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길 위의 길
김일태 외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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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히가끔은 수다도 떨면서 여럿이 함께 오래 걸은 적이 언제던가싶다기억나는 건 뜻밖에 작년 한 여름, 7월의 어느 날이었다간혹 확진자 수가 0이기도 한 날들.

 

<길 위의 길>이란 제목 덕분에 가만 상상해 보니 가장 기본이 되는 길이 펼쳐진 위에 우리 모두가 각자의 길을 내어 걸어가는 것이 사는 일이기도 하다그런 이미지를 떠오르니 각자가 만들 길들이 겹치기도 하고 교차되기도 하고 그러다 함께 걸어보고 싶은 관계들도 만들어지는 그런 이미지들도 솔솔 확장된다.

 

이 시집의 공저자들시인들은 만났을 뿐만 아니라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며 시를 모았다감정을 과소비하는 느낌이 없이 가만히 서로를세상살이를 살펴보는 분위기이다. I SEE YOU.



힘이 많이 들고 버거운 시들이 아니라풍경들을 감상하며 휴식하듯 천천히 이 시집을 읽고 나서 뜬금없이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최근에 필사한 문장,

 

무엇이든 해 봐야 해낼 수 있다.

경계 안에서 두려움을 회피한 대가는,

선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못한 초라한 자신이다.”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조태호.

 

다른 하나는,

 

한 때 나를 살렸던

누군가의 시들처럼

 

나의 시여지금

다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도

살려주기를 바란다.

 

나의 시에게           나태주

 

자꾸만 일을 더 줄이고 싶고,

가능한 일들은 모두 슬쩍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뭔가에 제동을 걸린다.

 

나의 생존이 누군가의 분투로 유지되는 시간이 워낙 길어져서 그런가.

누군가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싶은데

지금 하는 일은 별 의미가 없다 싶어 이러나,

 

오래된 그래서 그만 끝낸 질문이 슬쩍 떠오르려다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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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재미있는 미로찾기 대탐험 - 문제해결력과 집중력이 자라나는 익스트림 미로찾기
칼리스토미디어 편집부 지음, 최진선 옮김 / 미디어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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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을 좋아하는 아이였으니 아주 아주 오래 접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전히 기분이 들뜨고 신나는 책이다. 9, 14살 아이들을 설득(?)해서 시시하고 재미난 경품을 보상으로 걸고 미로찾기 게임을 시작했다. 75개나 있다니 기쁨에 마음이 벅차다!



드물게 만난 엄청나게 큰 책 사이즈인데내 눈에만 뭐가 이렇게 안 보이는지. 현실의 휴대폰이 식어 가는 만큼 두 눈이 뜨거워지는 경험이었다. 내기 불변의 법칙! 내기는 제안한 사람이 지게 되어 있다.

 

서글프지만 간만에 다시 몰입을 경험하고 싶은 어른이나 그 어른을 이겨보는 즐거운 경험을 원하는 아이들 모두의 도전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킬시도할 가치가 있는 진짜 미로들이 75개나 있는 미로 같은 책이다


미로의 수준은 꽤 다양한 편이다. 폭 넓은 연령대가 함께 풀어볼 수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윌리를 찾아라에 버금가는 미로도 있고, 무엇보다 단순 길찾아 나가기만이 아니라 미션들이 있어서 지루할 여지를 줄여 주는 장점도 있다. 어쨌든 클래식만 재미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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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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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아이가 죽었다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절대 자살하지 않으니까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이 동반되는 사건이라 끝까지 읽어 낼 자신이 없기도 한 소재가 유괴이다상상만 해봐도 상상에서도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이다.

 

저자의 인터뷰 내용을 읽어 보니 작품을 쓰기 전에 실종 아동 찾기 협회장님의 인터뷰를 접한 내용이 있었다안타깝고 슬프게도 실종 아동 가족의 70퍼센트의 가정이 해체되고경제적으로 붕괴될 때까지 아이를 찾는 일에 몰두하다 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더구나 협회장님 본인 역시 20여 년 전 9살이던 딸을 잃은 분이라 한다.

 

작가는 실종자의 부모들이 주저앉지 않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자신의 아픔을 다른 이들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가늠한다고 한다그래서 <구원의 날>을 실종된 모든 아이들이 귀가하길국민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과 수사 당국과 수사 전담 인력의 확충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아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세상을 기원하며 썼다고 한다.

 

여보얘 그냥 돌려보내면 안 돼우리 선우 찾을 수 있어여보제발 부탁이야우리 선우 찾아줘.”

 

짜릿한 추리스릴러반전물이 아니라고 알게 되니 더욱 묵직한 기분으로 읽게 된다게다가 책의 전개는 유괴당한 아들을 둔 부부가 유괴범이 되는 복잡하고 기막힌 상황으로 펼쳐진다부디 이 책의 결말은 안심할 수 있는 행복한 모습이길구원의 날부디 작가가 기원한 구원의 모습으로 구원 받는 이들이 실재하길 미리 바라며 읽기 시작했다.

