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로 가는 담쟁이 고래책빵 그림동화 10
방승희 지음, nroow 그림 / 고래책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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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유행이었던 듯도 싶은데, 빨간 벽돌로 지은 단독주택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 집들 중에는 유난히 담쟁이덩굴이 잘 자라 한쪽 벽면을 덮으며 무성하게 올라가는 집들도 있었는데, 그런 집들은 마치 차가운 벽돌이 동화와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 특별한 공감으로 바뀌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세월이 가고 덩굴이 굵어지면 건물을 밀어낸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담쟁이덩굴은 주기적으로 제거해야 되는 대상이 되었는데, 그런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면 어린 내 상상과 추억도 함께 잘려 나가고 벽돌들이 다시 평범한 건축 재료로 바뀌고 마는 것 같아 황량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이제는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도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드문 시절이다. 담쟁이덩굴이 주인공인 책은 처음 읽어본다. 어쩐지 추억이 한 조각 튀어나온 듯 반갑다.

 


꿈을 가진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보다는 이런저런 놀림과 방해를 받는 일도 자주 있는데, 이 책의 담쟁이 역시 그러해서 안타까웠다. 이 동네 다람쥐, 들쥐, 참새들은 어찌나 성격이 고약한지 담쟁이의 꿈이 바보 같고 한심하다고 조롱한다. 태풍조차 담쟁이를 괘씸하게 여기며 기어코 힘자랑을 해대는 가혹한 환경이다. 현재의 익숙함과 편안함을 떠나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일은 대개 그렇듯이 주변도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높은 곳에 혼자 머무는 것이 외로워서 땅에 내려와 친구들을 찾아가는 일이 뭐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가슴에서 두근두근 북소리가 난다고 말하는 담쟁이는 꿈을 갖고 있고 용감하게 도전하니 부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신간서적의 첫 장을 넘길 때를 제외하면 가슴이 선명하게 두근두근하는 일이 드문 나로서는 그렇다.

 


역시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는 것! 고래로 도전하는 이들에 대한 조롱과 멸시와 방해는 계속되었지만 좌절과 실패에 지지 않으면 애초에 목표로 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결실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초등여자축구부활동을 오늘도 열심히 하는 온 우리집 꼬맹이가 겹쳐진다. 대단한 반대는 없지만 몰이해와 친절의 옷을 입은 거리낌 없는 차별발언을 한동안 더 들으며 자랄 것이다. 담쟁이덩굴만큼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하고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모든 것이 신나고 신기하고 재밌고 친구처럼 보이는 더 어린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담쟁이에게 뭐라고 말을 건넬까 궁금하다. 놀리기 보다는 열심히 응원을 하는 상상을 해본다. 어른들이 보기엔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새롭고 흥미로운 것에 손을 잘 내미는 아이들, 어른이라 조심성과 의심이 더 먼저 앞서지만, 무언가 용감하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있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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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알고 싶다 : 낭만살롱 편 -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클래식이 알고 싶다
안인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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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odbbang.com/ch/14854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작이 어땠는지 기억이 없다. 5살에 이미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는데, 내가 배우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졸랐는지, 부모님이 좋아하는지 어떨지 일단 시켜보자셔서 시작되었는지. 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은 별로 말씀이 없고 늘 차분하고 잘 웃지도 않는, 그래도 나는 늘 연습실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불편하거나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첫 수업에 피아노 의자에 앉은 나를 사진으로 찍어 주셨고, 진도에 따라 가끔 기념사진(?!)도 빠지지 않고 찍어 주셨고,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로 이사를 가셔서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날도 역시 사진을 찍어 주셨다.

그 이후로 다닌 교습실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 나에게 피아노에 대한 추억은 처음 그 시절의 모습으로 각인되어있다.

다른 교습실에 다닌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니, 연주가 틀릴 때마다 붉은 줄이 생길 정도로 손등을 맞은 일도 있고, 힘들고 실어서 운적도 많다고 하는데, 다행히 그런 경험이 없어서 정말 운이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형식에 집중해서 상당히 전형적 방식을 따르는 교습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분위기라면 그나마 경험할 수 있는 음악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모조리 망쳐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로서는 일찍 시작한 음악 교습으로 인한 덕분인지, 나는 비교적 정확한 음감을 가지게 되었고 운 좋게도 집에서 원하는 연주를 거의 매일 원하는 만큼 연주하는 일이 버릇이 되었다. 바이엘이나 체르니가 세상에서 젤 좋은 교재는 아니지만(이 교재들로 인해 한국의 피아노 연주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쨌든 피아노 연주에 필요한 테크닉을 안다는 것은 연주와 음악에 대한 두려움의 무게를 상당히 덜어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집중적으로 인생을 걸고 연주자가 되어보겠단 꿈을 꾼 적은 없다. 부모님도 그런 권유를 하신 적이 없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발표회는 자주 참가했지만 수상경력은 없는, 수상하지 못했다고 속상해하거나 울지도 않는 나의 재능(?!)에 그저 즐겁게 하는 정도로 합의된 환경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일상이 되어버린 즐거운 취미생활로 피아노와 가깝게 지내다, 초등4학년 때 현악부에 들어갔다. 부서에도 피아노 파트가 있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나는 첼로 파트를 지원했다. 아름답지 않은 악기연주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첼로 현이 떨리며 들리던 그 순간에 얼마나 가슴이 함께 떨렸는지 설명할 수 없는 애착이 생겨서였다.

