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 수채화 컬러링북 - 새콤달콤 쉽고 즐거운
홍희수 지음 / 밥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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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애정없이 학교 행사인 사생대회에 참가하는 반복되는 일정 정도로만 생각한 초등학교 시절 수채화 그리는 시기를 지나, 중학교 입학 후 의지와 상관없이 미술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업 중 데생 후 선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나가는 방식이 좋은 편이라고 선생이 추천을 받았다. 기쁘기보다는 어리둥절해서 꿈꾸지 않고 동경하지 않았던 부활동을 하게 되었는데도 무척 열심히 참가하였다.

 


무엇보다 점심 시간에 간단한 스케치 활동을 한다는 폼나는 이유로 그때도 지금도 좋아하지 않은 수다떨기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 그렇게 일년이 흘러 꽤나 스케치 스킬을 갖추었다고 생각한 어느날 유달리 맘에 드는 그 오후의 풍경 앞에서 늘 그렇듯 간단하 스케치를 하려고 하는데,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반 아이가 옆에 와서 "넌 저런 풍경을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니? 난 사진을 찍어 두고 싶고, 내 친구는 글을 쓰고 싶대."라는 말을 건네준 것을 화두로 삼아 며칠 진지하게 고민하다, 나는 딱히 아름다운 것, 마음에 드는 것을 목격한다고 해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인지를 솔직하게 받아 들이고 미술부를 탈퇴하였다.

 


그후 전혀 미술부 활동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과 미래의 삶을 연결지어 마음을 다하는 친구들 틈에서 나도 비슷한 부류인 듯 말없이 앉아 굳이 부정하지 않는 것이 마치 참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엿보러 온 듯한 기분이 드는 계면쩍음은 더 이상 느끼지 않아 마음이 가벼웠다.

 


그 시절이 계기가 된 것인지 아님 굳이 이유를 찾이 않더라도 내 취향이 그랬을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세상 모든 색상들을 경애하고 경외한다. 어떻게 이런! 이 요즘도 새로 과일을 사게 되면 그 중 어여쁜 하나를 빤히 바라보며 늘 드는 생각이다. 그것은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무지개를 포함 모든 아름다운 색상들의 태생과 본질을 알게 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다.

 


그래서 오랫만에 온 집을 뒤져서 찾아낸 수채화 그림도구들을 늘어놓고 종이를 쓰다듬으며 물과 색료의 향을 느끼며 붓을 잡는 일은 즐거운 일은 넘어서 경건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그린 그 시절의 나를 단숨에 소환하는 마법의 시간.

 


비록 내가 딸기와 한라봉을 전혀 표현할 능력이 없고 - 딸기는 늘 썩기 직전처럼 한라봉은 플라스틱 장난감처럼 - 바로 옆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기를 해도 맞는 색을 찾아낼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절망적일만큼 전혀 그릴 수 없는 복숭아! 알러지가 있어 평생 복숭아를 먹지 않았고 그래서 맛을 모를 뿐더러 간혹 목격하게 되어도 그리 유쾌하지 않다. 복숭아라고 쓰고 있는 이 순간도 팔의 어느 언저리가 가려워지는 듯 하기도 한다.

 


한참을 고군분투하다 다시 색상표를 들여다본다. 비록 내가 가장 사랑하는 로열블루는 없지만 이토록 눈 앞이 반짝이는 기분이 드는 건 참 신기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마치 한동안 빛을 못보고 살았던 것처럼.

 


대상이 무엇이든 혹시 집 안에 묵혀둔 수채화 재료들이 있다면 그냥 물과 섞어 색들을 죽죽 펼치고 겹쳐보길 바란다. 마음에 물감이 번지는 기분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게 알록달록하면서 투명한 기분이 정말 대단한 위로와 기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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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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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계기로 마침 <시그널> 드라마를 다시 몰아서 보고 신기하게도 이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과 다르지 않은 아픈 질문, "거긴 좀 다릅니까, 그래도 20년이나 지났으니…… 돈 많고 권력 있다고 개차반 짓을 하고도 멀쩡하게 사는 그런 세상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그 메시지를 멈추지 않는 드라마를 이젠 영락없는 기성세대가 되어 복잡한 마음으로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빛이 모두 꺼졌지만 두 눈만은 여전히 빛나는 채로 그는 찾아온 모든 사람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그것이 한 인간에게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는 것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습니다. 251

