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톡 5 - 현대 이야기 세계사톡 5
무적핑크.핑크잼 지음, 와이랩(YLAB) 기획, 모지현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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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팩트 체크 가능하신 부운~



인류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할 때마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어떤 상상을 했을까언젠가 다 지나간 일이 되어 옛이야기 하고 살 날 있으리라 믿었을까아니면 지금처럼 어쩌면 옛 이야기할 미래는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체념하고 좌절 했을까……어쨌든 인류가 살아 온 시간의 기록을 우리는 아직은 읽을 수 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꽤 오랜 세월을 세계사톡 시리즈와 함께 했다카톡앱을 지우는 부모 세대와 달리 톡을 열어 두고서는 삶이 불가능합니다 ― 카톡도 틱톡도 익숙하고 거부감이 없는 아이들 세대에 딱 맞춰 기획 출판된 세계사책이다.

 

지난 암울한 학창시절, ‘국사와 세계사를 얼마나 난폭하고 지루하게 가르쳤고 배웠던지 안 그래도 암기 꽝인 나로서는 그 둘은 진저리처지는 수험과목일 뿐이었다그런 경험을 교훈 삼아 뭐든 그보다 덜 지루하고 덜 무용하다면접근성이 좋고 가독성이 좋다면 읽어서 좋을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뻥입니다다 뻥이었습니다!!!

 세계대전이 야심가들 때문에 발발했다고 생각하시나요뻥입니다

불합리한 두려움과 무능함이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켰습니다!!!

 

짐작한 대로 아이들 세대에 훨씬 더 친근하고 읽기 즐거운 책이었지만분명한건 내 교과서들보다 훨씬 알차고 제대로 된 역사지식들이 충실히 담겨 있다는 점이다이런 교과서였다면 그토록 뜨거운 원한이 쌓이지 않았을 것이다다시 생각해봐도……좋은 책들 넘쳐나는데 다 못 읽고 너절한 정보를 암기하느라 낭비한 시절이 너무 아까워 화가 치민다.



통시적으로 살펴 본 인류사에는 생각보다 예언가들이 참 많고 그 점이 재미있기도 하다주로 소행성 충돌전쟁 혹은 자연재해들을 이유로 삼았다내 세대라 할 시절에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서 주목받았던 노스트라다무스도 한 때는 정확한 예언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메디치 가문 출신 프랑스 왕후와 세 아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참고하세요냉정하게 살피면 지금 보니 웃긴다고 느껴지는 역사 속 세상들 중 일부는 바로 얼마 전 일이다첫 미국흑인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의 당선 100년 전 여성들은 참정권조차 없었다.



요구하고 주장하고 애쓰고 결국엔 목숨을 바쳐 뜻을 펼치지 않으면세상에 선물처럼 거저 받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다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곡해하고 경시할 의도는 천만번 죽어 다시 태어난다해도 없지만전쟁터에 나간 남성 인구가 너무 많아서 사회 노동력 확보를 위해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용이해졌다는 것도 찜찜한 사실이다언제나 가장 냉정하고 정확하게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는 역시세상 제일 무섭고 어려운 먹고 사는 문제경제이다그런데 함께 먹고 함께 사는 삶이란 인류 문명을 뒤흔드는 판데믹이 와도 도저히 안 되는 건가.

 

역사 속 인류의 면면을 볼수록 영민하다기 보다는 참……1차 세계대전을 겪고 한 선택이 전체주의나치독재자그리고 또 다른 전쟁이러니 만병통치약이 그 오랜 세월 팔렸던 것이다. 21세기 쇼닥터들의 활약도 뒤지지 않지만!



어쨌든 이 멍청한 선택으로 유럽이 붕괴하고 연합군이 승리하고 세계의 축이 바뀌고 미소전쟁이 발발하고 그런데 지들 땅에서 안 하고 한국과 베트남을 초토화시켰다유럽은 통합인지 뭔지를 하긴 했지만 역시 전쟁은 사라지지 않았다임마누엘 칸트가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을 쓴 때가…… 눈물이…… 언제 세상이 철학자 말에 귀 기울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다고 새삼스레…….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진 않지만현대사를 다루니 현실 분노가 치미는 예들이 많다특히 전범 국가들의 이야기와 전후 태도의 차이는 볼 때마다 - 요즘 말로 딥빡이라는 신종 감정이 느껴진다얼마나 빠르게 사람 목을 벨 수 있나 내기하면서 공중으로 던진 아기 베기를 했다고그러고도 사과도 처벌도 없냐밥은 먹을 만하냐.



현대사를 고루 다룬 여행기와도 같은 38개의 톡을 읽은 직후에 떠오르는 건 역시나 현재의 상황이다과연 인류는 현재의 판데믹에서도 살아남아 제대로 된 문명을 유지하고 이 시절을 역사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인지.

 

특히나 일 년 가까이어쩌면 훨씬 오래 전부터 최선을 다해 최전선에서 노력해 본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202X년 XX월 XX일 신종코비드19 판데믹이 종식되었다>란 기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랜 세월 책면으로 을 보내준 무적핑크에게 감사하며 그의 무사안일을 바란다.



