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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재 열전 -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인문적 세계를 설계한 개혁가들
신정일 지음 / 파람북 / 2021년 11월
평점 :
조선천재열전
저자 신정일의 책을 많이 읽었다. 직접 강의를 듣기도 했다.
배울 게 참 많은 분이다. 해서 저자로부터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잡게 되었다.
『조선 천재 열전』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혀놓고 있다.
이 시대에 천재란 무엇이고, 천재의 소명은 무엇인가? 이를 짚어보기 위해 쓴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 수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져간 천재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천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되짚는 텍스트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기존의 단순한 나열식 위인전이 아니라, 한국 역사 속 천재들의 진솔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새로운 시대의 천재상을 도출해내는 또 다른 역사 기획물이다.
이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면서, 대중 교양과 청소년 교육에 적절한 자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7쪽)
그런 책, 여러 가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는데 먼저 저자가 천재라고 평가한 인물들이 누구누구인지 알아보자.
김시습, 어긋난 세상일에 번민한 비운의 천재 문사
이이, 주자의 성리학을 조선의 성리학으로 만든 천재 학자
정철, 뜨거운 얼음 같은 천재 시인
이산해, 이익이 경탄한 천재 문장가
허난설헌, 조선의 천재 여류 시인
신경준, 『산경표』를 완성한 실천적 천재 지리학자
정약용, 유배지에서 새로운 길을 찾은 천재
김정희, 실사구시로 추사체를 완성한 천재 중의 천재
황현, 조선을 지킨 마지막 천재
그렇게 모두 9명이다. 저자는 9명 천재들의 삶과 업적을 살펴본 다음에 ‘후대의 평가’를 붙여 놓고 있다.
지리학자 신경준
신경준을 예로 들어보자.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중 가장 덜 알려진 인물이니, 좀 더 관심이 필요하다 싶어 그의 경우를 적어둔다.
1. 세상의 흥망을 좌우할 선비
2.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은 천재 소년
3. 전국의 명산을 두루 답사하다
4. 한 나라의 장수가 되려는 자는 지리에 밝아야 한다
5. 우리나라의 전통 지리학
6. 신경준이 남긴 저서들
7. 후대의 평가
신경준은 그의 업적에 비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벼슬이 높았던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파쟁을 많이 겪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75쪽)
저자의 이 말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들은 바로 그런 기준에 부합할 때에 우리에게 알려진다. 벼슬이 높아 그 이름이 저절로 역사에 등장하는 사람, 또는 사화(史禍)에 가해자나 피해자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건을 통해서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다. 신경준은 그런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에 이름을 이 책에서 처음 듣게 되는 것이리라.
신경준은 영조 시대 사람으로, 마흔세 살에 증광 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라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186쪽) 사간원, 사헌부의 벼슬을 거쳐 서산 군수, 제주 목사 등 벼슬을 했다.
신경준은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했지만 수많은 저서를 남겨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191쪽)
그러면 신경준이 후세에 이름을 남기게 된 사유는 무엇일까?
우리 고유의 지리학을 백두대간과 장백대간 그리고 열세 개의 정맥, 즉 『산경표(山徑表)』로 분류한 사람이 신경준이다. (192쪽)
조선광문회에서 그의 『산경표』를 발간하면서 붙인 말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지리를 살펴보면 산을 논한 것은 많지만, 심히 산만하고 계통이 없다. 오직 신경준이 지은 『여지고(輿地考)』와 『산경(山徑)』만이 산의 줄기와 갈래를 나타내고 있다. (193쪽)
홍양호는 신경준이 우리나라의 산천과 도리에 더욱 밝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암 신공은 큰 재주와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넓고 깊이 찾는 노력을 더하여 (.......) 심오한 도리를 끄집어 내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백 가지의 학문을 모으되 자신의 도에 절충을 하였다. (.......)
규칙에 구차하게 속박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원칙에 벗어나지 않아 탁연히 일가로서의 학문을 이루었으니, 유가 드문 굉재며 희세의 통유다. (208쪽)
‘유가 드문 굉재며 희세의 통유다’라는 말을 한자로 읽어보면서 새겨본다.
유(類)가 드문 굉재(宏材, 宏才)며 희세(稀世)의 통유(通儒)다.
宏材 : 큰 목재(木材)라는 뜻으로, 뛰어나게 훌륭한 인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宏才 : 훌륭한 재능.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인재.
희세(稀世) : 세상에 드묾.
통유(通儒) : 세상사에 통달하고 실행력이 있는 유학자.
저자는 그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 당시 대부분의 실학자들이 재야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신경준은 그들과 달리 국가적인 사업에 자신의 지식과 학문을 마음껏 발휘하여,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고증학적 방법으로 조선 후기 역사지리학에 큰 족적을 남긴 실천적 천재 지리학자였다. (209쪽)
그렇게 조선 시대 천재 한 명을 알게 된다.
저자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가?
저자의 강의를 직접 들으면서 느낀 것은, 그가 해박에 박식을 더한다는 점이다.
해서 직접 강의를 들으면서 그 많은 지식이 어디에 담겨있다가 그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지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강의에서도 동서고금의 많은 저작물을 인용하여 저자의 뜻을 펼치고 있는데, 그 끝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허나 강의를 들으면서 안타까웠던 점이 그 많은 내용을 일일이 가슴에 담아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책으로 읽으면,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차분하게 반추할 수 있어 좋다.
다음과 같은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김시습은 나면서부터 생지지질(生知之質)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천품이 남달리 특이해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알았다. 이웃에 살고 있던 조선 전기의 문신 최치운이 그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배우면 익힌다”라고 이름을 ‘시습(時習)’이라고 지어 주었다. (17쪽)
이런 글을 읽으면서, 저절로 『논어』의 구절이 떠올리며 배운 것을 익히게 된다.
‘생지지질(生知之質)’은 계씨(季氏)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孔子曰,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상급이고 배워서 아는 자는 그 다음이요
곤경에 처하여 배우는 사람은 또 그 다음이며
곤경에 처하여도 배우지 않으면 사람들 중에서 하급이 될 것이다.
시습은 <학이(學而)>편에 나온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추사 김정희 편에서도 배운다.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세한도(歲寒圖)>는 추사가 제주 시절 그린 그림이다. (283쪽)
이 역시 『논어』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子曰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 (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공자 말씀하시기를,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뒤에 시들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이 책은?
저자가 밝힌 이 책의 저술 목적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위에 적은 이 책 저술 목적을 요약해 본다면
첫째, 천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되짚어보고
둘째, 새로운 시대의 천재상을 도출해내고
셋째,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하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 책으로 우리 조선의 역사 안에서 천재라 불리던 인물들을 새롭게 조명해보게 되었다. 이 책 또한 역사란 무엇인지 깨닫게 하니, 그 또한 가치가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