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버리기 기술 -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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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전하다! 아니... 좀 더 격해졌다는 말이 어울리겠다.

전작인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으면서 사실 상당히 헉~했다.

제목을 포함해서 책에 가득한 내용들이 설마... 혹은 정말 그래도 될까? 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이다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 책의 제목은 무려! "희망 버리기 기술"이라고 한다.

아마 마크 맨슨의 전 작을 읽지 않았다면, 무슨 이런... 하면서 책을 덮었을 지도 모른다.(물론 반어법인가? 해서 궁금함에 책을 열었을 수는 있겠으나...) 하지만, 무려 마크 맨슨이기에 이번엔 어떤 내용으로 허를 찌르는 사이다를 줄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다행이라면 마크 맨슨이 정의하는 희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희망의 범주와 조금 다르다.

어쩌면 좀 더 좁고, 집중적이고, 간결할 수도 있겠다.

허무맹랑하고, 가능성이 없는 것,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무너뜨리는 그것을 버리라는 말씀이다.

그 희망이 오히려 사람을 더 힘들게 만든다. 희망고문이라는 의미와 어느 정도 상통한다고 할까?

또한 그는 우리의 뇌를 생각하는 뇌(생각 뇌)와 감정을 느끼는 뇌(감정 뇌)로 정의한다.

생각 뇌는 양심적이고 정확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이지만 느리며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면, 감정 뇌는 빠르고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만 과잉반응하고 비합리적이기도 하다.

물론 감정은 행동과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생각하기 전에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

자기통제의 모든 문제는 생각보다는 사실 감정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감정 뇌에 의해 일어나는 불필요한 희망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희망을 버리고, 고통을 인정하라. 어쩌면 단순히 이 문장만 읽으면 비관주의자의 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7장에 보면 고통은 보편상수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어떤 삶을 살 건 고통은 늘 존재한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건강한 사람도, 아픈 사람도 삶에는 늘 남이 모르는 자신만의 고통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거부한다고, 모른 척한다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 자체를 인정하면 오히려 삶 속에서 또 다른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리송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기도, 이해가 되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희망을 버리라고 했지만, 사실 희망은 버릴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제목이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강한 부정이 긍정을 말하는 강조가 되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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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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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의 위화 작가의 산문집이라는 사실만큼이나 놀라웠던 것은 제목이었다.

아귀가 안 맞는 듯한 문학과 선율. 음악과 서술...

문학은 서술과, 음악은 선율과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실 선율이나 음악이라는 단어를 보고, 위화가 음악을 토대로 쓴 평론문(?)정도의 글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음악 관련된 글들이 있긴 하지만, 그의 머리말 서두에 나오는 대로 선율이나 화성에 해당하는 의미를 차용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개의 음이 어우러져서 화음을 만들고, 음악의 선율을 통해 한 곡의 음악이 만들어지듯이, 그의 글 또한 화음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개개의 음과 같은 한 줄 한 줄의 문장이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이야기가 된다는 그의 글이 제목과 잘 어울렸다.

산문이라는 형식으로 그가 쓴 글이 모여 있는 이 책에는, 타인의 작품을 읽으면서 혹은 떠오른 글이 위화만의 색으로 어우러져서 드러난다. 덕분에 위화의 글도, 그의 글을 통해 소화된 타인의 글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수필이라기도, 평론 글이라기도, 에세이라기도 애매한 성격을 띠고 있는지라 산문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 말미에 이 글을 쓴 날짜가 들어있다. 대부분이 1990년대의 글이기에, 이 글이 책으로 묶여서 나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그럼에도 옛스럽거나, 지난 이야기 같지 않은 것은 변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작가이기 전에 위화라는 사람이 느낀 예술이나 책에 대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뒤 쪽으로 갈수록 음악의 이야기가 많다. 마지막 부분에 실린 인터뷰 글을 보면 위화가 음악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어쩌면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그런 게 아닐까?^^;)

음악을 사랑하고, 글을 사랑하는 위화 작가의 모습이 부담스럽지 않게 드러난 글이었다.

누군가와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한 어느 작가가 떠올랐다.

