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 교양 고전 Pick 1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임경민 옮김 / 지식여행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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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엉뚱한 면이 있더라도 이상이 있고 목표가 확실하고 헌신하는 태도가 분명한 사람이 더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막상 내가 하려면 겁이 나서 하지 못하는 일의 대리전을 보는 듯이 유사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부분적인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돈키호테의 묘비명

 

그에 비해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 하지만 햄릿형 인간형은 작품 전반에 걸쳐 답답하고 때론 못 미더우며 결정적인 순간이라도 그 우유부단함으로 민폐형 인간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햄릿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어서는 안 될 듯하다그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그 고통은 돈키호테의 고통보다 더 치명적이고 극심하고 강렬하다돈키호테는 험악한 양치기들과 돈키호테가 나서서 석방시킨 죄인들의 공격을 받지만햄릿의 상처는 스스로가 자초한 상처이다햄릿은 자신을 괴롭히고 고문하는 분석이라는 양날의 칼날을 쥐고 있다.

 

투르게네프라는 걸출한 작가의 시선으로 본 두 인간 유형이 내가 가진 시각보다 재미와 깊이가 덜 할리 없지만나이가 들수록 햄릿형 인간형이 될 수밖에 없는그런 두루 뭉실하고 우유부단한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햄릿의 지난한 고민으로 형성된 성격을 살짝 편을 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유형의 인물 속에는 기본적으로 대조적인 두 성향즉 인간이 하나의 회전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할 때 그 축의 양극단이 구현되어 있는 듯하다.

 

인간의 삶은 영원히 밀고 당기는 두 힘끈질기게 적대하는 두 힘이 영원히 화해하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

 

더구나 햇빛이 찬란해서 경미한 우울쯤은 기화되고 기운이 펄펄 나는 스페인의 분위기와 일조량도 식량도 부족했던 북유럽의 환경은 달랑 인물만 떼어내어 비교하기에는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사람은 생각보다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다.

 

세르반테스는 아마도 셰익스피어란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비극작가는 자기 생의 마지막 3년 동안 당시에 이미 출간되어 있던 유명한 소설의 영어판을 스트랫퍼드에 있는 자기 집에 호젓이 틀혀박혀 읽었던 게 틀림없다<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셰익스피어이는 한 예술가이자 철학자가 소재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광경이었을 터다.

 

얼마 전 '사느냐 죽느냐'의 번역으로 쭉 이어져 온 해석이 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강연을 듣고 나니 혼자해본 의심에 근거가 마련된 듯 그 소식이 반가웠다지독한 비극과 배신과 살해 위협이 도사리는 환경에서 가장 큰 고민이 내가 죽느냐 사느냐이런 간명한 형태만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급박한 순간에도 사소한 고민과 실수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인간이 사는 현실적이 모습이 아닌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결국은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고 다 죽어버리는 고전 비극의 최고봉 햄릿의 캐릭터와 언제나 무시당하고 이해받지 못했지만 저렇게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돈키호테 캐릭터의 비교를 통해오랜만에 고전도 인간도 인생도 들여다보고 생각해보고 대화를 나누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가 살던 그 방식 그대로의 세상으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전환점을 맞고 있는 시기를 견디면서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독서와 대화와 토론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한다그런 동기로 선택한 각자의 책은 무궁무진하겠지만그래도 독서활동의 유사점을 찾아본다면모든 책에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독자가 부여한 해석들이 삽입된다는 점이다아무도 셰익스피어를 그가 썼던 그대로 읽지 않는다우리가 읽는 셰익스피어는 후기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정보와 해석이 풍부하다는 장점을 갖기 때문에 그 시대의 독자들이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것이 된다. 20여 년 전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서 스탠딩 석에서 버티며 관람한 그 오델로는 지금 다시 읽는 오델로와는 또 다른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키듯 독서를 할 때마다 책도 변화할 것이다물론 독자가 반드시 사멸하는 것과는 달리 작품들은 우리와 함께 다시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기도 하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고 이후의 시간을 겪으며 더 풍부해질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햄릿을 읽으면 몹시 다양한 원인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속도감있게 비극이라는 결론으로 달리지 않고 산만하게 이어지다가 결국에 시원한 반전 하나 없이 모두가 사망하는 착착한 장면으로 마감되는 것에 당황하게나 분노하지 않아도 된다처음에는 몇 번을 읽어도 정돈이 잘 되지 않아서 매번 지친 기분이었는데텍스트 자체에 집착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야 말겠다는 정적인 태도를 버리면독자로서의 나는 계속해서 질문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유과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종종 미래에 책이 소멸될 지도 모른다는 의견들이 보이는데도대체 책을 대체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다는 말인지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발명과 동시에 완벽했던 가위처럼책도 기록될 당시부터 완벽한 발명품이었다전자책의 장점도 분명하지만구동하기 위한 에너지와 기기가 필요하고 디지털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소멸된다종이책처럼 500년을 원본 그대로 남길 수는 없다.

