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학교는
브리타 테켄트럽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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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모든 나라의 상황을 정확히는 모르지만학업과 교육에 엄청난 희생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대한민국의 학교와 학생들이 2020년 겪어낸 상황들을 되돌아보며 뉴노멀에 어울리는 교육환경을 고민해보며 가족들 모두 함께 읽어 보시는 것도 좋겠다.

 

학교에 못 가게 되니 학교란 단순히 학습만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는 것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하게 된 기분이다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함께 듣는 아이의 말에 까르륵 웃는 아이의 등이 눈에 시려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갈 수 있게 된 날, “엄청 재밌었어요!”라고 외치는 아이에게 무슨 신나는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그냥 학교 가서 다 같이 시간 보낸 게 재밌었어요!라고 한다.

 

어른들이 고심하고 마련한 학교 프로그램이나 교육정책보다 아이들은 서로를 보며 배우고 성장하는 면이 더 많았을 지도 모른다.



나는 베르그만 초등학교 6학년이야.

내 생각에 우리 학교는 아주 평범해.

엄청 좋지도그렇다고 엄청 나쁘지도 않은…… 그냥 어중간한 학교라는 말이야…….

물론 고치자고 들면 고칠 건 아주 많아.

학교가 좋은지 나쁜지는시설의 문제가 아니야.

 

좋은 학교라는 건 선생님들학생들친구들부모님들 그리고 교장 선생님 등 학교 구성원들이 어떠냐에 달려 있지.

학생들은 저마다 다 달라.

그래서 학교는 다양함으로 넘쳐나지.

내 생각에 학교는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은 것 같아.

하지만 제각각 다른 아이들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서로에게 아주 많이 너그러워야 가능하지. 8



학교 밖의 세상이 정의롭고 공평하지만은 않은 것처럼 학교 안 세상 역시 행복한 아이들이 자유롭게 꿈꾸는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저자는 최대한 가감 없이 학교의 현실을 동화라는 형식으로 순화하지도 않고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학교를 졸업하면 우린 뭐가 될까아니 혹시라도 졸업을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46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는 아마 굉장히 많았을 것이고 많을 것이다이 책이 특별한 점들 중 하나는 바로 이 그림들이다일러스트라는 것은 알지만 생생하게 전해지는 표정들은 대화체의 글들이 전하는 고민과 일상과 생각을 더욱 증폭시킨다힘찬 느낌단단한 주장에 어울리는 것이 판화기법이라 생각했는데아주 다채롭고 섬세한 감정들이 이 아름다운 판화를 통해 더할 나위 없이 잘 표현된다.



충분히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현실적인 희망과 격려를 상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무척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들이 학교 구석구석까지 찾아본 것처럼 펼쳐진다아주 특별한 학창시절을 보낸 이가 아니라면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유사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은 대답 없이 질문으로 마무리된다너희 학교는 어떠니?”

 

얼마 못 다닌 학교가 마치면 매번 아이들에게 오늘은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방학이라는 긴 시간 여유가 생겼으니그날의 학교 말고 학교란 어떤 곳인지어땠으면 좋겠는지 그런 질문으로 더 오래 얘기를 나눠볼 수도 있겠다.

 

행정당국과 학교는 아이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잘 성장하도록 안전한 경계를 마련해주는데 더 철저하고 세심하게 주의하고 관리해 주기를 무엇보다 바란다내부의 폭력과 학대 역시 뜻 그대로 근절되고 재발’ 되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은 서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반짝이는 순간들도 힘겨워 하는 순간들도 잘 살펴보고 필요한 도움과 격려와 가르침을 주는 곳이 우리 모두의 학교라면 좋겠다그리고 아동교육정책이니 부디 아동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는 통로가 열리길 바란다.

 

자주 오해하는 부분들 중 하나인데학생들은 학교의 구성품들 중 하나가 아니며 교육의 대상도 아니다그들은 교육의 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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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사냥꾼 책 먹는 고래 16
문신 지음, 찌아 그림 / 고래책빵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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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온갖 상상을 하며 살아왔고 여전히 그런가봅니다.

