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노래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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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무작위로 원인들을 소환하는 이 시스템은

심리학적 요인에 의해 지원받고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인감 심리의 무규칙성과 돌발성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과 인과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낸다.

 한참을 빠져있었다. 신기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또한 가슴 아픈 이야기기도 한 소설 속에 말이다. 작품 속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행작가인 강영호의 죽음. 귀국하여 형의 방을 살피던 상호는 여러 장의 사진과 글을 발견하게 되고, 형이 출판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글이 잘 마무리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하나. 바로 천산에 있는 한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한 상호는 결국 형의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천산으로 떠나게 되고, 그 수도원 터 흙벽에 쓰인 성경벽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출판된 책 이후 한 교회사 강사가 천산벽서와 켈스의 책이라 불리는 라틴어 성경 원고를 비교하는 내용의 글을 쓴다. 과연 천산수도원 벽에 적힌 성경은 누구에 의해, 어떤 계기로 기록된 것일까?

 후에게는 연희라는 사촌누나가 있다. 읍내 미용실에서 일하는 연희는 예쁜 20살의 시골처녀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후의 집에 의탁하고 있는 연희. 어느 날 버스 안에서 마주친 중위 박영민은 연희에게 첫눈에 반한다. 연희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지만 연희는 눈 하나도 깜빡하지 않는다. 박중위는 상당히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연희는 집안 형편 상 중학교 졸업 밖에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박중위는 매몰찬 연희 주변을 계속 맴돌며 말을 붙여 된다. 연희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던 박중위는 후를 꼬신다. 라면을 사주며, 누나에 대한 정보를 캐기도 한다. 후를 공략해도 별 의미가 없던 박 중위는 결국 후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술자리를 가진 후의 아버지에 의해 연희를 불러내게 된다.(그에 대한 대가로 후 아버지의 빚을 갚아주고, 봉투까지 건넨다.) 그렇게 들국화에서 박 중위는 연희의 마음을 얻게 된다.

 문제는 연희가 마음을 받아 준 후, 박중위가 돌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연희는 갑자기 사라진다. 누나의 행방불명에 상처를 받은 후는 결국 박중위에게 칼을 휘두르게 되고, 후의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안 직후, 후를 천산 수도원으로 도피시킨다. 그렇게 천산 수도원에 들어간 후는 그저 다른 수도사들처럼 형제로 불리게 되는데, 성경을 읽던 중 자신의 상황이 성경 속 한 인물인 압살롬과 닮아있음을 알게 되는데...

 한편, 또 다른 수도사인 한정효. 군부 독재 시절 대통령의 그림자 노릇을 하며 일하던 그는 아내의 죽음에 충격을 받게 된다. 과거 자신이 권력을 위해 처리했던 것들에 염증을 느끼고, 그 모든 것에 죄책감을 느낀 정효의 변화를 알아챈 대통령은 결국 정효를 천산 수도원에 감금시킨다.

 연희를 찾기 위해 떠돌아다니던 후는 들국화에서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 일에 자신의 아버지가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격에 모든 목표를 상실한 후. 과연 후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성경 속 이야기가 소설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성경 이야기를 몰라도 괜찮지만, 알고 읽으면 더 와닿을 것 같다. 후가 자신의 모습과 겹쳐서 보았던 압살롬과 다말 그리고 암논. 나 역시 책을 읽으며 그 인물들과 비슷한 느낌을 후와 연희 그리고 박중위에게서 보았다. 후도 정효도 상처를 입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참회해가는지 지켜보면 또 다른 감정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과연 자신의 죄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하는 그들은 자신의 죄조차 깨닫지 못하는 또 다른 죄인들보다 조금은 낫지 않을까?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부정되었지만, 그전에 세상은 그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세상은 그들을 버렸지만, 그전에 그들은 세상을 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버려지는 것이 그들이 세상을 버리는 방법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간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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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현대지성 클래식 31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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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 시절 바른생활 같았던 윤리가 갑자기 지옥(?) 아닌 지옥행이 된 것은 윤리 중반 이후 등장했던 철학사에 대한 내용 때문이었다. 윤리에서 당근 최고의 기출문제 파트인지라, 수능을 앞둔 내게 정말 큰 시련을 안겼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해를 하면서 읽을 여유조차 없던 시기이기에(그 부분을 고3 때 배웠으니ㅠ), 진짜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고 무지막지하게 암기했던 것 같다. 보통 암기의 폐해는 기억에 저 편 깊숙이 사라진다는 것인데, 용케도 공리주의와 관련된 몇 가지가 남아있으니 그중 하나가 공리주의의 제창자 벤담과 그의 사상을 이어간 제자 밀의 이름 그리고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존 스튜어트 밀의 글을 읽게 되었다. 당시 그 책은 여성에 대한 명언이 담겨있는 책이었는데, 19세기 영국의 남자 지성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시대도 시대지만, 영국이라는 배경 그리고 밀은 철학자기에 그런 이야기와 동떨어진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밀에 대해 나름의 궁금증이 생기던 즈음 공리주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공리주의 도덕은 인간의 내부에 있는,