 

실제로 대학운동권의 끝자락에 대학에 입학한 나는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낯선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투옥, 고문당한 선배들도 있었고, 군대에 끌려가고 집에 끌려가서 연락이 되지 않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더 윗세대인 부모님 대에는 흔적 없이 실종된 이들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내 개인의 삶을 뒤돌아보면 금방인 것 같으면서도 참 긴 세월이었다 싶은 기분이지만, 실제로 20~30년 전이란 기술변화의 내용에서는 충격적일 정도로 급변해왔지만, 정치, 경제 민주화의 시선에서는 참으로 더디고 무거운 몇 걸음 정도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몇 걸음을 걸어나기 위해 치러야했던 무수한 대가들은 얼마나 버겁고 두려웠는지, 그 시기를 운 좋게 살아남은 나와 같은 이들은 이제 체력도 열망도 거의 바닥이 난 채로 일상의 평온함이 깨지는 것만이 너무나 두려운 일이 되어, 대부분의 남은 체력과 노력을 거기에 바치는 매일이고, 그나마 이런 짓까진 하지 말고 살자,란 하한선을 지켜내는 일에도 힘이 듭니다.

 

가끔 그래도 마음이 부대끼어 그저 몇 번 후원을 하는 일로 혼자만의 안전한 참여활동을 하는 것이 고작이고,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나라도 한번이라도 더 해보자,가 새해에 마음속으로만 되뇌어보는 다짐입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별 하는 일 없이 사는데도 늘 힘은 듭니다. 힘들지 않은 삶이 어디 하나라도 있었냐 하면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니 가능하면 엄살은 부리지 말고 견뎌야 하겠지요.

 

이토록 깜냥이 작은 나 같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사람이 사는 일이 언제나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행복한 게 궁극적으로는 맞는 거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조금 더 줄이고 조금 더 희생한 분들은 언제나 있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제까지 알고도 모르고도 얼마나 많이 자주 무임승차를 한 삶이었을까요.

 

그런 분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한 일이 아니었으니 적어도 그런 선택에 대한 평가만은 제대로 해드리고 비록 지금은 말뿐이지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너무나 두렵게도 폭력적이고 악랄하고 의도적인 인신공격들이 생각보다 도처에 흔하지만, 미리 겁을 집어먹고 움츠려든 나와는 달리 그 전쟁터에서도 꿋꿋이 할 일 다 해서 조금씩 구태와 적폐를 밀어내고 치워내는 분들이 과문한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겁니다.

 

그들은 그들의 교훈이 당신 내면에 자리 잡아, 당신 자신이 했던 것과 그들이 말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당신이 더는 구분할 수 없게 되기를 바란다. 불법적인 연행 불법적인 감금 불법적인 시간의 탈취 이런 낮 이런 밤이 열흘 스무 날 삼십 일 넘게 이어지는 동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낮으로부터 밤이, 밤으로부터 낮이 나뉘지 않고, 그들로부터 당신들이, 그들의 말로부터 당신들 말이 완전히 구별되지 않는 고통은 당신들이 이 방을 나간 뒤에도 계속되어, 그 고통이 당신들을 서서히 지치게 하고 쓰러지게 하고 병들게 하고 무너지게 하고, 당신들 모두가 죽어 없어진 뒤에도 이 방의 불빛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들의 밤 당신들의 악몽은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129

 

아무리 너덜너덜해졌더라도, 비록 이젠 전생의 일이었던 듯 일관적으로 지켜내지 못한 기억들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그것들은 허구가 아니고 창작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들어서 지탱해주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책을 읽은 큰 딸에게는 자기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해서 궁금하고 재밌는 에피소드처럼 글 내용이 느껴지나 봅니다.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에 대한 큰 고민이 없는 것은 한편으로는 행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한 유일한 감상평이 엄마랑 소품 만드는 바느질 체험이 하고 싶다고 눈을 반짝이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한편으로는 더 이상 이런 이야기들이 당장의 나의 현실이 아니라 미안하면서도 다행이고 감사하고, 그리고 저렇게 기쁜 소소한 일들이 내 아이들의 삶에서 멈추지 말고 자주 있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빌고 싶은 기분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서사는 더 아름답고 더 천진하고 더 희망차게 미래를 상상한 방식이 되기를 기원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말뿐이라 죄송하지만, 삶을 이어서 이제껏 넘겨주신 모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할 수 있는 한 온전하게 아름다운 한 자투리를 그렇게 넘겨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일 또 내일이 오면 한 사람이라도 눈물 덜 흘리고 젖은 얼굴 마르는 그런 세상이길 끝까지 함께 응원하고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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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 438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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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참새』, 『항아리』 『연인』 『울지 말고 꽃을 보라』,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이 제목들을 보고 다른 독자들은 얼마나 생각나는지 궁금하다. 나는 기억나지 않은 것보다 기억나는 것들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곁에 있어준 느낌을 늘 가진 시인이 1973년 등단하셔서 올 해 또 다시 시집을 출간하셨다는 연혁을 처음 기억할만큼 알게 되었다.