첼로와 함께 하는 시간동안에도 역시 인생을 걸어보자 연주자가 되어 보자 이런 방향으로 결심을 하거나 야망이 생기진 않았지만, 나는 그 활동을 통해, 독주와는 완전히 다른 합주의 다른 아름다움과 재미를 확실하게 느꼈고 ‘서양클래식’에 대한 취향이 깊이 형성되었다. 길을 걷다가도 좋아하는 튠이 절로 흥얼거려지고 연주회 연습이 즐겁기만 했고 연습이 없는 시간들이 무료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딱히 시대와 연주형식을 가리지 않고 갈 수 있는 연주회나 음악회를 즐겁게 다녔다.

물론 취향은 자리를 잡았지만 본격적으로 덤벼들어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클래식 전반에 대한 이해나 지식이 체계적이고 폭넓은 것이 아니란 점을 깨닫고는 원하지 않는 친구들을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꽤서 클래식 100곡 연주를 듣고 외우는 무모한 내기도 벌린 적이 있다.

 


그 시절을 모두 지나면서 이리저리 다른 이유들로 이동이 많은 삶을 살면서 사용하던 피아노와 첼로는 이미 오래 전에 기증을 했다. 더 이상 연주의 영역이 아니라 듣는 이로만 산 세월이 점점 쌓여갔다. 그러다 우리 집 꼬맹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오랜만에 반갑게도 다시 피아노와 피아노 연주가 돌아오게 되었다. 기대보다(기대가 없었다) 빠른 진도와 향상을 보이는 꼬맹이가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내게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모습이 넘 귀여워서 다시(?!) 배우게 되었다. 제가 잘 가르쳤다고 생각하는지 이제 번갈아 연주하자고도 하고 노래를 부를 테니 연주해보라고도 하고 충실한 노예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다 혼자인 시간에 원하는 연주를 해볼까 손을 올렸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피아노를 배운 것은 전생이었나 싶게 연주가 안 된다! 애성과 욕심이 강한 성격이 전혀 아닌데도 순간 악몽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억울하고 충격적이었다. 세월 탓을 할 밖에......

올 봄에 연주회에서 뜻밖에(?! 가족들 모두 아무 기대가 없었다) 2등을 한 꼬맹이가 더욱 열심히 집중하는 귀여운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운 좋게 알게 된 [클래식이 알고 싶다]를 읽었다. 해당 음악가에 맞춰 팟캐스트와 유튭 또한 제공하는 저자 안인모의 선곡플레이를 들으며 읽었다. 친절하고 유쾌한 강연 그대로의 목소리가 책에서도 들려오는 듯하다. 참 재미있고 기분 좋은 책이다. 순서대로 읽은 필요는 없다. 나는 가을이라 브람스로 시작해서 클라라, 쇼팽 순서로 책을 읽어 나갔다. 부지런한 분들은 책 내용에 맞는 QR코드를 일일이 확인하고 감상하시며 읽으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덕분에 지난 주말은 올 가을 최고의 휴식시간이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03QFJjjurmki1sXhktlCq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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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을 어릴 적에 문고판으로 읽어 보고 영화도 보았지만, 다시 흥미를 가지게 될 줄 몰랐습니다. 특히 [그래픽노블 모비딕]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고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네요. 어쩌면 제가 어릴 적엔 의무감으로라도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공감하고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아이들과 함께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매일 자잘한 일상을 해치우고 유지하는 일에만 체력의 대부분을 고갈하는 저도 오랜만에 깊고 푸른 바다와 신비하고 아름다운 바다생물을 다시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란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도 합니다. 아름답고 가치있고 참 좋은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 세계문학클래식을 새롭게 더 아름답게 출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판문화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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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Alaska) 일주 - 자연 그대로의 자연
이종호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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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페어뱅크스를 거쳐 다시 앵커리지까지,

1,800여 MILE(약 2,880KM)에 달하는 거리를

직접 차를 몰아 떠나는 일주 여행길.

