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말투 - 오해 없는 슬기로운 인간관계를 위한 말공부
김범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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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 될 것도 되지 않습니다.

나의 성장은 닥 그만큼에서 멈춥니다.

부정적으로 말하는 우리를 세상은 품격 있게 바라보지도 않을 테고요.

우리 주변을 긍정어로 가득 채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어렵다. 나이가 들면 절로 어른이 될 거라는 생각은 막 10대를 벗어난 사람들만이 가지게 되는 생각이라는 사실을 부쩍 많이 하게 된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는 있지만, 어른은 누구나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살면 살수록 피부로 느낀다. 어른이 될수록 나를 돌아보고, 내 것을 버리고 꾸준히 변화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나이를 먹을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잔소리가 늘어나고, 경제적인 윤택함이 사라지기에 반대로 이야기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어름으로 살아야 할 때 필요한 스킬은 또 농담에서 배우게 된다. 이 책은 어른의 말투에 관한 책이다. 말투라는 것. 쉽지 않다. 오래도록 몸에 체득된 것이기에, 벗어나기도, 바꾸기도 쉽지 않다. 아니, 내가 무엇이 문제인 지 인식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해야겠다.

내 꿈은 여유로운 마음과 모습을 지닌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허허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여유를 지닌 노인의 모습을 보고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도 그런 꿈을 지니게 된 이유다. 저자가 이 책에서 표현하는 어른의 말투 역시 여유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분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여유로움 안에 진심 그리고 감사가 더해질 때 상대에게 다름을 보여줄 수 있다. 물론 뜬구름 잡는 이론만 가득하다면, 책을 읽을 맛이 나지 않을 것이다. 각 상황에 맞는 어른의 말투 팁이 당연히 담겨있다. 상대를 설득할 때, 상대에게 조언할 때, 사과와 칭찬, 거절에도 어른의 말투가 필요하다. 어른의 말투 안에는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도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를 인간관계의 노하우라고 말해도 될까?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가 웃음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해서 상당히 공감이 갔다. 나이가 지긋하시고 나름 높은 위치에서 퇴직을 하신 분이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오는 웃음이 상당히 가벼웠다. 그분의 위치나 여러 가지로 볼 때 이미지를 상당히 깎아먹는 수준이었는데, 그에 대해 말씀드리기가 참 껄끄러웠다. 그저 그분을 거울삼아 내 웃음을 점검했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는 같이 일하는 직원 중에서 같은 말을 해도, 유난히 기분 나쁘게 들리는 사람이 있었다. 근데 나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 또한 같은 경험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아와 어는 다르다는 것. 같은 상황도 어떻게 표현하는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넘어 앞으로의 관계까지 결정이 된다는 사실.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이야기해 보자면, 그분은 자신을 높이고, 상대방을 낮추는 말투를 자주 사용했었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이야기하면서 상사들을 많이 거론했었다. 당연히 선임이 후임의 부족함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근거가 대표나 본부장처럼 윗 사람들이 너를 ~게 생각한다. 이 정도 밖에 못하면 안 되지?! 이런 식으로 표현을 했던 것이다. 그분께는 책 안에 담긴 습관 18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내 모습을 인식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객관화인데 저자 역시 그런 객관화를 통해 내 말투를 직접 마주해야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회가 된다면 (양해를 구하고) 타인과의 대화를 녹음해서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내 목소리 톤은 어떻고, 말의 크기는 어떻고, 속도는 어떤지, 내가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어떻고, 내 웃음소리는 어떤지를 직접 마주했을 때 스스로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어른의 말투를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타인과 이야기할 때 내가 호감 가는 말투를 여럿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말투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놓았다. 진짜 어른다운 30가지의 언어습관을 통해 좀 더 여유롭고, 호감 가는 어른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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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 열다
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황종민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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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며 슬픔에 잠겨 있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발버둥 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과거에 비해 날이 갈수록 더 확고한 천재화가로의 명성이 쌓이는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시절에만 해도, 전기 속에서 본 고흐는 뛰어난 능력은 있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로 많이 그려졌던 것 같다. 아마 그중 가장 유력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잘랐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첫인상 덕분인지, 고흐에 대해 썩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참 고흐 붐이 일었을 때 구입했던 두 권의 편지글 또한 책꽂이에 여전히 꽂혀 있지만 소장만 하고 있던 중에, 꾸준히 읽고 있는 시리즈에서 다시금 고흐를 마주했다.

