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울 속 내 모습에는 뭄바이 거리를 쏘다니는 소녀가 남아있지.

나는 금지된 것에 맞서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

"그렇게 힘드셨어요?"

"힘들었지. 다르다고 느껴질 때는 항상."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 클로이는 조금 특별하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참여했던 그녀는 결승선을 앞두고 폭탄 테러로 두 다리의 40cm를 잃고 더 이상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밝고 적극적이던 클로이지만 사고는 그녀에게 몸뿐 아니라 여러 가지 변화를 만들어냈다. 배우라는 직업이 성우로 변하였고, 직접 다니기보다는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밖을 구경하는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에 대해 곱씹는 버릇까지도...

클로이가 사는 아파트 역시 좀 특별하다.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이다. 호출을 하면 승강기 승무원이 수동으로 엘리베이터를 호출한 층으로 올려준다. 낮 근무자인 디팍과 야간 근무자인 리베라 씨에 의해 일상의 불편을 덜 느끼며 살고 있던 어느 날, 야간 근무자 리베라 씨가 계단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고 다리 골절을 당하게 된다.

한편,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산지. 그는 인도의 꽤 규모 있는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젊은이로 디팍의 아내 랄리의 조카다. 산지는 아버지의 사망으로 호텔의 1/3에 달하는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욕심 많은 삼촌들 덕분에 현금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산지는 친구와의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사업을 구상하지만 자금이 모자라고, 미국에 살고 있는 고모 랄리를 통해 초대장을 받고 출자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디팍의 아파트에 갔다가 클로이를 마주하게 된다.

리베라의 부상으로 야간 엘리베이터 운행에 차질이 생기자, 아파트 회계사 그룸랫은 수동 엘리베이터를 없애고(당연히 디팍과 리베라는 해고될 것이다.) 2년 전 구매해 놓은 자동 엘리베이터를 들여놓고자 수를 쓴다. 물론 8명의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에 그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회의에서 상당수가 자동 엘리베이터 의견에 찬성한다. 다행히 이 사태 앞에서 랄리는 리베라를 대신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자신의 조카인 산지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고, 산지는 고민 끝에 그 제안을 수락하는데...

과연 산지는 처음 하는 수동 엘리베이터 승무원직을 사고 없이 수행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클로이에게만 초점을 맞추어서 읽게 되었다. 근데, 제목이 클로이지만 그 이면에 담긴 디팍과 랄리의 삶이 더 눈에 들어왔다. 인도 잘나가는 집안의 딸이었던 랄리. 유망한 크리켓 선수였던 디팍. 그런 그와 그녀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온다. 생면부지의 땅에서 디팍은 수동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며 새로운 꿈을 꾼다. 바로 난다네비산의 3천 배 거리를 수직이동하겠다는 꿈 말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일개 잡부라고 생각하고 온갖 굳은 일을 시키는 사람들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꿈을 위해 전진한다. 그런 그의 앞에 자동 엘리베이터로의 변화는 단지 일자리 그 이상의 상실을 의미한다. 물론 디팍의 성실함에 대해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과묵한 그는 아파트 주민들의 모든 삶을 알지만 절대 입 밖의 꺼내지 않는다. 디팍에 대한 기억은 클로이에게도 깊이 남아있다.

테러 후 다리를 절단하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온 첫날. 디팍은 언제나 다름없이 클로이를 맞아준다.

"아까 로비에서 휠체어를 밀어준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미스 클로이는 내 도움도,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아요.

어서 들어가요. 내가 해줄 게 없습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따뜻하고 다분히 일상적이다. 물론 인도의 부유한(금수저급?) 상속자인 산지가 고모 랄리의 이야기를 듣고 수동 엘리베이터 승무원이 되는 이야기는 좀 놀랍긴 하지만 말이다. 중간중간 펼쳐지는 클로이의 일기들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문득 자신의 다리를 보면 다시금 좌절을 느끼고 또 우울해지는 클로이. 자신을 위해 주변 사람들이 희생하는 것이 너무 싫고, 자신의 사고에 커다란 죄책감을 느끼는 줄리어스와의 관계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소설 속에 흐르는 편견이라는 두 단어를 지나칠 수 없다. 인도에 대한 우리가 가진 편견들. 장애인을 향한 편견들. 그리고 직업에 대한 편견에 이르기까지...

