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똥
유은실 지음, 박세영 그림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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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작가가 목도한 한 장면이 작가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새롭게 쓰게 했다. 「강아지똥」을 읽어 주던 부모가 아이에게 “똥도 이렇게 쓸모가 있는데 너는 공부를 못하니 똥보다 못하다.”라고 말했던 것. 작가는 ‘똥도 쓸모 있다.’라는 50년 전 가장 진보적인 메시지가 어른의 입맛에 맞춰 변질되어 이 시대 어린이들에게는 ‘쓸모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라는 메시지로 전해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다. 그리고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자 하는 「강아지똥」의 참뜻을 더욱 잘 전하고자 『송아지똥』을 쓰기 시작했다.

 

“따뜻한 시선과 삶에 대한 성찰이 권정생 선생의 문학 정신을 직접적으로 계승한다.”

 

이토록 차분하고 다정한 이야기.

 

이야기의 힘을 맹신하는 나로서도, 이런 일러스트레이션을 만나면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마음이 편안하고 포근하고 안정이 되는 효과를 바로 누리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유은실님의 그림은 바라볼수록 도저히 평면 그림 캐릭터일 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생동감과 생명력과 섬세함과 그리운 손길이 느껴진다. 한 장 한 장 감동적인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오래 전 권정생님의 [강아지똥]... 벌써 50여 년이 지났다니 깜짝 놀랄 일이다. 하긴 우리 집에서도 3대째 각자의 추억이 있으니 그 세월이 맞긴 하다. 오랜만에 [강아지똥]을 읽고 깔깔거리던 꼬맹이들 기억도 다시 나고 [송아지똥]을 읽고 이번에 다 같이 첫 장부터 막 웃었던 기억이 보태져서 기쁘다.

 

예전엔 묶어서 생각을 정리해보진 못했는데, 이제 보니 [강아지똥]과 [송아지똥] 이야기는 모두 태어나고 살다 죽은 그 평생의 과정을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길어야 한 계절을 사는 송아지똥이 그 짧은 시간을 어떻게 멋지게 살 수 있을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보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어려운 일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겨내기도 하고. 꼭! 반드시! 대의를 위해 희생을 하거나 훌륭한 일을 성취하지 않고도 서로가 존재만으로 귀하다는 생각을 품어주는 이야기. <태어난 모든 것은 귀하다>

 

리듬감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내가 길어야 한 계절을 살 수 있다는 걸.

내가 태어난 세상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내 짧은 똥생을 생각했다. 짧은 만큼 멋지게 살고 싶었다.

두 권을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 죽고 난 후 남는 것은 귀하게 쓰일 것인지 쓰레기 더미일지... 생각이 길게 이어진다. 비 오는 일요일, 꼬맹이들과 한 자리에 모여 오늘까지의 우리들 ‘인생’에 대한 생각도 한번 정리해봐야겠다.

 

다음은 우리 집 꼬맹이들과 내가 한 장면씩 뽑은 인상적인 내용이다. 단지 인상적인 것만이 아니라 찬찬히 다시 읽을수록 무척 슬프고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진다.

 

송아지가 잡힌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도.

마음이 아팠다.

“잡혀가는 건 슬퍼.”

“똥또로롱, 그래도 도망쳐 봤잖아. 도망쳤으니까 잡힐 수도 있는 거야.”

리듬감이 말했다. 듣고 나니 위로가 되었다.

나를 낳아 준 송아지가 한 번은 도망쳐 본 거니까.

  

“...... 이 세상에서는 모두 서로 도와줘?

“음...... 모두 그러지는 않아.”

“그럼, 그냥 가만히 있어?”

“음......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더 나쁜 짓도 해.”

“그게 뭔데?”

“괴롭히는 거.”

 

<감나무가 존댓말을 거절하는 인상적인 장면> 존댓말은 나이가 어떻든 서로 존중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다. ‘이상한 아이’나 ‘이상한 반려동물’이란 없고 실체는 ‘이상한 부모’나 ‘이상한 반려인간’만 있을 뿐이듯이, 존댓말과 반말에 대한 숙고는 이 책을 읽는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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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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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고 손상되고 상처 나고 부서진 모든 것에 자꾸만 끌리는 것,

이것이 나의 증상이다. 32

 

나는 기차와 호텔, 대기실에서,

그리고 비행기의 접이식 테이블에서 글 쓰는 법을 익혔다.

