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이 높은 식당
이정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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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묵직한 소설을 만났다. 실제로 어딘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경단녀 5년차이자 5살 딸 지호를 키우는 최승연은 5년 전까지 영양사로 일했다. 백수이자 존재감 없는 남편 은상이 사라진 그날. 승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컴백 맘 프로젝트 일환으로 응모한 회사에 합격했다는 전화였다. 모든 것이 꿈같은 승연에게 갑자기 사라진 남편을 대신해 지호를 맡아줄 등원 도우미를 찾는 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경력이라고는 키즈카페 알바 5개월이 전부인 재희에게 지호를 맡기고 출근하게 된다. 사실 새벽 5시에 출근할 수 있는, 야근으로 늦어질 때는 하원까지 도맡아줄 등원 도우미를 찾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입사 첫날. 승연이 알게 된 사실은 화장품 회사로 유명한 선린의 정직원이 아닌 송림이라는 회사에서 파견한 파견직이라는 사실이다. 당장 통장 잔고가 백만 원 남짓인 승연에게 파견직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오래 다닐 수 있는 곳이면 될 뿐이다. 그렇게 파견 입사 동기 유하나와 선린에 입사하게 된 승연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상한 전화를 받게 된다. 강렬한 한마디. 그녀는 전임 영양사였던 신유라였다.

5년 전 다녔던 회사에서 큰 상처를 받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소심했던 승연 앞에 신유라의 전화와 함께 여러 가지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저 파견직인 그녀에게 쏟아지는 문제들은 그녀를 더욱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신유라가 퇴사한 이유가 본부장의 성추행 때문이었다는 사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그 사실을 묻기 급급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지만, 승연은 사실 유라의 사건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출근을 한 승연은 식당에서 자살한 시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 시신이 얼마 전 성추행으로 이슈가 되었던 남자 인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회사에서는 승연에게 계약직으로 변경 등의 회유책을 써서 가짜 인터뷰를 하게 만들지만, 승연은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자신과 지호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스럽기만 하다. 그러던 중 신유라의 문제가 이슈화되자 회사는 신유라를 원래 자리에 복직시키게 되고, 신유라 때문에 자신의 자리가 불안해진 승연은 인터뷰했던 기자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데...

미투 사건으로 촉발된 성추행의 이면, 워킹맘과 경단녀, 파견직과 계약직... 우리 사회 사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조리와 이면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죽음 앞에서도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는 을 중의 을의 입장을 대변하는 승연의 모습을 통해 안타까움과 왠지 모를 공감이 가득했다. 아마 그녀가 나와 같은 워킹맘이어서 더욱 그렇지 않았을까...

물론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승연의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실제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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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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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항상 크로 작은 균열들을 가지고 있다.

그걸 찾아내면 진술한 사람의 거짓말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고,

결국 진실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용의자가 진술할 때 일단 믿는 척하면서 경청하는 게 추리의 시작 단계다.

북한 땅이지만, 남한의 기술과 자본이 들어간 곳. 그래서 북한 땅임에도 다른 지역과는 엄연히 다른 도시가 있다. 바로 개성공단이다. 개성공단에서 원 실업을 경영하는 사장 원종대는 공장의 완성품과 재료가 사라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조카이자 현직 탐정인 강민규를 본인의 회사에 위장취업시켜 범인을 찾고자 한다. 강민규는 관리과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개성공단으로 간다. 그리고 조사를 시작하지만 이곳저곳에서 감시의 눈과 압박이 오기 시작한다. 행동이 의심스러운 유순태 법인장과 대놓고 강민규에게 경고를 날리는 작업반장 공혁수.

결국 자기가 조사한 내용을 외삼촌인 원종대에게 전하지만, 원종대는 결과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만두겠다는 강민규에게 착수금을 줄 수 없다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다. 서울에 나왔다 다시 개성공단으로 들어간 강민규를 향한 눈초리가 이상했다. 말을 건네던 북한 직원들도 강민규를 피하기만 하고, 함께 일하는 남한 직원들과 사무실 사람들조차 강민규를 지켜보기만 한다. 결국 강민규가 국정원 요원이라는 엉뚱한 소문이 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민규는 소문의 진원지라 여긴 유순태와 몸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 날, 유순태가 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데...

전날 유순태와 싸웠다는 이유로 강민규는 살인범으로 몰려 북한군에 인계되고, 모든 상황이 억울한(과거 헌병대에 있었기에 강민규는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강민규는 오히려 자신을 가둔 북한군을 압박한다. 결국 평양 호위총국에서 오재민 소좌가 사건의 조사를 위해 나오게 되고, 강민규와 오재민은 유순태 살인사건의 배후와 범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시작하던 중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결국 범인으로 몰린 공혁수는 둘을 피해 도망가다 차에 치이게 되고, 병원으로 옮겨지기 직전 강민규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공혁수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사건을 덮으려는 순간, 사무원인 백영희가 강민규를 찾아와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는데...

