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다른 사람들이 예술에서 느끼는 강렬한 감각을 범죄가 그들에게 제공한답니다. 그런 경구는 ‘범죄’라는 말 대신, ‘전쟁’이나 ‘복수’라는 말로 대체하는 작은 차이를 제한다면 알바니아 인들에게 아주 잘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아주 객관적인 의미로, 알바니아 인들이 일반 법규를 어긴 죄수들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살인들은 늘 옛 관습이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됩니다. 그들이 벌이는 복수는 서문과, 이어 끊임없이 높아만 가는 극적 긴장과, 그에 따른 필연으로 죽음이 따르는 결론이 갖추어진, 비극의 모든 법칙들에 따라 구성된 희곡과 흡사합니다. 그들이 벌이는 복수는 산 속에 풀어진 성난 황소가 지나가는 길에눈에 띄는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파괴해버리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알바니아 인들은 그 황소의 목에 그들의 미적 감각에 따라 장신구와 치장물들로 치장을 하지요. 그 결과 황소가 풀려나 곳곳에 죽음을 뿌릴 때면, 알바니아 인들은 그와 동시에 미적 만족감을 음미할 수 있게 됩니다."(15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동료들의 유해가 어째서 그들의 가족에게로 송환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 그것이 그들 최후의 소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우리, 노병들에게 있어서는, 그 같은 감상주의적 발상이 유치하게만 생각됩니다. 군인이라면, 살아 있든 혹은 죽었든 동료들 사이에 섞여 있을 때에만 편안함을 느끼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을 그대로 놓아두십시오. 그들을 따로따로 떼어놓지 마십시오. 한데 몰려 있는 그들의 무덤은, 우리 내부에서, 지난날의 전쟁 혼을 생생하게 살아 있게 지탱해줍니다. 피 한 방울만 봐도 곧 목청을 높일 태세가 되곤 하는 겁쟁이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우리의 말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옛 전사들 아닙니까."(14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월의 밤이 들판으로 찾아와 있었다. 어둠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썼으나 벗어나지 못했던 달이 구름 사이로 나타났다. 달빛에 흠뻑 젖어들어 빛의 포화 상태가 된, 스폰지 같은 층층의 구름과 안개 사이로, 지평선과 거대한 들판에 밝은 빛을 비추며, 달빛은 차분하고 균일하게 물방울을 걷어 내고 있었다. 이제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매끄러웠으며, 지평선과 들판과 길은 온통 우유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날은 하늘이 낯설었습니다. 그날은 하늘이 무심하고 우울하게,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밝은 달빛 속에 풍덩 빠져든 것 같은 가을 밤이었습니다. 땅바닥에 드러누운 우리들은 모두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세상에! 하늘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60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왜 우리가 이 인식표를 다는지 아니?‘ 어느 날 그가 내게 물었습니 다. 그건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야. 그리고는 그는 빈정거리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너, 그들이 정말로 우리의 유해를 찾으리라고 생각하니? 뭐, 언젠가는 찾을 거라고 해두지. 이런 생각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고 네가 믿는다면 말이야! 일단 전쟁이 끝나고 난뒤, 유해를 찾는 일보다 더 큰 위선은 없을 거야. 난 말이지, 그런 친절이라면 받고 싶지 않아. 내가 잠들어 있을 곳에 나를 그대로 평화롭게 내버려 두기를! 이 개 같은 인식표일랑은 공중에나 던져 버릴 거야.‘ 그리고 실제로 어느 화창하던 날, 그는 그것을 던져버렸고 그 뒤 다시는 차고 다니지 않았습니다."(25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시 변통으로 곡괭이로 사용하던 나의 단검은 땅과의 전투에서 무력하기만 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흙을 한줌 파내고는 아쉬운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아! 내가 공병대에 배속되었더라면 지금 내게는 삽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빨리, 보다 빨리 땅을 팔 수 있을 텐데!‘라고요. 왜냐하면 바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물이 반쯤 차오른 구덩이 속에 다리가 걸쳐진 채, 땅바닥에 엎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 친구가 그의 검대에 차고 있던 단검을 빼내어, 두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구덩이를 아주깊게 파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나의 친구의 바람이었으니까요. 그가 내게 말했었지요. ‘만일 내가 네 곁에서 죽는다면, 나를 가능한 한 깊이 묻어 줘. 저 번에 테펠렌드(알바니아의 작은 도시)에서의 일처럼 개나 재칼이 나의 시신을 파낼까 겁이 나. 너, 그곳에 있던 개들 생각나니?‘ ‘응, 생각나고 말고.’
나는 담배를 태우며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그때에, 나는 땅을 파면서 혼자 웅얼거렸지요. ‘걱정하지 마, 너의 무덤은 깊은 무덤이 될 거야, 아주 깊은 무덤이. 그를 다 묻고 나자, 나는 누군가가 그곳을 발견하여 그의 시신을 파낼까 걱정되어, 구덩이 위로 작은 흔적이나마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땅을 판판하게 골랐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요란한 기관총 소리 에 무덤을 등뒤로 하고 돌아서서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고, 막 그를 버리고 온 어둠을 향해 다시 한 번 뒤돌아보며, 속으로 그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할것은 아무 것도 없어. 너는 결코 발견되지 않을 거야.‘라고 말입니다.(2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