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뫼르소의 <사형받아 마땅한> 냉정함, 무뚝뚝함은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면 그가 감각을 따라 파고들어 오는 현상과 인상, 움직임의 끊임없는 궤적들을 인식과 언어의 차원으로 바꾸는 공정의 긴장된 현재를 살고 있음을 증거한다. 그 현재는 의미와 판단을 추론의 결과물, 즉 과거로 정리해 두기 이전의 상태(감각은 계속된다는 한에서 언제나 <이전>일 수밖에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동시에, 임박하는 미래를 향해 계속적으로 열리는 의식의 한없는 진행을 의미한다. (해제 241/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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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는 어쨌든 환상 없는 긍정에서만 가능한 균형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성이 도덕을 거부하고, 행복이 희망의 부재로부터 태어나며, 정신이 자신의 이성을 몸에서 발견하는 독특한 순간 (…) 무릇 진실이 그 안에 환멸을 담고 있는 게 사실이라 한다면 모든 부정이 긍정의 개화를 포함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결혼Noces』 중 「사막」의 한 구절).> (해제 240/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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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적 효과를 멀리하고 쓸데없이 자기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 문체. 바르트에 따르면, 투명한 0도를 겨냥하는 글쓰기. 고전주의 언어의 곡언법litote이 그랬던 것처럼 단출한 도구성 이상의 것을 기획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속도와 선연한 질감을 얻도록 조직되는 문장들.(해제 239/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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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카뮈는 스스로를 향해 <언제나 더 표현하기보다는 덜 표현하며 쓸 것>이라 적은 바 있다(작가 수첩에 남긴 1938년 어느 날의 메모). (해제 239/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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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경한 것을 대하는 시선으로 『이방인』을 천천히 읽으며, 사소한 묘사들과 중요하달 수 있는 장면 사이에 무게의 경중을 두지 않은 채 그것들을 전면적으로 동등하게 겪어 가다 보면, 어느 결에 사람들과 풍경들을 바라보는 작중 화자 뫼르소의 근본적인 태도가 특별한 저항 없이 마음에 들어온다. <무관심>이 어떻게 해서 차별과 선입견을 배제하며 세계를 향한 평등하고 <무심한 애정>으로 열리는 창이 될 수 있는지, 세계와의 어긋남에 대한 감각이 어떻게 해서 인식의 차원으로, 다시 결단의 순간으로 옮겨 가며 영원 앞에 자기 몫의 한계선을 오롯이 긋고 오직 그것만을 온몸으로 수긍하는 것인지(<나는 내가 행복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과정을 따라갈까.
(해제 237/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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