 

다소 과격한 상상이지만 만약 단 한 권의 책만 선택해서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야 한다면 과연 그 책은 햄릿일까돈키호테일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그때는 아마 명성과 권위보다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과연 인류 역사에서 어떤 인간 유형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힘이 더 컸을까인생의 중대한 선택 기로에서 이 두 인물은 어떤 방향을 제시했을까그리고 내가 바라는 인간상은 누구를 더 닮았을까 이런 질문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이들은 두 대척적인 경향의 극단적인 표현이 불과하다삶은 이 두 극단의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지만그들 중 누구도 한쪽에 도달하지는 않는다이 모든 것을 검토하고 탐색하는 분석의 원칙이 <햄릿>에서 비극의 극단으로까지 뻗어 나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돈키호테>에서는 열정이 정반대 편에 있는 희극의 상황으로 몰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순수한 희극이나 온전한 비극을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국내 첫 완역본이라 정성이 가득하다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을 포함한 다양한 도판과 같은 볼거리작품의 이해를 돕는 디타 뮐레로바의 해제와 같은 풍성한 읽을거리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더 이상 신에게만 희망을 걸지 않는다그 시대의 인간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 자신에 의지한다돈키호테와 햄릿은 르네상스의 지고한 이상들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하지만 삶의 현실적 조건들로 인해 그들은 그러한 이상들을 실제 삶 속에서 펼칠 수 없다두 사람은 이례적으로 특출한 인물이지만 자신들을 둘러싼 객관적인 환경들을 극복할 수 없다이런 상황으로 인해 두 사람은 오해받고 비정상적인 인물로 낙인찍힌 매우 비극적인 영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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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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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어떤 장면과 기억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선명한 경우가 있다다른 모든 중요하고 심각한 것들은 다 잊어버렸는데 유독 그 한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자꾸만 소환되는 경험이 있다이 책의 도입부가 그렇게 너무나 사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시작되어 나는 한동안 별 그리움 없이 잊고 살았던 시절이 자꾸만 떠올랐다마치 일기를 공개한 것처럼 섬세하면서도 중요한 모든 것은 그렇게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둘만의 교집합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이 소설의 이야기는 브레이크 없이 순식간에 흘러간다아끼며 천천히 녹여 먹듯 읽고 싶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살면서 얼토당토않은 상대에게 급작스런 감정을 느끼게 되거나 더 나아가 고백까지 하게 되는 혹은 받는 경우들이 있다당사자로서는 그런 상황 자체가 버겁게 마련이라 상대를 살필 여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생각해보면 첫 인상 말고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대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무모함은 무엇이었을까신비롭고도 참 강렬한 한 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눈에 반하는 것을 믿는 이들도 있지만나는 아주 잘 아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타입이라 모험적인 그 세계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거의 없다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일 수밖에 없고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 자신이 끔찍하게 싫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마찬가지로 타인에 대해서도 잘 알기 때문에 비로소 특별한 감정이 자라나게 되는데이런 나를 변호하는 구절을 오래 전 <비포선라이즈>를 통해 들으며 안심한 기억이 난다.

 

네가 아까 커플이 몇 년 동안 같이 살게 되면 상대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고 또 상대의 습관에 싫증을 느끼게 돼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고 했잖아.

난 정반대일 것 같아난 상대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정말 사랑에 빠질 것 같거든.

 

나는 혜인이 좋은 이유를 한 열가지는 숨 한번 쉬지 않고 말할 수 있었는데사실 고민하고 말 것도 없이 나의 마음은 예스였다하지만 나는 생각 좀 해볼게,하고 우물거리고 말았다누군가에게 고백을 들은 것도 누군가의 첫 연인이 되는 것도 처음이었으며무엇보다 연애나 사랑 같은 건 먼 훗날의 것이었지 그게 내 것이 될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벗었기에 나는 시원하게 좋아,하고 말해줄 수 없었다.

