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버스 특서 청소년문학 20
고정욱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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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청소년 소설. 얇지만 또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까칠한 재석이의 고정욱 작가의 또 다른 성장소설인 스토리텔링 버스 역시 그런 재미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처음 만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낯익다. 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등장인물인 기강과 은지는 고등학생 커플이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이들은 은지의 절친이자 기강의 합창단 친구인 민영이 덕에 가까워졌다. 물론 그들이 교제를 시작한 이유에는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사실이 큰 요소로 작용했지만 말이다.

은지와 기강은 둘 다 이혼한 편부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다. 은지의 아버지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기강의 아버지는 지방 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혼 후 떠난 전직 음악교사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기강은 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개교기념일 아침 기강과 민영은 은지의 부탁에 따라 성남으로 향하고 한 분식집에서 일하고 있는 은지 엄마를 만나게 된다. 자신을 버린 줄 알았던 엄마가 사실은 자신과 살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에 은지는 마음이 풀린다. 한편, 기강 역시 이혼 후 만나지 못한 엄마를 찾기 시작하고 그녀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엄마와 연락한다는 사실을 안 아빠는 극도의 화를 내고, 아빠로부터 뺨을 맞게 된 기강은 속상한 마음에 은지에게 급작스러운 여행을 제안한다. 둘은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되지만 갑작스러운 폭우와 산사태로 버스는 고립되게 된다. 그렇게 갇힌 버스 안의 승객들은 각자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사실 첫 장면부터 성폭력 예방 특강이 시작되어서 혹시나 싶은 마음이 있었다. 요즘 미성년자들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슈들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등장인물인 지강이와 은지 둘 다 가정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홧김에...'라는 상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전 아닌 반전이라고 작가는 나보다는 훨씬 건전한(?) 생각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첫 장면의 특강 속 이야기는 책을 읽어나가며 버스 승객들의 이야기 속 책임감과 연결되었으니 말이다. 버스 속 승객들의 이야기와 함께 은지와 기강은 각자의 가정 속에서 화해를 경험한다. 어쩌면 성장소설 특유에 반전 없는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회피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고, 문제에 맞서는 용기가 진정한 승리라는 정직한 교훈을 여러 이야기를 통해 선사한다. 역시 성장소설의 묘미는 정확한 교훈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한 단계 더 성장할 기강과 은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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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허밍버드 클래식 M 6
브램 스토커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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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불현듯 생각나는 공포소설. 날이 더우면 더울수록 더 구미가 당긴다. 그중에서도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면 뱀파이어가 아닐까 싶다. 뱀파이어계의 조상님이라 할 수 있는 드라큘라는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겁이 많은 나는 드라큘라를 비롯한 공포영화를 끝까지 본 적이 없다. 그나마 소설은 좋아하는 편이다. 상상력을 제한해서 그런 걸까? 각설하고, 그 유명한 영화나 뮤지컬의 원작이 바로 내가 만난 소설이다. 사실 소설 원작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방대한 벽돌 책일 줄은...ㅎㅎ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기에, 드라큘라의 내용은 간략한 줄거리 정도밖에는 모른다. 구체적인 사건보다는 그저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는 사실 정도? 밖에는 말이다. 그렇기에 영화나 뮤지컬로 접할 수 없는 내게 원전이 주는 매력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개봉하게 되면 원작을 먼저 찾아보는 편이다.(그러다 영화를 놓칠 때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영상을 먼저 보게 되면 글로 읽으며 얻게 되는 이미지화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밍버드에서 출간한 드라큘라는 800페이지 정도 된다.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두께를 자랑한다. 다행히 글씨체는 빼곡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페이지만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럼에도 책을 잡기 시작하면 정말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간다. 편지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마치 실제 영상을 눈으로 보는 듯한 아찔한 묘사가 책 가득 담겨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변호사인 조나선 하커는 영국 사람으로 트란실바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으로부터 부동산을 의뢰받고 먼 길을 떠난다. 사실 이때만 해도 조나선은 자신이 가게 될 지역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그 밖의 미신 정도의)이기에 드라큘라 백작에게 질문할 거리들을 준비해 갈 뿐이다.(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방도 정도?) 드라큘라 백작의 편지를 들고 조나선 하커는 골든 크로네 호텔로 향한다. 문제는 호텔 주인을 비롯한 사람들의 반응이 상당히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호텔 안주인은 직접 조나선의 방으로 올라와 성 조지의 축일(5월 4일)에는 온 세상의 사악한 마귀들이 활개 치는 때이니 드라큘라 성 방문을 며칠 미루라고 조언을 하지만 조나선은 업무기에 그럴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기 위해 주변인들의 이상한 반응에도 여행을 감행한다. 마차를 타고 함께 여행하는 승객들은 조나선을 바라보며 성호를 긋거나 이런저런 선물을 주고, 마부는 조나선과 다른 승객들을 태우고 빠른 속도로 보르고 고개의 도착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그리하여 1시간이나 일찍 조나선을 목적지에 내려준다. 목적지에 도착한 조나선은 드라큘라 백작이 보낸 마부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드라큘라 성으로 향하는 조나선은 개와 늑대의 소리의 극심한 공포를 느끼게 되지만 결국 성에 도착하여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게 된다. 드라큘라 백작의 호의에도 왠지 모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자신이 느끼거나 본 것들을 물어보지만 백작이 이야기하는 것들은 찜찜함을 더할 뿐이고, 새벽마다 느끼는 한기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백작의 방문에 조나선은 면도하다 베이게 되고, 그 순간 조나선의 목을 움켜쥔다. 하지만 조나선 목에 걸린 묵주에 닿자마자 백작은 원래의 평정심을 찾으며 경고의 말을 더하고 자리를 뜬다. 성에서의 며칠이 지난 후 조나선은 도마뱀처럼 벽을 타는 백작을 보게 되고, 백작이 성을 비운 사실을 알게 된 조나선은 성을 살펴보다가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는데...