 

책 전체가 사실들을 묘사하고 설명하고 기록하는 내용이며 이를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한 사진들이 있다. 저자의 주장이 특별하게 드러나거나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는 비유와 상징을 이용한 소위 글쓰기 기술도 없이 시종일관 담백하다. 물론 이런 표현들이 없어도, 적어도 내게는 ‘알래스카’라는 장소가 주는 특별한 느낌이 강해서 정신없이 구경하며 읽었다. 사진 한 장마다 글 한 문장마다 내게는 중요한 정보이고 기록이다.

 

오래 전 이곳에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한 잘 웃는 좋은 친구가 있어, 알래스카의 역사도 자연환경도 정치사회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도 그냥 먼 곳까지 가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곳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때의 상상보다 환경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거친 모습이다. 물론 흥미진진한 기후도 한 몫한다. 뜻밖에도 관광객들과 한국인 이민자들이 생각보다 많은 듯해 조금 놀랐지만 상대적으로 ‘자연 그대로’의 여행을 원하는 예비 여행가들에게는 읽지 않고 모르는 것보다는 읽어서 알게 되는 편이 백만 배는 더 좋은 충실한 가이드와 같이 신뢰가 가는 좋은 책이다.

 

나이와 체력에 별반 비례관계가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서글픔이 있지만, 그래도 46년생이신데 대단한 체력과 열정이시란 생각에 부러움을 살짝 뛰어넘는 질투가 느껴진다. 200일 전부터 여행을 준비해서 처음 가본 곳에서 17일 동안 직접 운전하는 자유여행! 점점 더 게을러져서 이제는 꼬맹이들 체험학습에 끼여 다니는듯한 기분의 짧은 인공적인 여행에 스을쩍 시간을 내주고 마는 내 처지에 이 책을 읽은 것이 궁금하지만 못 가본 곳을 비교적 생생하게 볼 수 있어 다행이었는지 마음이 뜨끔거리는 자학이었는지 어리석은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그런 질투심에 사로잡힌(?!) 김에 한 가지 지적하자면, 내용이 적어도 내게 익숙하거나 기대한 여행기에서는 조금 다른 형식이라 마지막에 가서는 살짝 어리둥절했다는 점이다. 여행기란 여행지에서 혹은 여행을 하면서 혹은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하는 사람이 생각하고 느끼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 책은 그런 내용을 참 드물게 찾아볼 수 있는 사진전 도록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물론 생생한 사진들에 넋을 놓고 오래 바라보긴 했지만, 다 읽고 나니 사진 설명을 열심히 들은 것같다. 저자가 글줄보다 사진에 더 느낌을 담아 올린 것이라면 감상이 얕은 독자로서의 내 탓이지만, 어쨌든 나는 언제나 언어로 하는 소통행위가 제일 쉽고 좋은 지라 저자의 생각과 감상을 문장으로 전달받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마 이 점은 누군가에게는 장점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점이 될 것이다.

 

물론 200일의 수고스런 준비기간도 없이 17일의 운전 고행도 없이 한 발도 대딛지 않고 따뜻한 실내에서 무려 알래스카의 풍경을 사진으로 감상하는 일은 분명 행복한 일이었다. 덕분에 오래 전 사진을 찍으러 간 내 친구는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알아봐야겠다는 부지런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실제로 가게 되는 날까지 얼마나 즐거운 상상을 하는지는 내 몫으로 남는다. 저자가 오래 건강하게 즐겁게 가족들과 행복한 여행을 다니시길 진심으로 응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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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작은 아씨들 - 누구보다 자유롭고 다채롭게, 삶의 주인공을 꿈꾸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서메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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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은 어느덧 출간되지 150년이 넘었고, 5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나는 어린 시절 문고판으로부터 쭉 끊이지 않고 다양한 출간본을 읽어 보다가, 올 해 여름 드디어 완역본을 읽게 되었다. 900쪽이 훌쩍 넘는 분량도 반가웠고, 잊어버렸는지 미처 몰랐는지 아직도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해서 여름의 막바지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네 자매를 연령별로 동일시하며 감정 이입한 것과 달리, 처음으로 원 저자에 대해 가장 상세히 알게 되었고, 저자의 삶과 선택과 가족 관계와 시대적 배경에 대해 소설 자체만큼이나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을 수 있었던 점이다. 간혹 자기고백이 강한 소설을 읽는 경우가 있는데, 작은 아씨들은 개인사와 사적 감수성에 더해 시대정신과 고민을 함께 이해할 수 있어서 이해와 인식의 폭이 한층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나와 작은 아씨들>이란 제목을 보았을 때, 드디어 수많은 독자들이 감정 이입한 세월을 글로 단정히 출판한 책이 나왔나보다 일단 반가웠고, 혹시 서평일까 에세이일까 몹시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여름에 완역본을 친구들과 함께 읽고 오랜만에 감상평을 수다처럼 흥겹데 나눴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여, 장녀로서의 매그와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찾는 조와, 온화하지만 언제나 주변을 아우르는 베쓰와, 현실적인 한편 재능을 향해 용감히 나아가다 고단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유연히 모두 한 자리에 있어서, 새삼 작은 아씨들이 포용할 수 있는 캐릭터들의 상징과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이제는 새삼스럽게 느껴져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해도 꿈이 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서로에게 하지 않지만, ‘그 때 그 시절’의 사랑과 우정과 꿈을 다시 소환해서 미처 하지 못했던 위로와 칭찬을 건네는 일 또한 기쁘고 필요한 일이다.

