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배달부 모몽 씨와 쪽지 대소동 웅진 세계그림책 266
후쿠자와 유미코 지음, 강방화 옮김 / 웅진주니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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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람쥐인 배달부 모몽씨와 도토리 숲 동물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의 그림체로 그려졌지만, 글쎄... 어른들 사이의 일이라면 충분히 문제가 될 여지가 많은 사건들이지만, 도토리 숲 동물들은 이 문제를 어떤 지혜로 해결할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도 묘미일 것이다.

오늘도 편지 두 통과 소포 5개를 들고나온 모몽씨는 첫 번째 배달을 받을 토끼 할머니 집으로 간다. 모몽씨를 보자마자,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토끼 할머니. 밭에 당근에 누가 다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다. 그런 당근은 한 개가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벌인 일일까? 모몽씨로 부터 받은 편지에는 범인이 적혀있었다.

편지의 내용은 "당첨도 있어요! -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가-

편지를 전해준 모몽씨도, 토끼 할머니도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토끼 할머니는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꽝"당근으로 수프나 끓여야겠다고 이야기한다.

모몽씨가 편지와 소포를 전달하는 동물들마다 당황스러운 상황은 계속 일어난다. 다음에는 다섯 마리 쥐의 집이었다. 모몽씨를 보자마자 쥐들은 도움을 요청한다. 자고 있는 사이에 다섯 마리 쥐들의 꼬리를 묶어놓은 것이다. 모몽씨의 도움으로 꼬리가 풀린 쥐들 앞으로 온 편지의 발신자도 역시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였다. 그렇게 오늘 전한 편지의 발신자는 모두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였다.

피해를 입은 동물들은 한자리에 모인다. 도대체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가 어디에 살고 있는 누구일까? 머리를 맞댄 동물들은 같이 선물 하나를 마련해서 모몽씨에게 전달한다. 과연 모몽씨는 호랑이꼬리 여우원숭이에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을까?



어른의 눈으로 보자면, 동물들에게 친 장난은 사실 장난을 넘어서는 내용들이었다. 남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고, 행동으로 위해를 가하고, 불법적이고 남을 놀라게 할 선물을 보내는 등 어찌 보면 악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동물들은 자신들이 받은 피해를 갚아주기보다는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를 만나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 그리고 그는 누구인 지 궁금했다. 사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이웃에 대한 환영의 마음을 전하고 싶기도 했다. 피해를 주었긴 하지만, 그 또한 새로운 이웃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이 한마음으로 전한 선물은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장난으로 했던 선물을 되받고,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상황을 겪으며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는 뭔가 느낀 게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웃들이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크다면 크고, 문제를 삼으려면 커질 수 있는 문제를 동물들은 지혜롭게 해결한다. 물론 무조건 참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생각해 보면 잘 풀어갈 수 있는 문제를 크게 만드는 것도 현명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그림책을 통해 또 지혜를 배운다. 그래도 호랑이꼬리여우원숭이 같이 다른 동물들을 힘들 게 만드는 장난을 치는 것은 잘못된 거라는 걸 이야기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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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땅에서 말씀 찾기 - 베들레헴에서 욥바까지 인문 기행
권종렬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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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를 지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십자가의 골고다에 설 수 없음을 알기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려는 이들에게 이 겟세마네는 언제든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p. 126

모태신앙으로 자라며 어린 시절부터 들은 설교만 해도 2천 편은 넘을 것 같다. (단순 계산을 해도 2천이 훨씬 넘는다.) 이 책의 저자는 30년간 목회를 하면서 한 설교만 1만 번이 넘는다고 하니, 그 숫자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많은 설교를 들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매년 성경 1독을 목표로 꾸준히 읽고 있지만, 어느 순간 성경읽기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같은 의미 없는 일상의 일과가 될 때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것은 일과가 되더라도 그 안에서 주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많은 매체와 책을 통해 직접 성지순례를 가지 않더라도 내가 있는 곳에서도 성경에 등장한 곳을 마주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목사님의 설교뿐 아니라 타 교회의 목사님들의 설교도 유튜브나 방송을 통해 접할 수 있다. 물론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 역시 강해 설교를 하시면서, 배경지식과 실제 의미를 매주 집어주신다. 덕분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숨겨진 말씀의 뜻을 깨닫고 다시금 고개가 끄덕여지고 도전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조금 더 피부로 와닿게 느끼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상당 부분 해소된 것 같다.