조선왕조실록을 죽기 전에 꼭 완독하리란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오래 가지고 있었는데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무적핑크와 함께 <조선왕조실톡>을 가족들과 함께 읽을까 마음이 흔들거린다.


톡은 종료되어도 세상은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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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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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1. 어떤 일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의 집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흘린 눈물 속에는 아주 복잡한 재료들이 섞여 있기도 했다아직 독립하기 전 기억 속의 집에 대한 디즈니 동화와도 같은 그리움책임도 고민도 불안도 대책도 필요 없었던 미성년 시절에 대한 유치한 동경안전한 울타리로 오랜 세월 기능하기 위해 집 전체를 돌보고 애쓴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감그리고 집을 집답게 유지하기 위해 기어코 집 자체가 되어버린 가족에게 얼마나 모욕적일지 몰라 마냥 떠나고 싶어 했던 경박한 욕망이런 것들도 들어 있다내가 충분히 안락하고 편안했던 시간들이 다른 누군가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었을 거란 숙고는 얼른 도망치지 않기가 너무나 괴롭다.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출퇴근도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엄마는 운전을 배우고 싶어 했고 같은 지역에 사는 친언니를 만나러 가고 싶어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웬만해선 며느리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집처럼 편하다'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 되었다. 26

 

언제나 혼자인 것과 항상 함께인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견딜 만할까?

스무 살의 내 소원이 서울에 가는 일이었다면 스물여섯 살의 내가 바라는 것은 '자기만의 방'이었다.

자기만의 방은 독립과 해방의 공간이기 이전에 나의 눈물을 타인에게 들키지 않을 권리였다. 54-55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 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 198

 

2. 재정 능력과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집

 

봄에 이사 가려고 둘러봤다 그만 둔 집들이 모두 2억 이상 매매가가 올랐다고 이런 미친 세상 포기라고 화를 내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는 곳living space을 사는 것buying item 카테고리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정치 자금 마련의 수단으로 이용했던 초기 부동산 투기 정책부터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광고가 낮밤을 밝힐 때에도 이런 결말은 마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똑같은 원리로 돈 안 되는 공공의료시설 따위 성가시기만 하다고 줄일 궁리나 하다 병상이 모자라다고 연일 보도하는 것처럼공공주택 역시 이제 와서 <대한민국공공주택 설계디자인공모따위를 떠들썩하게 해봐야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이 책은 부동산 투자 성공법 이라 쓰고 투기 비법을 간절히 원한다 이 쓰인 책이 아니라 브랜드가 찍힌 매물들은 한 채도 나오지 않는다하지만 여전히 건물로서의 집은 구성원들의 재정 상황을 가릴 수 없이 드러내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하고각자의 집이라도 구성원들이 생활공간을 어떻게 배당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가장 정치적인 셈법이 정답처럼 선명하기도 하다.

 

가장 생생한 증거는 아이들의 발화 어디 사니몇 평? - 와 TV 프로를 보면 잘 드러난다어느 집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위해 주방을 리모델링 해주고 어머니를 위해 서재를 리모델링한다고 할 때 익숙한지 어색한지 웃긴지 불편한지 잠깐 상상해보자.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공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130

 

"괜찮아집 전체가 다 내 방이지." 엄마의 뜻과 달리 그 말은 엄마의 처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며느리아내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 141

 

3. 거부하거나 잃어버린 것들로 기억되는 집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일까책을 읽는 도중 그런 의문이 들었다내 감정과 반응이 여러 장르의 책을 읽는 것처럼 휙휙 변하는 것을 느꼈다작가가 가장 친밀하게 느껴지는 에세이를 쓰다듬듯이 읽으며 기억 속 내 집들을 불러다 온갖 감정을 맛보기도 하다가대한민국 주거공간의 역사라는 부제의 사회 과학책인 양 읽으며 여러 통계와 기사들을 떠올려 보다가가장 인문학적인 사상서인 것처럼 논리에 집중하며 머릿속으로 온갖 논쟁을 나열해 보기도 한다.

 

어쩌면 아마도 이라는 공간이 이 모든 것들이 종합적이고 중첩적으로 일어나는 장소이기 때문일지 모른다가장 사적인 공간이면서 언제나 정책의 대상이면서 또한 갖가지 부조리와 범죄와 환원적 이유가 배양되는 곳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그러니 저자가 친절히 언급해주고 내가 기억하지 못한 말처럼 에 대해서 쓴다는 것은 그 집에 살았던 시절에 대해 쓰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작가가 살아내고 기억해낸 시절의 최초의 집부터 현재 머물고 있는 시절의 집까지 작가 개인의 인생사회의 변화 그리고 시대정신의 변화를 혼란스럽도록 따라 읽고 있었던 것이다덕분에 그 시절은 지났는데도 머릿속에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반갑지 않은 집도아무리 그리워도 구조 변경과 함께 모든 남은 것들조차 영원히 사라져버린 분들도 떠올랐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 관악구구로구동작구영등포구금천구와 경기도 군포시광명시 일대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이라 불렸다.

