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31 아버지와 영수증
아빠가 마지막으로 남긴 영수증은 2001년 11월 초에 발행됐다. 일부를 적어봤다. 한 달 월세보다 비싼 방에서 하루 먹던 식대보다 비싼 밥 드시고, 내가 마지막인 줄 모르고 사준 백만 원짜리 양복은 아깝다고 입지도 않더니 70만 원짜리 수의 입고 가셨다. 가계부 사이에 끼워져 있던 통장의 마지막 잔액은 2,473원. 나중에 사후 통장 정리하느라 은행에 갔더니 이것저것 빼고 백 원 정도가 남았던 것 같다. 나는 그 영수증들을 아빠의 가계부에 끼워놓고, 사는 일이 편치 않을 때마다 펴본다. 내가 5천 원짜리 전문점 커피를 마시는 동안 아빠는 백 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셨구나, 내가 애인과 놀러 다니던 날에 아빠는 찬 소주 한 병 안주도 없이 마셨구나, 마치 그 사실 때문에 사는 일이 편치 않은 것처럼 가슴을 두드리지만 모든 후회는 참회가 아니라 변명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115-116/296p)
아버지에게 자식이란...
일주일 넘게 1월 1일자 신문을 들고 다니며 주위에 자랑하던 아빠는 한 달이 지나서야 시상식이라는 게 있고, 그곳에 내가 당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걸, 시상식에는 다녀왔느냐는 다른 사람의 질문을 받고서야 알았다. 내가 너에게 그렇게 부끄러운 존재인 거냐, 아빠는 격노하다 조금 울었는데,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상금을 혼자 쓰려고 그랬다는 말은 아빠가 부끄러웠다는 말보다 더 나쁜 말이었다. 뭐가 아니라는 설명은 하지도 못하고, 아니라고, 그런 건 아니라는 말만 하다가 내가 더 크게 울어버리는 걸로 상황을 끝내버렸다. 그리고 일 년 후 그런 식으로 모아둔 비상금을 들고, 나는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왔다.(114/296p)
언제적인가? 그 나이였던적이. 서른즈음에 비분강개 하며 김광석의 같은 제목 노래를 불렀던적이.
예수가 죽은 나이라는 표현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메시아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적이 없으니 인류의 나아갈 길이야 내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의미심장했다. 종교와 상관없이 그랬다. 아, 정말 뭔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97/296p)
꿈에 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구는 황동규 시인의 시 「꿈, 견디기 힘든」에 나온다. 그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황동규 시인은 꿈을 이렇게 정의한다.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전부’라고.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그것이 삶의 일부이거나 백일몽은 아닐 것이다. 내가 꾸었던 그 많은 꿈들은 여전히 내 삶을 이루는 전부다.(93/307p)
아버지...
아버지에게 들고 가서 나도 이렇게 잘 키운 식물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아버지가 밥상에 풋고추 따서 올려주던 것처럼 꽃봉오리 맺힌 날 무덤가에 올려놓으면 기뻐하시려나.(76/30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