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님의 책들을 편애하는 지라 차분하게 다른 책들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역시 <과학 콘서트>에서 시작하여 정재승님 다른 책들의 가족 독서/수다 모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짜정보들이 인터넷을 활용해 너무나 쉽게 퍼지는 현실에서 더 많은 분들이 읽어 보심 차분한 생각과 태도로 판단과 논리를 키워 사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응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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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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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대의 저자가 초고를 낸 후 오랜 세월이 지나 저자도 나도 40대인 채로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처음엔 20대의 발랄명랑쾌할풋풋재미즐거움 등등을 기대했으나, 명불허전 김애란 작가는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평생 도달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이미 20대에 다 들여다 보고 있었는가, 하는 느낌이었다. 혼자인 '나,' '우리'라고 불리지만 여전히 '나'인 '나,' 스스로에겐 세상 가장 중요하고 특별하지만 크건 작건 어느 사회에서나 손을 흔들지 않으면 비가시적일 만큼 평범한 '나.' 그런 '나들'의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모여 있고, 그렇지만 혹은 그래서 그런 '나들'이 아주 작지만 필요한 그 순간에 조금 다른 선택들을 함으로써 어떻게 (독자이자 시민인 내게는) 대단하고 중요하고 특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상의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해석해내는 비범한 이야기들이다.

 


이것은 당신과 아무 상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수만가지 일들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당신이 절대 가볼 리 없는 지방 관광도시의 고장난 공중전화와 당신, 스타크래프트 챔피언과 당신, 고생대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빛도 산소도 없는 곳에 사는 지옥의 오징어와 당신, 당신과 당신 사이의 당신.

 


나는 진심으로 너무 자주 감동을 받아, 책 귀퉁이를 접는 것을 지나, 오랫만에 포스트잇 필사를 감행했는데, 다 읽고 나니 책상 위 벽이 빽빽한 지경에 이르렀다. 뭘 잘못 읽었나 싶어, 2019년 리마스터 판 말고 이전 판을 애장하고 있는 친구에게 빌려 그것도 읽어 보았다. 초판이 출간되었을 때 읽었다면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놓쳐버린 그 시기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김애란 작가를 알아보고 책을 읽기로 선택했기에 오랫동안 경애와 감동의 느낌을 갖고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부러움을 넘어선 질투가 난다.

 

마침 그런 내 상황에 딱 맞는 구절도 있다. 반갑고 기쁘다.

 

바람이 들고 날 때마다 모든 벽면은 바깥을 향해 천천히 부풀어 오르다 다시 원상태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럴 때면 다섯 개의 벽면에 붙은 포스트잇들은 일제히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자 그것은 더욱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방 전체가 하나의 종이 비늘이 달린 물고기가 되어 부드럽게 세상을 헤엄쳐다니는 상상을 했다. 반대로 자신이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느꼈다.

 

괜히 내 포스트잇들을 부러 물고기 모양으로 다시 붙여 보았다. 서늘한 가을 바람이 포스트잇 사랏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음에 파고드는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목이 조금 칼칼했다. 나는 기대보다 생각보다 정말 많이 웃었다. 그랬다는 점이 정말 놀랍기도 했다. 순전히 재밌어서 웃은 웃음은 아니지만 콕콕 꼬집어내는 작고 큰 위선들과 게으른 생각들과 익숙해진 것들이 유쾌했고, 작가의 비틀기가 취향에 맞았다.

 


나는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나쁘면서 불쌍하기까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A를 그냥 A라고 말하지 왜 C라고 말한 뒤 상대방이 A라고 들어주길 바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내 앞사람이나 옆사람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쾌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누군가 내 방에 와 ‘책이 많으시네요’라고 한마디 해주면 기뻐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편견을 아끼는 사람, 나는 그 편견을 얻기까지 달려갔다 다치고 온 길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례한 사람이다.

 

 

 

세상엔 이유를 알고 나면 너무 시시해져버려 오히려 영원히 알지 않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들은 이유가 있다. 그리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들은 반드시 할말이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나의 이력이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단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대단하지 않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대단한 사람에게 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왠지 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늦게 만난 이 책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잔뜩 남겨 두고 끝이 났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미래의 나는 이 책을 마음에 드는 시집 들춰보듯 여러 번 이 단편에서 저 단편으로 옮겨 다니며 머물 것이다. 그때도 포스트잇 필사를 하게 될 지, 아니면 편지를 쓰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 벽면에 비늘을 사라락거리며 날아다니는 물고기들이 많아지거나 커지는 것은 반가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잃어버린, 해양생물들과 먼먼 바다 여행을 떠나는 프리다이빙과 수영이 가능했던 꿈속의 내가 다시 꿈속으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김애란 작가가 [영원한 화자]에서 남긴 "나는 아직 잔뜩 남겨진 자"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적어 본다.