어느 언론은 당시 개봉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제목을 따와

충격경악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헤드라인을 내보냈다.

또 다른 언론은 범행이 주로 비 오는 목요일 밤에 일어났다며

비 오는 목요일 밤의 괴담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들에게 여성들의 죽음은 자극적인 흥행물이거나 진부한 도시 괴담이었으나

나에게는 현실이었다나는 연쇄살인범이 여성들을 해치는 동네에 혼자 살고 있었다. 62

 

눈을 뜰 때마다 상실을 깨닫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중략.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떠나보낸 것은 개 한 마리가 아니라 다정한 존재와 함께한 내 삶의 한 시절이었다.

가끔 피피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에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 시절을 부르는 일이었다. 175

 

4. 아직 도착하지 못한 친애하는 나의 집은 어디인가

 

어디에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제삼자가 보기에도 미련할 만큼 오랜 세월 동안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와 짝을 지어 끊임없이 결정을 요구했다내 신경증을 키운 것은 팔 할이 이 질문이다아무도 대신 답해줄 수 없어 오로지 혼자서 답해야 하는 질문자꾸만 의료진이 공무원이 정부가 다른 나라들까지 집에 머물라생사가 거기에 달렸다너 자신만이 아니라 남들의 생사까지 좌우된다고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근무도 집에서 하라는 시절이니적어도 내 짧은 생에서는 유례없이 에 대한 개념과 태도를 정리할 필요가 매일 더 확실해진다.

 

이 책의 어디쯤에서 이전 월세 세입자는 마구 비웃었지만나는 작가가 아등바등하며 자신의 공간을 바꾸고 꾸미려고 하는 장면들이 정말 좋았다그런 시도와 노력이야말로 무심한 공간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식이라 믿기 때문이다그 과정에서 여기서 살 나 자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상상하고 원하고 꿈꾸는 일을 했을 테지라고 짐작해 보는 일이 정말 좋았다.

 

우주에서 단 한 곳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공간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공간그런 자기만의 방과 집은 감히 말하건대 모두에게 필요하다나는 판자촌과 노숙에 해당하는 가난을 모른다너무 무서워서 모르고 싶다단지 내 불안증이 활발하게 증폭될 때면 지킬 것도 별로 없는 삶에 뭔가를 더 잃을까 싶어 신경이 짓눌리고 실제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게다가 불안증 안에 머물 때 내가 잃게 되는 것에는 가족들도 포함이 된다이전에 잃어버린 잃었다고 기억된 가족을 떠올리고는, 이별이란 사진 속에 함께 했던 딱 그 시간까지만 삶이 존재했고 이후는 정지시키는 것이란 무시무시한 생각을 한다남은 표정을 들여다보며 무엇을 더 이해할 수 있을까 괴로워하기도 한다그래서 어쩌면 사람들은 고인의 흔적을 남김없이 치워버리는 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오래 전 살던 동네 근처를 갈 일이 있어 기억 속의 공간에 들러보았다어쩌다 주택지가 관광지처럼 보일 때까지 다듬어졌는지내가 알던 시절을 모두 상실한 기분이 아니라애초에 잘못 찾아왔나해서 기억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어쩌면 다시 불려갈 필요가 없는데도 자꾸만 꿈속에 소환하는 악몽의 배경이 되는 장소도 이젠 기억조차 안 날 정도로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일 지 모른다그러니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지금의 공간을 스스로에게 좀 더 친절한 곳으로 바꾸는 일일 지 모른다. 이런 기특한 생각은 [2021년 작심삼일을 반복할 목록들]에 넣어 둬도 좋겠다 싶지만...... 워낙 게으르니 하루도 못가 집어 치우고 머물고 싶은 미래의 공간만 자꾸 상상해 보고 있을 가능성이 더 그럴 듯하다.



조금씩 읽고 오래 울기도 했다.

 

경애한다고 말하며 그의 글들을 스토킹 하듯 찾아 읽는 정희진씨는 역시 진실만을 말하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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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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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친구들이 흥분하여 권해 준 요코야마 히데오의 <64>이제까지의 인생을 그러모아 백번의 퇴고를 한 뒤 완성했습니다.” 이런 작가의 말이 들리는 듯 빈틈없는 멋진 작품이었다단박에 지루한 일상이 날아가겠다 싶게 충실한 무게감에 비례하는 쾌감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미스터리 추리 작품이라 감탄과 감사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리고 여러 해 그의 작품을 읽을 기회가 없다가내가 알던 히데오의 작품 느낌과는 다를 거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 친구의 권유로 <그림자밟기>를 뒤늦게 만났다호흡이 짧은 단편 소설집인 듯동일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그 모든 에피소드들의 말미에 주인공은 마침내 멈춰 쉬며 자신만의 진실을 마주하는 구성이다.

 

정확한 분류 기준은 모르지만 <64>가 사회파’ 장르의 작품들 중에서도 사회 조직 사회에 순기능을 수행하는 경찰과 제도권 -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해부하듯 거대한 작업을 하는 느낌의 구성이었다면, <그림자밟기>는 대반전과 대척점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전혀 다른 구성을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특이한 유형의 주인공이 등장한다익숙하지도 않고 호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정의로운 추리 천재나 영웅도 아닌수없이 시행착오를 겪고 끈질기게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캐릭터이다나는 사생활을 모두 드러내고도 자신만만한 끝없이 성장하는 이 주인공이 초능력을 가진 인물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신비롭게 보였다.

