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이 악어의 멋진 연설
파브리지오 실레이 지음, 음경훈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론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어른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말더듬이 악어가 어떻게 멋진 연설을 할 수 있었을까? 사실 제목을 읽고 나서, 말더듬이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이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책을 다 읽고 나서 반성했다. 말더듬이 악어가 자신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우리가 9번기 고층 빌딩 맨 꼭대기 층에는 코코 바로코라는 악어가 살고 있다. 코코 바로코는 다른 동물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어느 정도냐면, 주위의 동물들과 이야기를 하는 상황을 생각하기만 해도 진땀이 나고,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하지만 입 밖으로 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코코 바로코는 혼자 있는 게 편하다. 그런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당연히 코코 바로코를 찾는 동물들도 많지 않다. 그런데,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올 사람이 없는데... 코코 바로코는 바로 그 순간부터 또 긴장을 하기 시작한다. 누구일까를 생각하던 코코 바로코는 문을 열고 나간다. 우체부인 하마 핍포가 온 것이다. 그리고 코코 바로코는 우편물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이 우편물은 악어 클럽에서 보낸 것인데, 30주년 국제 악어 회의 만찬에서 연례 연설을 해야 한다는 우편물이었다.

세상에나...!코코 바로코는 패닉에 빠진다. 동물 한 마리 앞에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데, 악어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을 하라고?! 하지만 코코 바로코는 그냥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도움을 얻기 위해 그는 주변에 조언을 구한다. 우선 코코 바로코의 엄마는 악어들은 먹는 이야기만 하기 때문에 장황하게 내용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해 준다. 사실 악어들은 늘 먹는 이야기만 하긴 한다. 하지만, 코코 바로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코코 바로코는 여러 동물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기린은 멀리 보기를, 거북이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걷기를, 독수리는 높이 날라고 조언을 해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코코 바로코의 연설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장 많은 악어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을 더듬지 않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멀리 보고, 천천히 걷고, 높이 나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말일까? 결국 코코 바로코는 카프로니스 교수를 찾아가기로 한다. 그라면 코코 바로코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과연 코코 바로코는 국제 악어 회의에서 말을 더듬지 않고 연례 연설을 잘 해냈을까?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을 해야 할 때 어른도 패닉 상태에 빠진다. 코코 바로코처럼 처음에는 하지 않을 방법들을 계속 생각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면 우린 어떻게 할까? 사실 코코 바로코가 자신의 부족함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동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만 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조언들이 당장에는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글쎄... 결국은 그 모든 게 하나가 되어 코코 바로코를 바로 세워줬으니 말이다.

아이와 함께 읽으며, 내 단점이나 내가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어른들도 충분히 도전의 의미와 그를 위한 노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 퀴즈 백과 100 - 풀수록 똑똑해지는 바이킹 어린이 퀴즈 백과 시리즈
장희서 지음, 은옥 그림 / 바이킹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들은 퀴즈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시험과 퀴즈는 다르긴 하지만, 시험을 좋아하는 아이들의 경우 어느 정도 해당 과목에 대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퀴즈 역시 어느 정도 정답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재미가 있어 하는 것 같다. 큰 아이 역시 본인이 잘 아는 분야를 비롯하여 퀴즈 내고 맞추기를 좋아한다. 바이킹 출판사에서 나온 퀴즈 백과는 이번이 3번째 만나는 건데, 앞의 두 권에 대한 반응이 좋았기에 이번 책도 기대가 되었다. 문제는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 학기를 끝낸 아니라서 "과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려움 때문에 아예 기피하게 될까 봐 약간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책 속개 페이지에 등장한 퀴즈들을 보니 꽤 익숙한 문제들도 있었다. 아니다 다를까, 우리 아이 역시 제목을 보는 순간 "나 과학 잘 모르는데..." 이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한번 풀어봐."라는 엄마의 말에 용기를 가지고 첫 장을 넘겼다. 다행이라면 낯선 문제도 있었지만,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나 이거 알아."라는 반응을 하는 것도 꽤 되었기에 미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당수가 모르는 문제 투성이었다면, 아마 한 장 보고 바로 접었거나,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지레 포기했을 테지만 다행히 익숙한 문제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서 모르는 문제는 덤으로 알고 가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덕분에 제대로 학습과 상식을 알아가는 효과를 맛볼 수 있었다. 바이킹 퀴즈 백과 시리즈의 강점이라면 문제는 간단하고 짧지만, 삽화나 사진을 통해 궁금증과 홍미를 돋운다. 단지 문제은행식으로 문제와 답만 외우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답에 대한 해설이 등장하기에 좀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사실 과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상당수 성인들은 "어렵다."라는 편견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책 안에는 우리의 실생활에서 등장하는 내용뿐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이나 식물에 관한 퀴즈, 세계지리나 역사와 관련된 퀴즈도 나온다. (세상의 모든 지식이 한 분야에만 얽혀있지 않다는 것을 책을 통해 또 배우게 된다.) 가령 소의 위는 몇 개일까?(동물 퀴즈 백과에 나올 것 같지만, 생물 분야이기도 하다.) 인류의 복지에 큰 힘을 쓴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이 상은 어떤 과학자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과학자는 누구일까?(세계사에 나올 것 같지만, 과학자가 등장, 시상 분야에 물리학과 화학이 있으므로 과학 분야인 것도 맞다.)처럼 말이다.