한편, 조나선이 연락이 끊기자 그녀의 약혼녀인 미나 머리는 조나선을 찾아 위험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과연 그녀는 약혼자를 드라큘라 백작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촘촘한 묘사와 편지글, 일기 덕분에 마치 영상을 눈으로 본듯한 효과가 물씬 풍긴다.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읽게 된다면 그 어떤 영화나 뮤지컬 보다 몰입감을 비롯한 공포가 극대화될 것 같다. 등장인물들의 감정 선과 그들이 협력하여 드라큘라 백작으로부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눈물겹도록 무섭고 처절하다. 그동안 드라큘라 백작하면 왠지 젊고 잘생긴 누군가를 상상했는데, 원작 속 드라큘라 백작의 실체를 알고 보니 아쉬움이 가득하다. 백발의 구취가 심한 할아버지라니...^^;;

이 여름 절제되지만 그 어떤 영상보다도 또렷하고 공포스러운 소설을 만나고 싶다면 이 작품을 강력 추천한다. 아마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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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 - 슬픔을 껴안는 태도에 관하여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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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게 쉽지 않은 때를 지나고 있다.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역시 막상 닥치니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화를 내지 않아야지...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을 먹지만, 큰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낼 수 있는 가장 큰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눈물 뚝뚝... 공포에 질린 듯한 큰 아이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스스로에게 엄마 자격 없음을 탓하고 또 낮은 자존감은 끝없이 바닥을 파고 들어간다. 그리고 또 반복 반복... ㅠ

초점이 좀 다르긴 하지만, 견디는 시간을 위한 말들을 읽으며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사실 육아 스트레스를 풀 때 없는 요즘, 내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와 함께 자기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십수 년을 방송 작가로 일해온 그녀는 여러 가지 아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기억을 털어놓는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 꽤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했던 남편은 사표를 내고, 본인 또한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결국은 원형탈모까지 앓게 된... 그럼에도 그 마음의 여유와 다독임이 부러웠다.

이제는 믿는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던 끝이 아닐지라도,

고통이 완벽하게 사라질 순 없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삶은 다시 우리를 살게 한다는 것을.

시련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이전보다 단단하고 깊어진 나 자신을 느끼게 되는 날도 온다는 것을.

 

 

 

이 책을 읽을 즈음, 복직을(안 되면 퇴사ㅠ) 놓고 한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 또한 십여 년 다닌 회사를 정리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의 아픔과 고통이 더 피부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고 나면 인생 전체의 고민 중 일부에 지나지 않을 고민들임에도 늘 문제가 생기면 똑같은 반응을 한다. 왜 시련은 담담해질 수 없을까? 그럼에도 저자의 저 한 문구가 가슴에 큰 파문과 위로를 더해주었다. 내가 느끼지 못해도 하나의 문제와 고통을 겪어내고 나면 다음번에는 좀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강하지 않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글들 속에서 왠지 모를 위로와 다독임 그리고 때론 채찍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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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은 경제학 공부 - 쉽게 배워 바로 써먹는 경제적 사고 습관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3
김두얼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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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을 다닐 때 원 전공 행정학과 함께 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 경영학과 전공 필수과목인 경제학. 1학년 첫 수업 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거시경제학 수업이었는데, 2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게 바로 수요공급 곡선이었다. 사실 수요와 공급은 전문용어 필이 날 뿐이지 우리가 자주 쓰는 용어로 바꾸자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한 물건이 있을 때, 그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이 오른다. 반대로 물건은 많은 데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면 물건의 가격은 떨어진다. 그 수치를 모형으로 만든 게 바로 수요-공급 곡선인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모형 하나에 옛 기억이 폴폴 났다. 하지만 당시에 수업을 들으며 딱 여기까지만 이해하고 그 뒤로 점점 난이도 있는 그래프들을 만나면 한참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경제학을 교양 책으로 만나니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실제 사례나 이야기 등을 통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또 한없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로빈슨 크루소와 한계효용 곡선, 조삼모사와 이자율 등 경제학에서 접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에 조금만 집중해서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어떤 책보다 깨닫기 쉽다. 물론 학부 때 4년이지만 전공이었던 경제학인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모형의 원형이 수요-공급 곡선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저자의 설명과 함께 읽다 보니 아!라고 깨닫게 되었다. 무려 20년 만에...;;

