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맏형의 6070 음악감상기 - 그 시절 심야 라디오 음악방송의 추억의 노래들
김경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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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정리를 이유로 원목으로 CD장을 세 개 맞췄다. 분명 주문 전 집안에 있는 앨범을 미리 다 세어 두었는데 결국 수납공간이 부족하다. 앞으로 매일 하나씩 다시 들으려면 몇 살까지 살아야하나. 왜 이렇게 많이 샀나. 한 때는 대단한 기쁨이었는데……. 온갖 상념들이 지나갔다.

 

어쨌든 정리는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가지고 있는 음반을 다시 찾아 들어보면서 그야말로 레트로한 시간을 누렸다. 그 와중에 사치스러울 정도로 기능 오버인 블루투스 스피커를 홀린 듯 구입…… 후회막급은 아니지만 꼭 필요하진 않았다. 코로나19 스트레스 자가치료행위로 눈감아주기로 했다.

 

“그 날 선약이 있어서 못갑니다.”란 세상 쿨한 이유로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 불참한 밥 딜런 음악을 들으며, 한국 포크 가수들과 라디오 진행자들은 왜 그 시절 사이먼 앤 가펑클을 끝없이 그리 틀어댔나 뒤늦게 뜬금없이 맥락 없이 울컥한다.

 

오랜만에 칸초네, 샹송, ‘눈이 내리네 Tombe La Neige, 아다모Adamo’를 들으니 눈 구경 귀했던 지난겨울이 새삼 서운하고, 어릴 적 추운 줄 모르고 행복했던 눈(으로 하는)놀이들도 그립게 떠오른다.

 

그리고 아비의 ‘One summer night.’ 겨울에 태어난 탓인지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는 늦가을부터의 봄이 오기 전의 계절을 가장 사랑하지만, ‘여름’ 노래를 들으면 예외 없이 가슴이 마구 뛴다. 한여름 밤의 열기와 공기와 수많은 생명체들이 한꺼번에 만들어 내는 소리들은 마음속의 북이 둥둥 울리듯이 그렇게 전율스럽게 느껴진다.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음악이 시작되자 자력으론 빠져 나올 방도가 없다. 머릿속까지 파고들어 울리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한 몫 한다. 한 곡에 꽂혀서 열 번도 더 듣기도 한다.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버리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러다가는 책은 절대 다 못 읽는다. 어머니가 합세하여 시간이 더 길어진다. 페티 페이지 노래들을 몰아서 이렇게 들어보긴 처음이다.

 

이제 1971년, 양희은, 송창식, 윤형주, 김민기...... 신중현, 산울림, 사랑과평화, 대학가요제...... 그리고 ‘그대에게’ 강력한 마약과도 같은 신디사이저의 시작……

 

끝없이 가수들과 음악들이 소환되고 나의 그 시절도 끊임없이 뒤따라 나온다. 심지어는 첫 번째 ‘마이마이’까지 기억에서 튀어나온다. 너무나 좋아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려서 앨범에 남겨 둔 미니카세트라디오.

 

음악은 언제나 이토록이나 강력하고 위험하다.

60-70년 대 당대에 음악이 탄생할 때 동시에 즐기진 못했지만, 만들어진 음악은 사라지는 법이 없고 들은 음악 역시 잊히는 법이 없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끊임없이 인터넷에서 음악을 찾아가며 오랜 시간을 들여 완독을 하리라 짐작해본다. 20년 간 동안 널리 사랑받은 다양한 장르의 국내외 음악 목록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느낌과 감정들을 한 권의 책으로 기록한 독특하면서도 가치 있는 기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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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지구 벙커X - 강영숙 장편소설
강영숙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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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개인은 특정 장소에 대해 다소간 독특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것은 각 개인이 장소를 각기 다른 시공간적 계기를 통해 경험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그 장소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에 색깔을 칠하고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개성, 기억, 감정, 의도를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조합하기 때문이다.