남들의 선을 위해 자기의 최고선을 희생시키는 능력을 인정한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희생 그 자체가 선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행복의 총량을 높여주거나 높여줄 가능성이 없는 희생은 낭비라고 생각한다.

공리주의가 칭송하는 유일한 자기희생은 남들의 행복에 기여하거나

그런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에 기여할 때뿐이다.

 우리가 공리주의 하면 떠오르는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한 줄이 있다. 여기서 공리란 공적인 이익(公利)이 아닌 효용(utility)을 뜻하는 말이었다. 바로 행복이라는 목적을 얻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 진정한 공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에는 행복에 대한, 쾌락이나 만족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스승인 밴담의 공리주의와 차이가 있다면 밀은 행복의 질을 더 중시했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이론은 이 한 줄로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이 책에는 공리주의자가 받는 오해(비현실적, 무신론, 편의론 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도덕과 관련한 공리 주의자의 견해가 드러나 있는데, 개인적으로 장 수는 얼마 안 되지만 난해한 표현들이나 내용들이 있어서 읽다 쉬다를 몇 번 반복했다. 책을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는 편인지라, 이번에는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제일 뒷부분에 해제와 작품 해설 부분을 먼저 접하고 앞의 내용을 읽었다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 영어 문장은 한국어 번역보다 더 난해하다고 하니, 그나마 역자에 의해 번역된 이 책이 더 낫겠지만, 그럼에도 내용 자체가 워낙 어렵게 표현되어 이따 보니 사실 이해하면서 읽는 게 쉽지 않다.

해제와 작품 해설을 읽은 후 다시 앞으로 와서 읽으니 마치 퍼즐의 조각이 맞춰진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퍼즐 조각 하나하나만 보았을 때는 무슨 그림인 지 전혀 몰랐는데, 작품 해설과 밀의 생애에 대한 글을 읽고 보니 무슨 뜻인지 좀 더 명확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품 해설과 해제를 먼저 읽고 앞 부분을 읽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밀의 공리주의에는 예시가 등장해서 그나마 뜻을 알기에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장이나 이론만 등장했다면, 1도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예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는 파악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19세기 철학자의 주장인지라, 당시는 파악했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조금은 안 맞는 주장처럼 들리는 부분도 있다. 사회가 발전하면 가난이 퇴치될 수 있다는 주장 말이다. (모두가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아서 현재도 기아나 가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어 보인다.) 또한 개인의 양심이 행동의 제재가 된다는 부분 역시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긴 하지만, 워낙 행복에 대한 견해가 다르고(특히 기본적 예의나 양심을 상실한 사람이 상당수 존재하고, 더 많아지는 추세이기에), 효용적인 행복보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 되는 사회가 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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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정말 이런 내용이 있어?
마크 러셀 지음, 섀넌 휠러 그림, 김태령 옮김 / 책이있는마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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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교회를 다녔다. 태어났더니 집안 대대로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나 역시 별다른 선택의 여지없이(물론 사춘기 이후에 들어서는 내 선택이었다.) 일요일은 교회 가는 날인 게 습관이 되었다. 개척교회를 다녔었던 터라 주일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생이 되자 교회학교 보조교사가 되었고, 그렇게 교사를 시작한 것이 20년이 넘었다.