 


머리가 뜨거울 때도 마음이 차가울 때도 몸이 아플 때도 자주 위로가 되어준 시들이 많다. 언제나 탁한 실내 공기 속에서 지쳐가다 갑자기 생각난 듯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면, 그제서야 하아~ 하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기분이 든 작품들이었다. 어쩌면 그 격렬하고도 엄중한 시기들을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늘 고운 언어들을 지켜오셨는지, 참 세상이 어떤 환경이더라도 이렇듯 살아가시는 분들은 늘 있구나 싶다.

 

내가 살아 온 세상이 꼭 늘 그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누군가에겐 분명 세상은 간혹 더없이 잔인하고 냉혹하고 그래서 사는 일이 비루하고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는 일이, 뭐 하나 도움이 되겠나, 계속하자, 라고 늘 지치지 않고 얘기를 들려 주는 시인이 정호승 시인이다. 좀 더 젊은 날에는 건조해지고 사나워진 마음 사이에 콕, 콱, 박히는 느낌으로 만나게 되는 시들도 있었다. 늘 따스했지만 아픈 마음에 젊은 기운에 간혹 반감이 들고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다,라는 마음이 슬며시 들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 읽어 보면 글자가 아니라 시인의 목소리가 직접 전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비로소 공감하는 부분이 생기기도 했다. 이 수많은 오독과 저항과 수용의 반복 속에서도 나는 늘 정호승 시인의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만은 잃지 않았다. 사랑과 연민이 가득하다. 실내 온도와 상관없이 간혹 한기가 드는 삶에서 그것이 참 큰 위안이다.

 

 


당신을 찾아서 정호승

 

 

잘린 내 머리를 두 손에 받쳐 들고

먼 산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만나고 싶었으나 평생 만날 수 없었던

당신을 향해

잘린 머리를 들고 다닌 성인들처럼

걸어가다가 쓰러진다

따스하다

그래도 봄은 왔구나

먼 산에 꽃은 또 피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진달래를 물고 나는 새들에게 있는가

어떤 성인은 들고 가던 자기 머리를

강물에 깨끗이 씻기도 했지만

나는 강가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영원히 쓰러져 잠이 든다

평생 당신을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나뒹구는 내 머리를

땅바닥에 그대로 두고

 

 

 

나는 지금까지 시를 통해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왔으나 과연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 시를 필요로 하고 영혼의 양식으로 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린 적은 없다.

 

이 시집은 불가해한 인간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두가지 요소, 즉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쓰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을 준비하는 동안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내내 잊지 않았다. 비록 설화이지만 참수당한 자신의 머리를 두 손에 들고 걸어간 생드니 성인의 사랑과 고통 또한 잊지 않았다.

 