 

무채색의 윤곽만 있지만 해가 떠 있는 동안엔 한 치도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서 어디든 따라가는 그림자에 대해 문득 문득 무섬증이 드는 걸까요혼자인 시간엔 누구나 자기 그림자라도 보며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견딜 수밖에 없어서일까요혹은 그림자에 혼자 간직할 수밖에 없는 비밀을 차곡차곡 묻어둘 수도 있겠지요.

 

굳이 찾지 않아도 그림자가 등장하거나 관련된 이야기들을 장르 구분 없이 끊이지 않고 만나게 됩니다.

그림자사냥꾼플루토!

제목만 봐도 벌써 으스스한 모험이 펼쳐지리라 짐작이 됩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불탄입니다.

특이한 이름이지요.

뜻이 뭘까 이리저리 생각해보았습니다.

5살 때 집에 불이 난 후 엄마가 행방불명이 된 사건과도 묘하게 연결이 있는 듯한 느낌.



불탄의 아빠는 땅속에 묻힌 광물을 탐사하는 일을 합니다.

역시 지하세계로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손가정입니다.

사색을 즐기고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지만 씩씩하고 당당한 주인공입니다.

 

신기하게도 교감 선생님이 아이들을 그림자 세계로 인도하고,

불탄에게는 그림자 사냥꾼 자질이 있다고 독려하네요.

별명이 무려 천 개의 눈을 가진 신 인드라입니다.

 

이 외에도 신화와 판타지 작품의 등장인물다운 이름들 크로노스카이로스 이 더 나옵니다뜻밖에 엄청 철학적이지요.

마치 너의 시간은 크로노스인가카이로스인가하고 신이 두둥 나타나 갑자기 물어볼 듯합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시간 개념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누어 구분 지었습니다크로노스는 절대적인 시간인 반면카이로스는 주관적인 시간오직 나와 관련된 시간입니다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란크로노스를 끝없이 카이로스로 바꾸는 일일 지도 모릅니다.


마귀산지하 도시에도 들어가며 비밀을 밝히고 전투를 하는 모험이 시작됩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험이지만나름 복잡한 아이들의 세계인지라 고민과 배신과 반전과 극적인 계기가 부족하지 않게 발생합니다.

 

그나저나 그림자 세계로는 어떻게 가는 걸가요?

바로바로 뜀틀을 뛰어 시간의 저편으로!

정말 귀여운 발상의 장치입니다.

뜀틀 번호 배열순서가 건너갈 수 있는 시간대를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장편으로 분류된 만큼 글로써 이야기 승부를 보는 작품입니다.

전개될수록 도입 부분의 일상적이고 귀여운 모습들은 모두 사라지고,

마치 해리포터가 10살에서 다 건너뛰고 15살이 된 듯 진지한 분위기의 내용이 펼쳐집니다.

 

뭘 말해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지만……

결말이 예상 밖으로 멋지다는 이것이야말로 순전히 개인 취향이겠지요 ―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고색창연한 소품들이 등장하기도 하고뭔가 엄청 멋진 척 폼을 잔뜩 잡는데

또 세상 쿨한 그런 이율배반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몰입해서 재미를 느끼며 읽을 수 있었던 가히 '대모험' 이야기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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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이런 맛 고래책빵 동시집 14
윤영숙 지음, 윤지경 그림 / 고래책빵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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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좋은 동시집, 14번째 책이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시인인 윤영숙 저자는 2020년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싶은데,

70여 편의 동시를 책으로 펴내신 것을 보니

이 핑계 저 핑계 불만들로 겨우 일상을 넘기는 일은 나만 그런가 싶다.

 

아이들의 기쁨을 시로 표현하신 작가와

기쁨의 몸짓과 표정들을 그림으로 만들어주신 두 분의 작품이 참 아름답고 예쁘다.