 

스스로 도둑이 된 주인공사회의 어두운 장소들에서 배양되는 부조리와 모순들동일한 물체의 양면일 지도 모를 이 두 세계를 모두 살핀다는 점이 저자 요코야마 히데오의 대가로서의 면모를 온전히 보여주는 점인지도 모르겠다하지만 작품 내내 의혹과 푸대접을 받고마지막까지 휴식을 허락하지 않고 번민에 빠지는 애처로운 인물이라니…… 어쩌면 <그림자밟기>란 작품 자체가 그의 다른 작품들의 그림자인지도 모르겠다다른 소설들에서와는 판이하게 이 소설에서 경찰 조직은 야쿠자 조직의 복제처럼 꼭 닮아있다.

 

쌍둥이란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려 하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조직 사회에 속하지도 못하고 가족들도 모두 잃고 자신도 잃어버린 주인공 마카베의 처지를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의 유일한 버팀목으로 존재하는 인물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쌍둥이 동생이다다시 생각해도 최고로 흥미롭고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설정이다꼭 닮은 자신과 다름없는 존재가 서로의 그림자였을까……그러니 한 존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남은 존재의 그림자를 짙게 했을까…….

 

쌍둥이란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려 하며 살아가는 존재였다중략.

생김새는 물론 자신과 마음속까지 똑같은복사판이나 다름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주했다차라리 사라져버려그렇게 빌었다소원은 이루어졌다.

 

혼자가 되었다는 건 외톨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그림자를 잃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으며 드는 궁금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대상을 달리했다처음에는 마카베의 그림자가 무엇인지에 집중해서 속 시원히 밝히고 이해하고 싶었다다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내 그림자란 무엇일까 의문이 든다그리고 모두가 모여 사는 사회의국가의인류의지구의 그림자란 무엇일까’ 질문은 끝없이 연장된다칼 융 심리학을 처음 들었을 때공교롭게도 수업의 제목이 [지구의 그림자 The Shadows of the Earth}였다당시에는 나 자신의 그림자에 묶여 허우적대느라 지구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아쉽다지금도 별다른 성장을 한건 아닌 듯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도시의 풍경 속에는 도둑이기에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도둑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양지바른 길을 걷는 이들은 어쩌면 평생 경험해 볼 수 없을 지도 모를 인생의 이면.

 

어쨌든 요코야마 히데오가 말하는 그림자란 어둡고 암울하고 비극적이고 절망적이고 불운한 것들의 총합이 아니다(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림자는 의외로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지지대이자 필요불가결한 공간이다그러니 빛과 그림자 사이를 지나치게 큰 간격으로 오가거나늘 밝고 명랑한 이들은 오히려 존재의 한 축이 상하거나 무너져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일 수 있다유아적이고 단선적인 사고방식이 현실 세계 경험 없이 주입된 사고방식이었다면주인공 마카베처럼 현실의 보이지 않은 사각들을 오래 돌아보고서야 비로소 나 자신을 온전히 구성할 수 있는 그런 삶의 방식도 있는 것이다.

 

그림자에 사로잡혀 있던 자신의 내면…… 그림자란 내면의 무의식자아를 억압하는 미성숙한 영역이지만 그 역시 끌어안아야 할 자신의 모습…… 은폐해 왔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마침내 진실을 찾는다.


차갑고 비정한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읽으며 기이할 정도로 마음이 흔들거린다뭉클하거나 울컥하며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대신 우울해지지 않았다이 희귀한 스타일의 작품을 이토록 매력적으로 탄생시킨 작가의 역량과 필력이 대단하다는 말로 그 이유를 돌리고 싶다.

 

모든 것의 끝에서 마카베가 다시 본 그림자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어떤 표정이었을까,

혹은 어떤 말을 걸었을까.

 

자신의 그림자를 영원히 밟을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그림자밟기>란 진실로 무엇인 걸까.




...........................................................................................................

 

* <그림자밟기>라는 연작은 단편 하나하나의 줄거리는 오히려 따로 떼어 이해하는 것이 더 어렵다단편 각각의 결말이 있지만 최종적인 결말에 이르는 것이 목표이고이 과정에서 가능하다면 인물들을 잘 파악하고 기억해야 퍼즐이 딱 맞춰지듯 깔끔하고 유쾌하게 이야기 조각들이 완성된다서른 명 가까이 나온다이름과 직업은 따로 메모하는 편이 완독을 돕는다.