(…)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나의 또다른 나인 아내에게, 무엇보다도 나의 당신인 절대자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2020년 1월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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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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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묘사된 세계는 아마 몇 해 전이었다면 확실히 SF의 배경으로나 가능할 듯 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놀랍게도 더 이상 아주 먼 미래의 일들처럼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우주탐사, 유전자조작태아, 행성 간 이동, 외계 생명체, 빅데이터와 유사한 망자들의 생애정보 데이터 수집. 이런 기술적용 사회의 모습에 익숙해진 한편 동시에 등골이 서늘하고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은 기술만 진보하고 인간사회의 규범과 규칙들은 근대적이지도 현대적이기도 못한 경우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비동시성의 최악의 결합 상태에서 가능한 온갖 비극들이 무척이나 파괴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나 혼자만의 비극적, 부정적 망상으로 그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글 속에서도 마치 현실의 분단과 이산처럼 어처구니없는 순간의 계획차질이나 책임부재로 인한 생이별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얼마나 많은 지와는 무관하게 우주연방은 경제성이 떨어지는 일로 분류된 후속대책을 외면한다. 그러한 정책의 후진성과 천박한 결론은 행성 간 이동이 가능한 기술현실의 영광을 급격하게 쇠락시킨다. 공간을 확장해서 인류가 가 볼 수 있는 우주의 외연을 아무리 확장하더라도 그것이 경쟁을 줄이고 우주적 인지를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몇 백 년 동안 사이비 교주처럼 받들어진 ‘경제성’을 이유로 다시 괄호 밖의 인간들을 남겨두고 내다버리고 격리하는 행위로 이어진다면 그때의 우주 시대는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는지.

 

경력단절과 독박육아로 인해 우울하고 냉정하고 자식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는 여성들의 모습, 백인이 아니고 남성이 아니고 기혼자가 아닌 인간이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어 겪는 최악의 마녀사냥과 같은 상황. 이쯤 되면 우주공간의 확장과 인간의 지성이나 의식은 전혀 무관한 일이 되고 만다. 아마 그런 비극적 모습이 실제 미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렇게 되지 말자고 자신의 책에서 한편으로는 경고를 한편으로는 독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으며 드는 현실감에 우울하다.

 

그렇다면 인류는 가능한 최선의 유토피아를 구현하는 일에 목적성을 두고 진화해야만 하는 것인가. 물리학을 전공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실 것이지만 우주는 ‘무의미한 공간이다.’ 별이 되지 못하고 행성인 지구는 우주 어느 곳에서 눈에 띌 가능성이 전혀 없으며(암흑 공간 속에 위치해서 그냥 간단히 안 보인다.), 태양계는 현재 망원경 기술로 알아낸 것만 수천억 개가 더 있고 우리 은하계 이외의 은하계도 현재까지 1조개가 넘는다. 매일 태양과 같은 별들이 생성 소멸을 거듭하고 있고, 우주 시간에서 지구 따위, 인간 따위 아무 의미도 없다. 미안하지만 이건 사실이고 그러니 가능한 겸손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윤리적 판단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저자는 지구를 그리워하고 대안이 있어도 지구에 남기로 선택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이들을 등장시킨다. 어쨌든 현재, 여기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대라고 매일 조금씩 더 흉한 곳을 고치고 망가진 곳을 다듬고 그런 매일의 현실이 바로 그 순간을 살아가는 미약한 인간의 유토피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비춰지는 것들이 부정적이고 흉한 것들만이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하고 긍정적이고 아름답고 다채로운 것들도 있다는 것을, 언어적 소통으로는 실패한 역사가 더 긴 인류가 비언어적 방식으로는 어쩌면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어쩌면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이 늘어나지 않는 세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열역할 제2법칙을 진리로 따르는 나로서는 언제나 모든 방식의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한 방향으로만 모든 존재들과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고, 우주 규모의 기적적인 에너지 수축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우리 모두는 점점 더 멀어지며 차가워질 것이다. 마지막 체온이 사라지고 빛이 사라지는 그 순간이 존재의 소멸이다. 우리는 36.5도로 천천히 타들어가는 연료를 생명의 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주에 경계, Boundary가 있느냐 없느냐의 질문을 만나 헤어날 길 없는 혼돈에 머물다 죽을 운명이 된 시점 이래로, 나는 더 이상 외‘계’인의 존재 유무에 대한 질문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그 한 점’에서 방출된 CHON(탄소, 수소, 산소, 질소)가 분해되고 결합하기를(인간의 언어로는 죽고 살기를) 반복한 별들의 또 다른 결합체라면, 나의 존재는 순식간에 우주 전체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어느 별에서 잠시 살았나,는 더 이상 가치 있는 질문이 아니게 된다. 심지어 우리의 나이는 우주의 나이와 동일하며 우리의 육체 또한 우주의 크기와 동일하다. 그래서 더 이상 외롭지 않은가... 그건 아니지만.

