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인 문장들 - 7년 차 카피라이터의 방향이 되어준 메모
오하림 지음 / 자그마치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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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주는 좋은 물건들로 내 방을 천천히 채워간다중략그런 물건으로 가득한 나만의 방과 그 방에 잘 어 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나이렇게 내 주변의 물건들은 나를 말해주고 나만의 정체성을 완성시켜 나간다대세의 흐름 따르지 않고 나만의 방향을 만드는 힘내 세계를 스스로 구축하는 뿌듯함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는 기쁨취향이 있는 사람에겐 이런 주체적인 기쁨이 쌓인다.

 

물건을 사는 일을 아주 힘들어한다오래 고민하고 결정하기까지 확신이 필요하다대단한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함께 살’ 물건을 고르는 일이어서 그렇다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불편한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듯이한 공간에 있고 싶지 않은 물건과도 함께 살 수 없다지독하게 괴로운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결정하는 과정을 비로소 정리되었다그러니 누가 책을 제외한 - ‘물건을 선물해주면 몹시 당황하게 된다그러다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용도를 다하고 사라지지 않는 물건 선물을 하지 않게 된다뜻하지 않게 미니멀리스트라고 놀림을 받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물건들이 공간을 차지한다는 기분이다.

 

그건, “우리를 배려해 준 말이 아닐까

그간의 해석과는 정반대의 의견에 나는 우선 화를 덜어내고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그래그 사람의 의도는 그가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그럼 내가 판단한 건 뭐였던 거지그때 리틀포레스트의 대 사가 떠올랐다. ‘남의 단점이 보인다는 건나에게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

 

역지사지혹은 오래 전 들은 제 속 짚어 남의 속이란 표현과 결이 살짝 다르기도 하고 통하기도 한다어쨌든 독일 철학자 흉내를 내보면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투영한 대로 이해한다는 것이다많은 경우 정확한 분석이고 또 많은 경우 그보다 더 심한 오해와 곡해가 발생한다현실은 생각보다 자주 웃프다문득 문득 다 포기하지 않고 매번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 어떻게 우리는 알지도 못하면서 서로 소통하며 살고 있는지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비밀을 아시는 분저도 알려 주십시오진심입니다.

 

가늘어진 팔보다 단단해진 허벅지를 더 뿌듯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 운동이란 사람의 마음가짐까지 단련시킨다는 생각이 든다전시하는 몸에서 기능하는 몸으로의 변화얼마나 멋진 변화인가나는 이 변화를 오래가능하면 평생 즐기고 싶다.

 

청순가련을 선망한 적도 없지만 나이가 들어 체력이 아깝고 아쉽고 소중해지면 몸을 가늘게 만드는 모든 팁들은 세상 가장 쓸모없는 말로 들린다여러 스포츠 종목을 좋아하고 (단축)마라톤까지 좋아하는 나로서는 30대의 어느 날 처음 해본 분석에서 보기보다 근육량이 많다는 수치가 당연하다 느꼈다 그 근육 다 어디 갔어운동을 더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데…… 체력저하에 노화에 질환에…… 뭐 이렇게 바쁘게 사라질 준비를 하는 건지 자주 서글프다.

 

원래 세상은 조금 더 착한 사람들이 조금 더 애쓰고 살 수밖에 없어요.

그게 막 엄청난 손해 같지만,

나쁜 사람들한테 세상을 넘겨줄 순 없잖아.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구를 지키고 있는 거야.

드라마 <멜로가 체질마지막화

 

책을 못 읽게 되면 그때부터 TV를 시청하리라 미루고 있는데이 드라마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 아주 조금 읽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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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소녀를 위한 동화는 없다 - 이야기를 통해 보는 장애에 대한 편견들
어맨다 레덕 지음, 김소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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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부재하거나 부족하면 사고는 한 치도 확장될 수 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한다잠시 느끼는 개인적인 민망함은 차치하고 그런 깨달음을 주는 연구와 성찰의 결과물들이 내게까지 도착하는 현실이 늘 반갑고 감사하다획득한 언어가 구성한 사고의 겉껍질은 때론 상상 이상으로 단단해서 내부에서 껍데기를 파쇄하려고 두드리는 이해력과 상상력이 있다고 해도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하다 쓰고 나니 언어를 통하지 않은 이해와 상상이 가능할까싶어 사고 오류인 것도 같다어쨌든 요점은 새로운 언어 표현이 의식 변화에 필수라는 것이 책이 내게 가진 가치와 의미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https://www.ox.ac.uk/news/2018-12-20-newborn-insects-trapped-amber-show-first-fossil-evidence-how-crack-egg