책 띠지에 적힌 한 줄이-생(生)을 헐어 쓴 글의 힘 위화의 산문은 그의 다른 일가(一家)이다.-이 책을 읽는 내내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소설과 전혀 다르지만, 그렇다고 동떨어진 느낌이 아니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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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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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도 더운 입김이 세어 나온다.

개인적으로 자연재해를 그린 스케일이 큰 작품들을 좋아한다. 쓰나미, 토네이도, 지진, 화산 폭발, 홍수...

물론 주인공들이 그 모든 역경을 디디고 살아남는 여정에 동참하는 것도 좋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장면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고 할까..?

사실 물 부족 국가 혹은 식수 부족 현상은 이제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가뭄으로 인한 식수 부족으로 방송에서 소방차 같은 것을 이용해 식수를 나르거나 물병을 나눠주는 장면을 방송에서 종종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 비해 좀 극단적이긴 상황이긴 하지만 처음 접하는 가뭄(갈증? 물 부족? 갈증?) 등의 재난 소설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가뭄이 계속되고, 그로 인해 물이 공식적으로 끊겼다. 물 부족 현상으로 애리조나를 비롯한 몇몇 주가 물길을 차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뉴스화되지 않는다. 뭔가 극적인 장면이 부족해서인지... 오히려 옆 주 허리케인 소식만 크게 보도될 뿐...

얼리사의 가족은 마실 물을 확보하기 위해 마트로 향하게 되고, 마트 안에 꽉 들어찬 사람들 속에서 생수를 얻을 수 없다. 그때 기지를 발휘하여 얼음을 카드 가득 담아서 집으로 돌아온다. 화장실 욕조를 씻어서 거기에 사온 얼음을 보관하는 얼리사의 가족. 하지만 어렵게 얻은 물은 동생 개릿의 실수로 오염되고 만다.

하루 이틀... 물이 사라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점 괴물이 되어 간다. 워터 좀비...

반면, 이 모든 재난이 시작하기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며 살아왔던 켈턴 가족은 물을 확보하지만, 이웃들의 요구에 문을 걸어 잠그고 만다. 아이 분유 먹일 물을 요청하는 말레키가족을 박대하고 그 일로 켈턴의 엄마와 아빠는 싸움을 하게 된다.

설상가상 전기까지 끊기는 상황이 되고, 마을에서 긴급 전원 시설이 작동되는 유일한 집인 켈턴의 집으로 워터 좀비가 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평소 얼리사를 짝사랑했던 켈턴은 갑자기 없어진 개릿을 찾기 위해 자전거를 빌리는 요청에 응하게 되고, 물을 찾아 집을 떠난 얼리사의 부모를 찾는 일에 같이 동참하게 된다.

한편, 지하벙커로 이동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켈턴 가족을 대신해 얼리사는 집을 지키게 되고, 단수 대책 회의로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을 돕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물을 가지고 갔던 얼리사로 인해 또 다른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물인지라, 물 부족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렇기에 물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빨리, 더 인간의 본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상황 속에서 상대적 약자에 속하는 어린이, 청소년, 노인, 여성들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사건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인 청소년들(얼리사, 켈턴, 개릿, 재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물론 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 그나마 물이 조금은 풍족한 상황 속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책을 읽어나간다면 또 다른 재미와 몰입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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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함께 지하철을 타보자 - 데카르트 역에서 들뢰즈 역까지
황진규 지음 / 달의뒤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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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출퇴근길 시리즈가 유행했었다.

특히 철학서 관련 책이 출퇴근과 연결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아마도 시간을 내서 책을 본다는 게 쉽지 않기도 하고, 출퇴근 시간이 생각보다 꽤 들지만 막상 뭔가를 하기 애매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나 역시 워킹맘의 입장인지라, 출퇴근 시간이 아니면 마음 놓고 책을 볼 짬이 안 나는 편이다.

그래서 출퇴근 버스 안 혹은 지하철 안에서 책을 자주 보는 편인데, 잠깐이지만 유용한 시간인 것 같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고, 규칙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기에 말이다.(단, 자리만 잘 확보된다면... ㅋ)

인문학을 좋아한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 철학의 경우 다수의 서적을 접했지만, 상식 이상으로 발을 넓히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아무래도 낯선 외국 이름도 한몫을 할 테고 그들의 이론을 좀 더 쉽게 정리한 책을 접한다 해도 내용이 워낙 방대하기에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짧은 시간에 좀 더 현실적이고 쉽게 철학자 20인을 만나볼 수 있다.