 

가장 깊은 애정과 가장 참혹한 상처를 동시에 줄 수 있는 관계가족의 이야기는 늘 얼마간 불편하고 힘겹다연이어 보도되는 아동학대살해 사건들어쩔 수 없이 현실이 떠올라 묵직한 마음으로 치미는 화를 느끼며 동시에 무기력한 기분으로 읽게 된다.

 

가해자는 해당 피해아동에게만 폭력을 가한 것이 아니라 그 소식을 접하는 모든 이들을 상처 입힌다는 것을 짐작이라도 할까자꾸만 소설과 현실을 오락거리며 그렇게 읽게 된 <구원의 날>이다.

 

예원이 담당 형사의 차를 아이의 전단지로 가득 채운 봉고차로 들이받던 날남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예원을 희망 정신요양원에 입원시킨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얼마나 상상할 수 있을까. ‘형용할 수 없는이란 표현은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을 위한 말일 것이다.

 

지지부진한 수사 끝에 단서도 없이 3년이 지나 결국 미제 사건으로 처리되었다해당 관청에서 분류작업을 끝났다고 부모의 고통도 마감될 리는 만무하다더욱 암담하고 어둡고 무거운 기분으로그래도 힘을 그러모아 찾아 나서야 한다.

 

현실의 실종 아동들의 부모들은 이 세상을 어떤 모습과 느낌으로 새로 경험하게 될까냉혹하고 척박한 곳일까위로와 도움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곳일까.

 

이선우 군으로 추정하는 시신이 발견됐습니다유류품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느 날 발견된 어린 아이의 백골사체와 실종 아동 선우의 목걸이시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탈진한 부모와 자신에게는 부재한 따뜻한 애정을 갈구하며 자해하는 또다른 아이이 셋이서 선우를 찾아 나서는 게 옳은 일일까너무나 불안했지만옳고 그름을 차분히 따질 여유가 없이 뭐라도 단서를 따라 길을 나서는 것이 당연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울림 기도원금평 살 때 다녔어요거기 선우 있어요.”

 

이 기막힌 상황에 종교단체가 배후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또 다시 현실과 교차되며 새롭지만은 않은 울화가 치민다그나마 폐쇄적인 사이비 단체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풍겨 나오는 스릴이 추리 소설 장르로서 이 책의 문학적 재미를 더한다고 위로해본다.

 

저자의 집필 의도에 맞게이 작품은 두뇌 추리 능력을 요구한다기보다는 심리적 회오리를 느끼게 만드는 치밀하게 인간 심리를 파고드는 내용이 더 눈에 띈다물론 강렬한 소재와 전개와 밝힐 수 없는 결론의 카타르시스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손을 잡고놓고놓친다.

하지만 놓친 손은 다시 잡을 수 있다.

그걸로 우리는 용서하고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결국 용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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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 오늘의 청소년 문학 29
김지숙 지음 / 다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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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처는 깊어서 극복할 수 없기도 해그럴 땐 같이 살아가야만 하지.”

 

청소년 도서를 좋아해서 자주 읽는데참 이상한 경험은 나의 경험과 전혀 다른데도 어딘가 닮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구체적인 내용들이 달라도 우리 모두가 한 시절성장하느라 실수도 하고 상처도 받고 다양한 고민에 빠지기도 하는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인가 싶다.

 

어린이청소년청년어른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진지하게 자기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그러니 특정 연령층을 성급하게 일반화해서 이러저런 평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할 일이다그런 말들은 너무 손쉬워서 싫다.

 

한편다른 연령층을 잘 이해하고 싶어도 아는 바가 없어서몰라서 못하는 일도 많다그런 면에서 김지숙 작가의 이 작품은 내게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세세히 살펴보고 그들만의 분위기와 문화와 고민들을 느껴볼 수 있는 참 반가운 기회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잔인했다그곳에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람들만 존재했다살아남은 사람들은 기뻐서 울고떨어진 사람들은 억울하고 아쉬워서 울었다결국 모두가 울었다이 과정을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반복했다보면 볼수록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못생기고 서툰 사람들의 존재감은 사라지고예쁘고 매력적인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특히 이 작품에는 나로서는 거의 처음 접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아이돌을 좋아하는 감정의 농도인터넷 댓글을 아이들이 활용하는 문화가 소재로 활용되어 개안을 하듯 읽어 나갔다또한 매력적인 타로 점술가 나나 언니의 인상적인 역할 덕분에이런 타로 점술가 현실에는 없나 잠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만드는 게 바로 현재의 선택이야그런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잖아네 말대로 자기 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야모든 사람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자신만의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타로가 될 수도 있고음악이든 그림이든 글이든뭐든 좋지.”

