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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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길게 쓸 수밖에 없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 파스칼

 

“너는 단편소설을 쓰고 싶었던 거잖아. 짧아져야 감동적인 거야. 너저분하게 늘어놓아서는 안 돼. 단편소설은 시를 쓰듯이. 알았냐?” - 소설을 잘 쓰려면. 57

 

800-900쪽이 장편 소설도 반갑게 읽는 옛날(?) 사람인 나로서는 어쩌면 장편소설에 더 익숙할 지도 모르지만, 경애하는 몇몇 작가들의 소설집에서 읽은 단편소설들의 매력은 충분히 즐겁게 읽기도 했다. 이 저서에서 다루는 작품은 일반적인 단편 소설보다도 훨씬 짧은 초단편소설, 플래시 픽션이나 엽편 소설이란 불리는 -1,000자 혹은 2,000자 내외- 작품들이다. 나는 이 책에서 플래시 픽션을 처음 읽는 셈인데, 운이 좋게도 25편이나 실려 있어 분위기와 형식에 익숙해지기에는 충분한 분량이었다. 읽으면서 익숙해질수록 매력이 더 잘 보인다.

 

그나저나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이란 여섯 단어로 이루어진 소설을 헤밍웨이는 참 기발한 천재인 듯. 단순한 글자 수만이 아니라 이렇게 최소한의 상황, 비유, 인상을 활용하는 ‘플래시 픽션 Flash Fiction’이다. 어쩌면 아이들도 나도 만약 정말 소설을 기어코 쓰고 싶다면, 이 방법이 해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고 마침내 희망을 찾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결코 흔하지 않은 소설론이다. ‘소설들’을 보여줌으로써 ‘소설’을 설명하는 방식이랄까. 기존의 작법서를 읽을 엄두가 안 나는 이들, 읽어봐도 거기 쓰여 있는 언어의 형식들과 소통할 수 없는 이들에겐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좋은 책이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이 책을 읽고 바로 소설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정관념이 시원하게 깨어지는 경험은 더운 날 시원한 물 한잔처럼 그런 상쾌함이 있는데, 이 책의 내용 중 특히 구성에 관한 개념이 그러했다. 이야기에 시동을 거는 첫 부분을 ‘발단’이라 명명하고 속도를 기대하지 않고 비교적 차분히 읽어가는 내용이라 늘 생각했는데, 작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한다. 9회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서 던지는 공이 소설의 ‘발단’이라고 한다. 마치 ‘절정’이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한데, 저자는 ‘소설의 시작과 이야기의 시작’을 구분한다. 또한 ‘절정’은 절벽이 되어서는 안 되며 결말로 가는 길을 반드시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것! 따라서 최종 승부는 절정이며 결말은 환호라고 한다. 따라서 훌륭한 절정은 결말로 가는 좁지만 분명한 길을 마련해둔다고 한다.

 


<변신>, 인간이 벌레가 된 이야기, <좌와 벌>, 한 청년이 노파를 살해한 이야기, <안나 카레리나>, 한 여자가 자살한 이야기. 이렇게 한 줄로 말할 수 있잖니, 그런게 소설이야. 56

  

한 마디로 줄여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설이다. 한 마디로 줄여 말했는데 그게 재미있어야 영원한 소설이다. 61

 

우리 집 꼬맹이들이 자신들이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며 고생한(?) 이야기들과 기분들을 이야기책으로 만들어서 남길 거라고 하는데, 그 얘기를 듣고 부러운 기분이 가슴 속에서 뜨겁게 솟았다. 소설이 무엇인지, 소설작법이 무엇인지, 그런 걱정 안 하는구나. 기성/기존의 절차와 형식에 대한 존중/존경은 있어도 해될 것 없으나 확실히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위한 새로운 창작의 길은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뭐, 결과는 꼬맹이들 창작물을 읽어보고 난 뒤에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지만.