약자들을 위로하는 방법들 중에는 일 년에 하루 기념일을 내어주는 일도 있다마침 오늘은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이다어린이여성장애인……이 놀라운 책에 따르면 인간이 태어나 말과 글을 배우고 처음 접하는 이야기인 동화들에 이 모든 약자들을 비틀고 주저앉히고 제한하고 좌절시키고 죄책감을 씌우는 시각과 이데올로기가 가득하다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들이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 혹은 여성들을 등장시켜 서로를 향한 수많은 편견과 오해를 만들어내는 산실이라니.

 

<소란>의 저자 박연준 시인이 간곡히 추천한다는 문장들의 진정성이 절절해서 다 읽기 전에는 시인이 지적한 의식의 지각 변동이 가져올 실제 충격에 무감했던 것 같다오랜 세월 층층을 이루던 한 세계가 갈라진 지각처럼 동화의 건물들 털어내며 무너져 내렸다기억하는 동화들의 색채들은 부옇게 바라고 이야기들은 부서져 날린다슬프고 후련하다.

 

병에 분명한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가혹한 일은 없다.”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뇌성마비로 인한 장애를 가진 저자가 냉철하고 말끔하게 풀어가는 동화의 이야기는 반드시 당사자주의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고 해도 비장애인들 실제로는 여러 장애가 있지만 등록 부재인혹은 노화를 겪으며 언제든 장애가 생길 수 있는 역시 동화의 세계에서 저자와 당시의 시대와 오늘날의 세상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혼란 없이 차분하게 잘 이해할 수 있다논란과 논쟁의 여지가 없이 인정하고 만다는 점 또한 슬프다무지와 의도와 곡해가 버무려진 이야기 모형들을 우리 모두가 어릴 적부터 읽고 듣고 말하고 전하며 살았다니.

 

이야기는 그런 문화에도 불구하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화이기 ‘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그렇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도 계속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진짜가 된다.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들이 바뀌어야 한다.

그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사회가 해야 할 일들은 많고 그 중 많은 것들이 우리가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이기도 하다단 그런 변화는 단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끈질기게 변화를 요구하는 동안 각자의 사정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 시간을 견디기가 좀 더 수월해지는 경우도 있다자신의 불편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정말 좋다도착지가 어린이여성장애인 그리고 독자인 우리들을 향한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릇된 시선을 바꾸는 것이라면.

 

내가 일상에 머물며 사적 공간을 유지하는 일에 체력의 대부분을 쏟고 사는 시간에도멈추지 않고 포기하지도 절망하지도 않고 묵묵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오신 분들이 아주 많을 거라 늘 믿는다세상은 저절로 바뀌는 법은 절대 없고뭐든아무리 작은 변화도 누군가가 애써 바꾼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기회가 될 때마다 깊은 감사를 드린다오늘지금현재도 덕분입니다이 책의 저자 어맨다 레덕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나이가 들수록 드물고 귀하게 경험하는 내가 딛고 선 지반을 흔들어 부수는 작품을 주셨으니.

 

그의 바람대로 멀지 않은 미래에 휠체어 탄 공주 이야기가 있기를마법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인식하고 바깥을 봄으로써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기에 사악한 마법사를 물리친 남자의 이야기가 들려오기를!

 

이 책을 읽고 당혹스럽게도 토니 모리슨이 강연에서 한 말 을 모은 책 <보이지 않는 잉크>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당신이 읽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직 써진 게 없다면 바로 당신이 써야 한다.”

 

정답!은 맞지만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지만도저히 그럴 깜냥이 안 된다할 수 있다면 왜 안하겠는가.

