면직 당했다어째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분했고다시 여러 해가 지나 다른 대학에 어찌저찌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혔다비릿하고 음침한 남성연대는 때론 만리장성급이다.

 

저자의 꿈은 꿈은 여전히 제멋대로 살고 바운더리 밖으로 용감하게 진출하고그러다가 쪽을 당하더라도 금방 다시 회복하는 그런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 한다이 중 지금은 회복력이 가장 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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