 

소리 내지도 못하고어깨를 마음대로 들썩이지도 못하고그저 8절 문제지 위에 펜을 쥔 자세 그대로 흐느껴 울고 있었다그러니까 나는 그 모습에그 모습을 보고 내가 느끼는 지금 이 감정이 사랑,이라고 확신했다이건 명백해백 퍼야저 머리띠가 조금만 더 고급이었어도 이건 사랑이 아니었을걸나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 대신 혜인의 손을 붙잡고 열람실을 뛰쳐나왔다.

 

물론 사는 일이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상대가장 가까웠던 존재가 어느 순간 멀게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내가 어제 발을 담근 이 강물은 오늘 이 강물과는 다르다고 한 철학자를 소환할 필요도 없이매순간 변화하는 것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유일한 실재성이라 결국 아무도 서로를 지속적으로 알 수는 없는 일이다당연하다그렇지만 얼마나 잘 이해하는 가와는 별개로 여전히 슬픔과 쓸쓸함은 남는다.

 

그때-그곳이 지금-이곳과 너무 비슷하거나 달라졌을 때내 속에서 무언가가 솟아나곤 했으나 이제 원기억마저 희미해진 이곳에는 겹쳐지는 것도 길어낼 것도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나도 이제 그때,가 떠오르지 않는 나이가 되었구나.

 

세월이 금방이라는 말은 듣는 즉시 이해가 되었지만 뜯어볼수록 참 이상하고 오묘한 말이었다그리고 그 말을 곱씹자 가슴 안쪽을 고운 사포로 긁어내리는 기분이 들어 정말로 가슴을 쓸어 만졌다.

 

관계 속의 나와는 별개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척 유쾌하게 풀어내고는 있지만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꼭 그래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무척 힘겨웠을 것이다진심을 속속들이 짐작할 순 없지만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그대로 온전히 풀어 주었기 때문에 글 속에서나 대화 속에서 이토록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대부분의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었고 고맙게도 시간과 거리가 나를 대신해 끊어주기도 했다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싫었고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

 

때론 우리는 마치 진정한 사랑이란 목숨까지 아깝지 않다고 자신을 온통 쏟아 부을 정도의 모성애나열병처럼 격렬한 성애로 치닫는 이성애 혹은 동성애만을 해당 범주에 공식적으로 올려 주곤 한다하지만 이토록 이성애로 조건화되고 끊임없이 의식화되고 한편 강요받는 사회가 아니라면 사랑은 딱 한 가지 정체성과 합치하는 감정이 아닐 확률이 높다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이 모든 조건화된 환경 속에서도 더할 수 없이 자연스럽게 내가 사랑이라고 느낀 모든 것이 진짜 사랑의 감정이었다고 말한다단지 내용에 몹시 이끌려서가 아니라 그 편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작가는 <시절과 기분>이라는 제목에 사랑이란 그렇게 다양한 것이라는 말을 이미 했다고도 볼 수 있다무척이나 아름다운 시절의 흐름에 따라 느껴지는 기분들.

 

조금은 서글픈 기분 속여전하게 뛰는 이 심장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일까 나는 생각했다중략오랜만인지처음인지 알 수 없는 고동이 기차가 내는 착착 소리와 함께 반복되었다그건 어떤 과거의 회한으로 뻗어나가 겨울날의 술집으로 데려가기도 했고가본적 없는 미래의 풍경으로 도약해 가닿기도 했다대부분 슬펐지만 어떤 것은 너무 생생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고나는 대체로 외로웠지만 그럼에도 문을 열었을 때 언제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순전하게 기뻐했다.

 

슬픈 것과 사랑하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슬픈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착각하지 말라고 생각했고아무여도 아무래도 좋을 일이라고도 잠시 생각했다상상만으로 이미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지만가능 세계를 그려보는 일이 예전만큼 즐겁지 않았다내가 된 나를 통과한 사람들슬픔과 불안에서만 찾아왔던 재미와 미(역시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았다어떤 답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그저 열차가 멈추기 전까지 이 진동이흔들림이 계속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문득 아직 심장이 잘 뛰고 있는 걸까하고 심장자리에 손을 얹고서야 안심을 하곤 하는 요즘의 나는 주인공이 느끼고 있는 뛰는 심장이, 흔들림이, 진동이 부럽기만 하다. 구축한 일상을 단번에 날려버릴 과감한 행동으로 이어질 여지가 섭섭할 만큼이나 전혀 없으니, 그 이유도 답도 괘념치 않고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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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머니 어따 놨어? 고래책빵 어린이 시 2
강선재 지음 / 고래책빵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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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머니'란 제목을 보니 아주 아주 어릴 적 혹부리 영감님의 혹을 도깨비들이 노래 주머니라고 달라고 한 내용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얼굴에 혹주머니가 달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도깨비들이 있다는 것도 무서워서, 마음이 달달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할아버지와 도깨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너무 궁금해서 끝까지 읽은 이야기였습니다.