 

온라인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분류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나는 이들의 재능을 펼칠 무대를 사회가 감당할 수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그래서 누군가는 분명 어맨다 레덕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멋진 작품으로시원하고 후련한 새로운 동화를 세상에 데려와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어느 시점부터 세계의 모든 아이들은 더 이상 어린이와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어떤 모욕과 폭력도 가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거의 모든 내용을 필사발췌하며 읽어서 아예 내용 설명을 다 뺀 얼렁뚱땅 글을 올린다이 책이 궁금해지길읽게 되길생각을 글로 써보게 되길그래서 널리 회자되길 바라는 마음이 무척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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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웃어주지 않기로 했다 - 친절함과 상냥함이 여성의 디폴트가 아닌 세상을 위해
최지미 지음 / 카시오페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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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큰 접점도 없는 사람들에게 받은 착하고 괜찮은 여성이라는 인정과 타이틀로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하나조차 바꿔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그래서 나는 차라리 웃어주지 않는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중략더 이상 요구가 지나친 이 세상에 맞춰줄 생각은 없다중략라벨링하거나 말거나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은 표지가 맘에 들었다저 채도의 빨간색은 다소 어려웠지만 운동화를 신고 바지를 입은 여성이 훌쩍 높이 멀리 뛰어 유리천장을 깨는 모습이 그야말로 시원했다의식하지 않았는데 긴 숨이 큰 소리처럼 새어 나왔다.

 

긴 제목 외에도친절함과 상냥함이 여성의 디폴트가 아닌 세상을 위해란 부제와개소리는 음소거하고내 안의 목소리를 내는 법뒤표지의 당신이 참으면 상대는 용기를 얻는다란 문장들이 사방을 둘러 싼 병사처럼 성벽처럼 무기처럼 배치되었다메시지는 선명할 것이다이런 책을 읽으면 내가 갖지 못한 에너지 레벨에 잠시 접속하는 듯 기운이 난다.

 

위풍당당한 목차는 대응무시중심연대로 직진 주행을 한다길을 잃을 염려 없이 같이 시원하게 달려볼 수 있는자주 만날 수 없는 일독에 다 이해시켜주는 책일 지도 모른다.

 

핵심은 상대방의 공격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쩔쩔 맨다는 뉘앙스를 주기보다 불편한 침묵을 만듦으로써 상대의 발언이 잘못됐음을 전하고 차갑고 싸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생각보다 간단히 할 수 있다무표정한 얼굴로 상대의 눈을 3초간 빤히 바라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농담인데 왜 안 웃느냐는 식의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면 농담이면 재미있어야죠좀 재미있게 해보세요라고 말하자받아들이는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이미 농담이 아니다무례함을 웃어넘겨주다 보면 무례함은 계속될 것이며결국 나만 다칠 뿐이다.


김수미의 시방상담소에서


당찬 제안이다깊은 이해와 측은지심을 염두에 두고 살고 싶었던 마음에 자주 해보진 않았지만간혹 심신 상태가 난조이고 다른 이유로 지쳐서 인내심이 없는 날배려고 뭐고 계속 이럴 거면 이딴 세상 다 망해버리든지 싶은 심정인 날침묵시위를 한 적이 수차례 있다절친들 조차 웃지 않는 옆얼굴만으로 수군댈 살벌한 인상이란 정평이 있으므로작정하면 언어 없이도 의사전달은 확실히 할 수 있다.

 

사회는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면서 운동했다간 건강한 돼지가 되고 말 거라고 조롱했다그렇다면 여성은 건강한 돼지가 될 바에 건강하지 않은 사슴이 되는 편이 맞다는 건가?

 

체력이 가장 중요한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부디 건강한 식사 잘 챙겨 드시고 가능한 부지런히 근육을 키우시길!

 

사회가 정의한 표준에서 벗어난 삶들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야망으로 득실거리는 여성의 삶자신만의 삶을 영위하는 어느 40대 여성의 일상욕망으로 가득한 노년의 사랑인생에 오직 한 가지 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걸생각보다 다양한 옵션이 있다는 것을 우리 여성 모두가 깨달을 수 있도록 떠들어야 한다.

 

적어도 눈길을 막 흘기진 않았으면 한다일면 여성들은 서로에게 너무 자주 옆 눈길만 보내며 살기도 하니까.

 

오랜 고민 끝에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기로 한 내 선택이 전체주의 사상에 따르지 않는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된다면그냥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다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은 온전한 개인의 선택이며 나는 세상에 아기를 빚진 적도 없다.

 

빌 게이츠도 경험할 수 없는 일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육체가 독점하는 일이고부디 이 감탄스럽고 경이로운 경험이 온전하게 당사자의 몫이 되길 끝까지 응원한다.

