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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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가을이라서 그런지 책의 제목이 유독 와닿는다.

근데 왜 가을의 "감옥"인 걸까? 나는 가을 하면 오곡백과와 추수 등의 풍성함이 떠오르는 데 말이다.

3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왜 "감옥"이라는 단어가 제목으로 등장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많은 단편소설들이 그렇듯이 책 속에 등장하는 한 작품의 제목을 책 전체의 제목으로 붙였다.

감옥은 흔히 뭔가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진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무언가에 갇혀있는 사람들이다. 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감옥 말이다. 행동의 제약을 받기도 하고, 시간의 제약을 받기도 한다. 또한 환상 속에 갇히기도 한다.

세 작품 모두 진한 인상을 남겼지만, 개인적으로 두 번째 등장한 "신의 집"이라는 작품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술 한 잔 걸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게 아쉬워 골목길을 지나다 만난 초가집 한 채. 주인공은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집으로 향하게 되고, 노인 탈을 쓴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노인의 말이 왠지 찝찝하지만 잠깐 말벗만 돼주고 나오려다가 집에 갇혀버리게 된다. 신의 집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집을 물려받을 다음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벗어날 수 없다. 매달 일본 곳곳에 나타나는 집이기에 뭔가 기묘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자기 발로 찾아오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고민하던 주인공은 초가집을 카페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주인공의 생각대로 손님이 하나 둘 찾아온다. 하지만 손님들은 기존의 주인인 노인 탈을 잘 아는 사람들이고, 막상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의 사정들이 걸려서 집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생활에 조금씩 적응을 해가고 있는 어느 날, 드디어 집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과연 그 사람은 누구일까?

각 작품을 읽으며 그들이 처한 감옥들에 내가 들어갔다면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좋은 점을 찾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맞닿아 있기에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우리 역시 각자의 상황 속에서 자유롭게 무엇을 할 수 없는 감옥 아닌 감옥들을 하나 이상씩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물론 그 감옥을 감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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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정원
닷 허치슨 지음, 김옥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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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사진이 뭔가 의미심장하다. 달이 뜬 멋진 밤, 멋진 정원의 풍경. 그리고 등에 나비 문신을 한 여자의 뒷모습.

아마 책을 읽다 보면 이 표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실히 느낄 것이다. 첫 느낌만큼이나 엄청난 사실이 담겨 있는 표지를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다시 보니, 마냥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없던 왠지 모를 느낌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FBI 특별 수사팀장인 빅터 하노베리언 앞에 앉아있던 한 여자. 입을 열지 않는 그녀를 보고 수사관들은 답답해진다. 마야라는 이름 말고는 어떤 정보도 없다. 빅터와 특별 수사관 브랜던 에디슨은 그렇게 마야와 대화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마야에게 정보를 얻고자 하는 둘. 생각보다 마야는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 둘 나비정원의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초반에는 마야라는 인물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과연 그녀는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피해자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왠지 모를 석연치 않은 분위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야, 아니 이나라 모리세이의 과거 이야기가 하나 둘 풀려나오며 그녀의 끔찍하고 안타까웠던 과거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사랑받지 못하고 방치되기만 했던 과거의 이나라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담담한 그녀의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온다.

놀이공원 하면 떠오르는 회전목마와 부모에 대한 추억도 그녀에게는 슬픈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일 뿐이었다. 그렇게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나라를 사랑으로 보듬어 줄 사람은 없었다. 그녀 주위에는 그녀를 농락하고 자신의 추악한 욕구를 채우려는 인간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웃에 살던 신혼부부가 유일하게 그녀를 챙겨주고 웃어줬던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외할머니 집에서 자란 이나라는 역시나 끔찍한 상황 속에 살게 된다. 죽은 동물을 박제한 집에서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이나라는 결국 외할머니가 사망하자 짐을 챙겨 그곳을 떠난다. 14살의 이나라는 뉴욕으로 향하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지내게 된다.

