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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리그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월
평점 :
서초동 리그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현실.
요즘 돌아가는 정치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여야 쌍방이 특검을 하자고 주장을 하고, 또 굵직한 정치인 이름이 거론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검찰이 수사를 하네 마네, 기소를 하네 마네 하는 소리가 들리다가 말다가, 한다.
검찰이 가지고 있는 기소독점주의가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 내용은 이제 식상할 정도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고 있다.
해서 현실이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데, 우리들 일반인들이야 그 내막을 속 시원하게 알 수 없으니 작가들이 그 내막을 나름 취재, 분석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검찰 내부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가를, 픽션으로 만들어 보여주고 있는데,
이 소설은, 검찰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 정치권과의 결탁, 언론 조작에 집중하는 검찰의 모습을 통해, 현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건이 일어난다.
이런 속보가 뜬다.
서리풀 공원에서 오전 9시에 숨진 채로 발견, 자살로 추정.
기사를 소개한 기자는 '단독' 타이틀을 거머쥘 욕심에 자살 추정 인물이 누구인지 생략하는 실수를 범해 포털 서비스 이용자들로부터 빈축을 사야했다. (10쪽)
그렇게 발견된 시신으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그 시신은 바이오닉 박철균 대표.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지만, 법조계에 많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악연?
그 사건을 두고 검찰측에서 다른 사건을 만들기로 한다. 그게 이 소설의 큰 줄거리다.
주모자는 대검찰청 특수 1부 소속 한동현 부장검사.
그는 사건을 만들어 누군가를 끌어내리려고, 하수인을 한 명 골라, 술자리로 부른다.
서울 중앙지검 평검사 백동수.
한동현 부장검사가 평검사 백동수를 하수인으로 지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신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사람은 언제나 죽을 수 있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문제는 그 죽음을 어떻게 의미있게 만드느냐에 있어. (28쪽)
표적은 누구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 죽음은 창조적인 의미를 담게 될 거야. 역사의 축을 바꿀 정도의 의미라고 할까. (31쪽)
사람의 죽음을 앞애 두고 머리에서 돌아가는 생각들이 입으로 서슴없이 흘러나온다,
누구에게는 사람의 죽음이 자신의 영달을 위한 호재로 여겨지는 것이다.
한부장검사와 백동수 검사와의 대화 조금 더 들어보자.
“표적은 누구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 죽음은 창조적인 의미를 담게 될 거야. 역사의 축을 바꿀 정도의 의미라고 할까.”
“그렇다면....그 표적을 누구로 설정하시려는 건지....”(31쪽)
그 표적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부장검사의 입에서 그 표적이 누구인지, 흘러나온다.
“김병민,”
“김병민 몰라? 검찰통장 김. 병. 민, 우리 보스.”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태연히 그런 말을 내뱉는 한 부장검사.
중요한 것일수록 흘리듯 말하는 게 더 무게감을 가진다는 사실을 직접보여준다는 느낌을 백동수 검사는 받는다. (28쪽)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빅 픽쳐, 큰 그림, 빅 프로젝트를 누가 그리나?
몸통은 따로 있다. 신문에 나오는 인물은 하수인, 그저 깃털에 불과할 뿐.
참고인 조사에 응한 선해용 기자.
“한동현 부장검사 알죠? 얘기 들으니까 직속이던데, 나 동현이와 대학 동기예요.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의 설계자이기도 합니다.”
“프로젝트라 하셨습니까?”
“김병민 총장, 찍어내는 거요.” (79쪽)
백동수 검사는 드디어 자기가 단지 장기판의 졸로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제는 다른 작전에 돌입한다.
소설속에서 일종의 반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런 반전이 있는게 소설이고,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차이점이다.
그런 프로젝트가 비단 소설 속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일까?
이런 것, 새삼스럽지도 않다.
소설은 줄거리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스포일러가 되니, 소설 줄거리는 생략하기로 한다.
반전이 있는 정치 검찰 드라마, 특히 선거가 코앞인 시점에 읽어볼 만 하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스포일러 대상이 아닐 것이니, 몇 개 추려 본다.
여기저기 떠도는 말들이어서 이젠 신선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래도 확인해본다는 차원에서 적어둔다.
그의 행방을 모르는 것만으로도 언론은 잠적, 실종 등의 자극적인 수식어를 줄 세우며 긴장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111쪽)
솔직히 역겁지 않으신가요. 정권 바뀔 때마다,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면서 자기네들 리그는 무조건 지켜내려는 이 지겨운 검찰 카르텔 말이에요? (127-128쪽)
종교를 하나만 믿는 정치인이 어디 있습니까? 지역구에 있는 종교시설이라면 이슬람 사원이라도 마다치 않는 직업인데. 이래봬도 명색이 안수집사입니다. (123쪽)
이 일만 완수하면 적당한 타이밍에 검사직을 내려놓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찾아가 당선 유력지에 전략 공천을 받으리라고, 입법부에 들어가서도 검찰은 위상과 존재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며 활동할 계획이었다. (132쪽)
슬프게도 그 때문에 조직에서 배척당해 한 몇 년 지방으로 유배당했다가 법무부에서 적당할 때 부르면 대검이나 연구원으로 돌아온다. (148쪽)
고발사주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평검사가 의욕 과다로 인해 독단적으로 표적 수사를 성급히 진행한 끝에 나온 고발이라는 프레임을 씌워서요.(149쪽)
언론, 정치, 검찰 골고루 골라본 것인데, 그런 말들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것, 다 동의하실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의 결론을 짚어내자면, 이런 대화가 어떨까?
“그래, 말해봐. 기분이 어떤데?”
“부끄럽습니다.”
“뭐”
“부끄럽다고요. 가장 공정해야만 할 이 리그의 민낯이.” (177쪽)
마지막 문장의 '리그'는 서초동 리그다.
물론 '그들만의 리그'다. 그러나 그게 우리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 한다면?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