그래 ​아직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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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엽충 - 최지운 장편소설
최지운 지음 / 밥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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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읽은 사설에 ‘청년팔이’를 하지 말라는 청년들의 엄중한 논조가 있어서, 앞으로는 조금 더 숙고한 후 뭐라도 얘기를 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적어도 너무 쉽게, ‘무슨 무슨 세대’라고 퉁치듯 일반화하고 한 바구니에 집어넣은 짓은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싶다. 명명이 없어진다고 청년들의 현실이 바뀌거나 좋아질 리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청년 세대의 고민과는 상당히 멀어진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세대이기에 정말 오랜만에 청년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

 

순전히 운이 좋아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본 적이 없어, 취업의 절박함을 극한으로 느낀 적은 없지만, 경제적 독립이 정신적 독립을 보장한다,는 생각이 20대가 되고 바로 생겼기 때문에, 취업은 ‘당연한 일’로 여기고 실제로 꽤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긴 하지만, 전공이 다르고 세대가 다른 점은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차이점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결과로 이끌었다.

 

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취업을 간절히 바라나 취업이 불가능해서 학교에 남아 있는 입장이고, 나는 사실 진학을 거듭해서 학교에 남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으니, 아니 더 정확하게는 학교에 남기로 선택한 것이었으니 ‘랩’이라고 표현되는 공간에 대한 정서와 주변 인물들 - 특히 후배들 - 과의 관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읽기 전에는, 취준생 혹은 꿈을 이루고자 오랜 기간 애쓰는 고달픈 인물들을 무려 고생대부터 살아온 화석들과 연관하여 명명하고 소개하는 방식이 새롭고 독특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아무리 생물사에 한 획을 긋는 대표적이고 유명한(?) 화석들이라 해도 살아있는 살아가는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인물들을 이미 멸종한 그리고 멸절된 죽은 사체의 증거인 화석들과 연관 짓다니 마음이 어둡고 무거워졌다.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어쩐지 현실보다 더 무시무시한 명칭이란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더 마음이 안타까웠던 것은 랩이 남아 있는 졸업생 선배들을 그런 명칭으로 부르는 대학생들의 형편이다. 그들 역시 무한 경쟁과 바늘귀 통과에 버금가는 ‘성공’ 기회를 잡아야하는, 그래서 드물게 있는 지원과 기회 앞에서 배려와 양보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는 멍청한 짓이라는 절박한 일상을 보낸다. 당연히 마음이 강퍅해지고 언어가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 집에도 벌써 청소년들이 있으니, 어쩌면 내가 안심하는 것보단 더 빨리 가족들이 소위 ‘청년 취업과 실업’이란 문제에 당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전공들과 수많은 다른 선호와 취향들을 가진 이들의 취업 보장 해법은 무엇일까......

 

작가의 의도는 비교적 확실하다. 자신과 주변인들의 모든 경험들을 가져 와 다 섞어서 버무린 듯한 현실에 충실히 기반을 둔 분위기가 다수이고, 그토록 현실의 문제점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위로와 위안과 희망을 보여 주는 일, 그래서 다 읽고 나니 이의 없이 함께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기우일 것이란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우울하고 진지하고 서글픈 분위기는 아니다. 사회 현실을 이야기하고 픈 작가들이 의례 그렇듯, 풍자적이고 희극적인 스케치가 바탕이 된 내용들을 유려하게 개인의 이야기들로 가져와,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와 불합리함을 개개인의 인간관계의 모습들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가독성이 큰 이야기이다.

 

* 피카레스크식 구성이 무엇인가 했는데, 다 읽고 나니 뜻밖에 그런 구성이 이 소설의 특징들 중 하나를 이룬다는 점에 동의한다. 에피소드들을 엮는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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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 그의 건승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투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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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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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문제란 결국 '에너지'와 '지구환경'의 문제라는 점을 빠르게는 1970년대부터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과 시민들이 얘기해 오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1990년에도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한데 쓰레기 치우는 문제로 떠든다!,라는 비난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2019년, 순전히 운이 좋아 아직은 수도꼭지만 틀면 마실 수도 있는 소독된 안전한 물이 끊임없이 나오고, 심지어 그 맑은 물로 대소변을 씻어 내리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이것은 이제 곧 당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두 달여간 비정상적 열기에 휩싸인 대한민국은 '조국사태' 이외에는 어떤 이슈도 중요하지 않은 사회로 언론에서 편집되고 있지만, 지난 21일 약 5,000명이 모여 서울 대학로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돌입했다. 참가했거나 사진을 본 이들은 알겠지만, 종교인들이 앞줄에 앉고 청소년들이 그 뒷자리에 앉았다.