 

늘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지만 - 아버지가 대학교 교수였는데도 불구하고 - 정보 부족으로 문예창작과가 아니라 국문학과에 들어가서 기대한 분위기가 아니라 당황했다던 오래 전 친구가 생각났다. 벌써 소설을 출간했는데 내가 과문해서 모르는 것인지, 어딘가에서 이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꿈을 찾아 그 길을 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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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돌에 쉬었다 가는 햇볕 한 자락
장오수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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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창작품이란 없다고 하지만, 어떤 작품들엔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이 아니라 일상의 애환들이 진하게 묻어 있는 글들이 있다. 때론 이런 글이 좋고 때론 저런 글이 좋은 것은 늘 그 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라 감상이란 언제나 상황에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


​일상을 잃어버렸거나 혹은 유보했거나 아님 그저 낯선 다른 일상을 살 뿐이지만, 어쨌든 병리적 이유와 과정으로 맞닥뜨린 시간에는 ‘평범했던 일상’이라는 것이 그리워서 울컥 마음이 쏠린다.

 

 


특히 장오수 시인의 일상이 스며든 시어들을 많이 등장시키는데 이는 현재의 내 일상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남은 일상도 불러들인다. ‘섬돌’은 조부모님이 계실 때 본가의 고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고, 기억 속엔 늘 햇볕에 따뜻하게 달궈진 반짝이는 모습으로 떠오른다. 이렇게 밖에 기억 못하던 그 장면이 시인의 언어로 시집의 제목으로 나타나 반가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보았다.


인간과 인간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이마다 자연의 모습들이 끼어든다. 그 중에는 부부싸움도 있다. 마치 새벽 찬바람이 싸움을 화해로 바꾸는 역할인 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전개가 포근하다. 다른 작품에선 작가의 경륜이 느껴지는 시선이 드러나 있고, 때로 그 시선은 시의 형식이지만 지나온 세월과 고단함과 감정과 일상과 미래에 대한 준열하고도 객관적인 독백으로 흐른다.


62편의 적지 않은 3부작 시집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군더더기도 화려함도 없이 짧았다는 느낌이 드는 시집이기도 하다. 부분적으로는 시인의 깊이와 층층을 다 이해하지 못한 나의 독자로서의 얕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다음에 다시 읽으면 다른 이야기가 들리기도 할 것이다.


하루 만에 만 명씩 확진자가 늘어나는 나라, 하루 밤에 수백명씩 사망하는 나라, 그리고 끝없는 격리, 격리……. 이 모든 것이 가짜뉴스도 아니고 오보도 아니고 하루만 겪는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점이 오늘도 충격적이고 끔찍하고 두렵고 화가 난다.

 


내 일상도 남의 일상도 귀하디귀한 그리운 대상이 되어버린 지금, 시인이 겪어온 일상도 내가 지나쳐 온 모든 시시한 일상도 참을 수 없이 아깝고 간절했다,는 기분으로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읽었다.


* 포스팅에 올린 시들은 전문이 아니라 모두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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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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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이들을 쳐다보고, 그들을 알아가고, 그들의 눈에 들기 위해 몰두하느라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말지. 그래서 그들과 멀어지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고. 70

 

그런데 저는 알고 있답니다. 이 작품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 소설은 제가 다시 길을 되찾고 좀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해주려고 그 해변까지 온 거예요. 때때로 서로 만날 수 밖에 없는 책과 독자가 존재하잖아요. 84

 

우연히 머문 호텔방에서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설의 원고가 발견되다니. 그리고 이토록 낭만적인 소재가 실화라니. 유럽에서 내가 머문 모든 곳의 서랍에는 성경이 들어있거나 텅 비어 있었다. 뭔가 억울하고 부러워 속이 살짝 상하는 기분이다. 심지어 프랑스 남쪽 해안 땅끝마을은 내가 가주 가던 영국의 땅끝(Land's end)과 명칭도 유사하다. 그리고 보니 나는 한국의 땅끝마을도 방문한 적이 있다.

 

문득 든 생각 하나, 한국에서 이런 원고가 발견되었다면 원고가 원작자를 찾아가는데 이렇게 온갖 이들을 거치며 사연이 쌓이고 세월을 보내고 결국엔 기적처럼 도착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풀리진 않을 것 같다. 세계 누구 못지않게 남의 일이라도 도와 줄 여력이 조금만 있다면 열심히 돕고 우편제도 또한 빠르면서도 정확하고 온라인 네트워킹으로 범죄도 고발하고 추적하는 1인 탐정들과 맞먹는 재능과 호기심을 가진 한국인들이라면……. 발견된 다음날 원작자에게 연락이 닿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상상을 하니 그 또한 유쾌해서 웃음이 났다.