밥을 먹다 식탁 밑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뭔가를 끼적이기도 한다.

박물관의 계단에서,

카페에서,

길가에 잠시 정차해놓은 자동차 안에서 글을 쓴다.

종이쪽지에,

수첩에,

엽서에,

손바닥에,

냅킨에, 책의 한 귀퉁이에 쓴다. 35

 

페이지 수에 연연하고 읽을 책을 고르는 것은 아니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무게감과 그에 비례하는 기대감은 기분 좋게 묵직하다. 노벨상에 수상 작가에 대한 기대감도 더해져서 장대한 서사의 이야기가 장쾌하게 이어질 것이라는 상상과는 달리, 116편의 단편들이 엮어져서 하나의 큰 이야기로 완성된 책이었다. 물론 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들과 인물들과 사건들이었는데, 시간적 배경도 1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데, 그 모든 다채로운 시공간들에서 다채로운 사건들이 다른 생각을 더 할 여지를 주지 않고 몰입하게 만들고 저항 없이 전개를 순순히 따라가게 한다.

 

그러다보니 이 장편소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파악이 안 된다. 어쩌면 등장인물들과 시공간들이 여행지들이고 작가가 독자들을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하는 장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차피 사는 일이 지속적인 이동이고 시공간을 차지하고 떠나는 일이고 다른 이들의 시공간과 교차하는 일이고 운이 좋으면 시공간이 확장되기도 하는 것이고 보면, 살아가고 살아온 일 전체가 ‘방랑’이자 ‘여행’이라 할 법하다는 늦은 깨달음이 들었다.

 

내 모든 에너지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었다. 버스의 진동, 자동차의 엔진 소리, 기차와 유람선의 흔들림. 19

 

유동성과 기동성, 환상성은 문명화된 사람들의 특성이다. 야만인들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거나 침략할 뿐이다. 82

 

그녀가 시간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내게 설파했다. 그녀에 따르면 농업에 종사하는 정착민들은 순환적 시간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길 원하는데, 그러한 시간 속에서는 모든 사건이 항상 처음으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며, 배아 상태로 쪼그라들어서 성장과 노화와 죽음의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82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 여행지로 들어가는 여정이지만, 그곳의 시공간은 또한 다른 누군가의 일상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내 일상의 떠나 다른 이들의 일상을 엿보고 다른 세상의 단면들을 만나러 자신의 시공간과 일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나’의 여행기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저 넓은 세상에서 멈춤 없이 일어나서 늘 가득한 에피소드들을 내가 그 때 그것에서 경험해보는 것일 뿐이다. 그런 경험은 떠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므로, 그래서 어쩌면 사람들의 방랑 혹은 여행은 순환을 계속되는 것일지도.

 

여행 심리학의 핵심적인 개념은 바로 욕망입니다. 바로 이 욕망이 인간에게 이동성과 방향성을 부여하고 어딘가로 향하려는 성향을 일깨웁니다. 욕망 그 자체는 무의미합니다. 그저 방향만을 가리킬 뿐, 목적지를 드러내진 않으니까요. 목적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고 불확실한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애매해지고 수수께끼 같아집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목적지에 다다르거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118~120

 

무(無)에서 온 사람에게는 모든 이동이 다 귀환인 법이었다. 공허만큼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은 없기에. 136

 

삶이 이동이라면 죽음은 그 이동의 멈춤일 것이다. 심장이 움직이는 동안 열심히 방랑하고 여행하며 풍경과 이야기들을 보는 것, 가능하다면 사고도 자유롭게 움직이고 전환하는 것. 처음에 가졌던 의문과 어리둥절함의 원인이었던 116편이라는 단편들의 구성이 이제와 보니 세상의 경계들과 물리적 이동 시공간들로서 여행지들인 것도 같다. 그래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방랑자들]을 읽는 일은 기억도 상상도 기분도 움직이고 사유하는 여행과도 같다. 그 과정에서 어느 여행지에서 경계에서 더 오랜 방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의 물리적 여행과 마찬가지로 몰랐던 새로운 세상의 여러 모습들과 마주하게 되고 마음이 정지하거나 이동하기도 한다. 사고도 어느 대목에 이르러서는 말랑해져서 과거에 이해할 수 없다고 버티던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이해하게도 된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이 내게 말하길 그는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뭔가 새롭고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을 봤을 때 다른 누군가와 감상을 나누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곁에 없으면 불행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가 과연 진정한 순례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251