차분하게 읽다 보면 그들의 일상에 빠져들어 그들이 편견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리고 내가 등장인물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해야 할지 대입하며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물론! 사랑 이야기는 덤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 당신의 행복을 지키는 대한민국 핵심 가치 서가명강 시리즈 10
이효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시절 전공의 반 이상이 법학과목이었다. 덕분에 법학은 어렵지만, 조금은 익숙해지는 분야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니 민사나 상법 외에는 직접적으로 법전을 찾아봐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한참을 담을 쌓고 살다 한 번씩 헌법소원 관련 기사가 등장할 때나 만나게 된 헌법.

법 중 가장 상위법이라 하는 헌법이지만, 실제 우리 삶에는 그리 관련이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런 헌법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 걸까? 저자는 도입부의 이야기를 통해 헌법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왜 헌법이라는 잣대로 살펴봐야 할까?

헌법은 국가의 기본적인 사상과 비전을 담고 있다.

개인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철학 하듯이 인공적인 인격체인 국가가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할 것인지를 고민해 규범으로 체계화한 것이 헌법이다.

행복한 국가의 미래상이 헌법인 것이다.

헌법과 행복이 관련이 있다니? 사실 마지막 한 줄이 너무 궁금했다.

저자는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3가지의 큰 틀에서의 헌법을 이야기한다. 우리 헌법 제1조 제1항의 그 한 문장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한 줄의 구체적이고 실제적 의미를 모를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우리 헌법 속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서가명강 시리즈 자체가 전공자가 아닌 비전공자를 위해 쓰인 책인지라,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본 개념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역시 헌법을 알기 위해 알아야 할 국가 발생의 역사를 비롯하여 국가의 3요소(아직도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국민. 영토. 주권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신기하다.)도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인과 졸렌이라는 이원적 분석 개념(자인은 사실판단의 근거, 졸렌은 법 해석을 통한 가치판단의 근거다)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한 장 한 장 읽어갈수록 저자의 그 한 줄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사실 그 한 줄을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쓴 것 같다. 헌법이 수호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그 의미 말이다. 우리의 헌법은 여러 차례 개정을 겪었고, 그 개정에는 여러 가지 이해집단의 욕심과 논리가 섞여있긴 했지만, 그 기본적 가치는 여전히 문장으로 수호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연 헌법에 문장화된 권리와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많은 성장이 있어왔지만 아직은 아쉬운 상태다. 여전히 국가의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경우를 우리는 여전히 보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을 통해 국가도 국민도 헌법의 테두리 안(법치국가)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통제를 누려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법 안에서 국가권력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이 잘 만들어져야 하고 그 안에서 집행과 해석, 적용이 잘되어 하는 것은 기본이며, 법과 현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양립이 필요하다.

참고로 자유와 평등의 개념 정의는 꼭 필요하다. 특히 평등에 대해서 곡해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여기서의 평등은 특정한 측면에서의 차별 금지를 말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취급해야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정의한다. (평등과 자유의 개념은 3장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마지막 4장에서는 우리 헌법에도 명시된 통일국가에 대한 강한 바람이 담겨있다. 지구촌 내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민족의 앞으로 나아갈 통일의 방향에는 "평화"가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 가치는 헌법에서 정확하게 찾아볼 수 있다. 4장의 이야기는 미래의 한국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인류 전체의 개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평화라는 개념이 가진 포괄성 덕분이다.