표지를 한참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기뻐지는데,

이 귀여운 녀석들이 살아 갈 세상이 흐릿해서 온전히 행복하지만은 않구나.



책 속의 아이들은 여전히 안전하고 건강하고 반짝반짝 웃고 있다.

마음 가득 곱고 예쁜 생각들이 부드럽게 퍼져있다.

 

무엇보다 소리 내서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웃게 되는 힘을 가졌다.

남에게 들려주면 더 재미있다.

 

핑계

 

국어책 안 가지고 왔네.”

엄마가 안 넣어 주셨어요.”

 

필통에 연필이 없네.”

엄마가 안 넣어 주셨어요.”

 

머리 안 빗고 왔네.”

엄마가 안 빗겨 주셨어요.”

 

우리 선생님

부글부글 한 마디

 

엄마가 우리 반 학생인가요?”

 

뭘 그렇게까지 하실까?

안 가지고 올 수도 있지.”


과거 한 때 시를 썼던 큰 꼬맹이에게 은근히 또 써볼래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묻곤 하지만,

이젠 그만 포기해야할 때인 듯.

 

이번 동시집은 쪼꼬맹이작은 꼬맹이와 깔깔 거리며 읽었다.

역시 아이들이 낭독하는 동시는 이해하고 전달하는 감수성이 다르다.

나는 답안지를 맞추는 기분으로 짐작할 뿐인데!

 

이럴 수가

 

양말 뒤집어 벗어 던지면

어쩜 제 아빠 하는대로

내가 못 살아.”

 

콧구멍 코딱지 후벼 파도

어쩜 제 아빠 그대로네

애고 더러워.”

 

머리 감다 흘린 비눗물 자국

어쩜 제 아빠 똑같네

거울 좀 봐라.”

 

드르릉 낮잠 코골이

어쩜 제 아빠 코골이까지

그만 좀 해라.”

 

나는 왜 아빠만

쏙 빼닮았을까

 

똑똑한 엄마

왜 안 닮은 거야

 

주말도 연휴도 연말연시도 막 기쁘고 즐겁지 않으시지요.

크게 웃을 일 있으면 좋겠다 싶은데 쉽지 않으시지요.


혹시 기회가 있으면 동시를 소리 내어 낭독하고 들려줘 보세요.

어쩔 수 없이 웃게 되고 맙니다!^^

 

그래도 주말!

모두들 꼭 기쁜 일 맛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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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일 - 동물권 에세이
박소영 지음 / 무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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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잘 것 없는 글이 아이들에게 밥 주고 물주는 것보다 가치 있는지나는 여전히 결론 내지 못했다. 23

매일 이런 생각에 마음이 따끔거리면서 인터넷 접속을 합니다.

 

문제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니라 그곳을 보는 태도였다. 64

왜 저쪽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냐고 사람들을 미워한 적이 있습니다.

 

자칭 동물권 옹호자인 내가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고 자부하는 내가 생명을 임의의 기준으로 나누고 누군가에게 혐오의 딱지를 붙여왔다고 생각하니 머쓱했다. 80

아주 작은 날벌레를 재미삼아 현미경으로 보았는데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완벽한 신체구조였습니다내게 무한한 예산을 주고 만들어보라고 해도 할 수 없는 생명체란 생각이 들었지요그 순간 이후로 누구의 생도 중단시키는 일은 늘 괴로웠습니다그래도 파리는 모기보다 백만 배나 더 싫고 살아서 한 공간에 절대 있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것뿐인데 이상하게 자주 외로웠다. 88

아주 오래 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 달 전 온 중도 고기를 먹더라걱정 말고 고기 드세요” 라고 끈질기게 설득하던 식당 사장님어쨌든 호의라는 걸 알지만…… 제가 알지도 못하는 승려가 한 달 전 고기 먹은 일이 저와 무슨 상관이……오래 전 일입니다.