궁금했다. 소위 성경을 까는(?) 이야기들 속에서 그 이야기를 깔 정도의 잔 지식은 가지고 있는 터라, 내심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지 내심 궁금했다. 예전처럼 덮어놓고 불을 뿜어대지는 않을 정도의 경험치가 쌓였기에 물론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신학 전공자도 아니기에 물론 나도 모든 것을 받아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은 아니다. 그저 읽다가 세세한 오류(가령 창세기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다 팔이 부러진... 팔이 아니라 엉덩이뼈로 알고 있는데?) 들이 눈에 띄고 조금 걸리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요즘은 워낙 정치권에 대한 풍자가 많다 보니, 이 책 역시 성경에 대한 풍자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좋겠다. 혹시나 기독교인 중에 읽으면서 거북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아무래도 유머적인 부분을 강조하다 보면 수위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우선 성경을 읽고 싶은데, 매번 계획만 세우고 늘 수포로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성경 자체가 우리와 문화도 다르고, 상당히 오래전 기록된 내용인데다가 번역투 자체도 여전히 낯설기 때문에 일반인이라면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보니 거기서 오는 부담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참 무지했던 것이 모세 5경 중 창세기. 출애굽기까지는 속도를 내며 읽지만 레위기와 민수기에 들어서면 전의를 상실하게 되는 경향이 심했다. 덕분에 내용을 이해는커녕 정말 글씨만 보면서 지나갔던 것 같은데... 그 많은 내용들이 율법이라는 생각은 1도 안 했던 것 같다. 신약에 들어가 보면 예수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의 생각에 대해 지적을 하는 부분을 읽으며 '도대체 율법이 뭐지?'했던 경험이 여러 번이었다. 이 책을 읽다가 무릎을 친 게, 모세 5경에 대한 설명 중 육백몇십 개의 율법을 주는 그림과 해설을 보며 그동안 내가 궁금했던 율법이 성경에 다 있었는데 율법과 출애굽기~민수기에 등장하는 법률을 별개로 생각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마 성경에 대한 (자극적이지만) 관심 그리고 틈새를 공략하는 궁금증들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필터링은 필요하다.(이 내용을 100% 믿는 건....;;;)

                                     
                                

신앙을 막 가진 초신자나 아이들이 읽기보다는,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왠지 모를 부담과 신앙적 권태감(?)을 가지고 있다면 기분전환으로 읽어보면 좋겠다. (성경 각 책에 대한 내용이 설명되어 있긴 하지만, 66권을 한 권으로 정리하기에는 분량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저자 역시 농축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말이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것이다. 물론 곁들여진 그림이 또 역할을 제대로 하기도 하니 눈여겨보면 재미가 한층 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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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데굴 집 우리 아이 마음 성장 그림책 3
탁소 지음 / 꼬마싱긋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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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똥에 이어 두 번째 만나는 탁소작가의 책이다. 구름 똥 때도 느낀 거지만 주인공 되는 캐릭터의 그림체가 단순하기에 아이가 이해하기 쉽고, 몰입도도 좋은 것 같다. 구름똥과 데굴데굴 집 두 권 모두 아이가 이해하기 힘든 바람을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로 반가웠다.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구하러 집을 비운 바람이 심하게 부는 어느 날, 다람쥐 집이 흔들리다 날아가게 된다. 여기저기 데굴데굴 굴러가는 다람쥐 집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하게 된다. 주인 잃은 다람쥐 집은 다시금 다람쥐들이 사는 곳으로 가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다람쥐 집의 존재를 모르는 동물들은 다람쥐 집을 오해하기도 한다. 마치 더럽거나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다람쥐 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동물들은 그런 다람쥐 집을 피하기도 하고, 자신의 위험을 걱정해 숨어버리기도 한다. 사실 존재를 모르고,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되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야 다람쥐 집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마냥 안타까울 뿐이지만 동물들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다람쥐 집은 데굴데굴 굴러서 바다에 가게 된다. 바다에서 만난 큰 고래는 다람쥐 집을 급기야 배로 착각을 하게 된다. 고래 입장에서 배는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가? 당연히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고래는 다람쥐 집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마치 구름 똥에서 구름똥을 믿고 도움을 준 개구리처럼 고래 역시 다람쥐 집을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사실 편견이란 참 무섭고 단단하다. 한번 굳어진 편견을 깨는 것 역시 참 힘들다. 나 역시 아이가 그런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내 얘기와 표정. 생각들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 같다. 데굴데굴 집 속에 등장한 대부분의 동물들 역시 두려움과 편견 속에 잠겨있다. 그래서 다람쥐 집을 보고 자신의 생각과 그동안의 경험으로 재단하고 피하기도 한다. 고래가 없었다면 과연 다람쥐 집은 어떻게 되었을까? 또한 갑자기 사라진 집에 당황할 다람쥐들은 어떨까?