-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시각이 아주 중요한 종합예술인 영화에서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통해 해석 이상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경우들이 있다. 최근 가장 유명한 영화라면 역시 <기생충>이 있다. 지나보니 그렇더라~ 정도의 생각일 뿐이지만, 어째 근래 재난과 지하공간이 등장하는 문화매체들과 코로나19가 창궐한 영화였으면 좋았을 현실!이 뒤섞여 비슷한 모습으로 내 삶에 들어온다. 특히나 이 책은 재난과 지하공간을 모두 소재로 삼아서 읽으면서 참……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훌륭한 창작품인 걸 알지만 순간 르포를 읽는 감정이 차오르기도 했다.

 

2006년 영화 괴물에서 괴물과 접촉한 이들에게 지나치게 단호한 태도를 보이던 방역복을 입은 직원들은 전혀 현실감이 없었는데, 이젠 화면 속 의료진과 방역직원들의 방역복이 부족하지 않고 안전해야 할 텐데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만 든다. 겨우 14년만이다.

 

부림지구의 벙커는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핵전쟁 시 한시적인 생존을 보장해주는 완벽한 지하아파트같은 벙커가 아니다. 침구도 욕실도 침구도 없는 벌레와 쥐가 들끓는 어두운 공간, 지하에 버려진 관광버스 내부이다. 그리고 소설 속 정부는 어떤 지원도 하지 않고 방관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견디며 살아있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도 죽은 아내의 도움을 받은 그 늙은 운전사처럼,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 살아가겠죠.

누군가가 우리를 보호할 겁니다.

나는 그렇게 믿어요. 234

 

전염병의 영향 아래 있지만 비교적 아직은 안전한 장소에서 단지 가끔 소리를 막 지르고 싶은 갑갑증과 무력증에 빠지는 현실도 당사자에게는 고통이고, 이런 변명에 힘을 싣기 위해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안간힘을 내어 끝날 때까지 편히 쉬는 한순간도 없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지친 얼굴들을 매일 떠올린다고 말한다. 마스크 땜에 힘들 때는 마스크를 너무나 장시간 착용하고 환자들을 돌보느라 상처투성이, 밴드와 붕대투성이가 된 의료진을 떠올려본다. 지금은 저 먼 곳의 달라이 라마보다 더 맑고 깊은 눈빛들을 한 땀벅벅인 그들을.

 

그제는 마스크 공장에도 자원봉사자들이 달려가 일을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해란 무엇인가. 어린아이들 표현대로 정말 지구는 아픈 걸까. 재해 상황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재해가 과연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모든 걸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재해 시 사람은 얼마나 인간적일 수 있을까. 297

 

한 번도 내 이익을 완전히 내어놓고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어쩌면 이 시절만이 아니라 평생을 더 노력했던 다른 이들의 도움에 의지해 살아온 것일 터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면 짜증과 울화로 가득한 못난이에서 지극히 사랑받는 이처럼 마음이 살 풀리고 기운이 조금 난다.

 

이런 시기에 힘이 되어주는 이들에 대한 자각이 아무리 진심이라 하더라도 결국 질량에 따라 중력이 제각각이듯, 같은 정도로 보답할 일은 요원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나도 내 일상에서 끝까지 힘껏 버틸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소소하더라도 함께 할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어젠 손석희/양준일 인터뷰 내용 중에 양준일이 미국에 있는 동안 쓰레기를 계속 버리며 살았다고, 자신 안에 있던 쓰레기를 계속 버렸다고 한 말이 다시 기억났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불리는 격리된 상황을 기회로 안팎으로 버리고 닦고 재정리를 해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이 처음 살아보는 새 날이지만 어쨌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지금인 것 같다. 정리를 시작하자.

