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야마다 소위의 삶이 끝나기 직전 그의 눈앞을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잊지 못할 형상들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 달빛 아래 그림처럼 평온히 누워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33
인간의 마음이란 어두운 숲과도 같아서, 야마다처럼 이성적인 남자도 내면에 그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담아두곤 한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34
어쨌든, 야마다가 품고 있는 의도나 감정의 여러 결 사이에 인간적인 동정심이나 연민이 자리했던 적이 결코 없다는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잘 아는 바였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35
일출도 없이 찾아온 새벽은 그들을 둘러싼 나무들이 뿜어내는 회백색 은광을 비추며 은은하고 부연 빛으로 숲을 채웠다. 햇볕도 그림자도 없는 숲속에는 자리한 모든 것이 중력을 잃고 부유하는 듯 보였다. 나무들과 바위들, 그리고 눈까지 모두 여린 은빛 공기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다. 흡사 이승과 저승 중간에 있는 세계, 다른 세계들 사이에 살며시 끼어 있는 세계의 모습이었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36
윤기 없이 보송한 그의 피부는 양초의 밀랍처럼 연한 노란빛을 띠었다. 검은 깃털처럼 숱 많은 눈썹 아래 자리 잡은 두 눈은, 작았지만 초롱초롱 밝게 빛났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피면 왼쪽 눈동자가 미세하게 중심을 벗어나 곁눈질하듯 바깥을 향해 있었는데, 이러한 특징이 옥희의 얼굴에 어딘가 물고기 같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동그란 입술은 굳이 연지를 칠하지 않아도 붉은색을 띠었다. 약간의 장난기를 머금은 미소는 별처럼 반짝였으며, 그렇게 웃을 때마다 확연히 비뚤어진 앞니가 드러나지만 않았어도 매우 매력적이라는 평을 받았을 것이다. 그 외에도 옥희의 외양에는 특출 나게 어여쁜 여자아이에겐 속하지 않을 특징들이 몇 가지 더 있었다. 결론적으로, 옥희는 평범함과 예쁘장함 사이의 딱 중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어린 소녀였다. 그러나 정작 옥희 자신은 제 외모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전반적으로 아름다움을 탐탁지 않은 것으로 대한 탓이었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57
옥희는 끝없이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연화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는데, 그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이 자리했기에 둘은 완벽한 단짝이었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63
옥희는 특정한 단어들을 특정한 순서로 나열하면 자기 내면의 모습도 마치 가구를 옮기듯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한 마리 춤추는 나비처럼 언어 속을 누볐다. 내면에 쌓이는 단어들이 계속해서 그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가는데도 외부에서는 누구도 그 차이를 감지할 수 없었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65
가장 놀라운 사건들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이 작은 바늘 하나가 툭 떨어지듯 시작하여 꼬리를 물고 연쇄한다. 길 잃은 개 한 마리의 출현만큼이나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저 세월 속에 묻혀 흘러가는 여느 일탈로 말이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75
마치 기나긴 낮잠에서 막 깨어나 지금이 황혼인지 새벽인지 알 수 없는 때와 같은 낯선 기분이 들었다. 지금껏 특별한 사건 없이 꾸준히 이어져 온 지속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에게 생긴 작은 틈새 — 심장박동이 일순 멈추었던 것만 같은 그 느낌이 무슨 의미인지 아직 월향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77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선득하게 옥희를 휘감았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80
왼쪽 손바닥을 내려다보니 칼날에 깊게 베인 상처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핏방울이 마치 석류 씨앗처럼 반짝이며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80
옥희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하야시의 입에서 기계적으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이 끝나자 하야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바지춤을 추키더니 부하들을 이끌고 유유히 가버렸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84
시야 양쪽이 풀려 나가며 그의 육체를 지탱해 온 무릎도 마침내 힘을 잃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옥희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의 손 아래로 검붉은 피가 고인 작은 웅덩이가 땅을 적셨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85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던 여자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현실에는 기생, 하인, 혼인하지 않은 여자, 과부 그리고 이미 부양해야 할 입이 수두룩하게 딸린 부인들이 많은데도 말이다. 이런 여성들 역시 그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쓰디쓴 약초를 삼켜야 했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88
나는 그 애를 없애려고 했지만, 그 애의 영혼이 실처럼 나에게 이어진 거야. 인연이라는 게 참 이상하기도 하지.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를 붙잡을 수 없어.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도 인연이 다하면 한순간에 낯선 이들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끔은 그 어떤 변수에도 상관없이 영원히 너에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지. 연화와 나, 우리의 인연은 깊고, 지금의 이 삶을 초월한 전생에서부터 온 것이지.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90
그들은 서로 성격이 비슷한 두 친구가 종종 그러하듯이 한 사람의 마음을 두고 동시에 경쟁하거나 같은 종류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었다. 옥희는 그들이 각자 반쪽의 인생, 하나씩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서로 나란히 서 있을 때 진정으로 완전해질 수 있다고.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95
그 곁에 앉은 단이는 지평선을 향해 의미 있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그 아름답고 독선적인 눈길의 힘으로 창문을 지나 저 멀리 날아갈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96
더 나쁜 점은,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은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었다. 그의 상상력은 낯설지 않고 친숙한 것들 사이에서 계속 순환하며 흘러갔다. 말하자면 강물보다는 샘 같았고, 특히나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할수록 그랬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96
광장 너머로는 짙은 남빛 기와를 얹은 거대한 석조 아치가 우뚝하니 서 있었고, 그 옆으로는 작은 가게들과 신기한 건물들이 어미 개에 붙어 있는 강아지들처럼 올망졸망 늘어서 있었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97
인력거가 아치 밑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쪽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옥희는 형언할 수 없는 눈부신 고양감에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저/박소현 역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9ccc4b99aefa406c - P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