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에는 하루하루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긴 동시에 짧을 수 있는지 몰랐다. 살아 내기에는 길다 할 수 있을 나날의 시간들은 늘어나고 또 늘어난 끝에 마침내 서로 범람하기에 이르렀고, 그럼으로써 제 이름을 잃고 말았다. 이제 내게는 어제나 오늘이란 단어만이 유일하게 의미를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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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간 아픈 사람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 자리를 뜨고 싶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 와 있는 마리의 존재를 좀 더 계속 누리고 싶었다. (141/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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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 전체가 송두리째 팽팽하게 긴장했다. 나는 경련을 일으키며 권총을 쥔 손에 발작적으로 힘을 주었다. 방아쇠가 굴복하고,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건드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거기서부터, 무미건조한 동시에 귀를 찢는 듯한 그 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방금 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고요를 파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꼼짝하지 않는 아랍인의 몸에 대고 또다시 네 발을 더 쏘았다. 총알들은 바깥으로 흔적을 드러내는 대신 몸뚱이 깊숙이 박혀 들었다. 그 네 발의 총성이 내게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았다.(116/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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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물과 소금의 장막 뒤에서 내 눈은 멀어 버렸다. 이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이마에서 울려 대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 그리고 그것에 가세한 정면의 단검이 뿜어 대는 번쩍이는 빛의 칼날뿐이었다. 그 뜨거운 검이 내 속눈썹을 파고들어 고통에 사로잡힌 눈을 후볐다. 그러자 모든 것이 흔들렸다.(115/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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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빛과 바다의 먼지가 만들어 내는 눈부신 훈영에 에워싸인 작고 어슴푸레한 바위 더미가 보였다. 나는 그 바위 뒤에 흐르던 신선한 샘물을 떠올렸다. 졸졸 흐르는 그 샘물 소리를 다시 듣고 싶었다. 태양과 힘든 노력과 여자의 울음소리를 피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그늘과 그늘이 주는 휴식을 되찾고 싶었다.(112/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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