우선 책 안에 각 장마다 새롭게 알게 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포인트들이 등장한다. 가령 아버지 아브라함에 의해 제물로 바쳐지게 된 이삭의 마음과 그 이후의 그 가정 안에서 일어난 일들, 베들레헴으로 호적 신고를 위해 갔던 요셉과 마리아. 그곳에서 출산을 하게 된 마리아의 상황 등 저자가 집어주는 성경 속 이야기는 아! 하는 생각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감람산(올리브 산)에 대한 내용은 내용을 읽으며 놀라웠다. 당연히 올리브 나무가 울창한 산을 생각했는데, 설명을 읽고 실제 모습이 궁금했다.(아쉽게도 해당 사진이 없어서 인터넷에 찾아봤다.) 그리고 정말 깜짝 놀랐다. 저자는 올리브산이 지금은 민둥산이고, 그곳에는 올리브 나무가 아닌 무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정말 사진을 찾아보니 바깥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안에 네모난 돌들이 전부 묘였다. 물론 올리브산이 왜 묘지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지만, 사진 자체가 너무 놀라워서 한참을 멈춰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우리 부서 아이들이 특별 찬양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익숙하고, 잘 부르면서 가사의 의미도 깊은 찬양이었는데 그 찬양 가사 중에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렙돈에 대한 내용 또한 책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 렙돈이 얼마일까 궁금했다. 아주 작은 돈이라는 건 알았는데, 로마가 지배를 하면서 돈의 가치를 더 떨어뜨렸다고는 하지만 렙돈 3백 개가 로마 병사의 하루 임금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렙돈은 대략 병사의 하루 임금을 5만 원이라고 쳤을 때 2백원 정도의 가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작은...하지만 그 것은 그녀의 생활비 전부였다. 같은 본문으로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데, 헌금함에 동전을 넣었을 때 나는 소리로 헌금을 얼마나(어떤 동전으로)했는 지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도 동일한 내용이 등장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지만, 남들에 비해 너무 보잘것 없는 그 헌금을 드리면서 과부는 부끄러웠을 것이다. 렙돈을 떨어뜨릴 때 나는 소리가 너무 보잘 것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금화를 드리고 은화를 드리는 부유한 사람들은 헌금을 내면서 타인이 나를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 마음 조차 예수님은 정확히 꿰뚫고 성경 속에 말씀하신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도, 헌신도 지켜보신다. 구차한 가운데 최선이 헌신을 드리는 믿음에 감격하신다. 

절망과 좌절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놓지 않는 열망을 보며 기뻐하신다.

p.174

성경 속 다양한 곳을 직접 밟으며, 성경 속 인물들의 마음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었던 책을 통해 조금 더 말씀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한 지역들이 나오는 말씀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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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의 말하기는 달라야 합니다 - 사람을 사로잡는 재치 있고 긍정적인 포용의 대화법
이호선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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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함께 생각해보자." 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자신을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는 상대방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P. 65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 말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내 경험이 도움이 될까봐 하는 말이지만, 과연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까? 반대로 타인의 조언이 내게 조언이 아니라 잔소리 같이 느껴진 경험은 없는가? 내로남불이 아닌 멋지게 나이들기 위한 책. 오십의 말하기는 달라야 합니다는 그런 면에서 오십이 안되었어도, 충분히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책의 도입부에서 부터 이야기한다. 말을 잘하는 기술은 우선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이다. 자신의 마음은 말을 통해 드러난다고 한다. 말을 잘하려면 인성이 좋아야 한다는 말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그 의미를 다시한 번 새길 수 있었다.

물론 말은 기술이 필요한 것은 맞다. 같은 표현도 상대가 듣기 좋게, 상대가 반감을 가지지 않게 말하는 것의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나는 소위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기술이라면 기술이겠지만, 저자는 책 곳곳에서 그런 마음이 담긴 말은 자연스레 예쁘게 표현된다고 이야기한다. 파트너를 가르치려는 의도를 담게 되면 자연스레 그런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파트너가 나보다 아래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은 그렇게 표현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비단 파트너 뿐 아니라 후배나 자녀에게도 동일하다.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고 있는가는 말을 통해 자연스레 표현될 수 밖에 없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내 배우자에게 어떤 말을 사용하고 있는 지를 유심히 지켜보자. 내 말에 배우자를 향한 마음이 담겨있을테니 말이다.