 

다행히(?) 이 일은 캐나다에서 시작하여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라 무려 33년 동안 시간을 충분히 들여 훈훈하고 인간미 있는 사연들이 쌓일 동안 원고는 각지를 여행하게 된다. 물론 그 오랜 세월 동안 원고에 쓰인 이야기에 감동하고 원작자를 존중하는 문화를 이어가며 남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들의 모든 참여가 사랑스럽다.

 

소설이 당신 손에 들어간 걸로 보아 아무래도 그녀의 과거의 흔적을 청산하고 살아가는 모양이군요. 만약 그녀를 다시 만난다며, 우리의 논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독서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제게까지 전염됐다고 전해주십시오. 무엇보다 저는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바위에 붙어 있는 고둥처럼 이곳 수감자들에게 들러붙은 만성적인 우울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190

 

사방이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격리되면 그 안의 사람들은 바깥세상을 잊고 말죠. 세상에서 추방된 것처럼 느낀답니다. 이러한 단절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가혹하게 관찰하고,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오직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되어 보이는 그림자만이 자신을 볼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함께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지요. 그리고 이를 대면할 때마다 자기성찰을 하며 결점을 지닌 낙오자의 기괴한 모습을 끄집어내고 말죠. 그러니 어두운 좌절이 자신에게 내려앉지 않도록 하는 해결책은 단 한 가지입니다. 도서관에 가는 것. 236-237

 

도서관을 가는 일도 삼가야하는 일상이 된 현재, 나는 매일 무엇인가를 읽고 쓰고 있다. 며칠 되진 않았지만 오전 중에 새로운 책을 읽고 있지 않으면 오후가 되어 무척 초조해진다. 새로운 중독의 형태가 아닌가, 이런 집착이 꼭 옳은 일이 아닌 것도 같지만, 아직까지는 적어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어쩌면 눈 돌릴 길 없는 불안한 현실에서 적어도 책을 들여다보는 순간은 잠시나마 다 잊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몰입도가 뛰어난 이야기를 읽고 나면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고 차분해진다. 자고 일어나면 뉴스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서 다시 금방은 해결되지 않을 지극히 비현실적인 현 상황 속에서 불안과 우울이 차오르긴 하지만.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들을 편지봉투들과 함께 모아 두었다. 내가 써 보낸 편지들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받은 편지들을 통해 일부의 내용을 기억해 낼 수도 있다. 손글씨라는 건 확실히 실체감이 생생해서 문서 폰트로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 상대방의 모습, 분위기, 성격 등등을 다시 떠올리게도 만든다. 오래 만나지 못한 이들은 내가 변했듯이 그들도 기억하는 그 모습은 아니겠지만.

 

시절이 이러니 염려와 그리움이 증폭되는 이들도 있다. 그 중 주소지가 아직도 일치하는 이들에게 오랜만에 다시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띄워 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나에게도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들을 보내달라고 졸라보고 싶기도 하다. 비록 그 편지들이 코로나를 물리치고 일상을 되돌려 받진 못해도 이 책의 편지글들처럼 누군가의 삶에 선한 영향을 주기도 하고 작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나의 사소한 구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저녁 따뜻한 불빛 아래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펴고 펜을 뜨겁게 잡고 아픈 마음을 펼쳐서 편지를 받는 이들이 다치지 않을 말들을 골라내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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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웃음의 나라 -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
정병호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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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단어는 없는데 쉽게 상상이 안 되어 어려운 제목이다.

 

아마도 내 여권을 들고는 자유롭게 방문할 수 없는 나라라서,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는 곳이라 그럴 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본 적 없는 북한과 만나본 적 없는 북한 사람들이 나는 만나기도 전에 이미 낯설기만 하다. 언어가 같으면 - 마치 혈육에 대한 모든 신비주의적 믿음처럼 - 무작정 더 가까울 것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나는 같은 언어를 쓰는 타인들과 전혀 이해하고 이해받지 못했던 경험들이 있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금방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뿐 아니라 깊이 이해받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들여다보이는 이들을 만난 적도 있다.

 

그러니 그 오랜 세월을 공식적으로 ‘주적’으로 언명하고 적대적 감정을 의식화하는 교육을 받은 남북한 서로가 과연 분단선, 휴전선만 물리적으로 사라지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일은 정말 최선이자 바람직한 것일까.