 

내게 채식은 신념에 가깝지만타인에게는 그저 기호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아무리 그렇다 해도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닐까? 91

사실 우리가 다른 일로 짜증이 난 상태가 아니라면 비난을 예의로 바꾸는 일쯤 다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산불 역시 온난화로 인한 이상 고온 탓임을 생각하면 동물들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104

호주의 상황을 볼 때마다 끔찍했고 매일 두려웠는데 어느 새 또 잊고 살았네요.

 

그러니 이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든 내게 중요한 것은 현재와 현재를 충실하게 살려는 의지일 것이다. 108

언젠가 좀 더 단단해지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담보로 얻는 것을 아름다움이라 부를 수도 없지만설사 그렇다 해도 그 아름다움과 수천수만 마리 토끼의 목숨을 바꿀 수 없다여기까지 쓰고 나니아름다움이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어진다. 119

큰 영향을 받은 피켓 시위 장면이 있습니다. “표범 가죽은 표범이 입어야 가장 아름답다.” 당위와 팩트로 설득하는 일에 지쳐가던 때라서 단 비처럼 반가웠습니다때로는 미감감수성에 물어 보면 답이 더 분명할 때가 있는 것을.

 

다른 생명의 목숨줄을 밟고 그 위에 서서 숨 쉬는 것은 멈춰야 한다어디서 시작해야 할까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과 나뿐이다. 119

소비하는 모든 상품의 정보를 모으는 일이 힘들고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그러니 적어도 열심히 나서서 활동하시는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우고 기억하고 선택하려 합니다.

 

무언가를 할 수 있었음에도 모른 척한 것은 맹세코 아니다내가 발 벗고 나섰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그러나 그런 노력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 오래 죄책감으로 남았다결국 나는 나를 위해 세미나에 간 것이었다내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서위로 받기 위해서동물권 공부는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나는 도망치듯 스터디를 빠져나왔다. 123

못지않게 비관적인 편이지만꾸준히 끈질기게 하는 일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어느새 믿게 되었습니다불혹의 나이에 겨우 하나 건진 성과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 '내가 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가 하겠지', '돌보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하겠지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무언가 해보고 싶어도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이 늦고 만다. 124

누군가도세상도결론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그러니 고민되고 괴롭고 불안하면 뭐든지 아주 작은 일이라도 일단 해보길 바랍니다예를 들면 배달메뉴에서 육류를 하나 줄이시거나사고 싶은 것들 중 막 그렇게 갖고 싶지 않은 것 하나 목록에서 삭제하고 뿌듯한 성공을 맛보시길진심입니다.

 

하지만 내가 보고 경험한 세계를 외면하지 않는 것은 작으나마 내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그것 하나라고 제대로 감당할 수 있기를오늘도 희망한다. 132

박소영 작가께서 작다고 하며 감당한 역할과 제가 감당하는 작은 역할의 실제 크기는 다르겠지만작은 역할들을 꾸준히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이미 정말 많은 분들이 계신 줄 압니다.

 

우리가 문학과 영화를 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우리는 '생득'을 벗어나기 어렵다인종성별성적 지향 등 타고난 조건이 사고를 지배한다내 입장과 처지를 벗어나 다른 이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그러나 문학과 영화는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딛고 선 자리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것불완전하게나마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책과 영화를 통해 우리는 다시 태어나지 않고도 타인의 존재를 감각할 수 있다. 147

그런 책들 중 하나가 [살리는 일]이고 만나게 되어 반갑고 감사합니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것'이라고 썼지만부끄럽게도 이렇게 생각하게 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홈리스들을 볼 때면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책임을 방기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누가 감히 타인의 삶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그 누구도 삶을 시작부터 내려놓지 않는다세상 어디에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234

그렇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소비는 지구를 망가뜨리는 문제적 행위다환경친화적인 소비도생태적 소비도 모두 소비일 뿐이다. (나 역시 이 문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부끄럽다.) 163

12월에도 꽤 많은 소비를 했고 모두가 불가피한 것들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를 의식한 것도무엇을 바라고 한 행동도 아니었다그저 그렇게 되었다그렇게 해서라도 내 마음의 부채의식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기를 바란 것 같다. 170

살다 보니 그저 이렇게 되었을 뿐입니다저도원한다고 억지를 부린다고 되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지구를 인간만이 아닌 다른 생명체와 나눠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24

코로나가 제대로 가르쳐준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작가는 혼잣말을 하듯일기를 쓰듯자신에게 들려주듯 그렇게 글을 쓴다.