책 안에는 그런 기본기를 바탕으로 좀 더 유쾌하고, 오래 기억에 남는 대화법도 소개하고 있다. 주인공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대화하기(주인공을 빛내는 대화법)를 비롯해서 한 문장으로 나를 모두에게 인상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소개법, 상처받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 등과 함께 말하기 전에 미리 체크해야 할 4가지도 담겨있다. 의상을 비롯하여 중요한 말하기 방법들이 들어있기에 꼭 한번 읽어보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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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 4285km, 가장 어두운 길 위에서 발견한 뜨거운 희망의 기록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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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길을 통해 내 인생을 다시 반추할 수 있을 줄 알았지.

나를 무너뜨린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스스로 다시 새로 태어나는 기회가 될 줄 알았어.

그렇지만 현실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고작해야 바로 눈앞에 놓인 육신의 고통에 급급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내 인생의 고통들은 해결되기는커녕 마음속을 왔다 갔다 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P.161

십 년 전, 일주일의 한 권 책을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몰랐던 나는, 그 책을 통해 책을 소개받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 마주했던 책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 와일드였다. 그리고 내 위시리스트 속에 담겨있다가 몇 번 나올 뻔했지만 책의 두께 때문에 늘 다시 들어가는 처지에 있었던 와일드를 제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두께만큼이나 그녀의 고통과 성장 그리고 진심이 담겨있어서 더 감동적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셰릴 스트레이드는 20대 초반에 어머니를 잃는다. 갑작스러운 진단을 받은 엄마는 1년 정도 남았다는 의사의 말과는 달리 채 2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재는 큰 딸인 셰릴에게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한다. 집안의 구심점이었던 엄마의 부재는 결국 동생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있던 셰릴은 결국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사이좋았던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된다. 하루하루 우울함 속에서 술과 섹스에 빠져 살던 셰릴은 결국 마약에까지 손을 대게 된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마주하게 된 PCT를 소개하는 책자를 보고 그녀는 여행을 결심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되는 해였다. 참고로 PCT는 Pacific Crest Trail의 약자로 미국 서부 4,300km에 달하는 트래킹을 말한다. 그녀는 서점에서 마주한 PCT 책자를 토대로 여행을 계획한다. 엄마를 잃은 후, 삶을 포기하고 살았던 셰릴에서 벗어나 과거의 셰릴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우선 짐부터 난관이었다. 물만 12L(무게로 따지면 12kg)에다가 각가지 짐으로 배낭은 그녀의 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 덕분에 그 무거운 짐을 가지고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첫 장면부터 그녀는 등산화 한쪽을 잃어버린다. 이미 그녀의 몸은 여기저기는 근육통과 쓸리고 찔린 상처들, 발바닥에 가득 잡힌 물집들로 이미 만신창이인 상황이었다. 중간중간 히치하이킹을 통해 차에 탈 때마다 혹시나 위협이 되는 사람일까 봐 고민이 가득하다. 그뿐만 아니라 갈수록 몸이 안 좋아지자 느려진 걸음과 산길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는 짐승들은 그녀를 더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다행이라면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PCT를 함께 걷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그녀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좋을 순 없었다. 상처가 되는 만남도 있었고, 그녀의 트래킹에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셰릴은 길을 걸으며, 서로의 상황과 삶을 나누는 동료들을 만나며 조금씩 상처를 치유한다.

PCT에 대한 준비 시간이 길었던 것도 아니고, 하필 그가 트래킹을 시작한 해는 폭설이 내려 과연 완주를 할 수 있을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었다. 거기에 그는 초보 중의 초보였고, 짐은 너무너무 많았다. 당연히 며칠 만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들이 수도 없이 들었다. 발톱이 빠지고, 넷째 손가락 살이 다 날아가고, 온 발이 물집투성이에다가, 각종 상처들로 몸 어느 곳도 성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몸의 아픔 보다 마음의 아픔이 더 컸을 셰릴. 그럼에도 그녀는 그 길을 완성했고, PCT에 대한 그녀의 서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믿게 되었다.

더는 무언가를 잡으려 텅 빈손을 물속에서 휘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단지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다른 모든 이의 인생처럼 나의 인생 역시 신비로우면서도 돌이킬 수 없이 고귀하다는 것을.

P. 575

셰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머리가 무겁거나 생각이 많아질 때면 어딘가를 걸었던 것 같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문제보다 현재 내가 걷는 길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괴로움이 조금은 지워지는 경험을 했다. 셰릴 역시 그 경험을 통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 역시 그녀의 여정을 눈으로나마 동행하며 그녀의 감정과 상황들을 같이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작과 끝의 글의 온도차가 있다. 3개월 간의 트래킹을 통해 그녀의 마음 또한 변화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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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호명사회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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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갈 고유한 무대에 대한 고민에서 '나의 이름'으로 살아갈 출발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p.286

시대 예보의 두 번째 주제는 바로 호명 사회다. 호명? 이름을 부른다는 뜻의 호명이 어떻게 우리가 마주할 사회일까? 첫 번째 책은 제목부터 확실히 이해가 되었지만 이번 책은 그가 어떤 서사를 가지고 호명 사회를 접목해 이해시킬지 사뭇 궁금했다.