그녀가 일하던 곳에 손님으로 온 부자(父子). 이나라의 손목에 나비 문양이 그들에게 그런 빌미를 제공할 줄이야...! 이 주일 후 이나라는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게 되고 뉴욕 한복판에서 납치된다. 그리고 눈을 뜬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름다운 나비로 만들어 간직하기 위해 정원사는 그렇게 이나라와 리요네트 등을 납치해서 나비 문신을 새긴다. 그리고 21세가 되는 날 그녀들은 갑자기 사라진다. 과연 정원사는 그녀들을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이나라의 입을 통해 설명되는 그간의 이야기는 무섭고 당혹스럽다.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아도 되는 것일까? 당연히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머리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잠시만 들여다봐도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나 깨닫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멋진 유리 정원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추악한 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극단적 소설 속 장치기만 할 뿐일까? 아님 정원과 정원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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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것들의 미학 - 포르노그래피에서 공포 영화까지, 예술 바깥에서의 도발적 사유 서가명강 시리즈 13
이해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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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왠지 불온과 미학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짝 같았기 때문이다. 마치 반어법의 느낌이 가득했다고 할까? 근데 책을 열어보니 책 속의 담긴 주제에 딱 어울리는 제목이 이것만 한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는 위작, 포르노그래피, 나쁜 농담, 공포영화... 왠지 모르게 미학과 어울리지 않는 소위 B급이라 느껴지는 분야들이다. 왜 어울리지 않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보자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라고 할까?;;;

저자는 그런 우리의 느낌에 대해 좀 더 논리적이고, 실체적인 이유를 통해 미학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미학이 추가하고 있는 각자의 개념에 대한 제대로 된 정립이 필요하다. 또한 일부만의 생각이 아닌, 평균적인 의미의 개념을 찾아야 한다. 개인의 감상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생각과 논리 말이다.

사실 개념과 실체 그리고 논란을 불식시킬만한 철학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마치 꼬리의 꼬리를 잡는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해결해야 하나의 개념이 잡히듯이 말이다. 덕분에 4가지의 키워드는 실제적인 이야기였지만, 각 분야들이 미학의 범주 안에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풀어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천경자 화백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 때문인지, 위작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천경자 화백뿐 아니라 진주 귀걸이로 유명한 페르메이르의 작품 엠마오 집에서의 저녁식사를 위조한 판 메이헤런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포커스였다. 상당한 전문가들은 실제 작품과 위작을 구별하지 못했다. 버젓하게 페르메이르의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을 속이기 위해 판 메이헤런 또한 엄청난 공을 들이기도 했다. 결국 판 메이헤런의 작품은 페르메이르의 위작이라는 판결이 나온다.

문제는 위작과 원작을 구분해내지 못한 작품을 두고 과연 미적가치를 논하는 게 맞는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의 생각 속에 위작과 원작의 차이는 조잡하거나,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판 메이헤런의 위작처럼 전문가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작품이라면 어떨까? 과연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물론 미학을 이야기할 때는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윤리적, 예술사적 이유도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적 가치만을 놓고 보자면 위작이 가치가 떨어진다고 느끼는 것은 투자와 돈이 연관된 것은 아닐까?

쉽지 않은 논리들 하나하나 풀어가지만 나 또한 그 논리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도 담겨있었다. 왠지 뿌연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사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들이밀긴 했지만 "미"라는 개념은 논리적으로만 풀어가기에는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정과 쾌락 등의 감성적 측면이 다분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미와 예술의 철학인 미학은 또한 감성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비합리적인 것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미학의 분야에서 다분히 버려두었던, 분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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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간, 발칸유럽 - 발칸에서 동서방교회를 만나다
이선미 지음 / 오엘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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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리 시간 발칸반도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딱히 어느 나라인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와 두브로브니크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다분히 그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티브이에 방영된 모습을 보고 나 역시 한번 가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단지 멋진 풍경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주된 이유였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도 다분히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거기에 아주 오래된 교회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겠지만...