사실 경제학이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복잡다단한 수치나 곡선, 그래프 등이 심심찮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름 쉽게 풀어서 그림으로 설명한다고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 용어 자체도 다분히 전문용어가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전문용어(?) 몇 개만 부딪치면 자연스럽게 가까이하기엔 먼~당신이 되어버릴 수밖에...

근데 저자의 이야기처럼 경제학은 그저 이론적인 학문이 아니라, 실생활에 활용도가 높은 학문이다. 책의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생활의 모든 부분이 경제학과 관련이 있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경영학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경영을 하지 않더라도, 경영학의 과목들은 교양으로 알고 있으면 나중에 삶의 큰 자원이 된다는 말. 경영학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살면서 한번은 경제학 공부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학문으로 접하면 다분히 이론적으로만 느껴지는 경제학이 실제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말이다. 책을 읽으며 경제학적 사고를 가지는 것만 해도 삶에 또 다른 깊이와 가치를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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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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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 개인적으로 상당한 충격과 인식의 변화를 줬던 작가였다. 82년생 김지영과 사하 맨션, 귤의 맛 그리고 이 책에 담겨있는 현남오빠에게까지 그녀의 책은 찾아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단편소설 8편이 한 권으로 묶인 소설집을 만나게 되었다.

8편의 소설 중 현남 오빠에게는 이미 만난 적이 있다. 현남 오빠에게는 전 남자친구에게 날리는 한방이라고 할까? 책을 있는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마지막 한방은 큰 여운으로 남았다. 물론 현남 오빠와 결혼하지 않은 그녀의 선택에 나 또한 박수를 보냈던 기억이 재독하며 다시금 더 깊게 떠올랐다.

짧은 소설들이지만 각 소설마다 담고 있는 주제가 다르다. 82년생 김지영이 소외받은 딸들의 감정을 대변했다고 한다면, 이 책의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각계각층의 소외받은, 상처받은 인물들이다.

8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편은 매화나무 아래라는 작품이었다. 치매노인인 언니의 병문안을 간 동주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금주, 은주, 그리고 말녀. 동주가 아닌 말녀인 이유는 아들을 낳기 위해서였다. 이름이 촌스러워서 평생 속이 상했던 말녀 할머니는 남편을 보내고 개명신청을 해 동주로 이름을 바꾼다. 물론 말녀는 두 명의 남동생을 봤다. 남아선호사상이 있던 당시 딸이 많은 집에서는 아들을 보기 위해 미신처럼 막내딸의 이름을 말녀나 끝순이, 말순이 등으로 지어줬다고 한다. 이름은 평생 불리는 것인데, 좋은 뜻을 담은 이름보다는 단지 아들 동생을 보기 위한 이유로 지어졌다는 것이 씁쓸했다. 사실 성별은 이름이 가지고 오는 게 아니고 지극히 하늘의 뜻(?) 아닌가? 치매에 걸린 금주 할머니는 그래도 동생을 늘 동주라고 불러줬다. 기억을 잃어도 동생의 이름의 한을 기억이나 하듯이 말이다. 점점 쇠약해지는 할머니를 찾아오는 자식들의 발길이 갈수록 뜸하지만, 손주인 승훈이만은 직장에 반차를 내고 할머니를 찾아올 정도로 정성이다. 동주 할머니는 그런 승훈이 고맙고, 한편 그런 손주가 있는 언니가 부럽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주 할머니가 사 온 복숭아 통조림을 먹다 구토를 하는 금주 할머니는 결국 중환자실에 입원을 한다. 어떤 치료도 생을 잠깐 연장하는 연명 정도지, 진짜 치료는 아님에도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기는데...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 걸으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에 손을 짚으며 읽다 보면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들임에도 또 다른 이해와 공감에 가닿았다. 짧지만 그래서 조금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짧은 지면에 그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속에서 이미 경험한 이야기, 훗날 알게 될 이야기, 경험할 수 없을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쌓다 보면 마지막 장에 다다른다.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때론 같은 감정을 느끼고 알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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