 

내 꿈은 철없는 이모가 되는 것이다아마 주변에 이런 이모가 한 명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중략얼마간 안 보이는가 싶었는데 남태평양에 있는 어느 섬에 다녀왔다며 까맣게 그을려서 나타나고 친척 어른들에게 샤르도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의심을 사는 이모누군가는 혀를 끌끌 차지만 고등학생 조카들에게는 인기 만점인 그런 이모 말이다엄마가 되는 것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좀 더 많은 쿨한 이모들이 필요하다여성들에게 더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꽤나 많아지는 분위기인데골드 미스골드 미스터인지 뭔지 하는 우습지도 않은 호칭들은 얼른 꽉꽉 밟아 버려 주길!

 

어렸을 때만 해도 단단한 자존감을 세우지 못한 나를 책망했던 것도 같다그러나 이제는 안다중략자존감은 사실 별거 아니고 스스로와 관계를 맺으며 이 인간 말이야완전무결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라고 평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예전 같았으면 비수를 꽂는 말을 들으면 잘 때까지 그 말을 곱씹었을 텐데지금은 코웃음 치며 지나치는 여유가 생겼다.

 

출처https://www.pinterest.co.kr

 

당신이 좀 더 재수 없어지길이겨먹길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길 바란다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담근 채 그저 가만히 서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물살을 가르며 삶을 살아내자중략당신 스스로가 정의 내린 모습으로 존재하자거창하지 않아도 된다그저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을 입 밖에 꺼내는 것부터 시작하자.

 

물살을 가르는 건 힘겹게 느껴지는 표현이지만 일단 꾹 참고만 살지는 말자대면해서 당사자에게 정확한 의사 전달이 어렵다면 블로그에 글이라도 남기자읽게 된 누군가 공감과 댓글로 위로와 격려를 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진지하고 어려운 이론에 기초한 글들 말고 용감하게 사회에서 이리 저리 부딪히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적어도 불편함과 불쾌함에 대해서는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효용성 높은 글이라 평하고 싶다. '그렇구나그거였구나'그렇게 재밌어할 독자들을 상상해본다도대체남에게 웃어라 마라이런 무례는 누가 허락해준 일인지얼른 얼른 과거의 유물이 되길.

 

웃어 봐라용돈 줄게” 이런 극강의 모욕적인 말을 들어본 경험자로서 여러 일화들에 공감한다이 역겹고 무례한 발화자는 내가 졸업한 후 여러 해 지나 학생 성추행으로 직권면직 당했다어째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분했고다시 여러 해가 지나 다른 대학에 어찌저찌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혔다비릿하고 음침한 남성연대는 때론 만리장성급이다.

 

저자의 꿈은 꿈은 여전히 제멋대로 살고 바운더리 밖으로 용감하게 진출하고그러다가 쪽을 당하더라도 금방 다시 회복하는 그런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 한다이 중 지금은 회복력이 가장 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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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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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20대에는 아도르노란 철학자의 철학책 읽기가 무서웠다도저히 모른 척하고 살 수는 없을 만큼 친한 친구가 굳이 학위 논문으로 아도르노를 저만 즐겁게 다룰 때에 이런 저런 괴롭힘을 당하면서 억지로 배우게 되었고좀 더 철이 들어서는 자발적으로 아트앤스터디에서 김진영 선생님 강의를 듣기도 했다그리고 지금무려 한 세기가 지나서인지 더 이상 막 무섭지는 않다.

 

차곡차곡 기억에 남았다고 자랑할 내용들은 안 떠오르고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상처는 다양하고 깊고통증의 간격에 겨우 숨쉬고 사는 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도 같다어쩌면 더 지독한 통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애써 익힌 적도 없는데반가운 기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다시 만나게 된다면 천천히 필사하며 찬찬히 잘 들여다보고 싶었다그래서 70 여 쪽 읽었나…… 하는 10분의 1정도의 분량입니다. 그러니 이 포스팅을 읽으시면 도입부를 읽으신 겁니다. 이제 책을 본격적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아도르노의 사유는 모든 것이 거짓말이다라는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이런 총체적 부정성으로 그는 안티 아도르노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습니다아도르노의 중요한 명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명제들>

삶은 살고 있지 못하다

잘못된 삶 안에 올바른 삶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것이 거짓이다

문화는 쓰레기다

모든 것이 자연의 표현이다

모든 것이 거짓인 사회에서 진실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가장 자연일 때 그것은 역사적인 것이며가장 역사적일 때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다

