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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 - 혁명과 전쟁, 그리고 미식 이야기
스테판 에노.제니 미첼 지음, 임지연 옮김 / 북스힐 / 2022년 4월
평점 :
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
이 책, 읽을만 한 것은 물론이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모든 것들 - 음식과 역사- 을 정리하고픈 생각에 침을 삼키게 된다. 해서 때론 음식에 군침을 흘리고, 때론 지적 호기심에 침을 참키며 읽게 되는 책이다. 한마디로 물건이다.
이렇게 정리를 시작해보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프랑스에서 생의 마지막 3년을 살았는데, <1516년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 루아르 강의 앙부아즈 궁에 기거하게 되고, 1519년 5월 2일 숨을 거두었다.>
다빈치가 프랑스로 건너가기까지의 과정을 이 책에서 살펴볼 수 있다.
샤를 8세 이탈리아 원정.
나폴리 왕국으로 진군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목격하다.
그는 앙브아즈 성의 문틀에 머리를 찧은 직후 사망.
그 뒤를 이은 루이 12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등장하는 인물이 된다.
그 뒤를 이은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 르네상스의 왕이라 불린다.
1515년 밀라노 왕국을 점령하고 4개월 동안 머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광채를 흡수했다. (159쪽)
프랑수아 1세가 다빈치를 만난 게 이때였다.
그는 다빈치에게 왕실 수석화가, 기술자, 건축가로서 상당하나 연봉을 제시했고, 그 제안을 수락한 다빈치는 프랑스로 와 지내게 된다.
불과 음식
불은 음식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라는 질문은 우문에 속한다.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그런데 조금 깊게 들어가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그걸 이 책에서 발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불을 가장 고귀하게 여겼으며, 다음으로는 공기와 물을, 마지막으로 흙을 가장 비천한 원소로 여겼다. (68쪽)
이런 생각은 프랑스에서도 이어져, 귀족들 대부분이 채소를 피했는데, 특히 뿌리채소를 꺼렸다.
그리고 보통 고기를 삶아먹는 농민과는 달리 귀족은 불이라는 고귀한 원소와 그들이 소비하는 고기 사이에 중간 요소가 없는 구워먹는 방식을 선호했다. (69쪽)
고기를 바로 불에 구워먹는 방식이라니, 그건 우리들도 사용하는 방식 아닌가?
그런 방식에 이런 놀라운 철학이 숨어있었다니!
그런데 이런 우스운 일도 생긴다.
버섯은 흙의 속성을 지녔다고 간주되어 중세의 식품 위계상 낮은 위치를 차지해 건강하지 못한 체액을 생산한다고 여겨졌다. (147쪽)
불과 관련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음식말고 화형.
종교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화형을 당했는데, 교수형 대신에 화형이 더 보편적이었던 이유는?
불은 모든 것을 정화한다는 믿음에 근거해 사람을 산 채로 불태우는 것은 중세 시대 보편적인 이단 처형방식이었다. (105쪽)
프랑스의 아를(에서의 고흐)
아를, 고흐가 잠시 지냈던 도시라 기억하고 있는 곳이다.
고흐의 그림에 경기장의 모습을 그린 것이 있는데, 이 책에서 이런 기록을 만난다.
오늘날 프랑스에서 갈로, 로마 시대의 자취를 감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도시와 마을, 특히 남부 지역은 여전히 2000여 년 전에 지어진 건물, 수로, 다리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아를 같은 고대 도시는 로마 시대의 경기장 주변에 유적이 잘 보관되어 있다. 이곳의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는 오래전에 사라진 고대의 향취와 현대 프로방스의 햇살 내음 가득한 향기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며, 프랑스에서는 시간이 항상 선형으로 흐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23쪽)
고흐가 그린 <아를의 원형경기장> 감상해보자.

프랑스에서는 왜 달팽이를 먹는가?
프랑스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달팽이 요리다. 그것을 필두로 하여 프랑스에서는 우리가 보기에는 징그러운 음식이 줄줄이 등장한다, 왜 그러는 걸까?
여기 그 이유를 밝혀 놓았다.
개구리 다리, 달팽이, 송아지의 뇌 같이 다른 사람이 보면 거부감을 가질만한 요리를 즐겨 먹는 이유는?
프랑스 사람들 대부분이 농부여서 식탁에 오른 음식에 대해 까탈을 부릴 수 없던 시절부터 이어진 잔재이다. (99쪽)
그런 것과는 별개로 상황이 괴상한 요리를 만들게도 한다.
파리 역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는 1870년 12월 25일이었다.
때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으로 참혹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귀족들의 연회는 못말리는지라, 요리사 에티엔 쇼롱은 문을 닫은 파리 동물원의 거주자들을 다수 인수해 프랑스 요리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를 만들었다. (336쪽)
그날 열린 크리스마스 만찬은 속을 채운 당나귀 머리로 시작했다. 그 뒤로 캥거루 스튜와 곰갈비, 낙타 구이들이 올라왔다. 메인 코스에서는 쥐를 곁들인 고양이 요리도 선을 보였다.
이건 당시 전쟁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닐까.
프랑스 사람 만날 때, 이런 표현 알아두자.
프랑스인은 일반적으로 감자에 엄청나게 매료되어 있다, 그들은 기분이 좋으면 이렇게 말한다.
“나 감자 있어.” (273쪽)
무언가 타협해야 한다면? “배를 둘로 나누자.”
지혜를 빌리려 할 때는? “레몬을 쥐어짜다.” (81쪽)
잘 못 알려진 사실들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이 전혀 하지도 않은 발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는 프랑스 국민이 먹을 빵이 없다는 말을 듣자, “그러면 케이크를 먹게 하라”고 했다고 전해져 오는데, 그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258쪽)
나폴레옹이 남겼다는 유명한 발언 중 “군대는 뱃심으로 행진한다”가 있는데, 실제로 이 말을 한 사람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프리드리히 대왕이라고 한다. (283쪽)
다시, 이 책은?
책 제목이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
원제 또한 마찬가지다. < A bite -sized history of France>
음식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프랑스 역사를 자연스럽게 먹게 되는 책이다.
그것도 입을 조그맣게 벌려 한 입 크기의 요리를 맛있게 먹다보면 어느새 프랑스의 시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읽게 되는 바람에, 어, 벌써 다 먹었네, 하는 아쉬운 감탄사가 나오게 되는 책이다.
그래서 다시 또 먹고 싶은 마음 먹게 되고, 그 마음은 수시로 이 책을 들춰보며 프랑스 음식을, 프랑스 역사를 먹고 또 먹게 만드는 것이다.
다만, 그래서 아쉬운 것은 색인이 없다는 점이다.
같은 사람도 몇 번씩 나오고 또한 음식도 거듭 등장하는데, 그것들을 같이 살펴보기 위해서 색인이 필요한데, 그게 없어서 아쉽다는 점 첨언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