 

아마도 시주머니란 시가 될 재미난 생각들이 잔뜩 들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의지하는 존재이겠지요. 엄청 귀엽고 반짝 반짝 눈이 빛나는 초등생 시인이 시가 잘 안 써진 어느 날 살짝 쿵 내뱉은 원망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우리 집 큰 꼬맹이는 초등 시절 곧잘 시를 써서 - 가족 구성원들 모두를 대상으로 한 편씩 - 학교 문집에도 발표 되곤 했는데, 다른 문예창작 모집하는 이벤트에도 보내볼까, 하고 생각해보는 와중에 슬슬 시 편수가 줄어들더니 중학생이 되자 시작을 중단한 듯합니다. 일시 중단이라 믿고 싶습니다만, 어찌나 아쉽고 섭섭한지…….

 

시어로 표현된 인상적인 가족들 각각의 모습도 재미있고, 아이의 시점에서 무엇이 가장 포착하기 쉬운 행동양식이나 인상이었는지, 그리고 아이가 각각의 관계에 대해 해석하는 내용이라든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하고 풍부한 정보가 가득하면서도 시적 재미와 감동이 있는 활동이었는데…….

 

그래서 4살 때부터 시를 쓴 4학년 시인인 저자 본인과 작품들도 몹시 궁금했지만, 혹시나 다시 시작 열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심을 품고 선택한 책입니다. 읽는 과정에서 혼자 푹 빠져서 심하게 즐기느라 본래의 목적을 완전히 망각했지만 말입니다. 


시어만큼 생생하고 풍부한 - 시인이 직접 그린 - 일러스트레이션들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나도 다시 크레용을 집어 들고 쓱쓱싹싹 막 그림들을 그려볼까 이런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작사작곡한 노래들도 있습니다.^^

 

성장과 변화라는 흐름에 저항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모든 모습들이 지켜보는 이들로서는 하나같이 아까운 어린아이들. 익숙한 일상이 멈춰 버린 시절에 어른들이 염려하고 불안해하며 생각이나 고민 속에 갇혀 있을 때에도 아이들의 눈에 담는 세상은 여전히 신기하고 재미난 그런 모습들일지 모릅니다.

 

부디 무언가를 재미있어 하는 그 재능과 마음이 다치는 일 없이 무탈하길, 모두의 아이들이 모두 무사하길 기원합니다.


시인의 하루(?)는 시작이 이렇다고 합니다. 한숨이 쉬어질 만큼 귀엽고 안쓰럽습니다.^^



<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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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
박종원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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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딸을 잃고 연이어 아내마저 사망하여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처음부터 소개되면서 주인공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후 주인공은 혼자 남게 된 자신이 느끼는 절박함과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원인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인생의 행로를 정해 가게 된다. 장편 소설답게 그 후로도 상당한 분량이 감정적으로 파탄이 난 상태의 어수선하고 복잡한 시공간을 오가며 드러나는 조각들을 퍼즐처럼 기억하고 천천히 맞추어가는 스릴러의 형식을 따른다.

 

스릴러 소설의 소재로서는 특이하게 등장하는 댄스에 관한 저자의 자료 조사가 상세해서, 나처럼 문외한도 만약 관심이 있다면 저자가 등장인물을 통해 제시한 단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상당한 이론적 준비가 된다. 꽤나 방대한 내용과 다층적인 구조를 가진 500쪽이 넘는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나 홀로 모래사장에 앉았다. 아득한 지평선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가끔 은빛 구름에서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흔적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디론가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변덕스러운 소나기만큼 자신도 혼란스러웠다.