 

고대의 순례자들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거룩한 장소를 목적지로 정하고 거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신성함을 체험하고 정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성지가 아니라 죄 많은 장소를 여행할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요? 사막이나 황무지를 여행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니면 활기 넘치고 생산적인 장소를 여행한다면요? 264

 

한 귀퉁이에 서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다. 거기에 다른 세상은 없다. 순간들, 부스러기들,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바로 조각나 버리는 일시적인 배열들뿐.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선, 면, 구체, 그리고 시간 속에서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280

 

다시 한 번 새삼 경계를 수없이 뛰어 넘겨주는 이런 한 권의 책을 만나 경외심이 든다. 매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창작이란.

 

자꾸만 평온과 무탈과 안전한 일상에 심신이 더 의존하게 되는 상황에서 가끔은 머리를 곧게 들고 책이든 물리적 시공간이든 자주 방랑하는 여행을 떠나볼 일이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정지하는 자는 곤충처럼 박제될 거야, 심장은 나무 바늘에 찔리고, 손과 발은 핀으로 뚫려서 문지방과 천장에 고정될 거야. (...)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391~392

 

우리의 눈에 비친 그들의 미소에는 일종의 약속이 담겨 있다. 그 미소가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 태어날 것이라고. 이번에는 적절한 시간, 적절한 장소에서.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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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esis 2019-11-3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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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수
이현 지음, 김소희 그림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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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꼬맹이들과 나는 이형 작가님의 열렬한 팬이라서 고대하던 [푸른 사자 와니니 2]편을 행복하게 읽고 언제 다시 신간 소식을 들으려나 풀이 죽어 있다가, 뜻밖에! 빠른 출간 소식과 그 내용이 초능력 남매에 대한 것이란 소개 글을 보고 전체 내용을 모르면서도 다 같이 신나게 환호성을 질렀다.

 

형은이는 왼손으로 물풍선의 멱살을, 그리고 오른손으로는 기다란 막대를 잡고 있었다. 막대, 그것도 묵직한 쇠막대였다. 검은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칠해진 쇠막대에 수박 두통은 됨직한 돌덩이가 달려있었다. 상가 뒤편 주차장 입구에 있는 주차 금지 표지판이었다. 남자 어른도 두 손으로 붙잡고 질질 끌어서 옮겨야 할 만큼 무거운 거였다. 그런데 형은이는 그걸 빗자루라도 되는 듯 가볍게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33-34

 

표지 그림을 보고 궁금했던 점이 설명이 된다. 토르 망치도 아닌 것이 사나워 보이는 저건 무얼까 궁금했는데 주차 금지 표지판!ㅎㅎ

 

처음엔 흔하고 익숙한 학교 폭력 일화가 계기인가 했는데, 유튜버인 물풍선이란 패거리 중 한 명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협박하는 내용이 나와서 갑자기 마음이 너무 무겁고 섬뜩했다. 불과 며칠 전 폭력적인 사적 관계로 인한 고통에 더해 온갖 인터넷상의 악플과 위협과 가해로 우울증을 겪고 끝내 세상을 버린 이가 떠올랐다. 이야기 전개와 결말과는 상관없이 이런 내용을 이야기 내용으로 웃어넘기지 말고 심각하고 무겁게 받아들이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체적으로 엄청 재밌는 장편 소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전혀 유치한 내용이 없어 즐겁게 몰입하여 읽어 나갔다. 생생할 만큼 충분히 현실적이면서도 신날만큼 충분히 환상적이다. 권선징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영웅적인 인물이나 초능력자인 주인공이 능력을 발휘해서 악을 처단하는 내용 전개는 결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소재로서는 뻔하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모든 약점들을 모은 이야기들을 이토록 재미있게 감칠맛 나게 버무려서 재밌고 통쾌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이 탁월한 작가의 탁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색다른 점은 마블과 DC의 배경이 아닌 사랑스럽고 귀여운 대한민국의 생활 밀착형 동네 어린이 영웅 캐릭터라는 것이다. 그에 더해 설화나 전래동화의 모티브를 활용한 점도 독특하고 반가운 일이다. 솔직하게 나는 전래동화를 정말 싫어했지만 말이다. 목욕하는 걸 훔쳐보고 옷을 감추고 거짓말을 하고, 어린 자매가 죽임을 당하고, 아버지가 재혼만 하면 아이가 학대당하고, 호랑이한테 엄마는 잡아먹히고 아이들은 도망가고 어린 시절 읽을 때마다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무시무시했다. 어쨌든 내 경험과는 별개로 전래동화들 중 엄청나게 힘이 센 오누이 이야기가 [전설의 고수]의 남매 스토리에 동기부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옛이야기 속 오누이 이야기는 대개 슬프게 끝납니다. 이들은 엄청난 초능력을 가졌지만 악당을 물리치지도, 영웅이 되지도 못합니다. 어른들로 인해 오누이는 무리한 내기를 하던 끝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곤 했지요. 292