특이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인지라, 읽다 보면 내용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북한 땅인지라 CCTV나 인터넷을 비롯한 장비들이 설치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로지 증거와 직감에 의한 수사는 오랜만에 쫄깃한 추리를 맛보게 해준다. 강민규와 오재민에 의해 펼쳐지는 추리와 함께 또 다른 배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범인을 찾아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 안에 또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정명섭이라는 이름만 가지고도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했는데, 역시나 싶은 이야기에 한참을 빠져있었던 것 같다. 제3도시라 일컫는 개성공단의 이야기. 그 안에 담긴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모든 가능성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래도 남는 것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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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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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나는 변두리 로켓 시리즈다. 1권부터 정말 작가 이케이도 준 특유의 거침없는 필력과 사이다 진행에 속이 후련하다 못해 날아갈 듯 흥미를 느꼈었는데, 2권 역시 만만치 않다. 사실 1권을 안 읽고 2권을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차례대로 읽는다면 아마 더 큰 후련함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로켓 부품을 성공적으로 납품하고, 로켓까지 날린 실력자 쓰쿠다제작소의 대표 쓰쿠다 고헤이. 4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이번에는 인체에 사용되는 부품에 대한 이야기다. 니혼클라인이라는 큰 기업에서 쓰쿠다 제작소에 시제작을 맡긴다. 생각보다 쉽지 않고, 사용되는 재료를 다루기도 어렵다. 거기에 이익도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제품이 완성되면 추후 제작을 맡긴다는 얘기에 쓰쿠다는 제작을 하기로 한다. 팀장인 나카자토 아쓰시와 다치바나 요스케가 설계도를 중심으로 제품을 만들어보지만, 왠지 모를 결함투성이다. 결국 시제품 건으로 쓰쿠다와 나카자토는 언쟁을 벌이게 된다.

한편, 니혼클라인의 구사카와 도도는 설계도의 오류를 바탕으로 과거 만들었던 시제품을 폐기하고 새로운 시제품 제작을 막무가내로 요구한다. 물론 기존 시제품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말이다. 쓰쿠다는 구사카의 제안을 거부하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구사카는 쓰쿠다제작소와의 거래를 바로 끊는다. 그에게 믿을 구석이 있었는데 그건 시나 나오유키의 사야마 제작소였던 것이다. 그는 과거 나사에서 일한 이력이 있다. 이렇게 쓰쿠다 제작소와 사야마 제작소의 악연은 시작된다.

과거 쓰쿠다제작소에서 일하다가 퇴사한 마노에 의해 니혼클라인이 요구한 부품이 인공심장에 들어가는 부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 쓰쿠다. 인체에 들어가는 부품이기에 잘못 제작할 시 상당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니혼클라인에서도 어디에 사용하는 부품인지 얘기를 해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니혼클라인과 아시아 의과대 교수인 기후네 쓰네히로, 사야마 제작소는 인공심장 코어 하트를 개발하기로 협약을 맺는다. 문제는 인공심장을 만드는 기술이 쉽지 않다는 것!

과거 기후네 교수의 제자로 있었지만, 기후네 교수에게 연구업적을 빼앗기고 지방 호쿠리쿠의과대 교수로 간 이치무라는 심장판막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그 연구에 기후네 아래 있던 마노가 연구원으로 합류하게 되고, 과거 쓰쿠다제작소의 직원이었던 마노 겐사코의 요청에 의해 쓰쿠다 제작소와 편직물 제조 업체 사쿠라다의 사장 사쿠라다 아키라가 함께 판막 부품 제작에 동참하게 된다. 사쿠라다는 과거 심장병으로 딸을 잃은 경험이 있다. 심장 판막이 개발이 조금 더 용이하고, 상당한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안 기후네는 이치무라에게 접근을 하지만 이미 한번 당한 이치무라는 만만치가 않다. 결국 기후네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이치무라팀의 심사와 개발을 훼방놓는데...

과연 이번에도 쓰쿠다 제작소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공심장판막 가우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작가 이케이도 준의 강점은 고구마가 적다는 것이다. 진행이 빠르기 때문에 답답할 새 없이 하나하나 해결해간다. 끌거나 하는 것 없이 명확한 결론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한번 읽은 사람은 그 덫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고 말이다. 가우디 프로젝트 역시 이케이도 준 특유의 핵사이다가 기다리고 있으니, 답답한 시기를 지나는 요즘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물론 밤에는 절대 읽지 말자! 밤샐 수 있으니...ㅎㅎ

변두리 로켓 3권에서는 과연 어떤 사이다를 선사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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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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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길지만,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라..." 이제는 익숙한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의 소설 네 작품이 담겨있는 단편소설집이다. 한 작품마다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다르지만,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 있다. 같은 경험을 한 당사자라도 각자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느끼는 바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과거의 어떤 경험과 그 당시에 경험했던 감정들이 현재에 영향을 미쳐 관계를 깨뜨리거나, 상처를 받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렇기에 과거는 이미 벌어졌고,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기에 되돌릴 수 없다는 조금은 아프고 잔인한 결과를 도출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매 순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네 개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두 번째 수록된 돋보이지 않는 아이라는 작품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마쓰오 미호. 그녀가 가르쳤던 유명한 아이돌이자 5인조 남성 그룹 메이즈의 멤버 다카나와 다스쿠가 프로그램 차 학교를 방문한다는 이야기였다. 과거 다스쿠의 남동생 하루야의 담임이었던 미호는 사실 다스쿠에 대한 진한 기억이 없었다. 동생에 대한 기억도 말이다. 그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는 기억만 있을 뿐...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면, 다스쿠가 당시 입장문을 만들었는데 담임교사는 다스쿠의 의견에 반대했지만 미술 담당이던 자신은 그의 의견을 지지해 줬다는 것이다.