아이와 함께 퀴즈를 맞히면서 나 역시 상식이 늘어난 것 같다. 가장 놀라웠던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미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관련된 문제였다.

Q. 뉴욕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이 금속으로 만들어졌어요. 원래 황동색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녹색이 되었지요. 이 금속은 무엇일까요?

1. 구리 2. 철 3. 은

자유의 여신상의 연녹색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산화되었다는 생각은 1도 못하고(그냥 페인트칠 한 거라 생각했다.) 있었는데, 원래는 황동색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답을 맞히는 것과 함께 산화라는 개념까지 함께 알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과학 분야의 100문제를 맞히다 보면 자연스레 과학도 그리 어렵지 않구나!라는 마음이 생기며 앞으로 배울 과학에 대해서도 기대가 늘어날 것 같아서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물론 어른이라고 모든 답을 아는 것은 아니듯, 아이와 함께 문제를 풀며 부모의 상식도 챙겨보도록 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겨진 건 죽음
앤서니 호로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앨릭스 라이더 시리즈의 작가이자, 유명 추리소설가인 앤서니 호로위츠. 촉박한 환경에서 촬영을 하는 중에 촬영장으로 들어서는 택시를 마주한다. 모두가 패닉 상태인데,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내리는 한 남자. 바로 전직 형사이자 현직 탐정인 호손이다. 호손과 호로위츠는 호손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을 협업하고 있다. 그리고 방금 벌어진 사건을 꺼내는 호손.

이혼 전문 변호사인 리처드 프라이스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녀를 죽인 흉기는 고급 와인병이다. 와인병에 머리를 강타당하고, 깨진 병에 의해 온몸을 심하게 찔린 상태로 발견된 그녀의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사람은 안노 아키라라는 작가다. 사건이 일어나기 얼마 전, 리처드가 남편인 스티븐 스펜서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아키라는 조금 남아있던 와인을 그녀에게 끼얹으며 와인병으로 혼내주겠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 그러고 나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마치 예언처럼 말이다. 호손의 말에 관심을 가지게 된 호로위츠는 다음 작품을 위해 그가 가는 곳에 동석을 하게 된다.

우선 용의자로 의심을 받고 있는 안노 아키라는 리처드가 변호를 맡았던 에이드리언 록우드의 전 부인이다. 아키라가 리처드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이유는 에이드리언에게 유리하게 사건을 끌고 가서 자신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리처드의 유언장에서 데이비나 리처드슨과 콜린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는 호손과 호로위츠는 데이비나를 찾아간다. 리처드는 이들 모자에게 큰돈을 남겼는데, 그 이유는 과거 데이비나의 찰스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과거 찰스와 리처드, 그레고리 테일러는 함께 동굴 탐사를 하는 멤버였다. 이들은 롱 웨이 홀 동굴 탐사를 함께 떠났는데, 큰 비가 내렸고 이 사고로 찰스는 사망한다. 실제적으로 이들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함께 간 탐사에서 찰스가 사망했기 때문에 리처드와 그레고리는 도의적인 죄책감을 가진다. 리처드는 그랬기에 찰스의 가족들을 부양하며 대신 아빠의 자리를 채워줬던 것이다.

이상한 것은 리처드가 사망하기 하루 전, 그레고리가 킹스크로스역 선로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사망했다는 데 있다. 요크셔에 거주하던 그레고리가 왜 데이비나가 사는 곳까지 왔고, 그곳에서 사망한 것일까? 이들의 죽음에서 석연치 않음을 느끼는 호손과 호로위츠. 또한 리처드가 사망한 곳에 쓰여있는 초록 페인트 182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건이 하나 둘 풀어지고 관련 인물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조금씩이 사건은 과거 롱 웨이 홀 사건과 연관이 있음이 밝혀진다. 과연 이들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범인이 된다. 물론 겉 보기에는 사건을 풀어나간 것이 탐정인 호손같이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호로위츠는 사건을 풀어갈 열쇠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이번 책이 호손과 호로위츠 콤비의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데, 전 작인 숨겨진 건 살인이 슬쩍 언급되다 보니 궁금해진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호로위츠와 이 책의 저자가 동명이라는 데 흥미롭고, 그녀가 셜록 홈스 시리즈의 속편을 쓴 작가라는 설정도 꽤 매력적이다.(셜록 홈스는 작품 안에서도 꽤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 하더라 - 마음이 그림과 만날 때 감상은 대화가 된다
이주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각자의 색깔은 모두 아름답고, 서로 다른 만큼 다양한 조화의 가능성을 가집니다.

우리의 색깔이 천편일률적인 ‘예쁜 색깔’들로만 이뤄지면, 오히려 더욱 조화롭지 못하고 지루해 보일 것입니다.

나의 색깔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색깔이기에 보다 아름다운 색깔입니다.