 

그렇다면 [전설의 고수]의 남매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다 읽기까지 나도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더구나 깔깔거리며 즐기기 좋은 전생과 환생이야기! 뭐랄까, 새삼스럽게 히어로물은 이런저런 중층적 문화 구조를 가진 한국형이 이야기꺼리가 젤 수다스럽고 재밌다는 새로운 발견이랄까, 싶은 감상이 들었다. 이현 작가님의 비범한 능력으로 이 모든 수다스러운 문화적 배경들이 자연스럽게!(놀랍게도ㅎㅎ) 이어지고 어우러져서 빈틈없이 탄탄한 구성을 만든다. 초반에 이 이야기 어디로 가나~ 싶은 우려가 살짝 들기도 했는데 기우였다. 초반에 충실히 깔아 주신 복선들이 깔끔하게 모두 잘 설명되면서 마무리되는 통쾌함! 어른들 마리 숙이게 하는 아이들의 엄청 귀엽고도 치밀한 추리 능력!

 

한편으로는 그러한 캐릭터 설정이 누구보다도 심각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씁쓸할 만큼 잘 반영하게 되는 장치가 된다. 학교 폭력, 미세먼지, 유튜브 및 SNS 남용 혹은 부작용, 몰래카메라, 아동 유괴. 끊임없이 매스컴에 등장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근절되지 않는 문제. 그래서인지 동화 속에서라도 불의를 응징하는 모습에서 현실에선 쉽지 않은 후련한 기분이 잠시 들기도 한다. 물론 현실에서 제대로 된 예방과 처벌과 지원이 이루어지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끝까지 함께 응원하고 개선해야할 것이다. 더 이상 히어로나 영웅이 필요 없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현실 사회를 지향하도록!


마지막으로 분량이 넉넉한 장편이라 하마터면 우리 집 작은 꼬맹이는 즐겁게 완독하기 힘들 뻔도 했는데, 감사하게도 표정이 풍부하고 색채가 정감 있고 장면 묘사를 잘 보충해주는 일러스트레이션이 포함되어 감사하고 더 재미있었다. 동화책을 읽었는데 만화책을 읽은 것도 같은 신나는 기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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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색칠 명상 - 신개정판, 세상 시름 거뜬하게 이기는 명상과 컬러링
변건영 지음 / 밥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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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Mandala)는 산스크리트어로 본질(mandal)과 소유(la)가 합쳐 이루어진 글자로, 우주의 본질을 담고 있는 안내도이자 그림을 가리킨다.