 

 

애초에 실향이나 이산의 아픔을 겪은 당사자나 후손이 아니라 관념적인 수준에서 맴돌며 그나마 해온 생각도 점점 차갑게 멀어져간다. 그래도 남북정상적십자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을 비쳐준 영상들은 깜짝 놀랄 만큼 몸짓 하나가 다 유의미해 보였고, 그동안의 모습들이 얼마나 지난하고 낯 뜨거웠는지 미래세대는 그 세월을 웃으며 서로 얘기할 종전과 평화의 방향이길 기원했다.

 

경험도 이해도 비교할 이가 별 없을 듯한 영역이라 경력과 노력과 재능이 합해진 저자의 글이 당연히 독보적인 현장성과 흥미와 - 그동안은 종합적으로 판단할 양이 모자라기만 했던 - 정보량이 풍부할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그토록 단단한 공정성을 지닌 채로도 이토록 따스한 연민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우선 놀라웠다. 문화인류학이란 원래 인간에 대한 호기심만이 아니라 연민도 애정도 많은 건가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한 개인의 의견이나 적용 가능한 이론보다는 현장의 모습들이 제일 궁금했는데, 수많은 현장의 섬세한 묘사들이 가득한 점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살면서 깨닫게 되는 놀라운 점들 중 하나가 한 번도 애써 ‘고정관념들’을 확립하려 노력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 빠짐없이 끼어들어 기어코 스스로에게 방해를 받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역시 책을 읽으며 빈약한 고정관념들과 편협한 사고들을 스스로 짚어갈 수 있어 감사한 일이었다.

 

그리고 보니 나도 ‘그때 그 시절’엔 반공포스터를 열심히 그린다거나, 북한에 눈이 빨갛고 이가 날카로운 늑대들과 괴물 돼지가 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커서는 북한 사회에 대한 인상이 본인들이 내세우는 ‘주체성’과는 달리 ‘주체적인 사고’가 부족한 전체주의 사회로 고정되었다. 가짜정보와 이해부족과 연민부재 기타 등등의 빈약한 인상주의 합작품이랄까.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 정치와 정치를 하는 사람들 이야기, 문화인류학자가 아니라 현장 실천가로서의 생생한 공감들이 잘 드러난 내용들도 아주 유익하다. 나는 문화인류학이란 식민지쟁탈전과 자본주의 시장 확대의 시기가 지나고 시대성이 거의 소멸되었다고 내심 과거형 유물형 학문이라고 얕보는 속마음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북한은 그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기도 하겠다. 물론 많은 이들이 살아가는 곳이니 행여나 존중심을 잊고 대상화하는 일은 금물이지만. 내 좋은 한 친구는 북한관련 - 새터민 패널들과 드라마 등등 - 방송을 몇 개 알려주며 거기서도 생생하고 재미난 얘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하는데, 다른 수다를 떨다 그새 제목들을 모조리 까먹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남녀북남?

 

아는 것도 배운 것도 즐기기만 하고 정책화하고 현실화할 아무 의무가 없는 독자라서 진심으로 속편하다. 많은 분들이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정책을 구상하고 제안하고 실행하느라 고된 근무를 하고 있겠지만 - 다른 분들에 비해 비교적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강경화 장관을 볼 때마다 반갑고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 마음이 덜컥, 걱정이 된다. 그레이 헤어는 그 멋을 더할 뿐이지만 점점 패는 볼과 안색이…… - 매번 미루어 그 고됨을 잠시 짐작해보곤 잊는다.

 

내용이 낯설기도 흥미롭기도 유쾌하기도 불쾌하기도 애잔하기도 화가 치밀기도 했다. 어쩌면 모든 사회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군가에겐 비슷비슷하게 이러저러할 지도 모른다. 그 모든 노고로 쓰인 냉철하고 지적인 내용을 다 지나 다시 저자의 마음이 울리는 것 같은 구절로 돌아와 본다.

 

무기를 내려놓게 하려면 우선 그 마음을 알아주어야 할 것이다. 13

 

개인적 자선과 마찬가지로 국제원조도 대상국의 상태와 실력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참혹한 모습으로 도움을 청해도 가난한 걸인에게는 동전을 던져줄 뿐이다. 입성이 반듯하고 갚을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는 단위나 지원 방식이 달라진다. 실력과 배짱이 있는 상대가 '나'를 해칠 수 있는 힘까지 가지고 당당하게 요구를 한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대기근 상황에서 발사한 미사일 광명성은 바로 그런 길을 가기로 했다는 선언으로 들렸다. 24

 

외교도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 어쩌면 당대의 연민 가득한 인문학자들이 이 길에 함께 하며 출판한 책을 읽을 기회가 올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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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자들 스토리콜렉터 82
아나 그루에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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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쯤 뒷면 나는 살인자가 된다.