제목부터 왠지 모를 설렘이 있다. 마치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 반 고흐가 마치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제에도 감상을 대화로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제목과 책 내용이 찰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술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매년 미술과 관련된 책을 1권 이상 읽기가 목표가 된 지 몇 년이 되었다. 그래도 책의 영향 때문인지, 과거에 비해 미술이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지만, 여전히 미술관에 가는 건 쉽지 않다. 이렇게 책으로 미술관 견학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미술관 문턱이 낮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할 뿐이다.

다행이라면,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참 따스한 조언을 책 안에 가득 담고 있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감상을 하라는 말. 사랑도 마음이 움직여야 할 수 있듯이, 미술 또한 그렇단다. 그러니 그저 마음을 열고,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미술을 감상하면 된단다. 설령 대단한 무엇을 마주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랑도 각자가 다르듯, 미술을 보고 느끼는 것도 그럴 테니 말이다. 그 말이 내겐 한결 힘을 빼고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책 안에는 참 많은 작품이 담겨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이 작품은 어느 시대 누구의 그림이라는 거창한 미술적 설명들이 담겨있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전문가적인 감상평이나 전문용어가 아닌, 일상의 용어를 통해 조근조근 그림이 주는 느낌을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다. 초반에는 신화와 관련된 작품이 등장해서 신화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또 삶을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사랑, 고독, 희망, 죽음, 절망 등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을 그림을 통해 만나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단지 미술작품만 아니라, 그림에 대한 배경지식도 같이 마주할 수 있다. 가령 코르티잔에 대한 그림을 설명하면서 유럽사에 등장한 코르티잔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덕분에 조금 더 깊이 있는 지식과 감상이 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가 있는데, 장 바티스트 그뢰즈의 조용히 해!라는 작품이었다. 내가 이 작품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나 역시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둘째를 재웠는데, 옆에서 큰 아이가 큰 소리를 낸다. 소리를 낼 수 없어서 눈빛으로 혼을 냈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종종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그림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큰아이에게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큰 아이도 둘째보다는 크지만, 여전히 아이인데 당장 내가 더 힘들어지는 것 때문에 큰 아이에게 눈욕(?)을 했던 것을 반성했다.

바로 이런 게 미술감상이 아닐까? 그림을 보고 내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감정과 느낌. 바로 저자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런 감상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 - 나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울프의 편지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신현 옮김 / 북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름은 익숙하지만,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적은 인물 중 하나가 버지니아 울프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직접적으로 그녀의 작품을 만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었을 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시인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소설가;;; 그러고 나서 보니 그녀의 책 자기만의 방이 내 책꽂이 한 편에 꽂혀있다는 사실. 아! 이번에도 늦었다. 역시 내 책이 되니 읽기가 느려진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와의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챙이 큰 모자를 쓰고 있는 그녀의 입에 물고 있는 담배가 눈에 들어온다. 방송에서는 담배 피우는 장면이 유해 장면이라고 모자이크 처리되는데, 책 안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막상 책을 읽고 보니 그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진 않지만, 그녀에 대한 수식어 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글쎄... 그녀가 페미니스트일까? 그 수식어는 여성이 여성인 그녀에게 붙였다기보다는, 남성이 그녀에게 붙인 게 아닐까 사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럼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페미니스트일까?

책 안에는 그녀가 주고받은 편지 96통이 담겨있다. 남편이나 언니뿐 아니라 정치인이나 작가, 비평가 등에게 쓴 편지도 등장한다. 1부는 자유라는 주제 안에서 결혼 전과 결혼 초반에 그녀가 쓴 편지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편지 제목 중에는 "살림과 글쓰기 사이의 경계가 어디인 지 모르겠어요? 나 "여성들은 향상돼왔고 여전히 향상될 수 있습니다"등이 들어있다. 지금이야 이런 그녀의 편지 제목들이 꽤나 익숙한 시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편지들이 쓰인 18~19세기 초반의 여성인권의 측면에서 보자면 놀랍거나, 유별나게 보는 시각들이 많았겠다 싶다. 그런 면에서는 그녀는 훗날 남편이 되는 레너드에게 남긴 편지만 봐도 얼마나 자신감에 차 있고, 결혼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2부인 상상력과 3부인 평화는 시기가 겹치긴 한다. 2부는 결혼 이후의 편지들인데, 여전히 남성에 비해 여성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느껴지는 편지들이 상당하다. 물론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실제로 작품을 출간한 때의 편지들이라서 작품에 관련된 편지들도 상당수 담겨있다. 작품의 표지나 내용, 몇 부를 판매했는지 등 실제 자신의 작품에 대한 내용도 만날 수 있다. 3부의 제목은 평화지만, 사실 이 시기는 반어적인 느낌이 든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등 전쟁 당시의 쓰인 편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평화를 찾을 수밖에 없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편지 속에는 전쟁의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등장한다. 가까운 사람이 전쟁에 나가게 되어서 괴로움 마음이 토로되어 있는 편지도 있다.

과거에 비해 여권이 신장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의 시대에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다면 현실에 만족하고 살았을까? 글쎄... 그녀 특유의 자유로움과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성향이 여전히 새로움과 발전을 추구하며 고군분투하는 삶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