 

아이들이 아무런 조건과 제약 없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색칠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집중하는 반짝이는 눈빛들과 오므라든 입 모양도 귀엽고 눈부십니다. 명상의 기본이 곁 생각 없이 지금, 여기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것이라면, 아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명상 능력자들인 셈이지요. 명상을 처음 접한 것은 틱낫한 승려를 만나면서이고 덕분에 최초의 선입견을 깨고 개안을 한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경험으로 지금까지 영향과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기회로 기복 소원과 세속적 욕망으로 끓어 넘치는 한국불교 말고도 다른 불교 형태와 방식과 내용들이 있다는 것을 배웠고 덕분에 그 세계에 대한 이해의 가장자리가 넓어지는 운 좋은 혜택도 받았습니다. 특히 티벳의 역사와 불교에 대해 완전한 무지 상태에서 새롭게 배우게 되어 가늘지만 긴 인연이 서울에서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틱낫한 승려와의 시간들 중 소중하지 않은 한 순간이 없지만, 마지막 날 참가 지원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커다란 만다라를 함께 만들어 나간 것은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강렬하고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종교적 경험이 아니라 즐겁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색칠 명상! 도안을 처음 보았을 때는 2차원 평면 종이 위에 원과 사각형이 다소 지루하면서도 어지럽게 그려져 있네, 하는 시큰둥한 느낌이었는데, 귀가 얇고 특히나 좋아하는 이들의 말은 세뇌 수준으로 쏙쏙 알아듣는지라, 설명을 들을수록 2차원이 다차원으로 밋밋함이 복합 시공간으로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고, 함께 색칠하는 단계에서는 즐거우면서도 기분 좋게 집중할 수 있고 정답이 없으니 무한 상상력으로 마구 색깔을 난발했는데, 다 끝나고 나니 문양과 색채와 신비롭게도 어울리고 오묘하게 멋진 것도 같고 완성된 작품이 가진 위엄과 권위가 존재감이 확실해서 크게 공헌한 바도 없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어 잠시 우울하고 시름에 겨운 자신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 일이 완전히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것이 없다는 말이 실감날 만큼 운 좋게도 융의 심리학(Jungian Psychology) 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되어 다시 만다라를 상기할 수 있는 기회도 만나게 되고, 현대에 이르러 정신심리의학자인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이 만다라를 심리치료에 소개 활용한 내용을 알게 되면서 반가움과 기쁨이 더해졌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유용한 방편이 있게 마련인데, 제게는 만다라 색칠명상이 더 없이 즐겁고 행복한 작업이었고 기억이라, 굳이 명상수련의 방식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없이도, 더욱 자연스럽게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과 자주 하면 좋겠다 싶은 놀이입니다. 평생을 불교 신자로 차분하고 엄숙한 사찰 참선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도 좀 더 다채롭고 일상적일 수 있는 만다라 색칠명상을 권해 보았습니다. 아직 도안들이 처음 상태 그대로 모셔져 있어 언제나 처음 시도해 보시려나 궁금해 하는 매일입니다.

  ​

만다라의 철학과 역사와 의미를 학구적으로 익히고 그 내용을 풍부하게 알아야 한다는 부담과 의무감 없이 그저 다양한 도안들을 만나보고 술술 넘기며 구경하다 마음에 드는 하나가 있으면 색연필을 꺼내서 그저 색칠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자신을 토닥토닥 위로하는 기분으로, 잘 했어, 잔 견디고 있어, 멋져, 이렇게 가벼운 위로를 던지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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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행복과 인간관계 - 행동에 변화를 주는 강력한 힘
강영석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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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공부는 했어도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운 바가 없다.

흔히 무슨 무슨 ‘비법’이라는 책들에서 들려주는 설득력이 강한 이론들이 아니라 수많은 스토리텔링 예화들이 있어서 일단 처세술이나 계발서의 이론을 새로 습득하는 느낌이 전혀 없고 술술 잘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책처럼 느껴졌다. 가독성이 좋은 것에 더해 적어도 나에게는 이런 방식이 더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밑줄 긋고 애써 외어야하는 수고가 없이 이야기 자체로 기억되는 방식이 어쩌면 더 오래 기억될 거란 기대도 장점으로 생각된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는 말이 있다. 만남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중략. 따라서 이 책은 인간관계에 대한 이론을 기술하려는 서적이 아니라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이루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을 다루는 실제에 중점을 두었다. 9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마음속 어딘가가 아니다. 지도 위의 어딘가도 아니다. 그곳은 너와 나 사이의 공간이고 우리가 그 공간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 공간을 더 편히 여길수록 행복도 더 커진다.” 중략. “사람이 없다면 천국도 갈 곳이 못된다”는 레바논 속담도 우리의 행복에 사람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26

레바논의 문화에 무지해서 이런 속담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런 한편 사람이나 인간관계처럼 양면성이 강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은 행복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지만, 그 행복을 망치거나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때로는 선택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냥 별 생각없이 가끔 이런 표현을 하며 살았던 것도 같은데, 흔히 하는 이야기로 “거리감이 느껴진다”거나 “멀게 느껴진다”란 말이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감을 표현하는 말이구나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이의 경계, 바운더리는 피부가 끝이 아니다. 내게 딱 붙어 있는 경우가 아니라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 공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아마 서로 그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관계의 필수적인 기술일 것이다.