 

끊임없이 제공되는 반전들은 초반에는 흥미진진하게 가독성과 몰입도를 높이지만너무 많다 싶은 생각이 들어 지칠 때쯤이면 나도 모르게 반전 예측에 훌륭하게 적응되어 있어 뜻밖에 결말이 예상 가능한 범위로 스르륵 떠오르게 된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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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 -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소영 지음 / 뜨인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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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나보니 반려동물과 함께였다배냇저고리를 입은 사진부터 많은 장면들에 함께 찍혔다. 5살에 내 멋대로 개명도 시켰다 한다다행히 우리 가족과 나의 첫 반려견은 바뀐 이름을 거부하지 않았다어렸을 때라 예뻐하기보단 귀찮게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둘이 찰싹 붙여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은 것을 보면 사랑했음이 분명하다


나의 첫 반려동물이자 가족은 어느 밤 내 방에서 함께 자고 깨어나지 않았다새벽에 잠깐 잠에서 깨니 고개를 들고 무언가 쳐다보고 있기에 자자한 마디 하고 다시 잠들었다.

 

그 후 부모님께는 새로운 반려견이 있었지만 나는 특별히 시간과 애정을 나누며 관계를 만들어 나가지 않았다한참 후에도 이동이 잦으니까혼자니까누군가를 돌 볼 마음이 없으니까자꾸만 이유를 만들어서 반려동물과 삶을 나누지 않았다.

 

사랑하는 존재가 빛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나에게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는 것 같았다.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이란 반려동물이 죽고 난 뒤에 겪는 상실감슬픔고통우울증 등의 정신적 어려움을 의미한다중략이를 인정받지 못한 슬픔(disenfranchised grief)’이라고 설명한 심리학자 밀리 코다로는 반려동물을 잃는 것 또한 우리 사회의 규범적인 슬픔의 과정(normative grief process)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그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들은 가족을 잃은 것과 같은 강도의 외상 후 장애를 겪게 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공감과 인정이 부족한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조용한 슬픔을 맞이하게 되고그럴수록 그들이 받은 심리적 상처를 회복하기 어렵다.

 

2. 당시 내가 시대정신이라 굳게 믿었던 주제환경/생태학/생태철학을 전공하면서 피할 수 없이 만나게 되는 분야가 있었다동물권에 관한 숙고와 고찰윤리와 철학정치적 주체 대행의 문제법령 등등우리는 그저 인간 아닌 동물이라고 이분하지만동물이라는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처해 있는 상황은 인간 세계 못지않게 복잡다양하다크게 야생동물과 축산가축을 대하는 인간의 관점과 태도와 법령을 생각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문제는 언제나 이 동물들의 생존과 얽힌 인간의 이익구조이다알다시피 되는 일과 싸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저항에 부딪히는 일이고실제로 멸종동물을 보호하려했던 동물학자들은 밀렵을 통해 거래하는 이들에 의해 살해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축산업 쪽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시대적 추세는 점점 더 소규모 축산을 대자본이 흡수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그런 거대 자본이 투자하는 사업에 철학윤리정치법령은 바위에 묻지도 않는 계란일 경우가 부지기수다.

 

경제적 편의와 동물의 복지라 는 가치를 두고 선택을 해야만 할 때나는 두 번 고민할 필 요도 없이 동물 복지를 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잠깐의 유혹을 이겨낸 후나는 이직을 할 때까지 다른 것을 포기하더라도 동물 복지 상품을 소비하거나 차라리 소비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는 것 또한 어찌 보면 내가 가진 특권이었다.

 

생명을 존중하는 일은 그렇지 않는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고농장 동물들의 짧은 생이 작은 틀 안에 갇혀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도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그러니 우리 사회가 생명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 해서는 개인의 자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동물보호법」 이 정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사람들 을 위해 국가 재정으로 동물 보건소를 운영하는 것은 어떨 까기본적인 접종이나 진료의 혜택을 주는 것만으로도 큰 질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동물 복지 축산 농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소비자들이 이왕이면 동물 복지 제품을 소비할 수 있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 또한 개개인의 의지에 기댈 일이 아닌 제도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 한 일이다.

 

3. 어느 날 수업 중에 살아 있는 돼지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냐고 교수가 질문을 했다나는 당연히 여러 명 있을 거란 생각에 맘 편히 손을 들었는데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딱 혼자였다그 당혹감이라니…… 다들 농가의 자손들이었던가요……그런 이유로 나는 돼지를 육류로 가공하기 위한 농장을 운영하지만 영국에서 가장 돼지의 복지를 염려한다는적어도 살아 있을 동안에는 최대한 고통을 덜 느끼도록 한다는 특별한 자부심을 가진 농장에 견학을 가게 되었다진심 실화입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에서 내려 방역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처음 견학한 가축농장이 그곳이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고 엄청난 보호를 받은 경험이었다그곳 돼지들은 각자의 성격 발산을 자유롭게 하며 널찍한 공간에서 뛰어다니며 상당히 멋대로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아기 돼지들의 호기심과 비례하는 호들갑청소년 돼지들의 왁자지껄함과 건방짐 실제로 옆에 와서 기록하는 나를 밀어서 넘어뜨리기도 하는 심술을 부렸다, ()산모 돼지들의 예민함과 청결함 방역복과 마스크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돼지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등등.