다스쿠의 촬영이 끝난 후, 미호는 다스쿠와 마주치게 된다. 자신을 못 알아볼 것이라 생각했던 다스쿠가 미호를 향해 인사를 건네게 되고, 둘은 다스쿠의 의견에 따라 이야기할 시간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다스쿠의 입에서 나온 말에 미호는 당황하게 된다. 미호의 기억과 달리 다스쿠는 미호에 대해 상당히 반대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미호와 그런 미호에 관심 밖이었던 다스쿠 형제. 그 일로 하루야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결국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미호는 하루야가 예민한 아이였기에 자주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고, 다스쿠가 반으로 찾아와 하루야가 아파서 병원에 가서 결석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그때 보인 미호의 반응은 평생을 다스쿠에게 상처로 자리 잡게 된다. 결국 다스쿠는 미호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달라는 말을 건네고 떠나게 되는데...

사실 상처를 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사건에 따라 평생 짊어지는 상처로 남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요 근래 한참 이야기되었던 학폭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미호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를 주겠다는 생각 없이 그저 내뱉은 말과 행동일 수 있지만, 그 말에 상처를 받은 다스쿠와 하루야 형제는 그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는 그런 상황들을 통해 우리의 과거의 행동과 말이 현재와 미래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각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속에 담긴 의미는 참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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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가는 길 1 친정 가는 길 1
정용연 지음 / 비아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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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읽어도 가슴이 시리다. 지금이야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 후 친정 가까이에 사는 경우가 많지만, 옛날부터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결혼을 하게 되면 출가외인이라고 하며 친정 나들이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친정 가는 길은 조선 후기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여인인 은송심과 함숙영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시대상과 여인으로써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혼 후 6년 만의 첫 근친(覲親 : 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부모님을 뵘)을 온 송심은 친정에서의 5일이 너무 애틋하고 짧기만 하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 늦게 일어나도 타박하지 않는 일상이 참 좋다. 물론 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것도...^^ 하지만 송심의 친정행으로 일이 하나 더 늘어난 올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남동생은 누워서 일하는 올케에게 잔심부름을 시키고, 그에 그동안의 기억이 생각난 송심은 남동생에게 스스로 하라고 혼을 낸다. 그리고 올케를 데리고 잠깐의 나들이를 떠난다. 자신이 겪어보니 올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망나니 같은 둘째 의용의 혼삿날이 얼마 안 남았다. 의용은 혼사 전에 계집종 섭이를 범하게 되고, 섭이는 임신을 하게 된다. 의용의 처인 함숙영은 똑 부러지고, 글을 읽을 줄 아는 깨어있는 여인이었다. 처음에 동서의 그런 모습이 내키지 않았던 송심이지만, 숙영의 마음을 알게 되고 숙영에게 글을 배우게 된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힘든 시집살이를 이겨나간다. 그러던 중 의용이 돌림병에 걸려 죽게 되고, 숙영은 시집온 지 얼마 되지 못해 과부가 되고 만다. 남편 없이 평생을 수절해야 하는 숙영. 그런 숙영이 안타깝지만 송심은 어쩔 수가 없다. 글 읽기에만 능한 줄 알았던 숙영은 당시 춘화와 음담패설 집을 직접 만들어 송심에게 보여준다. 송심 역시 그 책을 읽은 후로 왠지 모르게 정염에 사로잡히게 된다.

 계속되는 가뭄에 가노들은 고통을 겪게 되고, 시부모에게 그들이 바칠 공물을 좀 줄여주기를 요청하는 두 며느리. 하지만 그들의 기를 꺾고자 하는 시부모는 그들의 의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지만, 결국은 며느리들의 의견을 듣고 공물을 줄여준다. 이 소문이 계속 퍼져 다른 집에서도 그들의 선례를 따라간다.

 한편, 친정으로 근친을 간 숙영은 시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 알고 보니 집에 있던 노비 씻개와 야반도주를 하였던 것이다. 이 일로 벼슬길이 막힌 경용은 추노와 함께 숙영을 잡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송심은 친정의 남동생과 함께 경용을 찾아 길을 나서게 되고, 수소문해서 간 곳에서 동서였던 숙영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1권의 말미에 시대상을 드러내는 이야기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홍경래의 난이다. 씻개와 숙영 역시 그동안 모아놓은 가산을 바탕으로 자금을 댄다. 차별받은 평안도 서북인들과 노비로 태어났기에, 여인으로 태어났기에 차별받는 그들의 삶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잠깐 등장하지만 여인이라도, 노비라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등용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던 그들의 모습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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