 


우리가 전달한 말과 문자 메시지는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서는 자명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극히 애매하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의사불통으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와 갈등에 대해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무감각과, 배려가 없음을 탓한다. 39-40

나는 늘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정확하고 쉬운 방법이 구두든 문이든 언어를 통한 것이라고 얘기해왔고, 비언어적 소통방식을 어려워했으며 그런 감각이 확연히 떨어지는 편이다. 소위 말하는 눈치는 절망적일 정도로 없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말과 문자가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서만 자명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구절을 읽고 갈등이 생긴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나는 충분히 설명한 것 같은데 왜 이해를 못하는지 아니면 이미 전에 대화를 나눈 것인데 왜 기억을 못하고 엉뚱한 얘기를 하냐고 반발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어쨌든 지금 와 생각해보면 역시 다소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으며 이해심이 부족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중략. 세속적인 안목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사물이 오히려 진정한 도움을 준다는 뜻의 무용지용이라는 말도 있다. 중략. 윤구병은 잡초로 보이는 풀들을 잔뜩 뽑아버렸는데 알고 보니 그 잡초가 제각기 이름을 지닌 약초이고 반찬거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 이유가 없는 풀은 없다는 결론을 얻고서 [잡초는 없다]는 책을 출판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데도 쓸모없어 버림받거나 업신여김을 받아도 마땅하거나 괜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70

나무와 잡초의 세상에서는 다른 판단 기준이 없어서 표현 그대로의 역할을 하는 것인 사실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노동력과 가치에 대한 효용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확실하고도 냉정해서 마음이 무겁다. 실은 측정 가능한 모든 요소가 대상 인간의 가치 판단 기준이 된다. 연령, 외모, 성별, 국적, 인종, 결혼 유무, 가족관계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또한 원칙적으로는 차별받지 않아야할 차별금지조항들이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경우에 있어 정량적으로 계산되고 환산되는 판단기준들이다. 씁쓸하고 쓸쓸하다. 그래서 인간 세상의 모든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SNS에서 널리 퍼진 ‘명절 잔소리 메뉴판’에는 ‘대학 어디 지원할 거니?’ 5만원, ‘살 좀 빼야 인물이 살겠다’ 10만 원, ‘취업은 언제 할 거니?’ 20만 원, ‘이제 결혼해야지’ 30만 원, ‘아이는 언제 가질 거냐?’ 50만 원이라고 적혀 있다. 또 명절 잔소리 메뉴판의 맨 아래에는 “걱정하는 마음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니, 구입 후에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75-76

내용은 대략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본 적은 없는데, 마치 끝나지 않는 영원한 스트레스 극강 질문들인 것 같다. 이러한 배려 없는 질문 공세들이 ‘덕담과 애정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다니 그 고착이 더 무시무시하다. 어렸을 적 생각한대로 훌륭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떤 모습이 될지 스스로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처지이긴 하나, 새삼 어른 노릇 부모 노릇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의도가 선하든 아니든 상대방이 받아들이길 불편해하면 적어도 그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가능한 오래 잊지 말아야겠다.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 81

전혀 몰랐던 내용이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남루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전차에 치였는데, 운전수가 노숙인이라 판단해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뺑소니를 쳤고, 역시 노숙인으로 생각한 택시들의 잇단 승차 거부로 가까스로 병원에 갔으나 병원 2곳에서 진료 거부를 당했고 결국 빈민구제를 위한 무상병원에 방치된 이야기이다. 신분이 증명되어 친구들과 친적들이 달려 와 병원을 옮기려 했으나 위와 같은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고 한다. 1926년의 일이지만 참으로 야만스럽고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일무이하게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을 설계했고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니라면 인류의 보고로서 영원히 보전될 작품들의 건축가가 인간 자체보다 옷차림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바람에 이렇게 세상을 떠나다니. 지금은 신분증이나 지문조회를 할 수 있으니  혹은 그런 천박한 판단은 하지 않을 정도로 인류의 정신도덕윤리문화가 진화해서 덜 비극적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단지 지금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 외에, 다른 사람과는 그 어떤 일도 도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85

