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자식이란...
일주일 넘게 1월 1일자 신문을 들고 다니며 주위에 자랑하던 아빠는 한 달이 지나서야 시상식이라는 게 있고, 그곳에 내가 당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걸, 시상식에는 다녀왔느냐는 다른 사람의 질문을 받고서야 알았다. 내가 너에게 그렇게 부끄러운 존재인 거냐, 아빠는 격노하다 조금 울었는데,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상금을 혼자 쓰려고 그랬다는 말은 아빠가 부끄러웠다는 말보다 더 나쁜 말이었다. 뭐가 아니라는 설명은 하지도 못하고, 아니라고, 그런 건 아니라는 말만 하다가 내가 더 크게 울어버리는 걸로 상황을 끝내버렸다. 그리고 일 년 후 그런 식으로 모아둔 비상금을 들고, 나는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왔다.(114/296p)
언제적인가? 그 나이였던적이. 서른즈음에 비분강개 하며 김광석의 같은 제목 노래를 불렀던적이.
예수가 죽은 나이라는 표현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메시아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적이 없으니 인류의 나아갈 길이야 내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의미심장했다. 종교와 상관없이 그랬다. 아, 정말 뭔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97/296p)
꿈에 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구는 황동규 시인의 시 「꿈, 견디기 힘든」에 나온다. 그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황동규 시인은 꿈을 이렇게 정의한다.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전부’라고.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그것이 삶의 일부이거나 백일몽은 아닐 것이다. 내가 꾸었던 그 많은 꿈들은 여전히 내 삶을 이루는 전부다.(93/307p)
아버지...
아버지에게 들고 가서 나도 이렇게 잘 키운 식물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아버지가 밥상에 풋고추 따서 올려주던 것처럼 꽃봉오리 맺힌 날 무덤가에 올려놓으면 기뻐하시려나.(76/307p)
내가 살던 골목에는...
나무 그늘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가게는 더께가 앉은 물건들이며 발처럼 드리운 까만 고무줄 묶음이며 더도 덜할 것도 없이 구멍가게라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가게이다. 그리고 그 사이, 나무와 작은 가게 사이에 섬처럼 평상이 하나 놓여 있다. 오고가며 비비댄 엉덩이들로 인해 닳고 닳은 때가 반질반질해진 평상이 있는 곳. 길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36/30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