그림책을 통해 다시금 색다른 방식으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에게도 편견이 좀 더 늦게, 단단하지 않게 생겼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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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퐁텐 우화 - 상상력을 깨우는 새로운 고전 읽기
장 드 라 퐁텐.다니구치 에리야 지음, 구스타브 도레 그림, 김명수 옮김 / 황금부엉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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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이 나타나서 비둘기를 겨냥했을 때 개미가 사냥꾼의 발등을 문 것이

은혜를 갚으려고 한 것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과란 돌고 도는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우화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단연 이솝이다. 근데, 이솝우화가 상당히 오랜 옛날인 기원전 6세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상당히 놀란 기억이 있다. 그 옛날부터 풍자와 우화가 등장했다는 사실 말이다. 이솝 우화는 누구가 익숙하지만, 라퐁텐 우화는 어떨까?

17세기 프랑스 시인이자 동화 작가인 장 드 라 퐁텐은 이솝 우화에서 영감을 받아 좀 더 깊은 풍자적 우화를 발표한다. 이 책은 라 퐁텐 우화를 기반으로 19세기 삽화가 구스타브 도레의 삽화를 담아 저자 다니구치 에리야가 현대적 성격으로 재 탄생시켰다. 3개의 파트로 나뉘어 각 주제에 맞는 우화들을 만날 수 있다. 읽다 보면 익숙한 우화들도 있고,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만나기도 한다. 라퐁텐이 쓴 우화를 재해석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이야기 말미에 저자의 말 같은 이야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우화만 읽으면 그저 옛날이야기 혹은 그냥 머릿속에 떠도는 교훈 정도로 마칠 수 있지만, 저자에 의해 다시 해설된 부분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 번 더 교훈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동물들을 빗대었다고는 하지만 아이와 함께 읽기엔 조심스러운 이야기들도 있다. 당연 우화 속에는 세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안에 담긴 뜻을 찾아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여러 편의 이야기 중에 특히 와닿는 이야기들이 꽤 있었다. 기억나는 한편은 독수리가 되고자 한 까마귀라는 제목의 우화였다. 독수리가 양을 잡아가는 걸 본 까마귀는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맛본 양고기가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있는 터라, 까마귀는 기왕이면 더 크고 튼실한 양을 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는 자신이 독수리가 아닌 까마귀라는 것이었다. 독수리처럼 큰 날개도, 날카로운 발톱도 없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까마귀는 독수리가 했듯 가장 큰 양의 등허리를 움켜잡는다.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설상가상 까마귀 발톱이 양털에 엉키게 되고, 양들이 놀라 날뛰는 바람의 우리의 욕심 많고 분수를 모르는 까마귀는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또 다른 한 편은 태산의 해산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상당히 짧은 이야기지만, 안에 담긴 교훈은 무시할 수 없다.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며 태산이 해산을 한다. 사람들은 큰 소리에 기대를 품고 태산의 주위로 모여든다. 엄청난 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태산이 낳은 것은 작은 쥐 한 마리일 뿐...

태산 주위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실망하고 만다.

과연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앞장만 읽었을 때는, 태산이 엄살을 부렸다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큰 산이 큰 신음소리와 고통 속에서 낳은 게 겨우 작은 쥐 한 마리이니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생각한 교훈은 달랐다. 아무리 작은 생명일지라도 세상에 태어날 때는 누군가의 고통이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대놓고 교훈을 드러내지 않지만, 작품 속에 지혜를 때론 신랄한 풍자를 담고 있는 우화만의 장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에는 우화만 담겨 있지 않다. 이솝우화와 라퐁텐 우화를 비교하는 글도, 비평가들을 향한 글도 등장하니 말이다. 그리고 동물과 인간이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도 있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저 주변을 장식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만 달라졌을 뿐, 우리의 전래동화(금도끼 은도끼) 같은 이야기도 담겨 있다보니 문화는 달라도 우화나 동화에 담겨있는 교훈은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또한 해봤다.

지혜와 풍자, 세대는 다르지만 인간사는 다 비슷하다는 생각 또한 다시금 불러일으킨 재미와 감동을 다 잡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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