우리의 헌법은 생각보다 우리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이 법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선택하고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의 삶은 팍팍하고, 국가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침해당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민주주의를 향해 나가고 있는 과도기에 있으며, 언젠가 민주주의가 완성된 때(혹은 지금보다 더 민주주의가 이룩된 때)에 우리의 헌법과 실제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행복한 국가의 미래상이 헌법이라는 저자의 말은 사실이다. 헌법을 구성하는 조항들을 이루어나가다 보면 국민의 나아가 국가의 행복을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그런 행복한 헌법을 가져서 다행이다.

우리에게는 (행복한) 헌법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할머니네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마을 34
박현숙 지음, 박성은 그림 / 책고래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깊지도, 좋지도 않다.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 집은 거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절마다 우리 집은 늘 친가에만 갔고, 외갓집에는 매년 외할아버지 생신 때 한 번 갔던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갓집은 워낙 시골인데다 비포장도로기도 했고, 그 흔한 가로등조차 없었기에 해만 떨어지면 암흑으로 바뀌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보는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나와 그리 친밀하지 않았다. 막내딸인 엄마의 딸인 나와 외할머니의 나이 차이도 왠지 모를 거리감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겠지만 말이다.

외할머니네라는 그림책 속 상황은 나 또한 경험해봤다. 물론 아주 어린 나이였기에, 내 머릿속 기억보다는 엄마나 고모의 이야기를 통해 구성된 기억일 테지만 말이다. 나 역시 3살 되던 해 동생이 태어났다. 당시 동네에서 작은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시던 부모님 입장에서 아이 둘을 케어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셨기에, 큰 아이였던 나는 시골에 계신 친할아버지 댁에 한 달 정도 맡겨졌다. 이곳저곳 다니며 사고도 많이 치고, 한 살 어린 사촌동생에게 말을 가르쳐주기도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가 많다고 할아버지가 바가지를 대고 내 머리를 잘라줬다는 일화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당시 사진은 없지만, 한 달 만에 나를 데리러 가신 엄마는 내 모습을 보고 서울로 데리고 오며 한참 울었다고 한다. 딸인데, 바가지로 잘라놓은 머리를 보고 말이다.)

책 속 수영이 역시 동생이 태어난 뒤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 외할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내려간다. 할머니 집에 간 첫날 많은 것이 다르지만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지는 않았다. 외할머니 집에서 커다란 나무 대야에서 목욕을 하고, 할머니가 준 초코우유를 먹으면서 오히려 즐겁기도 하다. 많은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기에 수영이 입장에서는 지루할 새도, 엄마가 그리울 새도 없다. 하지만 수영이에게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엄마소와 떨어져 팔려가는 아기 송아지들을 봤기 때문이다. 눈물이 그렁그렁 한 송아지들의 눈을 보자마자 수영이 또한 엄마가 생각난다. 송아지처럼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모기장 안에 누워서도, 무엇을 먹을 때도 수영이는 엄마 생각이 난다. 급기야 수영이가 병이 나고 만다. 엄마가 그리워 엄마를 부르며 3일을 앓아누운 것이다.