내 스스로 고흐에 관해 읽은 첫 번째 책이었던 그 책을 읽은 후, 고흐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달라졌다. 그가 가진 아픔(태어날 때부터 사산되어 태어난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형을 대신하는 존재로 키워진 것부터 해서)과 그럼에도 숨기지 못한 그림에 대한 폭발적인 갈급함, 기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여린 성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행동들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고흐의 글과 그림이 합쳐져 있다. 비중으로 보자면, 고흐의 글이 압도적으로 많다. 글과 그림을 같이 실었지만, 그림의 선명도가 조금 아쉽다. 아마 그래서 더 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 안에는 고흐가 남긴 많은 글이 담겨있다. 각 글의 말미에는 글이 쓰인 날짜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아마 옮긴이가 엮은 주제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서인지 순서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고흐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었으면 어땠을까? 고흐에 관한 이미지를 최대한 배제하고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했다. 그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자, 예술가로 그의 글을 마주하려고 노력했다. 두 번의 깊은 인상이 섞이면서 어느 정도의 중간 과정을 겪어서 일까? 글 속에서 극단적이거나, 염세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삶에 대해 낙관하고,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서 긍정하려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그게 또 다른 위로가 되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고흐가 폭발적으로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책 여기저기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정말 그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더 많이, 더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그리고 싶다는 그의 글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이토록 선명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대수학에서 음수끼리 곱하면 양수가 되듯이,

실패가 거듭되면 성공에 이르게 된다는 희망을 나는 여전히 품고 있다.

물론 고흐가 살았던 시대에도 돈이 중요했고, 돈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마음처럼 실제 현실이 녹록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그림과 글로 남겨두었다는 게 또 다른 위로와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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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세계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들의 비밀스러운 삶
조지 맥개빈 지음, 이한음 옮김 / 알레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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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과학의 4영역 중 물리를 제외한 다른 과목에는 관심도 흥미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과학에 대한 부담이 적은 편이고 오히려 시집보다 과학 관련 서적을 더 자주 읽는 편이다. 이 책은 여러 생물군 중에서 곤충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된 책이다.

곤충 하면 으레 나오는 반응들처럼, 나 역시 곤충을 좋아하지 않는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곤충을 만지지 못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굳이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그림에는 상당히 미화되어 있지만, 나비도 멀리서 봐야 예쁘지 가까이서 보면 생각보다 혐오감이 들 수 있다. 어린 시절 자주 잡던 메뚜기나 방아깨비, 잠자리를 비롯하여 요 몇 년 사이 여름이면 너무 자주 출몰하는 매미,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개미, 파리, 모기 등도 다 곤충군인걸 보면 생각보다 곤충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처럼 곤충을 비롯한 절지동물의 종 수가 800~1,200만 사이로 추정된다. 인간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출현하여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곤충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여러 흥미로운 내용들 중 몇 개만 추려보자면, 현재 가장 큰 곤충과 가장 작은 곤충은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사실 곤충 하면 작은 크기의 미니미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대부분이라 생각이 될 텐데, 곤충종 중 가장 큰 곤충은 동남아시아에 사는 대벌레로 길이가 32cm로 사람의 아래팔 길이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작은 곤충종은 무엇일까?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0.2mm에 불과한 기생성 말벌종으로 이름처럼 이 곤충은 다른 곤충의 알 속의 자신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곤충은 지구상에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이렇게 작은 크기였을까? 석탄기 후기에 화석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 몸길이가 2m가 넘는 노래기부터, 6cm가량 되는 좀도 있었다고 한다. 하늘을 나는 원시 잠자리의 날개폭만 75cm였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괴기 영화 속에 출연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면 노래기부터 좀, 잠자리는 지금도 현존하는 곤충종인데 왜 과거에 비해 몸이 이렇게 작아진 걸까? 저자는 그 이유를 바로 대기 중 산소량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몸집이 클수록 산소를 더 많이 요구하는데, 석탄기에 비해 현재 산소량은 35%에서 21%로 줄었다. 살기 위해서 곤충종도 몸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단다.

