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라 눈 감고도 대어를 낚을 수 있는 때였다. 외지인들로 넘실대는 거리 한가운데에서 한규는 정신없이 어깨빵을 치고 세단 앞바퀴 아래로 몸을 굴려넣으며 하루 이백에서 삼백쯤 되는 합의금을 모조리 현찰로 거뜬히 손에 쥐곤 했다. 그뿐 아니었다. - P21

게다가 윤 회장은 이미 사업의 다음 단계로 눈을 돌리는 중이었다. 그가 구상하는 사업 제국의 새로운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유통, 온라인.
그리고 암호화폐. - P25

그 꿈같던 시간이 끝나고 녹둥으로 돌아오자 다시 시궁창이 펼쳐졌다. 늙다리 선생들은 거무튀튀한 사람 가죽만 뒤집어 쓴 꼴이었고, 학생들은 대갈통이 아직 덜 여문 악귀나 다름없었다. 이들 모두가 민지욱 선생을 둘러싼 채 슬금슬금 그물망을 조여오고 있었다. 하루에 5센티미터씩, 슬금슬금.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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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전이었다.
아니다. 이 년 전이었나.
윤중정 회장이 더이상 얘는 내가 통제하지는 못하겠구나, 생각하게 된 게 그때였다. - P7

혼인신고라는 건 징역살이와 마찬가지다. 윤중정 회장은 징역도 두 번을 살았기 때문에 이를 잘 알았다. - P9

윤 회장은 어쨌든 이 또한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클라이언트를 접대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녹둥에서 자동차로 사십 분거리인 인천으로 넘어가 5성급 호텔 객실 하나 물색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최근까지 그렇게까지 해야할 접대는 아예 없었다. 13.5평 아파트의 황량함을 가려보려고 곳곳에 ‘와신상담‘이니 ‘재기’니 하는 붓글씨를직접 여러 장 써서 누런 벽면의 공백을 메워넣기도 했다. 징역살던 시절 영치되어 달달 외우다시피 한 <한 달 만에 작살나는 고사성어 550』이라는 책자가 도움이 되었다. 자고로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법이다. 그게 윤중정 회장의 지론이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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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고 있었구나.
아파트 발코니에 선 채 허공에서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그러다가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가기도 하는 눈송이를 하염없이 건너다보며 승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치 눈이 내리는 것이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도 된다는 듯이.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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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일에 불꽃놀이 대신 화형식이 열렸다. 예전에는 같은 나라였지만 이제는 갈라진 나라에서 내 친구를 공개적으로 불태워 죽였다. 화형당한 내 친구의 이름은 막심 레프코비츠다. 막심은 우리 일을 돕는 정보원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동료 사이 친분도 직업윤리에 위배되지만 나는 막심과 친하게 지냈다. 막심이 화형당한 이유는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불경스럽게 언급했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중에서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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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이 마음속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의 영혼은 짙은 어둠 속에서 숨이 막혔다.

-알라딘 eBook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중에서 - P12

끝물 사과로 소스를 만드는 중인데, 냄새가 잠시 그의 코끝에 와 닿는다. 트위드 재킷과 넥타이 차림으로 문밖으로 나서는데 달콤하고 친숙한 향이 오래된 어떤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알라딘 eBook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중에서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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