 

또한 원작자의 삶과 선택을 존경하고 감탄하지만 아무래도 시대적 상황이 달라 네 자매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다 해도 매끄러운 대화와 공감은 불가능할 것이란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없지는 않았는데, 번역가이자 작가인 서메리님의 소개를 읽어보니, 살짝 놀랄 만큼 공감가는 여정이 보여 더 친근감이 든다. 나와 친구들 중 몇몇 역시, 처음의 계획과는 다르게 자신을 거듭 발견하거나 이해하고 새로운 선택들을 하는 과정에서 불안감과 일종의 실패를 지칠 만큼 봤보았다. 연배는 어리지만, 서메리 작가가 그런 결정의 한 지점에서 이렇게 반가운 책을 출간하고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현재를 무조건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나에게 <작은 아씨들>은 책표지를 들여다보는 짧은 순간에도 두근거리는, 어린 시절의 소중한 보물처럼 아련하고 달콤한 선물이다. 그 행복감이 상상 속에서 커다란 대조를 이루어 그럴 때 늘 밖은 춥고 바람부는 한 겨울이고 나는 따끈한 실내에서 달콤한 간식을 앞에 두고 더 행복한 내일을 믿는 그런 장면이다. 그런 세월은 내가 마련하지 않으면 다시는 당연한 듯 주어지지 않겠지만, 그런 시절을 늘 힘들이지 않고 순식간에 펼쳐주는 책이 있다는 것은 크나 큰 기쁨이다.

 

올 해 크리스마스에 맞춰 개봉되는 <작은 아씨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초조하게 기다려진다. 원작에 충실해도 시대적 재해석이 진행되어도 어떤 식이라도 보는 내내 행복할 것이다.

 

여성이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투표권도 없던 그 시절에, 여성운동, 노예해방운동, 금주운동들이 전개되던 그 시절에 올콧 작가가 ‘조’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켜 오늘날까지 매 달 천 여권이이 넘게 읽히는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과 축복을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이 에세이를 읽었다.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장벽과 금지와 혐오와 차별이 생각보다 많고 단단하지만, 일상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을 마냥 하지 않겠다고 펑펑 울며 거부하면 되는 시절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운이 좋아야 때론 가벼운 짐을 지는 일일뿐 아니라 대부분은 버거운 짐을 지는 일이지만, 그래도 포기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심정이라면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길고 길 수도 있겠지만...... 최초 출간된 1868년부터 오늘날까지 작가 서메리처럼 ‘조’는 수없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아마 이제는 <Little Women>을 <작은 아씨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에서 우리가 한발쯤은 더 나아가야할 지도 모른다. 그 시대적 배경으로도 이토록 강인하고 성숙한 네 자매을 아씨들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지금에 와서는 더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맘에 쏙 드는 대안이 없지만, 나는 반드시 재기발랄하고 생각 깊은 누군가가 언젠가 이 번역을 바꿔줄 것이라 믿는다.

 

“벨이 그러는데, 가난한 여자는 적극적으로 남자를 잡지 않으면 가망이 없대.”

메그가 한숨을 폭 쉬며 말하자, 당찬 조가 씩씩하게 받아친다.

“그럼 우린 노처녀(Old maid)로 살면 되지!” 146

 

“먹고살려면 남자들은 일을 해야 하고, 여자들은 시집을 가야 하다니, 정말 끔찍하게 불공평한 세상이야.”

 

첫째 언니 메그가 신세 한탄을 할 때면, 에이미는 그 곁에서 밝은 목소리로 기운을 북돋워준다.

 

“걱정 마, 언니. 돈은 내가 벌어다 줄게.” 169-170

 

하지만 이상하게도, 네 자매의 행운은 이런 불편한 감정을 조금도 자아내지 않는다. 우리는 순수한 친구의(혹은 언니의, 동생의) 마음으로 그녀들의 기쁨을 공감하고, 오히려 그토록 커다란 선물을 안겨준 이들에게 내 일처럼 고마운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작은 아씨들에게 찾아온 행운이 단순한 요행이 아니라 그녀들 본인의 노력과 따뜻한 주변 사람들의 배려로 이루어진 필연이라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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