 

그곳은 농장주 가족들의 자랑스러워하는 얼굴 표정에 걸맞은 돼지 세계의 히피해피 공동체 같은 곳이었다마냥 사랑하기 때문에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능한 고통을 줄이도록 하는 노력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동물들을 식재료로 사용하는 것화장품과 의약품의 안전성을 실험하기 위해 납치 감금 실험 고문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면적어도 마구잡이식의 생각과 태도와 관행과 무법천지여서는 안 되지 않나그런 의문은 들지 않나직접 그런 불편한 질문을 해본적은 없지만 나는 요즘도 가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들도 생산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장품과 헤어관련제품들의 안전성 실험을 할 때는 눈물양이 적고 눈 깜빡거림도 거의 없는 토끼를 드레이즈 실험에 자주 사용했다기억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나 역시 영상에서 수개월간 마스카라가 3천 번 발려지거나 화학물질이 주입되어 피를 흘리거나 눈이 머는 과정에서 한 토끼가 옆의 토끼 눈을 계속 핥아 주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그렇게까지 해서 만든 완제품으로 인간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4. 여전히 반려동물과 함께 하지 않으리란 내 결심은 올 해도 변하지 않았다예뻐하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인간은 제 자식을 목숨을 내 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면서도 입신양명을 위해 못할 짓들을 하고바로 그 세상 귀한 자식들이 살아갈 사회도 생태계도 망가뜨린다동물 쇼를 보고 재주를 부리는 동물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지만 그 박수와 환호는 그 동물의 행복과 복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사는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내가 사는 세상의 규칙을 온전히 배우지 못하는 생명체를 온전히 나의 의지로 집에 데려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아마도 한없이 양보하고배우며또 노력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내 쪽이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외면하거나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오직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명을 책임지는 보호자의 최소한의 역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한 가지 사실이 명확해진다내가 데려온 동물은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지만 나는 그들이 행복하게 살다가 평온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그리고 그 정도의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떠한 생명이든 집에 들이지도키우지도 말아야 한다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비극은 보호자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누군가를 보호하겠다고 자처하거나책임과 의무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무작정 다른 생명을 끌어안는 것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4. 작년에 꼬리를 잘리고 학대당하던 어린 고양이가 구출되었는데정말 뜻밖에도 부모님이 입양을 하셨다고양이를 좋아하시던 분들이 아니라서 자식들은 한동안 고양이 걱정을 했다워낙 끔찍한 일을 당했으니 그저 건강하게만 살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개냥이로 변신을 해서 부모님께 애교 많은 막내 노릇을 하고 있다작은 몸이 가진 온기가 얼마나 큰지 주변 인간들의 세상이 바뀌었다그래봐야 모두에게 집을 구해주지도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을 마련해주지도 못하지만길냥이들이 어디서 깨끗한 물을 구할까 매일 걱정이 된다.

 

이 책을 읽다가 예전에 너무 끔찍해서 얼른 잊어버린 나비탕 사건이 지금에서야 더 각별한 느낌으로 복원되었다더불어 바퀴벌레를 박멸시키고 싶다면 한국인들에게 바퀴벌레가 정력에 좋다고 알리면 된다라던 모욕적이고 충격적인 멘트도 생각났다한국인들이 정력 속설에 따라 까마귀를 잡아먹는다는 보도가 퍼진 직후였다.

 

몸이 유연한 고양이를 먹으면 골다공증이 낫고거북이 등에 글씨를 새겨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지고여러 암컷을 거느리는 물개의 생식기를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기린을 먹으면 목이 길어지고 코끼리를 먹으면 코가 길어진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을 칠까 아니면 진지하게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까.

 

근거 없는 믿음이 다른 생명을 무고한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누군가의 고통을 방관하는 일로 이어진다면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인간의 야만성을 지우지는 못 할 것이다그리고 그건 몇몇 국가의 문화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이며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5. 100분의 도 소개하지 못하면서 길기만 글 속에서 나는 중언부언하였지만이 좋은 책에서 저자는 친절하고 깔끔하게 여러 대답을 들려준다옳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의문을 가져야 하는지동물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일이 왜 인간답게 사는 일인지개개인의 노력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선의에만 의지하는 일의 위험과 한계가 무엇인지그러니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동물과 인간이 함께 행복하려면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세상의 변화는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우리가 비록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더라도 좋은 질문을 던지고 적절한 답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익숙해지지 않는 두려움 앞에서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마음을 다잡아본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불합리함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하나의 정책이 되어 안착할 수 있으려면시민들 개개인이 조금 더 움직여야 한다모두가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적어도 법을 만들어야 할 국회의원들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자신의 요구를 대신하여 정책을 만들어주는 이들이 누구인지나는 어디에 힘을 실어주고어디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지에는 관심이 있어야 한다그래야 변한다.

 

자고 나면 참 추워진다고 한다.

다들 따뜻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길고 길 겨울에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셨으면 좋겠다.

 

특히나……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망가뜨린 대가를 코로나 판데믹으로 치르는 이 시절에,

거대한 육가공산업과 육식습관을 부흥시킨 결과 기후재앙에 이른 이 시절에,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뉴노멀을 준비해야하는 이 시절에,

 

스스로 진화하여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정말 많은 분들이 읽으시고 이야기 나누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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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만난 한민족의 뿌리
김진영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서울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이들은 가장 먼저 한반도 선서문화의 첫 장면과 마주한다.