 

뜻밖에 일어난 재난은 어떤 계급이나 격차를 한순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재난과의 동거는 늘 더 어려운 쪽의 몫이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재해가 나기 전부터도, 지금도, 평생 동안 재해를 앓듯 살아간다.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모두들 그저 묵묵히 살고 있을 뿐인, 그림자 같은 착한 사람들이 이 소설에 있다. 나는 부림지구라는 허구적 공간 안에서 그들의 조용한 움직임을 따라 다녀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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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상처만 남진 않았다
김성원 지음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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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왜 유일한 희망인지 알고 싶어서 글을 쓴다.

연결이 구원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글을 쓴다.

어느덧, 글을 쓰면서 괴롭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지나가던 바람이 변하고 산과 들의 향기도 변하고

마음의 어둠은 빛으로 변하였다.

모든 것에 감사하다.

 

무게감이 맞춤하고 표지가 마쉬멜로우처럼 달콤하고, “돕고 싶다, 누군가 필요한 이들에게 가 닿고 싶다” 말하는 문장들이 저자의 진심을 뚜렷하게 드러내주는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는 에세이글이다. 자주 멈추며 읽다가 마지막 장을 읽고 다시 1장으로 돌아왔다.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이 현실감을 더하면서 메시지의 깊이를 더하는 장점이 있는 나머지 장들의 내용도 더할 수 없이 마음에 들지만, 저자 자신의 고민과 사유가 더 많이 드러나고 정돈된 1장의 내용을 다시 한 번은 더 찬찬히 읽어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든 내가 지나온 시간과 경험과 기억과 교차되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스파이로 그럭저럭 살고 있는데, 이상한 임무가 주어졌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을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말 어려운 임무였다.

당시 나에게 남아 있던 인류애는 소멸 직전이어서 거의 모든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을 미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19

 

아주 오래전 일이기 하지만 화도 많이 나고 실망도 크고 희망도 없다고 생각한 탓에, 이 따위 세상 다 망해버려라! 진심을 꽉 채워 분노한 적이 있다.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상주의가 강한 젊은 날의 막바지에 특히 그랬다. 이후 노력과는 별개로 사는 일이 그다지 깔끔하고 모양새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좀 더 폭넓게 받아들인 후 그래도 노력하며 사는 우리들과 모두들에게 애틋한 마음이 자라났다. 그런 시절의 마음 한 조각이 이 구절에서 상기되었다.

 

선과 악의 경계는 그리 빡빡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쁜 사람들은 나쁜 선택을 한다. 그런데 그들이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좋은 일을 하게 될 때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을 의도의 역설이라고 부르겠다. 오래전 절망에 빠졌을 때, 신문기사를 보면서 이런 의도의 역설에 해당하는 사건을 찾는 취미를 개발해냈다. 오죽하면 그랬겠는가. 아무튼 그 취미가 나에게 다시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24

 

지금도 그렇지만 좋은 소식보다 범죄 소식이 잘 팔리는 언론의 속성 상 기사나 보도만 계속 보고 산다면, 왜 다들 자살을 하지 않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절망적이고 폭력적인 세상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이다. 언젠가 조금쯤은 진심을 담아 자본금이 모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돕고 선한 일을 하고 자기 희생을 하고 사는지 그런 소식지를 만들자고 친구들과 호언했는데...... 지금은...... 아직 세상이 망하지 않은 건 내가 일일이 사연을 알지 못해도 그런 많은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분명한 증거라서 굳이 소식을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인지, 그 이야기를 술자리에서도 다시 꺼내는 친구가 없다. 어쨌든 희망이 되고 살 이유가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해보는 것을 언제나 응원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우리가 미워하는 타인의 성격이 내가 갖고 있는 인격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누군가를 괜히 미워하게 될 때마다 ‘반갑군, 또 내 자신을 만났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것을 인정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자아를 발견하는 여행길에서는 자신이 부서지고 말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곤 하니까. 37

 

데미안, 융 심리학, 그림자...... 나의 그림자는 무엇일까...하고 생각해 본다. 처음 융 심리학 Jungian Psychology 강의를 들은 건 정말 우연이었는데, 제임스 힐먼James Hillman이라는 유명한 미국 심리학자가 초대되어 강의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냥 수강을 했던 것이 계기였다. 강렬하고 재미있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전에는 심리학이란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는 자연계열 학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인문학적 가치가 충분히 수업 방식으로 활용되면서 해석도 가능한 인상적인 강의를 듣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아직까지 융의 분석이 다양한 사회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어 그것도 반가운 일이다.