 

자꾸만 횟수가 줄어가는 밤하늘 별보는 일을 좀 더 의식적으로 힘써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반짝반짝 작은 별이 예뻐서만은 아니다. 자꾸만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를 지루하게 다시 하는 건 아닌가 슬슬 두려움이 강해지지만, 어쨌든, 우주의 실제 모습은 밤하늘의 모습과 유사하다(천자문의 첫 구절, 천지현황. 나는 이 구절에서 왜 하늘이 검은 것이냐고 가능한 모든 어른, 선생들에게 질문을 했고 학창시절 내내 답을 듣지 못했다. 물리학을 전공하고 천체에 대해 배우면서 비로소 이 구절이 이해되었고, 그 시절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이들을 무한히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듣기 싫거나 믿기 싫을지도 모르지만 ‘빛은 단지 어둠이 잠시 부재한 상태일 뿐이다.’

 

그래서 나의 시선에 들어오는 별의 개수가 3,000개 정도 된다면, 그 별들의 거리가 모두 다르다면,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광속거리가 4년이니, 우리가 밤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빅뱅의 초기부터 4년까지 우주의 전 역사를 눈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체관측을 할 때마다 욕심이 슬몃 스며들기도 한다. 단지 겸손해지는 것 말고도 유레카는 비교도 안 될 대단한 깨달음이 오면 좋겠다.

 

모두가 기피하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전공내용이나 시기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새로운 내용들을 팔로우하며 지극히 사랑하는 독자로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매력적인 제목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가진 책에 기대보다 깊숙하게 흔들려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참 좋았다. Let there be light!

 

김초엽 작가에게 진심으로 경애의 마음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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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대, 라 벨르 에뽀끄 3 - 만화로 떠나는 벨에포크 시대 세계 근대사 여행 아름다운 시대, 라 벨르 에뽀끄 3
신일용 지음 / 밥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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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12. 1900 무력 올림픽-의화단 사건

챕터 13. 언덕 위의 구름-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챕터 14. 아듀, 몽마르트르-피카소의 몽마르트르 시대

챕터 15. 그해 8월-1차 세계대전의 발발

챕터 16. 마지막 짜르-러시아 혁명과 라 벨르 에뽀끄의 종말

 

이 시기에 유럽은 일단 총성이 멈추었지만 동양에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일어났고, 이후 유럽은 1차 대전을 목전에 두고 긴장이 첨예화되고 있었다. 파리의 몽마르트는 예술가들이 사라지고 관광지로 변모해 갔으며,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인해 로마노프 왕가 마지막 짜르의 가족은 죽음에 이른다. 이전의 시리즈들과는 달리 3권에서는 예술분야의 내용보다 정치적 내용이 주를 이룬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상당 부분이 조선과 일본, 중국의 역사에 관련된 내용이 많이 소개된 점이다. 이는 유럽의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인해 그 갈등의 최전선이 조선과 중국으로 옮겨진 결과이다.

 

첫 번째로 소개되는 의화단사건을 자세히 알게 되어 반가웠고, 황제가 거주하는 북경에 의화단이 진입함으로써, 영국, 프랑스 등 8개국 연합군과 전투가 일어나 결국 의화단이 패배한다. 이는 외세로부터 자국민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대신해 외세에 맞서 싸운 청나라 최후의 민중 봉기라고 평가되며, 이후 급속히 쇠락한 청나라는 <마지막 황제>를 통해 익숙해진 내용대로 푸이를 끝으로 멸망한다. 오래전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껴서 무작정 홀려서 수십 번을 봤던 영화인데, 어느 순간 세면대에 피를 닦아 내는 장면이 역하게 느껴져서 오랫동안 다시 감상하지 못했던 작품이다. 이젠 어떨지, 다시 한 번 그 찬란한 영상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가능한 넓은 지역들로 소위 ‘세계 여행’을 떠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여행에 대해 기대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다 다르기 마련이지만, 그다지 아쉽지 않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머물러본 내 경험에 의하면, 횟수나 기간에 상관없이 <딱!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들리고 이해하고 느끼고 배우게 된다. 그래서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의 경험은 기간에 관계없이 피상적이기만 해서 아쉬운 마음이 든 적도 꽤 많다. 물론 비언어적인 경험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는 단지 의사소통 수단만이 아니라 그 언어에서 출발한 사회, 문화, 역사, 그리고 화자인 사람들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출발이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그런 점에서 멀리 깊이 나아갈 수가 없다.