되돌아가는 일은 퇴행일 뿐이다

이론이 실천이다

 

모럴이란 걸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그냥 우리 삶의 뜻의미예요우리 삶이 파괴되었음에도 삶의 의미가 다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니그것들을 발견해내고 추출해내고 이론화하려는 안타까운 작업이다이런 식으로 <미니마 모랄리아>를 이해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책의 제목이 가지는 본뜻이란 우리가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최소한의 도덕도 전제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점이 끝까지 은폐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이 미니마 모랄리아’ 때문이라는 거죠그것들이 늘 가로막고 있다는 거예요그래도 이런 게 있겠지’ ‘이 정도는 있어라는 것들이 마지막 은폐된 진실로 가지 못하게 만드는 유혹이라는 거죠.

 

철학적으로 얘기하면 인식의 딜레마예요알고 나면 이미 늦었어요미리 알 수 있냐고요안 됩니다아도르노가 절대로 긍정성을 선취하지 않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같은 의미죠그것은 경계를 넘어가버린 쪽에 잠재태로서 있는 것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해요.

 

우리의 사유가 미니마 모랄리아라는 도저히 걷어찰 수 없는 마지막 긍정성을 걷어차고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 진리 내지는 진실이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라고 봅니다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경계선을 넘어서야 되는 그 무엇이 있는데 그것이 미니마 모랄리아’, 즉 도저히 버릴 수 없는 한 줌의 도덕이 아닐까라는 거죠.

 

우리가 과연 긍정성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 우리는 언제나 사실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는 욕망을 봐요... 아도르노는 과감하게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합리성에는 그것을 넘어설 능력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알아야 될 마지막 것을 알게 만드는 것은 절대로 무의식이 아니다그것은 우리의 의식이다.”

 

실제 우리 삶의 풍경은 어떨까요상처투성이라는 거죠상처의 정의가 무엇이죠패어 있음이에요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그것이 상처가 되는 거예요... <미니마 모랄리아>의 부제가 상처받은 삶에서 나온 성찰입니다.

 

이 말은 쉽게 생각하실 게 아니고요엄청난 고통의 발설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 생각이 얼마나 아프고 슬프고 두려운 것인지를요.

 

우리가 자신의 상처를 가감 없이 들여다보는 일은 굉장히 두려운 거예요다들 안 보려고 하잖아요무의식은 도망가요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돌려버려요그래도 살 만하지 뭐나는 남보다는 낫잖아이런 쪽으로 슬쩍 건너가는데 이 상처를 마치 지진계처럼 들여다보면서 그 안의 풍경을 꼼꼼하게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이 아도르노에게는 합리성이라는 것이죠... 사유란 굉장한 거예요생각한다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에요... 우리의 사유가 방해받지 않고 가고 싶은 지점까지 간다면 어디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정말 모르는 겁니다사유는 그렇게 무섭고 강력한 거예요그런데 정치가경제가문화가 끊임없이 중간에서 사유를 차단시켜버리죠.

 

아도르노가 <미니마 모랄리아>를 쓰면서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믿음이 사유에 대한 믿음입니다오로지 그 믿음만으로... 그것을 통해 우리 삶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읽어 보겠다는 것이 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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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과 시작은 아르테 미스터리 9
오리가미 교야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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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존재를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봄바람에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다취향 탓에 버릇 탓에 질환 탓에 봄이란 계절이 반갑지 않기 때문이었다꽃을 즐기는 기쁨보다 알러지로 숨이 턱턱 막히고 자다가 호흡 곤란이 오기도 하는 봄이 마냥 좋을 수는 없는 일고요하게 실내에서 책읽기 가장 좋은 겨울이 지나 뭐든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새 학기는 언제나 부담스러웠다단체 봄소풍게임도 장기자랑도 김밥도 매년 지루했다나를 제외한 세상 만물이 신나는 계절 같아늘 일정량의 소외감을 느꼈다.

 

그러다 한 여름 밤 문득 열기가 확 밀려나고 서늘한 온도 차이에 심장이 마구 뛰는 그런 순간이 있다잠들지 않아도 눈 뜨고도 마법 같은 무언가를 곧 목격할 듯이 심장이 요동친다아직 여름의 향기는 남아 있는데 이질적인 무언가가 밀려들어오고 있다는 불길하면서도 설레는 기분결국엔 계절을 차지하리라는 승리의 예감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여름에 상상해보는 가을.