하루 당 8~10페이지 가량이면 되기에 정말 10분이면 충분하다.

4주에 걸쳐 5일간(월~금) 10분 투자로 20명의 철학자를 만날 수 있다니, 꽤 매력적이다.

매주 지나갈수록 과거~현대의 철학자를 만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도 작가 나름의 생각인 듯하다.

물론 완전 고대 철학자들은 현대 철학자들을 위해 배제된 듯하다.(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참신했던 것 같다.

철학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의 철학자부터 만나다 보면, 늘 중반부에서 지쳐 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렇다 보니 현대 철학자는 제대로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

덕분에 내게는 새로운 철학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물론 각 주의 철학자들 사이에도 나름의 연결고리가 있다.

예를 들자면, 첫 주의 5명의 철학자들은 이성과 감성 그리고 신에 대한 고리를 가지고 있다.(읽으면서 느낀 내 생각이다. 아닐 수도 있지만...^^;;)

또한 철학자가 주장한 용어에 대한 설명 자체가 좀 더 우리에게 쉽게 와닿는 단어로 바뀌어서 설명되어서 좋았다.

철학자의 이론에서 파생해 다른 질문으로 나아가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구조도 눈에 확 들어온다.

 

익숙한 지하철 노선도에 조금은 덜 익숙한 철학자의 이름이 등장하니, 이상하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마 이 또한 저자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게 아닐까?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을 함께 두면 좀 덜 부담스럽게 된다는... ㅋ)

하루 10분 투자로, 20명을 만날 수 있는 좀 더 현대적이고, 실제적이고, 참신하고, 유쾌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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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미사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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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자매의 이야기.

제목만 읽고 미국이라 유럽 같은 서양권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 모디 그리고 모나의 이름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등장인물의 이름이 묘했다.

하나 둘 등장할 때 마다...리웨이칭, 란관웨이, 저우잉웨이, 톈무펀...대만 작가의 소설이었다.

덕분에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원래 예상외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으니 말이다.

모디와 모나는 쌍둥이 자매다. 하지만 모습과는 달리 성격이나 행동이 무척 다르다.

모디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데 비해, 모나는 활달하고 적극적이다.

정. 재계 유력인사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뤼인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모디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다.

그러던 중 지웨이칭이라는 남학생이 모디의 짝이 되게 되고, 그의 냉소적이고 위협적인 행동들에 모디는 상처를 받게 된다. 결국 모나의 제안으로 둘은 학교를 바꿔서 가게 된다.

모디와 다른 모나의 행동에 지웨이칭은 의아하지만 쌍둥이라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는 둘 앞에서 의심하지 않는다.

어느 날 수영을 못하는 모나가 물에 빠지게 되고, 둘 사이에 있었던 뜻밖의 진실이 수면 위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쌍둥이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친한 친구 중에 쌍둥이가 있었는데(닮긴 했지만, 구별이 될 정도였음.),

이 소설 속 모디와 모나처럼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모디와 모나를 닮았다고 할까...?(물론 동생이 모디처럼 모나보다 조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성적이지는 않았다.)

동갑인 친구 같은 느낌과 쌍둥이만 공유하는 무엇(하나가 아프면 하나가 따라 아픈다든가 하는...)이 내 눈에는 신기했기에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쌍둥이를 낳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 또한 했었으니 말이다.

처음 제목을 읽었을 때 우리(쌍둥이 이야기니까)만 눈에 띄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을 읽어보니 처음에 못 느꼈던 느낌이 제목에 가득했다. 아마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제목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모든 내용을 함축시켜 놓았다고 할까...?

책을 읽는 내내 참 재미있었다. 모디와 모나의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하기에 모디가 모르는 모나, 모나가 모르는 모디를 독자는 알 수 있다는 점도 나름 매력 있었다.

이 책에는 여러 번의 반전이 숨겨져있다.

물론 출생의 비밀(?) 같은 것도 있고, 그보다 더 헉 한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추리소설이 아니지만 추리소설 느낌이 들기도 하고, 성장소설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로맨스도 숨겨져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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