 

무대 정면에는 '지금이 아니면 내일은 없다. 기후위기 지금 말하고 당장 행동하라'고 적혀 있었다. 과장된 것처럼 들린다면, 이는 이미 전 세계 10여개 국가와 1000여개 도시가 비상선포를 실시했다는 소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다른 것도 아닌 '생존'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고, 수립하고 실행 가능한 모든 계획과 대응과 정책을 서두른다고 해도, 미래세대에게 미안하지만 공멸할 확률이 더 높다. 지난 100년간 기후는 한 번도 방향을 바꾸지 않고 상승 곡선을 타고 올랐다. 이미 지구 기온은 2012년 기준으로 0.85도 높아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여년이다.
 
참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272018015&code=990100

 

이런 시기에 제목부터 목이 타들어가는 소설 [드라이]를 읽었다. 이미 현실이 절망적인데 만약 소설 또한 묵시론 적이라면 나는 단지 더 우울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멍청이가 될 거란 생각이 미리 들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10대들이 그토록 일 년 내내 질문을 하는데, 아직 제대로 된 답을 내어 놓지 못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기성세대가 아이들을 구하는 메시아 주인공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주인공이 되어 살아남는 이야기란 정보에 읽고 그 희망을 보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e_-LR8PpLk

 

아주 오래전부터 누구나 알고 있는 건조한 얘기이긴 하지만, 나 자신의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해 한 번 더 정리해 본다. 인간 몸에 포함된 수분은 체중의 60%, 체내 수분의 12%를 잃으면 인간은 갈증으로 사망한다. 평균적으로 공기 없이 3분, 물 없이 3일, 음식 없이 3주 이상을 버틸 수 없다. 이 법칙에 충실하게 [드라이]이 인물들은 마실 물이 사라지고 3일 만에 워터 좀비로 변하고 만다.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인간성을 포기하고 가능한 가장 잔인한 만행을 저지른다. 재앙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폭력도 가능하다는, 인간이 이룬 문명사회라는 것이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단번에 무너지고 사라지는 구축물이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드라이]는 가장 현실적인 재난 중 하나를 다루고 있다.

 

6월 4일 오후 1시 32분.
사람들은 수도꼭지가 말라 버린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지도 몰라.
대통령이 암살된 순간을 기억하듯이. 15

 

예전에는 물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도 못하고 신경도 안 썼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16

 

폭풍 해일도 없고,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잔해도 없다.
단수는 암처럼 조용히 덮쳤을 뿐이다.
확연히 드러나는 증세가 없으니 뉴스에서도 하찮게 취급하는 것이다. 35

 

아마도 계엄령일지 모른다.
아마도 재난 관리청이 급수차를 몰고 올 것이다.
아마도 내일이면 모든 게 나아질 것이다.
당최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 이 사태에 신물이 났다. 80

 

그 속에 아이들이 순진하게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사실 이 내용이 정말 마음이 아프고 불편했다.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죽을까봐 끝까지 마음을 졸이게 된다.

 

뼛속까지 오싹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눈들이 양의 것인지 늑대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118

 

내 동생을 살리기 위해 누가 죽어야 한다면, 얼마든지 물을 빼앗고 죽게 내버려 둘테다. 헨리가 맞았다.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돼야 할 때도 있다. 지금 나는 괴물이다. 406

 

생각보다 환경 조건에 무력할 만큼 허약하고 인내심도 없는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면서, 그 광기 속의 약자들인 아이들이 생존하는 이야기가 누구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재난이라는 점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감성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거기에 아이들을 둘러싼 인물들에 대한 현실감 있는 묘사 – 일부 인간들은 더할 나위 없이 역겹다 - 와 상황에 대한 긴장감 있는 표현력이 얇지만은 않은 책을 단편처럼 단숨에 독파하게 한다.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일이 이 소설의 큰 재미이자 흡인력이다. 그 궁금증에 괴로운 장면들이 줄 지어 나와도 끝까지 읽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다만 소설 속 식수재난은 지역이기주의로 인해 촉발된 것이지만, 실제로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와 자원위기가 일부지역에서는 이미 현실화되어 있고, 곧 더 확산되리라는 암울한 미래 전망 속에서 이야기의 결말과 별개로 두려움과 절망이 사그라지지는 않는다.

 

‘부엌 수도꼭지에서 기묘한 소리가 난다.’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자꾸만 이제는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않는 수도꼭지를 힐끔거리게 된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었을 때조차 서로를 구할 힘은 기어이 우러나오는 것이다. 421

 

정녕 우리네 삶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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