 

왕따다이어트가난자살 등 각자의 기억에 묻어 둔 말할 수 없었던 비밀과 상처들을 지닌 채 자신들의 십대를 반추하며 불안하게 일상을 견디는 이들이 있다작가는 이런 상태의 원인을 차근차근 짚어 올라가듯 아이들이 하는 행동다소 극단적인 행동 이면을 들여다본다.

 

누군가 왕따를 만들기로 하면 왕따가 되는 것이었다나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왕따가 되었다하긴누가 그런 걸 준비할 수 있었겠나.”

 

돈 있을 때는 들러붙던 놈들이아빠가 좁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면서 한탄조로 말하면 우린 하나뿐인 방에 모여서 꼼짝없이 그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우리 집은 너무 작아서 각자의 불행을 숨길 공간이 없었다.”

 

어떤 과거로부터 비롯된 오해나 상처가 있는지자신들의 실수를 후회하고 지속적인 심리적 고통을 받는 그 마음들을 작가가 차분하게 드러내 보여준다따끔거리며 아프지만 읽다 보면 작가가 마련한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세상에는 고장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상처 난 부분을 회복시키는 데 온 시간과 정성을 쏟는 사람들도 있었다그래서 세상은 그럭저럭 흘러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때로는 수년간 아이들 사이에 놀림이나 가학적인 따돌림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교사나 부모가 전혀 눈치를 못 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특히나 언어로 가해지는 폭력인 경우에는.

 

몇 년간 그런 환경에서 견디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 심정이 어떨지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설사 개중 몇 건이 적발되었다고 해도 재발과 새로운 사건 발생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으니 참 조마조마하다나는 표지를 보고 마음이 덜컥거렸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힘들었냐고 물으면각자의 대답은 다르겠지만개중에는 십대라고 답할 이들도 많을 것이다지금의 십대 아이들은 어떻게 혼란스러운지 작가의 담담하지만 시종여일 진지한 분위기에 빠져 조용히 호흡하며 굉장히 집중해서 끝까지 읽었다과장이 없어 좋았다.

 

만약 가해자이자 버팀목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혼돈과 불안의 시절을 견디는자신의 심정을 누군가 이해해주기 바라는 청소년이 이 책을 만난다면 분명 진심으로 내민 위로의 손길을 알아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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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말할 시간 창비만화도서관 5
구정인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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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기에도 용기와 체력이 필요한 내용이다그러니 이런 폭력을 경험한그리고 이야기로 남기기로 한 이들은 얼마만큼의 용기와 동기가 필요할까알리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면 도저히 못 할 일이다그러니 나는 적은 용기만이라도 다 그러모아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최소한.

 

만화다그래서 좀 더 힘이 든다당사자의 표정과 분위기가 이미지들로 바로 전달되고 때로는 글보다 더 깊숙하게 남기 때문이다그래도 작가가 만화만이 가능한 표현들로 감정과 상황과 생각을 전해 주는 장면들이 감탄스럽고 좋았다.

 

유치원 때의 성폭행 기억도대체 어린 아이들에게 이런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어른들을 어찌해야 하는지감정이 요동치자 복통이 느껴졌다유치원에 다니는 나이라면 상황 자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전달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가능성도 아주 높다그래서 엄마에게도 말을 못한 게 아닌가 바닥 모를 슬픔을 느꼈다.



성장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갔을 것이고스스로를 탓하거나 엄마를 원망하거나미래를 두려워하거나하는어둡고 무거운 상상들이 아이의 마음을 채우고 짓누른다정말 다행히 당사자 인서는 그 비밀을 마침내 말 할 수 있는별스럽고 요란하지 않은조용하게 지지받고 위로받는 기회를 맞는다.

 

10대에만 가능할 것도 같은 최고의 친구 부디 모든 10대들이 스스로가 이런 친구가 되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아이를 안심시키고 위로를 건네주는 산부인과 선생님그리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엄마은서는 이렇게 오랜 비밀과 이별한다.

 

사건이 없어지지도 기억이 사라지지도 않겠지만어쩌면 앞으로의 현실에서 추행을 다시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통계적으로 가능성은 아주 높다 마음을 짓누르던 어두운 생각들은 반드시 줄어들 것이다그리고 인서의 반응도 대응도 같지 않을 것이다일단 그것만으로도 조금 안심이 되고 조금은 기쁘다.

 

범죄자를 체포하고 처벌까지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이 책의 방점은 인서의 비밀이 담담하고 조용하고 온전하게 말로 표현되고 인서가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있다물론 이 작품 자체로서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현실의 독자이자 성인으로서 나는 미성년자성폭행 가중처벌법의 강화와 더불어 다른 모든 종류의 성범죄에 관한 합당하고 강력한 법적 사회적 처벌을 끝까지 끈질기게 요구할 것이다. 합의한 관계라는 둥, 사랑이라는 둥, 어린 줄 몰랐다는 둥, 먼저 유혹했다는 둥 하는 쓰레기 보다 못한 변론들이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경멸당하고 부정당하며 사라질 날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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