과연 수영이는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처음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수영이의 입장으로 책을 봤다. 동생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건 맞지만, 수영이도 엄마 곁에 있고 싶을 텐데 엄마에게서 떨어져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수영이 입장에서는 자신을 보내는 엄마가 밉고, 그리울 것 같다. 처음에야 이런저런 달라진 풍경에 마음을 쏟아 엄마 생각이 안 나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라고 하지 않나? 얼마나 지나야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상황이 아이로 하여금 그리움의 병이 나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며칠 후 다시 읽어본 책에서 이번에는 엄마의 마음이 읽혔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엄마 입장에서는 오히려 엄마 떨어져 할머니 집에서 지내는 수영이가 눈에 밟혔을 것이다. 내 품에 안고 있는 작은 아이는 내 눈으로 보지만, 눈에 안 보이는 수영이는 가슴에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친정엄마에게 맡긴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를 떨어뜨려놓은 엄마 마음은 슬프고 미어질 것이다. 수영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단숨에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아직 신생아인 작은 아이를 누구에게 맡기고 갈 수 있을까? 괜히 내 몸 편하자고 아이 보내서 아이가 병이 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내가 힘들어도 둘 다 내가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하여 수영이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짧은 그림책이지만 행간에 가득한 감정선들을 짚어가며 읽다 보니 내 눈에도 눈물이 가득하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었나 보다. 말썽 부리고, 투정 부릴 때면 떼어놓고 싶다가도 돌아서면 아이가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하는 게 엄마의 마음이다. 얼마 전 출산 후 처음으로 신랑에게 아이를 맡기고 동생이랑 반나절 바람을 쐬고 온 적이 있다. 오랜만에 자유라고 생각해서 마음껏 놀아야지 싶었는데, 가는 곳마다 아이가 좋아하는 풍경, 동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이 생각이 가득해졌다. '우리 **이가 좋아하는 동물이네! 우리 **이가 봤으면 신나했겠다.' 옆에 있던 동생이 잔소리를 한 움큼 던졌다. 오늘만큼은 **이 생각 하지 말라고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도 아빠도 다른 차원으로 이사를 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자연히 무엇을 보고 먹어도 아이 생각이 떠오르는 걸 보면...

아직은 엄마 손길이 그리운 아이 수영이와 외할머니의 짧은 동거기. 그 속에 가득한 엄마와 수영이의 사랑을 보며 나 또한 책 속 엄마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1 - 중국사의 시작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은 풀 줄기와 거북 등 껍데기 따위에 길흉을 맡긴단 말이냐?

인간사는 인간에게 달렸다. 나아가는 데 길이 있고, 싸워 이기면 길(吉) 하다.

사마천의 사기는 아마 세계사를 배웠다면 누구나 알고 있을 중국의 대 역사서이다. 근데, 방대한 역사를 기록했다는 것과 함께 사마천이 끔찍한 형벌(궁형)을 당했음에도 사기를 기록했다는 사실로 더 유명하기도 하다. 사실 역사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실행하기에는 그 분량이 실로 어마어마하기에 엄두가 안 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이희재 화백에 의해 만화로 그려진 사마천의 사기를 접할 기회가 생겼다. 만화로 읽기에 조금은 편안하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만화라고 하지만, 쉽게 볼 수는 없는 것이 역사서를 만화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고심하며 그림으로 표현했는지, 나 역시 책을 읽으며 한 컷 한 컷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사기를 읽지 못한 상태이기에, 원전의 내용이 얼마나 담겨있을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강태공,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처럼 익숙한 역사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흥미가 생긴다. 만화로 그리기에 한계가 있기도 하고, 글로 장황하게 묘사된 부분을 만화의 몇 컷으로 표현하다 보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종종 있었고,(갑자기 모르는 이름이 등장해서 앞뒤를 찾아도 없는 경우가 있었다.) 대사나 표현 자체가 아이들이 보기에 다소 수위가 높은 부분도 있기에 만화라고 어린아이들에게 보여주기는 조금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중국사의 시작이라는 이름과 함께 요순시대 이야기가 등장한다. 당연히 세습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덕치로 백성들을 이끌 인물들을 찾아서 선양했다는 내용이 참 놀라웠다. 조금의 이익만 있더라도 자녀에게 물려주고자 혈안이 된 요즘 우리의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 부끄러울 뿐이다. 물론 그 이후 세습제가 자리 잡고, 이어갔다고는 하지만 첫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것일까? 물론 지금은 사기 속처럼 독재나 전제왕권 시대는 아니지만,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선정을 베풀기보다는 자기 배만 채우는 주왕 같은 모습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현대 역사에서 만났던 혁명들도 당시 고통받고 산 백성들과 같은 형태에서 일어난 것일 테니,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과거 학창 시절 역사를 배울 때 백이와 숙제 이야기가 등장했다. 충신이자 지조와 의리를 지킨 인물들로 말이다. 당시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던 내용이었는데, 사실 이번에 사기를 통해 만난 백이와 숙제의 모습을 보며 과연 지조의 의리를 지키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주왕의 패악과 폭정을 일삼았고, 그런 폭정에 반발해 일어난 것이 무왕의 정권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사마천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백이와 숙제 이야기 다음에 나온 그림을 보면 공자와의 이야기(물론 공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니라,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니 말이다.