몇 년 전 꿀벌과 인류의 멸종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너무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안에도 뒤영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벌이 생태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벌이 없다면 꽃이나 열매가 맺기 힘들다. (실제 벌의 멸종은 생물 다양성 위기를 촉발해 육상생물 1/4의 생존 위기, 인류 1/6의 굶주림의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책 안에는 인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생태계가 심각하게 망가진 사례를 무수히 마주할 수 있다. 단지, 연어를 많이 먹기 위한 인간의 무지가 결국 끔찍한 사태로 연결되는 사례뿐 아니라 진딧물을 없애기 위해 활용한 무당벌레(당연히 환경친화적인 방법이라 생각했는데)의 다수 출연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통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국 인간이라는 종은 생태계에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인간의 이익을 위해 벌인 일이 부메랑이 되어 결국 인간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돌아온 여러 사례들을 통해 생태계를 위해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이 무엇인 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문서적임에도 어려운 용어들이 자주 보이지 않았기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곤충들의 세계와 그들의 꾸준한 역할 덕분에 오늘도 지구 속 생태계는 꾸준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제 곤충을 마주할 때, 전보다는 덜 혐오스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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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이의 안데스 일기 -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며 쓰다
오주섭 지음 / 소소의책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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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이 책이 가진 반전을 충분히 맛보았다고 해야겠다. 소설도 아닌데 웬 반전이냐? 제목이자, 저자의 닉네임이 바로 반전이라 하겠다. 모질이 하면 떠오르는 건 모자라다는 것인데,(근데 이마저도 반전이다. 이 모질은 세월이 육신은 늙게 하지만 정신은 지혜로워진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耄耋) 깊이가 있어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깊이가 있다. 여행 에세이라 하지만, 철학 혹은 인문학 혹은 동양 고전 혹은 세계사 등 여러 권의 책을 한 번에 읽은 기분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진도가 훅훅 나가지 않는다. 역시 빽빽한 글자와 무게감이 그냥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전에 남미를 세 번 다녀왔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여행을 이 책으로 기록했다. 2013년 3월 인천을 출발하여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 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 브라질에서 다시 인천으로 이어지는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사진은 소심(그미, 소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본디 지니고 있는 마음이라는 뜻이란다. 素心) 이, 글은 모질이 썼다. 책 안에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며 등장하는 내용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기간으로 다지자면 한 달이 채 안 되는 28일간의 여정에서 이 책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여행 에세이를 좋아한다. 직접 가는 여행이 제일 좋지만, 몸과 마음이 편한 걸로 따지자면, 간접 여행이 최고가 아닌가?! 근데, 이렇게 다방면으로 서술이 길고 각종 곁가지가 많이 등장하는 책은 처음이다. 물론 주된 여행 여정과 연결되긴 하지만,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저자의 박식함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빠가 읽었던 태양의 아들 잉카라는 책의 제목이 내게 꽤 선명한 기억을 선사해 주었는데, 그 후로 잉카라는 단어는 꽤 오래 나를 사로잡았다. 한비야의 여행기에서도 만났고, 가수 3명이 여행한 프로그램에서도 다시 한번 만났다. 그리고 이 책에도 등장한다. 잉카 유적을 만나려면 꼭 가야 하는 쿠스코와 마추픽추가 초반에 등장한다. 당연히 고산지대이기에 고산병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책 안은 물론 책 밖에도 등장할까? 여기까지 가서 빼놓으면 서운한 나스카 라인 이야기는 공포스럽지만, 웃겼다. 가이드의 말도, 엄청난 멀미를 유발하는 비행기도... 역시 간접 여행이 최고다 싶다. 잉카문명의 유적 안에는 다양한 가치들이 곁들어있다. 세계사는 기본이고, 네루다의 시도 등장한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윤동주의 시, 영화 미션, 장윤정의 초혼도 등장한다. 식견이 짧아서 저자가 어디라고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어디 등장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다른 색으로 구분을 해준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만 이야기해본다.

또 기억에 남는 곳은 단연 우유니 사막이다. 책 안에도 정말 화질 좋은 사진들이 여럿 등장한다.(소심의 사진은 정말 책과 찰떡궁합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여행기들은 앞으로의 여행을 떠날 후배 여행가들을 위한 팁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생각의 뿌리들에 더 가깝다.

책을 읽으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행을 위해 공부 또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익히고 체화한 것들이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꽤 깊은 공부가 되었던 여행 에세이였던 것 같다. 현재의 역사의 순간들도 이 책 안에는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래서 더 느끼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p. s 유식. 박식. 한자 이런 말에 부담을 느껴서 이 책 마주하기를 피하지는 않길... 중간중간 저자만의 위트가 더 많이 담겨있어서 꽤 흥미로운 여행 에세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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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수명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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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수명 측정기를 전 국민에게 배부합니다.