 

물론 내가 훨씬 이전부터 더 꼼꼼하게 고민했더라면 이런 상황에 빠지지도 않았겠지만, 그랬더라면 오늘 저녁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짓 따위는 하지 않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겠지. 그리고 릴리아나는 그야말로 천만다행이었다는 것도 모른 채 계속 살아 있었을 텐데. 10

 

생각을 억제한다. 이래선 안 된다. 과제를 끝내야 한다. 12

 

<이름 없는 여자들>은 불법 채류자 외국인 여성의 이야기다. 청소하다 살해당하고 이름도 사는 곳도 국적도 모르는 한 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플레밍 수사관과 단의 일주일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복지선진국이라 불리는 북유럽 - 특히 덴마크 - 의 실상과 사람들의 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외국인 여성 노동자를 둘러싼 거대한 불법 거래 네트워크(Human Trafficking)는 어디까지 뻗어 있을까? 의지할 곳이 없고 생계 해결이 절박한 이들은 자신을 도와준다고 생각해서, 혹은 그것이 유일한 동아줄이라서 그 손을 잡지만, 사업의 본질과 성격상 그 끝은 수많은 폭행과 죽음이다. 왜 그걸 모르냐고 피해자들을 안타까워하는 한편 한심해할 수도 있지만, 사소한 희망이라고 필요한 이들에게 해결책 없이 정신 차려라, 현실을 똑바로 보라, 는 말만큼 안 먹히는 것도 없다.

 

생계에 도움이 안 되는 그깟 이름은 없어도, 일자리와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해 준다면 일정 정도의 착취는 정당한 것인가. 자신의 나라 덴마크에 대한 포장 의지가 전혀 없는 작가의 의도에 부응한 이야기 전개에서 섬뜩할 만큼 다른 인간을 사물화하고 대상화하는 이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 여성들은 모두 세 가지 공통점이 있었죠. 외국 여성이라는 것, 크리스티안순에 몰래 숨어 산다는 것, 그리고 덴마크에서 추방당할까봐 무서운 나머지 어떤 형태든 관청에 도움을 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295

 

이곳이야말로 그런 여성들이 도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도시 아닌가요. 사회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395

 

코로나19로 인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제대로 조망 받지도 축하받지도 못한 3.8 여성의 날에 헛헛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해서 때론 시시한 이유들로, 때론 그냥 우울해서 손에서 자꾸만 놓았다 태풍급 강풍이 인간들이 만든 것들을 뒤흔드는 소리를 들으며 겨우 다 읽었다.

 

주제가 무겁지만 사회고발르포가 아닌 추리소설이라 트릭들을 푸는 재미도 있고 전체적으로 작가가 고발하고자 했던 의도를 범죄 이면의 이야기를 만나면서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 전개 속도에 따라 하나씩, 혹은 부분적으로 여러 개의 범죄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해결의 실마리를 주거나 중심에서 해결하는 이가 존재한다.

 

교차 방식으로 등장인물들의 삶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는 내용이 공감과 동일화하는데 도움을 주며, 유별난 괴물이라기보다 친근한 정도로 평범한 캐릭터들이 현실감을 더 하는 차분하면서도 치밀한, 가끔 바람 소리를 무시하고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소설이다.

 

한 때 외국인 여성으로 덴마크 코펜하겐에 근무한 적이 있어 그때는 전혀 몰랐던 작가가 반갑기도 했다. 민주적이고 복지제도가 훌륭하고 평등사상이 일상화된 그곳에서 ‘우리’가 아닌 ‘타자’를 대하는 분리주의적 방식을 드러낸 소설이 엄청나게 널리 읽히고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읽었다. 문제점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완벽한 사회란 어디에도 없을 터라, 그래도 비판과 고발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위험해 보이진 않는다.

 

공동 생활권으로 묶여 더 이상 딴 나라 사정이 남의 일이 되지 않는 이런 시국에 함께 사는 방식과 가치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기에도 적당하고, 마음이 한시도 편하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시기에 재밌는 추리소설 작품을 읽는 계기로도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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