이 책의 목차를 보고 무척이나 궁금했던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의 내용이다. 당연한 말인 듯도 싶지만 무언인가 머릿속이 복잡하기도 하다. ‘지금’에만 집중하고자 하는 이들이 집중할 줄 말라서 혹은 하기 싫어서라기보다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체적인 사안들이 분명히 있지 않나 싶은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좀 더 충실한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비록 모두 다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런 선택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유일한 방법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들의 고유한 인성과 자아는 존중과 인정이라는 밥을 먹어야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88

존중과 인정은 관계가 미리 성립해야 가능한 행위 작용이므로 존중과 인정에 관한 의지와 욕망이 구체화되고 확립되기까지의 인간관계에서의 태도와 경험이 전적으로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래 전 자주 논의에서 등장한 ‘인정투쟁’이 가물가물 기억이 나려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누군가의 미소가 촉발시키는 강력한 감정적 경험은 뇌의 생화학 작용을 변화시킨다.” 웃으면 혈압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들며, 뇌에서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세로토닌, 엔도르핀 등의 호르몬 분비가 촉진되는 것을 의미한다. 93

진화의 과정이 참 대단하고 효율적이고 신비로운 것이, 바로 이렇게 인간의 뇌에 직접적인 화학반응명령을 내리는 가장 강력한 장면이 갓난쟁이, 아기들의 미소와 웃음이다. 다른 종과는 달리 출생 후 아무런 생존 능력이 없어서 그야말로 전적으로 타인에게 생존을 의탁해야하는 인간의 아이들은 그래서 아마 이토록 강력한 생화학 기술을 진화시켰을 것이다. 무장해제와 동시에 죽도록 사랑해주고 필요한 것은 다해 주리라는 마음이 윗 세대들의 뇌에서 무럭무럭 피어나게 만드는 명령!

...... 미소는 받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지만 주는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미소가 없어도 될 정도로 부유한 사람은 없고, 미소가 주는 혜택을 누리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 역시 없습니다...... 그러나 미소는 돈으로 살 수 없고, 구걸할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으며 훔칠 수도 없습니다. 미소는 누군가에게 주기 전까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펜하임 콜린스 회사의 광고문> 94

일부는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과연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점은, 사실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갖가지 감정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혹은 대가도 없이 위계적 관계 속에서 소위 ‘어른들’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 필요한 미소들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여전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행복과 인간관계>에 대한 내 생각은 복잡하고 어렵고 어수선하다. 미소 혹은 웃음은 인간의 중요한 능력이자 판별 지표임에는 분명한데, 어쨌든 현실 사회에서는 이 또한 여러 권력 관계 속에서 복잡한 역할과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읽어나가며 생각 속에서 이어나가고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나 보다. 단락단락 생각이 멈추고 만다. 언제나 손쉬운 날씨와 컨디션 탓을 해본다. 그래도 책을 잘못 읽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 처음에 장점으로 밝혔듯이 에피소드들의 패치워크처럼 한 권의 책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미난 이야기들을 여러 말솜씨 좋은 사람들에게 느긋하고 편안히 들은 기분이 든다.

잘 아는 것도 같은데 어느새 진지하게 생각해본 지 오래인 인간관계, ‘무엇이다’라고 제대로 한번 명쾌하게 알아낸 적도 없지만 그렇게 되길 원했었고, 그렇게 되리라 근거 없이 기대했었고, 역시 어느새 인가 인생의 옵션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빠져버린 ‘행복’.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전에는 구체적으로 엮어 본 적이 없는 인간관계와 행복을 아주 구체적으로 짝지을 수 있는 상황들을 한번 정리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조금 생긴다. 내가 아는, 내게 중요한, 내게 유의미한 인간관계들과 구체적 행위를 통해 가능한 행복감! 어쩐지 작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설레고 꽤나 수확이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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