 

<황금빛 소나기 은빛 구름>이라는 제목이 빛나는 희망과 말랑한 행복을 의미할 것 같았던 첫 인상과는 달리 저자의 글 호흡은 굉장히 길고 한 번에 읽어내기에는 버거울 만큼 촘촘하다. 저자와 주인공처럼 독자 역시 제대로 몰입해서 읽어 나가야지만 마라톤과도 같은 이 소설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스릴러 추리 소설을 읽는 일반적인 독법에 맞게 표현된 문장들에 드러난 힌트들을 잘 읽어내고 기억하는 노력과 함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도 하는 활력이 넘치는 음악과 댄스라는 소재를 잘 감상하고자 한다면, 가끔은 영상을 보듯 생생하게 상상해보는 노력도 소설 전체를 감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 과정에서 공감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을수록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삶의 진짜 모습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주체에 따라 수많은 변이를 가지는 삶의 모습들을 일단 그렇다고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들만이 아니라 개별적 사건들 속에 녹아 들어간 진실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주인공의 말과 태도를 통해 반복해서 추리하게 한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냐.’

아내는 결혼 전부터 이런 의미의 말을 종종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사실이 모두 진실은 아냐.’ 중략.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면, 전부는 진실일 터였다.

전부가 진실이 아니라면 보이는 것만 믿고 싶은 것일 터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자신도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의 죄책감을 가지는 이들이 있고, 현실 사회에서도 분명히 때론 자주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스케일이 방대한 만큼 등장인물들 역시 다양한데 거의 중반에 이르기까지 옴니버스를 떠올릴 만큼 각각의 캐릭터들이 강렬하고 개성 있게 소개된다. 그런 만큼 이들 사이의 관계들이 개별 스토리텔링을 통해 생동감을 충분히 제공한다.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면 소설을 읽는 기분만이 아니라 장편 범죄 영화를 몰입해서 시청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작품이 제공하는 또 다른 매력이자 흥밋거리다.

 

댄스, 춤이라는 소재를 극심한 혼돈에 갇힌 등장인물이 일종의 출구로 선택한 점이 생경하면서도 적어도 내게는 완전히 낯선 세계의 모습이라 읽는 내내 궁금하고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온갖 모순과 이율배반, 노력이나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서 방지할 수 없는 비극들이 혼재한 삶을 살아가야하는 불안한 이들이 언어만으로는 충분하게 선명하지 않은 자신의 감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솔직하게 드러나는 몸의 언어, 춤을 선택한 것이 한편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내게도 미리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그 감각을 훨씬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범죄 스릴러 장르이지만 제목에서 충분히 희망을 암시하고 있다고 읽는 내내 기대했기 때문에 비극과 불행을 보고 싶지 않은 심정을 다독이며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심적으로 극한의 고통을 당하며 깊이 파묻힐 것만 같은 짙은 농도의 감정들과 반전을 드러내는 사건들이 있지만, 다행히 댄스라는 출구가 의외의 역동적인 몸짓으로 묶여 있는 감정들을 털어버리게도 한다. 덕분에 한식 코스요리를 즐기고 난 이후처럼, 전체적인 느낌은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몰입이 방해받지 않아 큰 재미로 수렴되는 인상적인 장편소설이다.

 

밀착된 관계들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현대의 시공감에서 어쩌면 타인의 죽음은 그저 사건과 사실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는 그러한 무심한 시선을 가진 우리들에게 그 속의 불편한 진실을 하나 보여주고 싶은 지도 모른다. 정갈하고 깔끔한 사건 처리로 마감되고 마는 삶을, 불편하고 아프지만 우리 모두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뜨거운 시간들을 견뎌내다 혹은 실패하고 혹은 살아남는지 그 진정성을 보여 주려 한 지도 모른다.

 

표정을 보니 무엇인가 꼭 전할 말이 있는 것 같아.

이승에서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거지.

 

어쩌면 진짜 가해자는 사라지고 또 다른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리기도 하는 경우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저자처럼 주인공처럼 끝까지 은폐되고 조작되는 진실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다면 연약하고 불안한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이겠는가를 저자는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추리 과정을 망치지 않기 위해 내용 소개를 마감하며, 마지막으로 댄스와는 떨어질 수 없는, 따로 갈 수 없는 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보너스처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장면들에 등장하는 음악들이다. 음악만은 상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등장하는 음악들을 찾아 플레이한 상태로 읽어 나갔다.