바로 반구대암각화이다.

비록 모조품이지만 이것의 반구대암각화는 현장보다 더 생생한 인류의 이동경로를 암호처럼 펼쳐 놓고 있다.

문제는 이 그림판 앞에 선 사람들이 반구대암각화의 위치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위대하고 독보적인 인류의 문화유산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그 신비로운 고대사의 숨은 그림판에 매료되지만 이 그림판이 어디에 있는지

울산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구대암각화는 가치를 이해하지도 감상하지도 못한 채 그 앞을 수십 번 지나갔을 것이다울산은 현대의 도시라는 문구로만 기억했다몇 해 전 그린피스에서 연락을 받고 고래 고기 관련 이슈를 접했을 때도 자료만 읽었지울산이라는 도시와 살고 계신 분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리진 못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를 견디기 위해 찾아온 온기와 격려처럼 울산에 사시는 참 좋은 분을 알게 되었다비로소 울산도 살고 계신 분들도 생명과 색채와 소리와 형태를 지닌 존재들로 느껴졌다그래서 이 책을 만나지 못하는 뵙고 싶은 분에 대해 글로 먼저 배우는 기분으로 그렇게 읽었다.

 

이 책의 가득한 목차를 보다 보니 [나의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작가께서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우리나라의 국토를 떠올릴 때도 사람들은 서울 중심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고그런 사고의 경직도 염려되고 본인이 대구 영남대 재직 중이기도 하고 영호남 갈등도 반드시 극복해야할 일이라 생각되어첫 번째 답사기를 땅끝마을 해남으로 정하고 영남의 대학생들과 다녀왔다고크지도 않은 나라지역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이렇게 없어서야……. 제 이야기입니다.

 

본격 내용에 들어가기도 전에 소개 글만 읽어도 지리적 텍스트로서의 문화유산역사사람들이 살아 온 흔적과의 연계를 쏙 빼먹고 뭐했나 싶어 아차싶은 지적들이 많다숙종과 반계서원거북이 머리 반구대와 정몽주의 유허비사냥과 어획의 삶을 살던 선사시대의 사람들근처의 공룡발자국들……몇 가지 사실들로 잠시 떠올려본 상상의 세계와 시간에 두근거린다.

 

지난 2004년 영국 BBC 인터넷 판이

인류 최초의 포경은 한반도에서 시작됐고그 증거는 반구대암각화라고 보도했다.

 

사냥의 과정과 고래의 생태까지

반구대암각화는 거의 고래 백과사전급으로 구성된 고대 인류문화의 타임캡슐이었다.

급이 다른 암각화를 확인한 노르웨이 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스스로 고래잡이의 원조라 주장하지 않는다.

지금은 보편화된 이야기지만 반구대암각화는 바다와 육상생물을 모두 새겨 놓은 진귀한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유래를 알려주는 비밀지도다.

반구대암각화의 학술적 가치는 세계적인 석학들이나 인류학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목차를 본 누구라도 저자가 깊은 애정을 가지고 지역사를 공들여 기록해 주고 전달해 주려는 뜻이 느껴질 것이다포스트 코로나 시절이 오고살아남았다면울산 사는 참 좋은 분과 이 책을 통해 배운 울산과 반구대암각화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신나게 얘기해보고 싶다.

 

논농사의 첫 시작이 증명된 울산은 과연 어떤 곳인가.

우리나라 육지부에서 태양이 가장 먼저 뜨는 곳이 울산 땅 간절곶이다.

태양이 가장 먼저 뜬다는 것은 아주 오래 전 인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태양의 기운이 모든 에너지의 출발로 여긴 북방계 인류의 한 무리는 그들이 신성시한 태양의 시작점을 쫓아 대륙의 끝으로 이동했다그 끝자락이 울산이다.

어쩌면 그 무렵 남방고래류의 이동 경로를 따라 북으로 향한 폴로네시안계 해양문화권 인류가 귀신고래를 만나 정착한 땅이 울산인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이든 전쟁을 경험한 폐허가 된 장소들은 갈아엎어지고 생경하고 생뚱한 기능성 건물들로 대체되면서 단절과 망각의 땅이 되고 만다그대로 폐허로 뒀어야 한다거나죽임과 가난이 창궐할 때에도 정밀한 문화 복원을 했어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하지만 당시 때려 부순 것들은 정말은 무엇이었을까시멘트로 발라 버린 아래에 묻힌 것들은 무엇일까눈에서 멀어져 기억으로부터도 완전히 잊힌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한반도 인류의 기원이 깃든 땅이 울산나만 몰랐어.

 

시간을 거꾸로 돌려 몇 만 년 전으로 올라가보면 더 신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울산은 인류 이동의 증거물이 암각화로 남아 있고 

한반도 첫 석기생활도구 제조공장과 동북아 최초의 벼농사 시설이 발견된 지역이다.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육로나 해로를 따라 들어와 정착사회를 이루어 살았던 곳으로나는 가본 적 없는 울산박물관에 가면서생면 신암리 유적장현동 황방산의 신석기 유적석검이 출토된 화봉동과 지석묘가 있는 언양면 서부리의 청동기 유적이 있다고 한다.