책을 첫 페이지를 넘기며 지금의 아름다운 풍경 너머 발칸반도가 가진 아픔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너무 어렸을 때라서 기억이 안 나지만, 이 책에 소개된 나라의 이름은 기억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엄청난 전쟁들의 이야기와 기억 말이다. 지금은 참 평화로운 나라들로 보이지만, 당시의 엄청난 유혈 전쟁은 여전히 지금도 곳곳에서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첫 번째 등장한 두브로브니크를 비롯하여 머리말에서 이야기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뿐 아니라 여전히 진한 기억에 남아있는 사라예보와 보스니아 그리고 자그레브까지 읽다 보면 새록새록 떠오른다. 마치 한 곳 한곳을 깊게 여행하는 듯한 기분과 사진이 함께 실려있으니 더욱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동서방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테마이기에 그 부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여행지 속의 담겨있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부담감이나 어려움이 덜했다. 첫 소절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의 코로나19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그 옛날 그곳(두브로브니크)에서도 펼쳐졌다는 사실과 함께 검역, 격리를 뜻하는 단어가 바로 이곳에서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동서방교회의 역사와 함께 그곳의 이야기, 그 사라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으며 왠지 모를 여러 감정이 생겼다 사라졌다 했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상처와 아픔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기에 편안한 여행지만의 느낌으로 바라볼 수는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못한 상처들은 현재 진행 중인 것 같다. 종교적 색채를 띄고 있는 책이지만 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읽기에도 부담은 적어 보인다. 지극히 종교적인 이야기로 책을 가득 채우고 있기보다는 그곳의 문화와 역사의 이야기 등으로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두브로브니크 때문에 선택한 책이지만, 사라예보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알듯이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건에만 집중해서 알다 보니 그 속내를 몰랐는데, 그런 사전 지식들이 담겨있어서 읽는 내내 도움이 되었다. 어느 쪽 입장에서 읽느냐에 따라 사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이겠지만, 객관화된 사실과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함께 보니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그렇기에 오래된 시간, 발칸 유럽은 단지 여행기로 치부하기에는 아쉬움이 큰 책일 것이다. 순례나 여행 에세이의 성격도 담겨있긴 하지만 역사를 빼고는 논할 수 없는 지역이기에 가볍게 읽기보다는 문화와 정치, 역사 등의 눈을 아우르면서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멋진 풍경을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니 말이다. 예전과 같은 가벼운 생각으로 발칸 유럽을 바라볼 수는 없겠지만, 왠지 모르게 속내를 털어놓은 친구 같은 기분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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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란 의자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73
매들린 크뢰퍼 지음, 케리 페이건 글, 최현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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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내 것에 대한 욕심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도 모으는 걸 좋아하고, 과도하게 한 종류만 중독같이 모으기도 했다. 예를 들면 바둑돌, 학 종이, 귀걸이처럼...

문제는 더 이상 작거나 내게 필요가 없어진 것들에도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람이면 누구나 집착이나 소유욕이 있기 마련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왠지 모를 웃음이 나지만, 당시에는 그것들이 정말 너무 소중했다. 우리 집 4살 꼬마 역시 어느 정도의 소유욕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라고 할까? 엄마의 눈으로 보기엔 굳이 필요 없어 보이는 것에 일명 "소중한 것"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말이다. 소유욕쟁이 엄마와 소유가 뭔지 알아가는 딸을 위한 책 작은 파란 의자를 통해 조금이나마 소유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시간이었다.

파란 의자의 주인 부. 부는 파란 의자를 정말 좋아했다. 언제나 파란 의자에 앉아서 뭔가를 하는 걸 좋아하는 부는 의자와 함께라면 모든 것이 즐거웠다.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의자는 부의 좋은 친구였다. 하지만 부는 조금씩 크고 있었다. 키도 몸도 자라는 동안 의자는 여전히 그 크기 그대로였다. 어느 순간 부는 의자가 작아진 걸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의자에 앉는 게 편하지 않았다. 부의 엄마는 부에게 파란 의자가 필요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부의 파란 의자가 도움이 되길 원했고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집 앞에 내놨다.


                                     
                                

그렇게 부의 파란 의자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건네졌다. 부와 같은 아이에게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아빠와 여행을 떠난 여자아이의 의자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부 처럼 의자의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되었고, 그렇게 파란 의자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달되어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파란 의자는 빨간색으로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추운 나라에서 더운 나라로 옮기기도,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는 파란의자 덕분에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그 행복이 파란 의자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원하는 마음으로 파란 의자를 기꺼이 포기한다.

                                     

                                

과연 파란 의자의 여정은 어떻게 될까?

책을 읽으며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파란 의자의 기분을 상상해봤다. 사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인을 찾게 되고, 이동을 한다. 파란 의자는 어떤 기분일까? 모래사장에도 머무르고, 파란 옷에서 빨간 옷으로 갈아입기도 하고 하늘을 날기도 한다. 자신의 뜻은 아니지만, 파란 의자도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의 존재를 행복해하는 누군가와 함께 머무는 여정이 기쁘지 않았을까? 그리고 첫 주인이 부가 그립기도 하고 말이다.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진 작은 파란 의자를 읽으며 만약 내 어린 시절 내 물건들처럼 파란 의자가 단지 내 소유를 위해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랬다면 파란 의자에게도, 의자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읽으며 소유 그리고 나눔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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