 

그렇게 봄과 사랑과 연분홍과 라면에게서 정서적으로 먼 세월을 살았는데, 2021년 3월에 달달하고 애틋하고 마음 저린 감성적인 소설을 또 읽고 있다이번엔 극강 혹은 최고 레벨의 이야기인 듯하다. ‘단 한 번몇 마디 말밖에 나누지 못한 상대를 자신의 운명이라 믿고’,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왔지만’, ‘일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내던진다.’

 

가을은 좋아하는 계절이다.

달이 예뻐 보이고첫사랑과 만난 것도 가을이었다중략.

첫사랑의 얼굴은 9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얼굴뿐만 아니라 헤어스타일서 있는 모습밤바람에 나부끼던 옷의 주름까지도.

 

처음 만난 그녀에게 뭘 전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뭔가 말해야 한다는 마음만 앞섰다.

결국 입에서 나온 것은 단 한마디였다.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중략.

만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낫겠죠.”

 

9년 전과 똑같았다망설이면 늦는다다짜고짜 달렸다.

예의고 뭐고 따질 심정이 아니었다중략.

……당신은.”

도노를 보고 그렇게 말한 목소리도.

그때와 똑같다기억난다.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할 뿐이야중략.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만이라도 줘몇 년이 걸려도 상관없어.”

아카리에게는 짧은 시간이겠지만도노는 일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9년 내내 좋아했어앞으로도 평생 좋아할 거야.”

 

예컨대 이 세상에서 머무는 시간의 길이가 다르더라도 함께 있기를 원해서 한쪽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함께 지낼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지다고 생각해."

 

2008년 12월 귀국 후 꽤나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잘 도착하지 못하고 지낼 때생일 선물로 받은 책 노희경 저자의 <지금사랑하지 않는 자모두 유죄>를 읽다가,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그래서나는 행복하지 않았다중략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말 죄책감이 들었다.

 

첫 눈에 반한 적도바짓가랑이 붙잡고 애원해본 적도하여간 무모하고 죽을 듯이 미친 듯이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이 없었다그렇다고 슬프거나 아쉽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저자의 필력 탓인지 유죄라는 납득이 순순히 들었다그 후에 기회가 있으면 꼭(?) 유죄를 면해보리라 결심했지만…….

 

사설은 이쯤하고 첫사랑의 순간그 설렘으로 직진하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주인공하나무라 도노가 사랑하고 살아가는 아슬아슬 애틋한 이야기이다그리고 연쇄살인범도 등장하는 미스터리이며우리에게 익숙한 흡혈귀와는 다른 인간과 비슷한 흡혈종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자극적이고 직설적으로 지적하는 판타지SF이기도 한 꽤나 복합적이지만 복잡하지 않은 소설이다술술 금방 읽을 수 있다이렇게 쓰니 연쇄살인쯤은 가볍게 읽어요라고 뭔가 엄청난 얘기를 한 것 같긴 하지만.

 

사람이 이 정도로 피를 흘리고도 살아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틀림없다여기는 살인 현장이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흡혈종의 존재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중략흡혈종은 괴물이 아니야특이한 체질과 능력을 지닌 걸 빼면 인간과 다름없어.”

 

의도적으로 옮기려고 들지 않으면 남에게 옮지 않고그 병에 걸린 게 내 탓도 아닌데중략앞으로 위험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관리하려 드는 사고방식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

 

존중 없이는 공존도 불가능하다.”

 

흡혈종과 헌터대책반이라는 설정에추리미스터리에 무게감 더 얹힌범인 추적과 위협을 즐기다가 곳곳의 복선들을 회수하는 소설적인 재미가 있다캐릭터의 반전과 범인의 정체에 작가가 전하려한 메시지가 녹아 있다교훈을 주고 싶어 하는 일본 소설의 특징도 별로 불편하진 않았다충분히 재미있었는데, ‘노스탤지어 호러’ 장르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엔 내 이해와 감상이 부족한 듯.

 

이 삶이 끝나는 순간네 곁에서 다시 태어날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My one and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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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배운 표현 오위합취 : 5개의 행성이 같은 별자리 안에 모이는 현상사전에도 안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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