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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일리아스 - 호메로스가 들려주는 신과 인간의 전쟁이야기 ㅣ 지금 시작하는 신화
양승욱 지음 / 탐나는책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지금 시작하는 일리아스
뭐 이런 일화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일리아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미국의 리드 칼리지(Reed College)에서는 신입생에게 입학 전에 두 권의 책을 보내준다고 한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볼 책이라면서.
그 책은 바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이다.
그렇게 해서 호메로스가 지었다는 두 개 서사시, 가까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관련 책을 어쩌다 보니 제법 읽게 되었다.
2차 저작물도 제법 찾아 읽었고, 1차 저작물인 원본도 제법 읽은 셈이다.
『일리아스』만 해도 서너권은 되는데, 이 책은 다른 『일리아스』에 비해 어떤 점이 다를까?
일단 천병희 역 『일리아스』(이하 ‘천병희 역’)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이 책, 천병희 역에 비해 양적인 면에서 부담이 적다.
이 책은 360쪽인데 비해 천병희 역은 840여쪽, 그러니 천병희 역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원본에서 직역을 해 놓은 게 아니라, 의역을 했기에 읽기가 편하다
이런 대목 비교해보자.
아킬레우스가 분노하게 되는 사건, 아가멤논과 전리품을 두고 다투는 장면이다.
당시 정복지에서 여인은 전리품 취급을 받았는데, 브리세이드란 여인을 두고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가 다투게 된다. 아가멤논의 발언이다.
“그대가 싸우든 말든 그건 자유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면 돌아가시오. 그대가 없어도 나에겐 훌륭한 장수들이 많으니, 신께서 주신 알량한 재능을 믿고 더 이상 건방 떨지 마시오. 그대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대의 백성이나 잘 다스리시오. 하지만 떠나기 전에 먼저 브리세이스는 나에게 보내시오!” (51쪽)
천병희 역은 다음과 같이 장문이다. (34쪽)

참고로 브리세이스의 이야기는 후에 또 등장한다.
아킬레우스의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죽었을 때,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돌아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애통해 한다. (이 책, 302쪽)
한편 아킬레우스가 사랑했던 여인 브리세이스도 다른 여인들과 함께 다시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에게 친절했던 파크로클로스가 죽어서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그의 시신 위로 몸을 던지며 애처롭게 울었다.
“파트로클로스님, 가련한 제 삶에 유일하게 빛이 되어 주셨던 소중한 분, 제가 이곳을 떠날 때만 해도 멀쩡히 살아계셨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시다니요. 오, 신이여 어째서 제 인생은 이렇게 괴로움의 연속인가요? (하략)”
그녀가 통곡하자 다른 여자들도 박복한 자신들의 운명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302-304쪽)
이런 부분, 호메로스의 반전사상을 잘 나타내는 구절이라 하겠다.
전쟁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하는 여인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이 장면을 묘사한 그림, 줄리앙 미셀 구에의 그림이 여기 수록되어 있다.
이 부분, 다른 책을 읽으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대목이라 특별히 여기 기록해둔다. 그림 또한 올려놓는다.

또한 여성 입장에서 쓴 대목이 또 있는데,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가 싸움에 나가기 앞서 부인인 안드로마케와 이별하는 장면이다. 안드로마케의 애달픈 호소 들어보자.
안드로마케는 헥토르를 보자 눈물을 머금었다.
“나는 당신의 그 용기 때문에 당신을 잃게 될 것이 두려워요. 당신은 나와 어린 아들이 가엽지도 않나요? 만약 당신이 쓰러진다면 내겐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당신밖에 없다구요. 제 고향 테베가 멸망하던 날, 아킬레우스가 제 아버지와 일곱 형제를 모두 죽였지요. 왕비셨던 어머니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화살에 목숨을 잃으셨어요. 그러니 당신은 제게 부모이며 형제이고 남편입니다. 제발 저와 당신의 어린 아들을 과부와 고아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없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나아요. 그러니 당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저 그리스군을 피해 성 안에 머물러 주세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121쪽)
『춘향전』에서 들을 수 있는 춘향의 이별가가 『일리아스』에서는 안드로마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일리아스』엔 ‘트로이의 목마’가 안 나와요.
『일리아스』의 배경이 되는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알려진 것이 바로 트로이의 목마다.
트로이로 쳐들어온 그리스군은 싸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게 되자, 오디세우스가 목마를 만들어 성 앞에 놓고 군사들을 철수시킨 것처럼 계략을 꾸민다. 그런 작전에 속은 트로이 진영 결국 망하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일리아스』에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다.
왜 나오지 않는 것일까?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다루는 서사시 『일리아스』에 그것을 다루지 않는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전부를 다루는 게 아니라, 그 중에 단 50일간만 다루고 있는 것이다. 해서 『일리아스』에는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결말 부분이 없다,
그래서 『일리아스』만 읽는다면, 의아해 할 것이다.
마치 중도에 그만 둔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해서 이런 내용을 설명해주는 책이 필요하다.
트로이 전쟁의 앞뒤를 잘 설명해주고, 그 가운데에 위치하는 『일리아스』의 내용을 잘 짚어주어야 비로소 트로이 전쟁의 전모가 손에 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점을 잘 짚어주고 있다.
<서장>에 트로이 전쟁의 원인부터 시작하여 전쟁이 시작되기까지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고, <맺음글>에서는 『일리아스』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트로이 전쟁의 끝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다.
해서 독자들은 이 책으로 트로이 전쟁의 원인부터 결과까지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된다.
명화, 이해를 돕는다.
이 책에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일리아스』의 내용을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일리아스』를 토대로 하는 2차 저작물을 보면, 간혹 그림의 제목은 물론 화가 이름도 적어놓지 않은 책들이 많이 있는데, 이 책은 말미에 <도판 목록>을 만들어 놓았다. 편자의 친절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다시 이 책은? - 트로이 전쟁, 이 정도는 알아야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는 인물,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여기 리뷰에 일일이 적을 필요는 없는데, 저자는 이런 인물들을 그리스편과 트로이편으로 구분하여 일목요연하게 구분해, 피아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또한 그리스 신들도 편을 갈라 그리스와 트로이 편에 서서 전쟁을 진두지휘, 또는 응원을 하고 있는데, 어떤 신이 어떤 편에 섰는지 역시 잘 정리해 놓고 있다.
이 책으로, 『일리아스』는 물론, 트로이 전쟁의 전후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 한 권으로 트로이 전쟁을 손 안에 넣을 수 있다.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