 

악의 없이 유쾌한 사람을 만나면 전 인류가 정기적으로 그에게 세계 정신건강 유지에 대한 사례금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47

 

나는 대체로 특정한 부류의 유쾌한 이들을 좋아하는 꽤나 경직된 기호를 갖고 있고, 세월이 누적되고 나니 이 기호가 이젠 순간 처리되는 종합적 판단기준으로 기능을 하는 중이고, 직감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속도로 누군가에 대한 감성적 판단을 하게 된다. 물론 그 판단을 늘 공표하고 공개적인 태도를 정하고 관련 없는 대상을 존재만으로 비난하거나 괴롭히는 일로 전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불쾌 혹은 불편한 느낌이 드는 이와 친구가 되려고 애써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합리화의 영역이긴 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 다행인 것이 일정 시기가 지나 내가 그렇게 느낀 이유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사적 영역에서는 이런 판단을 거의 맹신하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이런 판단 태도를 완전히 사적인 것으로 둘 뿐 전도를 하지는 않는다.

 

심리학작 하인츠 코헛 Heinz Kohut은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어떤 관계를 통해 진정한 공감을 얻으면 ‘심리적 산소 psychological oxygen’를 공급받는다고 했다. 나는 이 표현을 좋아한다. 51-52

 

일단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는 있는데도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은 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표현을 이해할 것이다. 질식할 것만 같은 그 갑갑함. 그래서 가끔은 역으로 너에게도 나에게도 2차 언어로 소통하는 일이 훨씬 더 훨씬 편하다. 그러다 드물긴 하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처럼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존재가 전면적으로 부딪치며 만난 듯이 서로를 잘 이해하는 타인을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 희박한 확률의 완벽한 행복이 나머지 대부분의 불행한 시간들을 한 번에 무가치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의 말을 배워서 대화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중략. 내 언어를 다른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서 말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 성장의 과제였다. 54-55

 

이 미션은 생각보다 참 어렵다. 언어적인 소통인 동시에 비언어적인 소통 역시 한꺼번에 이루어지니까 가령 내 몸짓이 덜 호의적이라든가 시선처리가 미숙했다거나 집중이 덜 했다거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렇다고 나 안할래!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고, 매년 자신을 돌아봐도 어떤 분야에서도 ‘어른’이 되긴 영 그른 것 같아....... 소통을 잘 하는 이는 한없이 존경스럽다.

 

당신에게 꽃을 준 사람은 그 전에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다. 76

 

내가 배운 것 중에 다른 이들도 꼭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이런 호혜의 법칙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호의를 꼭 나에게 되갚지 않아도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들에게 언젠가 내어줄 수 있기를. 나는 기억 못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기억하는 것만 해도 무수한 도움을 꼭 필요한 순간들에 받고 살아서 한동안은 행운이네! 우쭐한 기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곱씹어볼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생생해서 제발 내게도 누군가에게 도움과 호의를 베풀 기회를 주세요... 라고 애원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기도 했다. 이는 또한 많은 철학자들이 다른 표현들을 써서 인간 사회의 윤리적 규범을 정하고 싶어 한 핵심 내용이 이것이기도 하다. 아는 구절이 몇 개 있지만 이 표현이 시각적으로 가장 예쁘다.

 

성취감은 짧은 순간에 지나가는 행복과는 다르다. 그것은 행복하지 않은 순간에도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는 의지의 확인이며, 인간의 하찮은 발자국이 위대함에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다. 중략.