 

그저 익숙한 우울인지 체력이 더 저하되어서인지 매번 뭐가 원인인지는 모르고 견디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라틴아메리카 음악 Bachata, 기타와 퍼커션이 친밀한 파트너로 어우러지는 부드럽고 경쾌하고 감미롭고 매혹적인 리듬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노래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삶을 흥분시켰다.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다. 

오랜 기간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숨 쉬어 온 축복이고 축제였다.

 

장편 소설다운 묵직함, 고단하지만 해결의 희열이 중첩되는 스릴러 소설의 추리과정, 그리고 흔치 않은 소재인 음악과 댄스의 페어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에게 확실히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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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만두를 먹는 가족
이재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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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만두와 가족이 등장하니 따뜻한 생활밀착형 이야기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이야기의 도입부가 채 지나지 않아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영양’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소재가 나에겐 너무나 강렬하고 충격적이라 심하게 놀랐다.


여성과 아이에 대한 폭력이 등장하는 미디어물이나 문학작품을 감상하지 못한 지가 꽤나 오래 되었고, 의도적으로도 소비하려하지 않는다. 현실의 가혹함과 범죄 수위가 절망적일 만큼 높기 때문이며 정서 상 그런 장면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심약한 독자로서 자주 만날 수 없는 ‘하드하기 그지없는’ 이 작품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영양만두의 재료로 사용되는 ‘개’의 환경과 물론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개공장, 식육업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이 책의 주요 살인 사건이 제대로 전개되기도 전해 마치 각오하라는 듯이 펼쳐져 있다. 그저 글자들일 뿐인데 이토록 음산하고 야만적일 수도 있다니. 문장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몸서리가 처지게 오싹했다.


“평생 개장사를 하니까 말이야. 개가 때론 사람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사람이 개로 보이기도 해. 요즘 사람들은 개를 개같이 키우지 않고 지 새끼처럼 키우잖아. 개장에서 사는 꼬락서니로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고.” 47


그 고비를 넘으면서 책을 덮지 않았다면 드디어 가족 수가 많은 한 남성이 살해된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데, 평소엔 아름다운 것만 보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타입이 아닌 나로서도 전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세계였다. 어찌나 무시무시한지……. 이런 세상은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평생 모르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오죽하면 쓸쓸하고 적막한 주인공의 삶이 무척이나 인간적이게 느껴질 정도이다. 짧디 짧은 문장을 연결해서 속도감 있게 할 말 다 하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고 그 덕분에 몰입이 깨지지 않아서 숨을 거듭 멈추면서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미스터리의 구조가 아니라 분위기로 이렇게까지 독자를 겁먹게 할 수 있다니……. 물론 내가 겁쟁이가 그런 것뿐일 수도 있지만……. 이런 현실이, 유사한 현실이 실재할 것만 같은 분위기와 그것을 태연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그저 소개하는 작가의 태도에 더 겁을 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보통 용의자 중에서 누군가는 범인이 아니어도 알리바이가 애매해야 되잖아. 그런데 알리바이가 완벽한 게 이상하지 않다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 거잖아.”

“이상하다는 거야 안 이상하다는 거야? 중략.

“신인범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죽느샤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는 게 문제지.” 168


이 대사가 복선이기도 한데, 실제 살인 사건은 간단한 구조가 아니었다. 전개하는 도중에 처음으로 짐작할 수 있는 해법도 충분히 끔찍한데, 최종 결말에 이르면 작가는 기어코 바닥을 한 번 더 부수어 보겠다는 식으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신뢰까지 싹 걷어 치워버린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입니까? 그것도 한때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청춘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저는 최소한 그런 인간은 아닙니다.” 182


원한이 깊은 것도 아니고 그저 확실한 이익을 위해 이토록 흉악해질 수 있는 인간 세계, 발췌 내용이 많아서 미스터리를 망치는 건 아닌가 싶지만. 마음이 콕콕 찔리는 듯 따가웠던 구절들을 홀린 듯 다시 읽어 본다.


“탈은 보통 사람 얼굴하고 다르잖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글쎄요.”

“사람들이 평소 탈을 쓰고 살잖아요. 탈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탈 안에 있는 진짜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132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이유를 말해봐야 이유가 되겠냐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한테.”

“그래도 가족이잖아.”

“가족은 개뿔…….” 232


심기가 굳건하고 소설은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고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 강렬하고 팽팽하고 쌩쌩 결말을 향해 달리는 소설이 드물게 큰 즐거움일 거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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