아무리 내 쪽을 보고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도,

끝까지 선언도 강의도 아닌 채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나도 듣고 있나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게 혼잣말을 달아 보았다.

그러니 부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인간만 비난하고 죄책감을 무기 삼아 동물보호를 강요하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캣맘으로 살면서 겪은 일들을 조용히 적고 사례들을 충실히 기록할 뿐이다.

선택지가 있는지 없는지할지말지는 모두 각자의 몫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말이 작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용히 깊이 성찰하는 이야기이다.

그 의미가 설득력이 있어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비열한 악당들인 인간들은 죄사함을 받으려면 유기동물을 도우러 당장 뛰어나야 한다고,

육식은 얼마나 역겹냐고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화장품을 사용할거라면 비건을 사용하라고고함치지 않는다.

 

동물권도 그렇고 다른 의제들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 속에는 참 안타깝고 서글픈 장면들이 늘 반복된다

부디 할 수 없는 일을 왜 시키냐는 불편한 마음이 들더라도,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의 주장을 근거 없이 부정하지 마시길,

사람들 자체를 철천지원수처럼 증오하지는 마시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렇게 반응 하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모두 다 정답을 몰라 다 같이 어째야할지 몰라 혼란스럽고 힘들기 때문이다.

 

기후재앙인 것은 맞다육식문화와 산업이 큰 해악인 것도 맞다.

하지만 어떻게 당장 비건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고 다른 누군가를 강제할 수 있을까없다.

그러니 하기 싫은 일을 누구에게 강요당하는 것처럼 분노하지 마시길.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일일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노력이라도 성공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되면 본인의 불안도 옅어지고 기쁨도 분명 늘어갈 것이다

예를 들어 육식을 즐기지만 낭비는 하지 않는다거나 과식하는 습관에서 적당히 먹는 것으로 바꿨다거나.

 

언제나 꿈이 작고 스스로의 실천도 폼 나는 게 없는지라,

나는 그런 노력들도 충분히 멋지고 기쁘고 행복하고 칭찬받을 일이라고 믿는다.

각자의 정답들을 찾아 각자의 계획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주의국가가 아니고서야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작가가 아님에도 매우 정성스럽게 호통을 치는 목소리들이 가끔 내게도 온다.

문장들에 도사린 폭력성을 느낄 때마다 작가에 대한 걱정이 든다기우이기만 바란다.

한동안 데이터가 쌓이다보니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모두 다른 아이디인데 주장이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다.

설마 한분이 아이디를 바꾸는 성가신 수고를 감수하시면서 늘 제게 쪽지를 보내오시는 건 아니시죠?

 

동물과 인간이 살아온 방식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로,

어쩌면 바로 그 방식으로 인해 발생한 판데믹 상황에서

바이러스로 생과 사가 갈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오르내리는 보도를 확인하며 매일이 지나가는 2020년의 말미에,

이제야 조금씩 정리될 것과 이해될 것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윤곽을 드러내는 이 때에,

팩트가 어쨌든 간에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그릇된 것을 바로 잡다 살해당한 성인의 탄생을 기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날에,

살리는 일의 의미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기다리던 함박눈처럼 내려앉기를스며들기를성탄절의 밤이 포근하기를 기원하고 싶다.