첫 장인 시뮬레이션 과잉에서부터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선 나는 시뮬레이션을 즐긴다. 행동으로 하는 시뮬레이션이 아닌 머리로 하는 시뮬레이션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안정성을 즐긴다는 말이고, 나쁘게 말하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뜻이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머릿속으로 일어날 상황들을 시뮬레이션하고, 또 해서 긍정적인 답이 나오게 되면 비로소 행동에 옮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생각에 갇혀 폐기되고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극히 드문 상태가 된다. 책에 등장한 시뮬레이션 과잉을 통한 현재의 우리 모습 중 하나는 의대 준비반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여전히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가 의대생을 늘리는 발표와 함께 발 빠른 학부모들은 지방으로 주소를 이전하고 전학을 보냈다고 한다. 지방 의대가 자기 지역 인재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을 노린 조치다. 물론 주중에는 지방 학교를 다니고,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와 의대 준비반 수업을 듣는다. 고등학생이 아닌 초등학생들이 말이다. 더 나아가 유치원에도 의대 준비반이 있다니 경악할 노릇이다.

나 역시 대학에 입학과 동시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다. 물론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까지 하면서 시험에 매달렸지만, 합격 커트라인과 내 점수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었기에 그때를 마지막으로 공부를 접고 취업 준비를 했다. 내가 시험을 준비할 당시에도 커트라인은 90점에 육박했다. 결국 2문제 이상 틀리면 합격하기 힘든 상태였다. 문제는 실제 시험과목이 실무를 하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잉된 경쟁 속에서 뽑기 위한 시험을 보다 보니, 모두가 한 문제를 더 맞추는 것에 의의를 두고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물론 문제 역시 더 난해해진다. 비단 이것은 공무원 시험뿐 아니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은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시뮬레이션의 과잉은 결국 모두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 준비나 취업 준비, 돌잔치 준비, 출산 준비 등 각종 준비를 위한 체크리스트도 결을 같이 한다. 아무런 경험이 없는 초보들을 위한 도움의 손길인 체크리스트가 실제 경험을 하고 보면 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초보들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영역이 아닌 필수적인 영역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더 과하고 과한, 시뮬레이션의 과잉이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실제 경험을 제공받는 것은 어떨까? 선배들의 경험이 과거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세대가 도래했다. 과거와 현재 시대 사이에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는 만큼 보상이 주어지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그렇기에 기성세대들의 경험은 현 세대에게 과거만큼의 능력이나 존경이 아닌 꼰대의 이야기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더 나아가 그런 얹어지는 이야기들이 현 세대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내 삶도 감당이 안 되는데, 타인의 삶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운 현 세대들은 결혼도, 회식도, 매일 마주하는 직원들과의 식사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부장이 같이 밥 먹자고 할 때, 도시락을 싸왔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점심시간에 부장과 같이 앉아 밥을 먹으며 나눌 대화거리나 밥을 같이 먹는 시간조차 불편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담겨있는 말일 수 있다. 반대로, 같이 한 끼 먹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같은 취미나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식사는 어떨까? 바로 그들끼리 새로운 동반자(여기서 반은 반려자 할 때의 반(伴)이 아닌 밥을 뜻하는 반(飯)이다.) 관계가 생성된다. 피가 섞였기 때문에 와 같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의 관계가 아닌 스스로 선택해서 만드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명 사회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한 가장 쉬운 예는 바로 충주맨 김선태 주무관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회사라는, 사회라는,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 속해서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던 사회가 점차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충주시의 공무원인 그가 전국구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튜브 때문이었다. 그는 전문가도 아니고, 그저 충주시 유튜브를 관리하고 만드는 사람이었다. 충주시의 공무원이 아닌 김선태라는 이름 역시 우리의 기억 속에 박혔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노력과 열정과 성과를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호명 사회는 유동화와 극소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유동화는 한 조직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짐에 따라 개인들이 생존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극소화는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을 정도로(충주맨도 영상 제작부터 편집, 업로드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한다고 한다.) 기술발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타인에게 부탁하는 일이 줄어들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는 상황을 말한다.)

조직 속에 갇힌 개인이 아닌, 개인의 능력을 토대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 자신의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호명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앞으로의 시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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