이 측정기만 있으면 자신의 수명이 언제까지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수명 측정기로 인해 누구나 자신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수명을 위해 운동을 하고, 건강을 가꾸기 시작한다. 백도훈 역시 처음에는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지만, 꾸준한 건강관리로 수명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다. 고아로 자랐지만, 직장도 탄탄하고 형제 같은 베프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도 있기에 그의 삶은 꽤 만족스럽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연인 차세희가 자신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하고 떠난다.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방황을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정우의 위로 덕분에 겨우 이겨내고 조금씩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정우의 죽음. 갑작스럽게 정우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가족이라면, 수명 나눔도 가능했지만 정우의 가족 누구도 그에게 수명 나눔을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도훈에게 수명 나눔을 이야기하는 정우. 당혹스럽긴 했지만, 도훈은 정우의 가족이 아니었기에 나눔을 해줄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 후 정우는 사망한다. 연락을 받고 정우의 장례식장을 찾은 도훈은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정우에게 수명 나눔을 해주지 않은 가족들도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장례식장을 지키고 3일장까지 치렀지만, 도훈의 마음은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세희를 만났다. 정우로부터 자신을 지켜달라는 말을 들었단다. 그리고 그렇게 둘은 다시 연인이 되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둘은 가까워졌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세희는 도훈의 아이를 임신한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정우는 도훈의 곁을 떠났지만, 세희와 딸이 생겼으니 말이다. 결혼 후 1년이 되던 날. 세희는 도훈에게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자신에게 수명 나눔을 해 줄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역시 당황스러웠다. 당황하는 도훈에게 세희는 마음이 상한 것 같았다. 도훈은 혹시 딸 은유가 수명에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은유에게 나눔을 하고 싶다고 했다. (참고로 수명 나눔은 가족끼리 1회만 가능하며, 같은 혈액형일 때 가능하다. 가족이 된 후 1년이 지나야 나눔이 가능한데, 수술을 통해 수명을 나눔 한 사람의 수명이 나눔 받은 사람에게로 옮겨간다.) 세희는 자신이 몸이 약하니 수명 나눔을 받아야 건강하게 은유를 보살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다. 그 말에 결국 도훈은 은유가 아닌 세희에게 수명을 나눔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세희가 사라진다.

아무리 찾아도 세희를 찾지 못한 도훈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세희를 다시 만나게 된다. 경찰은 세희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나온 것이라는 믿을 수 없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만난 세희의 입에서 자신은 남편 태영과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지아가 있다는 말을 한다. 지아가 MER이라는 불치병에 걸렸는데, 지아에게 수명 나눔을 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도훈에게 접근했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렇게 도훈은 수명도 잃고, 사기 결혼에 세희까지 잃어버린 채 은유만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그런 은유가 수학여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불치병에 걸려 수명 나눔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바로 MER이라는 병이었다. 이미 세희에게 수명을 강탈당한 도훈은 은유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되고 자신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직장동료이자 고민 상담사인 오가연의 프러포즈로 가연과 재혼을 하게 된다. 은유와 같은 혈액형이기에 가연은 1년 후 은유에게 수명을 나눔 할 수 있다고 했다. 근데, 가연이 은유에게 수명 나눔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밝혀지는데...

이야기가 꼬이고 또 꼬인다. 반전 아닌 반전이 수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시작점에 정우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같지만 다른 두 인물 정우와 태영의 이야기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피가 섞여야 가족일까? 피만 섞이면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작품 속에는 유난히 겹치는 인물들이 여럿 보인다. 태영과 정우, 지아와 은유, 석문과 가연. 그리고 세희와 도훈.

가정폭력, 사기결혼, 출생의 비밀 등 막장드라마 속 이야기가 책 안에 고스란히 풀어져있다. 수명 나눔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도 한몫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정신없이 마지막 장까지 읽어나간 것 같다. 상당히 흡입력이 있다. 책을 덮으며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된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켜내는 사연들도 담겨있다. 또한 생각에 갇히게 되면 어떤 오류를 범할 수 있는지도 여실히 드러난다. 수명을 알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그것은 복일까 재앙일까? 타인의 수명을 통해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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