 

단지 내게만 해당되는 변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세대의 한국 교육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세계사에 대한 공부는 단지 과거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세계로 떠나보는 여행이기도 하다. 시간차를 두고 세계사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질수록 과거에 단편적인 경험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도 하고 조각들이 들어맞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세계사 완전정복’과 같은 단 한 권의 책이 정답처럼 존재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세계사든 세계 여행이든 풍부하고 깊이 있게 실행해보려면 적절히 선별된 좋은 이야기들을 가능한 많이 접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경우 건조한 사건이나 제도에 대한 나열과 서슬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생명력이 담뿍 담겨 생생하게 대화하고 체험하는 듯한 그런 구성이 제일 즐겁고 재미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흑백으로 그려진 만화책들임에도 불구하고 3권에 이르는 여정 동안 형형색색 다채롭게 느껴지는 전개를 쉽게 따라갈 수 있었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하는 대단한 매력을 가진 책이다. 새삼 흥미롭고 부럽기 그지없는 저자의 이력과 실력에 감탄이 든다.

 

아쉽게도 연속성을 가지고 기록 보관된 역사는 얼마 없고 그래서 역사는 구멍투성이이다. 따라서 그 사이사이를 얼마나 그럴 듯하게, 누가 더 말이 되게, 한 점의 증거물이라도 더 발견하여 채우는가가 마치 거대한 퍼즐처럼 이어지는 관련 학문 연구들이다. 역사관련 저술이라면 어떤 것이든 지루한 줄 모르고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은 퍼즐 하나씩을 발견해서 나의 역사적 상식에 빈 칸을 채워 넣는 일이 정말 즐겁다.

 

<라 벨르 에뽀끄> 시리즈는 그 중 재밌고 유쾌하고 즐겁기 그지없는 방식으로 퍼즐 조각을 건네주었고, 그래서 3권을 모두 만나 읽는 내내 행복했다. 2019년과 2020년의 송구영신의 나른하고 행복한 시간들의 일부를 이 책에 빚졌다. 감사한 일이다.

 

처음부터 목표한 바는 아니었지만,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에 매료되는 이유들 중 하나는 언제나 어떤 역사의 단편이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이 사회를 읽어내고 멀지 않은 미래를 짚어보는데 도움이 되는 점이다. 나 자신의 삶을 그려보는 고민과 학습의 틀거리는 내 경우엔 어쩔 수 없이 고금의 다른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다. 다시 구성된 그 틀거리가 다시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의 방향을 정해주기도 하고 어떤 공부를 더 해야할 것인지의 고민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돕기도 한다.

 

당연히 나는 우리집 꼬맹이들도 이런 경험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적극적으로 책을 골라주는 일은 없고, 그저 내가 재밌게 읽은 책들을 잘 보이는 높이의 서가에 전시하듯 정리해 두는 것이 전부이다. 다행이 이 시리즈는 방학 동안에 만났고 비록 흑백이지만 만화로 구성되었고 한 챕터의 구성이 차례로 반드시 기억해야 진도가 나갈 수 있는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들이 다수라, 기대 이상으로 아이들 역시 재밌게 읽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독립된 ‘국사’란 과목은 편협한 이해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 나는 가능한 아이들이 세계사를 통해 한국사를 볼 수 있기를, 역사를 바라보고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사회 현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사고력이 자라나길 바란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이 책은 자주 역사의 한 장면을 실제 보거나, 그 시대를 사는 것 같은 아주 특별한 역사 체험을 선물해 주었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몰락으로 시작해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멸망으로 마무리되는 <라 벨르 에뽀끄> 시리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우리들의 <라 벨르 에뽀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적어도 인류는 이제 이데올로기보다 인간이 먼저인 세상에 주차한 듯하고, 앞으로도 이론 때문에 수만 명이 죽어나가지는 않는 세상이 될 것이라 본다. 물론 어쩌면 브레이크를 걸거나 해답을 찾기 더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지도 모른다. 나는 잔 다르크 신드롬을 앓아본 적도 없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 희망에 들떠본 적도 없지만. 극히 작은 가능성이라고 있다면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

 

아이들의 독서카드에 ‘그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세계의 역사가 꼭 이렇게 흘러와야만 했을까? 혹시 다른 길은 없었을까?’이런 질문들을 포함한 다른 질문들이 빼곡하다. 어떤 역사적 상상을 하고 있을까,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을 행복하게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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