이 책은 사기의 모든 이야기를 꼼꼼히 읽으려는 사람보다는, 원전 사기를 읽고 싶지만 부담되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글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빠르고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만화 사기를 읽고 더 궁금증이 생겨 원전 사기를 보게 되면 더 좋을 것이다. 2권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기대된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193672)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어나줘서 고마워 -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 두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의사의 기록
오수영 지음 / 다른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여름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면서 소나기가 내리치는 상황이

하늘의 '실패'가 아니듯 (곧 더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

적어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합병증이 생기는 것은 누구의 '실패'가 아니다.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임신하면 어떤 기분일까? 배가 점점 불러오는 건 어떨까? 출산은 정말 끔찍하게 아플까?...

이 모든 것을 꽤 오래 상상해왔지만, 막상 내게 닥친 결혼과 임신. 출산은 내 상상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원하던 시기에 아이가 생겼고, 임신의 모든 일정을 하나하나 거치던 어느 날. 내게도 "고위험 산모"라는 이름이 붙었다. 임신 중반 했던 임신성당뇨 검사에서 재검이 떨어졌고, 재검 결과 하루 7번 혈당 테스트를 해야 하는 임당 산모가 된 것이다. 임당 재검과 확정 판정을 받은 후 몇 주 간 정말 많이 울었다. 아이가 잘못될까 봐 걱정되다 보니, 먹는 양을 극도로 조절했고(태어나서 이렇게 빡빡한 다이어트는 처음이었다.), 원래 살이 있던 체격이었지만 출산 당일 0.8kg밖에 찌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 이 한 줄을 임신 기간에 읽었다면 아마 지금보다 덜 우울하고 미안해하며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또한 실패와 성공이라는 단어를 과연 임신과 출산에 붙이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 또한 해봤다.

저자는 15년 차 산부인과 의사로 이 책에는 그동안 만났던 임신과 출산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모든 상황이 다 긴급하고, 어렵지 않은 상황이 없겠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묘한 위로가 된 것도 사실이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모든 탄생은 다 경의롭고, 소중하겠지만 특히 오랜 기다림과 어려움 속에서 만났던 경우들이 대부분인지라 더 극적인 건 같다.

특히 탯줄이 4번이나 감겨있었으나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에게 저자가 기적이나 은혜라는 이름이 어울리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이름이 생각났다. 나 역시 엄마가 몸이 약해 내 위로 자연유산이 여러 번 되었고, 나 역시 임신 초반 유산기가 있어서 맘고생을 많이 하면서 출산했기에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그 아이처럼 지어주셨기 때문이다.

아이와 산모 역시 고생이 많지만, 저자의 삶을 보고 놀라움을 넘어 고마움을 느꼈다. 사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저자도 아이가 둘이고, 첫째 아이의 글이 제일 앞장에 실려있다.),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경외감마저 느껴졌으니 말이다. 글로 만나기에 조금은 덤덤해 보이지만, 생사의 순간을 기록한 이야기인지라 어느 하나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마치 의학드라마 수십 편을 본 기분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힘들게 태어났지만 일찍 천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미숙아 쌍둥이 중 하나를 희생하고 하나만 살게 되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나 역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기 전에는, 임신= 출산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해보고, 책을 통해 만나보니 건강하게 출산하고 양육한다는 것은 기적이고 큰 복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저 그렇게 태어나는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고, 당신이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고 기적이라는 사실 또한 이야기해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아무쪼록 저자의 손을 통해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일구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