​나아갈 수 있다는 것. 함께 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불확실한 세상에 던져진 고독한 인간에게 주어진 희망이다. 78-79

 

우리는 대한민국은 세계는 이런 한 시기를 견디고 있는 듯하다. 사방에서 매일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들려온다. 그러면 또 다급한 마음에 이런저런 도움이 될 계기에 동참하고 싶어 자잘한 개입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견디고 다른 이들이 견디는 모습도 지켜본다.

​분명히 지금도 어렵고 당분간도 어렵겠지만 비열한 정치공학과 매판언론들이 활개 치는 현실에서 이미 더없이 향기롭고 아름다운 인문의 정수와 같은 사고와 행동들을 목격하고 있다.

​행복하지 않은 이 순간, 그래도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며 그래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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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 동굴벽화에서 고대종교까지
전호태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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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관심 없는 듯이 한차례 휙 구석기 전시실을 둘러본 진석이 아직도 주먹도끼 무리 앞에서 얼쩡거리는 내 곁으로 왔다. 

  

첫 문장을 읽으면서 반가운 웃음이 나왔다. 우리 가족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산책하러 가면 늘 벌어지는 장면이다. 우리 큰 꼬맹이는 늘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유물을 어떤 재미난 상상을 통해 보고 있는지 다 보는 것에는 전시 속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몇 개의 유물 앞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목차를 보고 상상한 내용과는 너무나 재미있게도(?) 달랐다. 표준적 형식의 사상서도 철학서도 역사서도 아니고, “응? 고대인들이 진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문체 또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알려주는 형식이라 술술 읽힌다. 이에 더해 독자의 상상력만 활발하게 작동해 준다면 아주 재미있게 집중할 수 있다. 특히나 명칭 암기를 정말 못하는 나로서는 그런 류의 정보들을 제때 숙지하지 못하면 내용 파악에 자꾸 제동이 걸리는 건 아닐까 염려가 앞섰는데 다행히 그 능력은 요구되지 않는 글이다. 기쁘다!! 그보다도 당시에 살았던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통해 살아남고 살아갔을까. 결코 경험해볼 수 없는 시대를 1인칭 시점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맘껏 상상해볼 수 있게 마련해준 무대가 이 책이다. 

 

사실 선사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논리적 전개 과정이 더 복잡해진 것 말고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 우주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질적으로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 나는 확신하지 못한다. 5

 

Stories are all we have.


선사시대는 현재와 문명적, 기술적 차이가 아주 커. 그러나 이것이 현대인이 선사시대 사람보다 인지적으로 앞섰다는 걸 뜻하지는 않아. 현대인이 인지적 깊이에서는 오히려 대단히 원시적일 수도 있어. 탐욕과 편견에 깊이 물든 현대인이라면, 그 사람은 오히려 선사시대 사람보다 더 야만적인 존재일 수도 있지. 19


뇌과학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치스럽게도(?) 인간의 뇌는 선사시대보다 그리 더 진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혹은 그래서인지 인류 문명 - 과학을 포함한 모든 업적들 - 에 대해 실은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그 중 가장 말이 되는 듯한 그럴 듯한 이야기들뿐이라는 다소 자조적이지만 진실에 가장 가까운 말이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 그리고 그 상상력을 믿는 힘이라면 이 책을 통해 그 상상력이 구체화되는 과정을 잘 볼 수 있다. 특히 종교의 대상으로서의 믿음이 점차 현실화되는 과정이 나에게는 몹시 흥미로웠다. 

 

그러한 내용의 갈피는 아무래도 이 책을 완독하면서 맛을 조금씩 음미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분량이 많다고 벅찬 것은 아니다. 마치 우리집 꼬맹이들이 더 어릴 적에 내가 이렇게 말해줄 능력이 있었으면 재미난 대화가 되었겠다 싶은 말투이고 내용이다. 학생들을 가르쳐본 이들은 누구나 동감하겠지만 자신이 아는 것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자의 대가다움이 나는 이런 짧고 쉬운 문장들로 이어가는 대화들 속에서 느껴진다.

