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호전적인 파벌의 시대, 일상적인 폭력의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절묘한 다이빙을 보여준 그 여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 동작의 자유분방함과 우아함에 대해서.

내 주변 의자나 선베드에 기대앉아 있는 낯선 사람 한 명 한 명 모두가 아무 곤란 없는 인생을 살도록 빌어주고 싶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a685a3c94534 - P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와 나는 철제 난간 위로 몸을 기울인 채 바닷속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다. 햇빛이 밝게 내리쬐고는 있지만 우리 머리 위 지붕이 만든 그늘 덕에 물속 깊은 곳까지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거기서 몸을 떨며 칠십이 년 전에 침몰한 전함의 상부구조 잔해를 관찰하고 있다.

내 손자는 아홉 살이다. 지금 나는 생의 예순여덟 번째 해를 보내는 중이다. - <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74a685a3c94534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바람의 이름은 할라스라더구나.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이니. 할라스. 나는 그날 밤, 아버지 옷 어딘가에, 혹은 머리카락 사이에 섞여온 이국의 모래알로 만들어진 아이였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은 분명 내 존재를 설명하는 가장 그럴듯한 핑계였다. 엄마는 이 세계가 그럴듯한 거짓말들에 의해서 견고히 다져질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쩌면 거짓말이야말로 엄마가 나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가장 건전한 소통 방식이었는지도.

-알라딘 eBook <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중에서 - P26

이것은 폴에 관한 이야기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내가 아는 만큼의 폴에 관한 이야기. 이것이 폴이라는 한 인간의 실체인가 하면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타인과 조우하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그 착각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 사이를 길 잃은 사람처럼 헤매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그것을 폴에게서 배웠다.

-알라딘 eBook <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중에서 - P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umanism was the particular glory of the Renaissance. The recovery, translation, and dissemination of the literatures of antiquity created a new excitement, displaying so vividly the accomplishments and therefore the capacities of humankind, with consequences for civilization that are great beyond reckoning. - P3

Now we are less interested in equipping and refining thought, more interested in creating and mastering technologies that will yield measurable enhancements of material well-being – for those who create and master them, at least. Now we are less interested in the exploration of the glorious mind, more engrossed in the drama of staying ahead of whatever it is we think is pursuing us. - P3

In any case, the spirit of the times is one of joyless urgency, many of us preparing ourselves and our children to be means to inscrutable ends that are utterly not our own. - P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가을 아침, 나는 1kg 더 희미해졌다. 가벼워진 느낌은 아니었다. 희미해진 느낌이었다. 아무리 굶어도 평생 55kg 이하로 떨어져본 적 없는 몸무게가 불쑥 54kg이 되어 있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서너 달 정도 된 것 같은데, 탄수화물을 줄인 지 몇 주 정도 된 것 같은데, 잠을 더 많이 자기 시작했는데, 뚜렷한 효과가 있나 보다. 나는 신이 나서 운동 일정을 일주일에 세 번으로 늘렸고 더욱더 엄격한 식단을 따르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에 동기부여가 돼서 그런지, 이상하게 음식이 별로 당기지 않았다. 끼니를 건너 뛰어도 배가고프지 않았다. 체중 감량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가벼워져갔다. 아니 희미해져갔다. 뭔들 어떤가. 이대로라면 평생 가져본 적 없는 몸무게를 찍을 텐데. 30대중반에 이렇게 다이어트를 성공시키다니. - P12

오랜 기간 조금씩 문제가 쌓이다 보면 시작점이 어디였는지, 정상적인 상태가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이 희미해진다. 산소가 조금씩 줄어드는 어항에서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숨이 차기 시작하고 점점 나른해진다. 어딘가 특별히 아프지는 않지만 매일 조금씩 누군가 지우개로 내 경계선을 쓱쓱 지워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다 지워지면 그 끝은 어떻게 될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P19

그렇게 지쳐갈 때쯤 Curie Oncology 라고 쓰여 있는 곳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다. 딱 봐도 마리 퀴리로 보이는 여자의 그림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과학자. 그녀에 대해 학창 시절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간판 밑에는 아주 작게 ‘Spring will come‘이라고 적혀 있었다. 봄을 찾아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 P29

모든 사람이 그렇듯 인간관계는 나에게도 늘 어려운 주제였다. 가벼운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망함과 무거운 인간관계에서 오는 엄청난 중력 사이에서 아늑하게 오래 머무를 만한 위치를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런 기대치는 사실 오래전에 버렸다. - P37

바닥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오히려 가장 어려운 일은, 상대방이 바닥이 아닌 정상에 있을 때 진심으로 내 일처럼 축복해주는 것이다. 내가 바닥에 있을 때 손을 내밀어줬던 수많은 사람들 중, 내가 선택한 열다섯 명은 분명 내 인생의 정점에서 진심으로 함께 춤을 추던 사람들이다. - P40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 30년간 진료했던 수많은 환자들이 이런 상황에 놓이면 늘 책의 마지막 챕터로 바로 훅 넘어가려고 했죠. 책의 마지막 장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만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챕터로 가기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과 서사들이 있어요. 결말에 대한 통계를 알려드릴 수는 있지만 결말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싶다면 알려드리죠. 알고 싶으세요?" - P59

상실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소통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언어가 존재한다. J는 그 언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위로 덕분에 나는 철갑을 벗어던지고 가장 연약한 내 안의 알맹이를 드러냈다. 나는 강하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싸움이 목표가 아니라 완주가 목표이기 때문에 강하게 힘을 줄 필요가 없어졌다. - P73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항상 주위에 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힘들면 울어도 된다고 위로해주고 싶다. 아니, 오히려 강함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울어야 다시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니까 완주만으로도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원하는 결말이 아니더라도 그 결말을 마주하는 것만큼은 함께 해주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토핑 가득한 피자를 보내주고 싶다. 그렇게 같이 위로를 주고받고 싶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위로뿐이라 할지라도. - P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