그래서 흐릿하고 어둑한 미래에 간신히 사라지지 않은 희망에 반짝거리는 빛이 비추기를,

그 길에 함께 하는 이들이 가득해지길,

그래서 늘 유치하고 허망한 거짓이었던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기적처럼 가능해 지기를 오늘은 진심으로 기원하고 싶다.

 

동물들의 겨울과 여름에 대해 알게 된 지금에야 나 아닌 다른 이의 계절을 상상해본다약자를 위하는 마음은 또 다른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연결되고 확장된다. 236

밖에 겨울바람 소리가 세차다…….



늘 그렇듯이 100분의 1도 소개하지 못하고 함축적으로 줄이지도 못한 중언부언임을 밝힙니다.

 

.......................................................

 

이름을 찾지 못해 '제목 없음'의 '무제'로 이름 지은 출판사의 첫 책이 박소영 작가인 것에 감사한다그녀로 인해 '무제'는 이 사회에서 소외된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꼼꼼히 눈을 돌릴 것이다남몰래 쓸쓸히 아파하는 존재들을 위하는 마음그 소중한 마음을 깨우쳐준 작가의 글에도 감사를 보낸다.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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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유니콘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움직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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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로드는 이민자흑인레즈비언엄마암생존자사회주의자페미니스트사서문학과 철학 교수출판인시인흑인과 다양한 인종의 인권운동가로 살았습니다

 

이 페르소나들  중에서 당신이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은 몇 개입니까.



미국페미니즘양성적인androgynous 퀴어 존재성레즈비언 섹슈얼리티 그리고 시집이라서읽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아주 잘 읽혔다순전히 번역만의 힘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일상도 체제의 현실도 언제든 거칠고 난폭하고 무자비할 수 있는 삶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들려주지만 고통에 찬 울음으로만 표현하지 않는다강력한 균열을 내는 강인함을 지녔지만 섬세하게 생명을 주시하고 결국에는 살리기 위한’ 간절한 소망을 구현하려 희망을 놓지 않았다.



마치 즐거운 일에 몰두하는 사람처럼 기쁨과 열정을 표현하기도 한다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나의 지레짐작은 대부분 그렇듯 이번에도 완연히 빗나갔다. 3-4장인 [재창조]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 이르면 외부에서 가해진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해도 짓눌리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는 연대를 통해 자매들이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삶에 대한 노래들이 담겨있다.

 

그가 들려주는 연대는 무엇으로부터라는 조건이 붙은 소극적 의미만이 아니다비록 출발은 그랬을 지라도 그의 소망하는 연대는 자매들과 함께 찾아낸’, ‘만들어낸’, ‘현실화시킨’ 것이자 재창조된 세계이며그순간 위태롭게 딛고 선 경계선은 더 이상 그들를 자빠뜨리고 갈라놓고 가두고 죽일 힘을 잃게 된다.

 

이 두려움을

영영 잃지 않겠어

갚을 수 없는 그 무엇도

빚지지 않겠어

 

철학자의 지성과 시인의 감수성으로 태동한 오드리 로드의 세계에서는 다양한 생명이 차이로 인해 무시당하지 않을 것이고모두가 최소한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를 누릴 것이고아무도 를 문학을 사치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더없이 부드럽고 다정한 그의 웃음을 바라보며 나는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끝없이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고 자신을 부정당했겠지만그런 경험들로 인해 망가지지 않고 오히려 많은 것들을 정제하며 살았다그리고 그 모든 진실이 그의 시에 담겨 있다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자신도 다른 이들도 다독이며 조금씩 앞으로 함께 걸어 나가자는 말 속에 간절한 위안과 위로와 격려를 위한 따뜻한 눈물이 느껴진다.

 

시집의 제목인 <블랙 유니콘>형상과 개념으로 이해했던 <블랙 유니콘>이 읽어 나가는 내용에 비례해서 오드리 로드와 자매들의 화자로서 재구성된다자유가 박탈당한 채로 부당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주류 신화와 세력에 휘둘리고 끌려 다닌 존재가 블랙’ 유니콘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침묵하지도 가만있지도 않고 왜곡되고 치워지고 잊힌 죽음의 실체를 폭로하는 존재부정에 맞서는 존재정의를 바로 세우려고 나서는 존재 역시 블랙 유니콘이다.