 

저 짐승들이 지닌 강한 힘, 뛰어난 능력을 누군가가 주었다면 그건 누굴까? 게다가 하늘의 별, 어디선가 불어오는 큰바람,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비는 어떻게 된 거야? 이 세상에는 사람과 짐승 말고도 뭔가 더 있는 것 아닌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불, 소리를 내면서 번쩍 거리는 저건 어디서 나온 거지? 저것도 누가 만든 거 아냐?

  

이런 의문이 쌓이고 쌓이다가 찾아낸 답이 ‘신‘아니었을까? 신이 있어서 만물에 능력을 주고,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을 일으키는 거지. 자연에서 보고 겪는 위대한 힘이 모두 신의 손길에서 나온다고 보는 거야. 짐승이 지닌 이상한 능력, 특히 하늘을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신이라는 존재와 연결하는 거지. 신이 돕지 않으면 어떻게 하늘을 날아다니겠어? 이런 식으로 묻고 답하는 거야. 34

  

취향이라는 것은 의외로 일관적인 부분이 있어서 나는 늘 통시적 관점을 가진 역사서를 선호하는 편이었고, 그 점은 젊은 적에는 그저 독서취향이었으나 나이가 들고 지적 능력이 비가역적으로 쇠퇴해짐에 따라, 한 번씩 신체건강검진을 받는 일처럼 적절한 순간에 사고의 얼개를 배열하고 정돈하고 연결시켜 주는 의학적 도움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이 조금은 환해지고 시원해지면서 이런 많지 않은 순간이 독서의 보람이라고 느낀다.

  

“깨는 것과 갈고 벼리는 것 사이에 시대의 경계가 그어졌다.” 50

  

물론 이 시대 구분을 지나 이후 청동기 시대 이후 무기와 연장은 보다 복잡한 지배/피지배 관계를 성립시켰고, 생산방식과 체계 전체를 공고히 하여 일반화시켰고, 전쟁의 규모를 키우고, 제국의 출현을 가능하게 되었다. 이때쯤 되면 제국의 강인한 영웅 스토리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 중 하나는 아마 이름은 다들 들어봤을 주몽 신화이다. 그리고 강력하고 무시무시하고 불가역적인 철기.

  

철기는 사람들을 강하고 자신있게 만들었지. 쇠로 된 농기구를 지니게 된 농부는 농부대로, 쇠로 된 무기를 갖게 된 전사는 전사대로 자연의 수목과 짐승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났어. 중략. 사람들은 자연에서 나는 것은 무엇이든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 181-182

  

대화체는 접근하기에 쉽지만 서술의 체계성을 기억하기에는 더 복잡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목마다 전제가 되는 것이 내가 고대인이라면?이라고 상상해보는 일이 많으니 그 방식이 재밌는 이들은 즐기며 읽기 참 좋은 책이고, 창작소설이나 에세이적 분위기보다 진중한 역사서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생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분이 이 책의 내용이 근거없는 추정과 상상이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5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재미있게 잘 읽히는 이 엄중한 시절의 무거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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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꼬맹이가 올해 초등학교 입학이라 남들만큼 다하지는 못해도, 서로가 두근거리며 가끔은 불안해하며 함께 할 수 있는 준비들을 때론 더할 수 없이 기쁘고 즐겁게 해나갔습니다. 그런데 아직 봄은 멀고 입학도 쉽지 않은 엄중한 시국이 닥쳤네요. 다행히 아이는 나름대로 상황을 이해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기쁨과 축하와 희망으로 작은 가슴을 가득 채워도 모자란 시기가 다르게 기억될까 속상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가족 모두 건강한 것을 잊지 말고 감사해야겠습니다. 부디 모두가 소중한 일상을 찾고 희망으로 내일을 상상하고 맞이할 수 있는 날들이 하루빨리 회복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모든 입학생들을 축하하고 응원합니다. 힘내라! 대한민국! 힘네세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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