 

선사시대라고 쉽게 말하지만역사 이전pre-historic의 시기의 울산은 어땠을까아주 활발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그 이전에 공룡들이 놀고 살던 자리에 인간들이 들어와서 움막집 짓고고래잡이하고반구대암각화를 그렸다세계 동물학회에서는 인류와 고래의 관계를 연구할 때 그 출발로 반구대암각화를 제시한다고 한다. 학자들은 무려 기원전 6,000년경부터 인류가 고래를 잡았고 그 증거가 울산의 반구대암각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따뜻한 남쪽풍요의 땅'을 찾아 해 뜨는 땅동쪽으로 이동하다 도착해서 머문 곳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울산이고고대인들이 산에서 바위에 고래를 새기고 해가 떨어지는 시간 샤먼의 주술에 따라 다음날 바다에서 큰 고래를 사냥할 수 있기를 주문처럼 외웠다'는 것이 반구대암각화에 남긴 이야기라 한다.



옛 울산 땅은 우시산국이었다.

()를 이두식으로 풀어 발음하면 우시산은 울뫼로 읽히고 이는 다시 울산이 된다.

우시산국의 도읍지가 지금의 검단 지역일 가능성이 높고 우시산국은 검단분지에 기반을 둔 부족국가로 보는 것이 옳다기록에도 나와 있다.

우시산국은 삼국사기 권44, 열전 거도(居道)조에 기록돼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우시산은 삼한시대 고마족(濊貊族)이 건설한 성읍국가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는 회야강 둔치 아리소를 기점으로 우시산국 축제를 열고 있다.

울주군 웅촌면 대대리와 검단리아래로 양산 웅상까지 세력이 뻗었던 옛 울산지역의 작은 나라 우시산은 이렇게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울산에 세계 최초의 것들이 이렇게 많다니이것도 나만 몰랐어.

 

7천 년 전에 이미 가죽배와 나무배를 만들었고세계 최초의 벼농사 유적을 가지고 있다. 1998년 울산 남구 무거동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청동기 시대의 논이 거의 원형 상태로 드러났는데이는 기원전 7세기의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수전유적이다물론 이 밖에도 울산에 간직된 문화적역사적 가치는 무수하다.

 

2009년 전후로 울산 신항만 연결도로가 곳곳에 개설되기 시작하면서 땅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고래 뼈가 출토되었다 '골촉 박힌 고래 뼈매장물은 신석기인들이 사슴 뼈를 뾰족하게 가공한 골촉으로서논란이 되어 왔던 신석기시대 포경 활동에 실물 증거이다그리고 인근 성암동 패총에서 신석기인들의 생활 폐기물이 쏟아져 나와울산이 고래잡이 문화의 원형이자 남방계 인류가 한반도로 유입되었다는 것을 입증했다그리고 이 증거물들고래사냥과 어로도구수렵과 사냥법이 반구대 바위그림에 도록으로 새겨져 있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 중부지역에서 출발한 최초 인류의 무리들이 바다 쪽으로 진출해 인도양과 남태평양을 근거로 해양문화를 일으켰고그 문화의 흔적이 인도네시아와 뉴질랜드 등에 근거를 둔 폴로네시안 문화권인데그 중에 한 무리가 나무배나 가죽배를 타고 고래를 따라 북으로 이동해 새 터전을 삼은 곳이 울산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990년에 발굴된 검단리 유적의 가치이디.

 

이 곳에서 100여 기에 달하는 집자리와 고인돌그리도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특히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마을을 감싸는 도랑 환호(環濠)가 발견되었다.

 

이 발견 이전까지는 환호 형태의 마을 유적은 일본에서만 발견된 취락구조이며이것이 바로 임나일본부를 주장하는 일본 역사가들이 한반도보다 문명이 앞선 증거로 채택했던 것이다하지만 울산 검단리에 수천 년 동안 파묻혀 있던 환호가 발견되자, 1990년대 이전까지는 일본의 고대문화가 한반도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던 일본 사학계가 비로소 검단리 환호 취락지역을 자신들의 취락구조의 뿌리로 인정하게 되었다.



무척 재미있는 책이라 읽는 즐거움도 알게 되는 즐거움도 크다. 저자의 지역에 대한 애정 역시 듬뿍 느끼면서 여러가지 부러운 심정도 든다. 지역에 이토록 집중해서 강렬하게 어필하는 책을 처음 읽은 듯하다. 앞으로 울산에 대한 책!이라면 이 한 권이 생각날 것이다. 다만 발췌만으로도 끝없이 길어질 것 같아 내용면에서나 애정면에서나 500분의 1이나 될까 싶은 내 글은 이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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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12-14 0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ㅎ 갑자기 반구대암각화가 보고 싶어지는 글입니다!ㅎ 따뜻한 하루되십시요!ㅎ

poiesis 2020-12-14 23: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늘 과분한 댓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ㅎ 자고 나면 많이 추워진다니 따뜻하고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