 

우리는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결코 서로의 굶주림을

어루만지지 못하고

결코

빵 부스러기를 나누지 못했다

두려워서

빵은 적은 되었다

……

이제 네게 외로움이란

성스럽고 쓸모 있는 것

이제

더는 필요 없는 것

네 빛은 환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난

알려 주고 싶어

너의 어둠 역시

그윽하고

두려움을 넘어선다고

 

시스터 아웃사이더

 

자라나 거라

검게 그리고 아름답게

 

앨빈 프로스트를 위한 추도사

 

그의 시들은 크리스마스이브 날에도 과장된 불안과 근거 없는 상상으로 하루 종일 심장이 조였던 나에게 심호흡을 하고 사유하라고 눈을 맞춘다네 불안네 현실네 세상이 어떻든 체념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아야할 이유를 알고 있지 않냐고 눈을 돌리지 않고 묻는다아무 것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죽기 전까지는 몇 번이고 그 두려움을 뛰어 넘어보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다시 다짐하라 한다.

 

해리엇언제나 누군가는 우리를 미쳤다고

못됐다고 우쭐거린다고 악하다고 흑인이라고

아니면 흑인이라고 불렀지

……

서로의 입 속에 가득한 고통을

말하려 애쓰며

말하려 애쓰며

말하려 애쓰며

말하려 애쓰며

그러다 우린 배웠지

채찍 끝에서

혀에서

서로의 배신이란 가장자리에서

존중이라는 것은 길에서

길에서 마주친 서로의 얼굴로부터

그 아름다운 검은 입으로부터

낯익은 신중한 눈으로부터

조용히

눈을 돌리고

홀로 스쳐 가는 것이라고

……

 

해리엇

 

감정적으로정치적으로 솔직하면서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열성을 다해 사는 일전 세계 모든 나라의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적어도 미국과 한국에서 그렇게 산다는 건 아직아주위험한 일이다타인의 이익과 생명에 위해를 가하는 것도 아닌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많은 이들이 너무나 두려워서 - 자기 자신으로살지 못할 것이다.

 

해가 뜨면 우리는 두려워한다

해가 계속되지 않을까 봐

해가 지면 우리는 두려워한다

아침에 다시 뜨지 않을까봐

……

사랑받을 때 두려워한다

사랑이 사라질까 봐

홀로 있을 때 두려워한다

사랑이 돌아오지 않을까 봐

 

그리고 말로 할 때 두려워한다

우리의 말이 들리지 않을까 봐

환대받지 않을까 봐

 

하지만 우리가 침묵한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두렵다

그러니 말하는 게 낫다

우리는 애초에 살아남을 운명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기도

 

자신을 온전히 아는 것도 그렇게 사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고서로를 아는 것도 함께 살아가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서로를 필요로 하고특히나 경계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고 각자의 바운더리를 절감하는 누구나 서로를 지지하고 소통해야 생존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강하고 참을성 있고 부드러운 사랑이 있고 열망이 있어서억압적인 상황이나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참 좋겠다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자주 꿈꾸듯 설레듯 많이 했다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스스로의 깜냥에 좌절하고 도대체 이 한계는 왜 변함이 없나 절망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정의하지 않으면,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환상에 산 채로 잡아먹히게 될 거란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정체성이 모두 존중받는 온전한 자아를 찾고자 평생 싸워온 오드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받은 아프리카 이름은 감바 아디사GAMBA ADISA, 자신의 의미를 분명히 보여 준 여자였다.

 

나는 여성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드넓은 미래를 품은 위험한 존재

나는

여성이고

백인이 아니다

 

여성이 말한다 


https://youtu.be/_nS8_5Dm-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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