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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꿈 - 제왕학의 진수, 맹자가 전하는 리더의 품격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맹자의 꿈
저자의 책을 읽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1), (2)
『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그 책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틀에 맞춰 글을 이끌어가고 있다.
<입문(入門) ? 승당(升堂) - 입실(入室) - 여언(與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1)에서 이 틀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여기 옮겨본다.
입문(入門) : 문에 들어섬 : 해당 구절의 현대적인 맥락을 소개하고 승당(升堂) : 당에 오름 : 원문의 독음과 번역을 곁들여서 제시하며 입실(入室) : 방에 들어섬 : 원문에 나오는 한자어의 뜻과 원문 맥락을 풀이하고 여언(與言) : 함께 말함 : 현대맥락에서 되새겨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
이 말은 모두 『논어』에서 따온 것이다.
승당(升堂) 과 입실(入室)은 <선진>편 14에 나오는 말이고
여언(與言)은 <팔일> 편 8에 나오고, <술이>편 28, <위령공>편 7에서도 나오는 말이다.
이런 틀은 이 책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책은 『맹자』의 구절을 처음(양혜왕:상)부터 끝(진심:하)까지 위의 틀에 맞춰 해설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맹자』를 읽으면서 놓쳤던 것들을 만나, 『맹자』를 새롭게 읽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몇 가지 적어둔다.
孟子見梁惠王 (양혜왕 상 - 1)
孟子見梁惠王.
王曰, ?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見자를 보자. 지금까지 그냥 ‘견’으로 읽어왔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見은 두 가지 발음이 가능하다.
맹자를 높이면 성인이 양나라 혜왕을 ‘만나보다’의 맥락이 되므로 ‘견’으로 읽고,
혜왕의 지위를 높이 치면 맹자가 혜왕을 ‘찾아뵙다’의 맥락이 되므로 ‘현’으로 읽는다. (19쪽)
이 구절에서 중요한 구절은 맹자가 말한 바, <何必曰利>와 <亦有仁義>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의 생각을 대립적으로 보아왔는데, 이 부분, 저자의 견해를 읽어보자.
이 대립은 혜왕이 현실적이고 맹자가 이상적이라고 단순화시킬 수 없고, 시대의 갈등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1쪽)
지금까지 읽어온 『맹자』의 해설에 의하면, 이 구절에서는 맹자의 이상적인 발언에 중점을 두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걸 시대의 갈등 양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 돋보인다.
스토리텔러, 맹자
『맹자』는 사상을 담은 책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들여 자신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 분야에는 장자와 한비자가 뛰어났다. 장자는 우화(寓話)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갔고 한비자는 이야기의 숲(說林)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냈다. 그래서 나는 동아시아 고대철학이 ‘논리 철학’도 있지만 ‘이야기 철학’의 특성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맹자도 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144쪽)
전에 『맹자』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맹자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고 있구나, 그래서 맹자가 말하고자 하는 그 내용이 쏙쏙 들어오는구나, 하는 생각.
저자가 말한 것처럼, 『장자』 또한 우리에게 우화로 더 알려져있는 경전이니, 중국의 사상가들을 이야기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맹자를 스토리텔러로 자리매김한다.
우리는 맹자를 사상가로 알고 있지만 이런 작화(作話)를 보면 작가로서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27쪽)
우리는 앞에서 사상가만이 아니라 작가로서 맹자의 글솜씨를 확인했듯이 이번의 글도 보통이 아니다. (31쪽)
심(心)자 한 자를 들고 보여주는데...
한자는 표의문자라,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그 무엇인가 보인다.
저자는 심(心)자에 대하여 이런 것을 보여준다.
사실 심(心)은 갑골문에 사람의 심장을 상형한 글자로 일찍부터 일상 언어로 쓰였지만 이전에 사람의 행위에 주목한 탓에 철학 개념이 되지 못했다. 맹자는 심(心)을 외부의 명령이나 전통의 권위와 관련 없이 오로지 천(天)과 소통하며 사람이 도덕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근원으로 보았다. 이는 세계철학사에에도 한 페이지를 차지할 만한 맹자의 공로라고 할 수 있다. (280쪽)
마테오 리치, 『맹자』에 주목하다.
이 책을 읽다가 뜻밖에 마테오 리치를 만났다.
그는 아시아 선교를 위해 중국에 온 서양신부인데, 그가 쓴 책이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천주실의』다.
마테오 리치는 사서오경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을 찾았다. 바로 맹자가 찾아낸 성선(性善)이다. 인간이 성선이면 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테오 리치는 성선이 인간의 도덕적 완전을 뒷받침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영혼에 하느님이 자리할 여지가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천주실의』에서 인간에게 선의 습관화, 즉 습선(習善)은 가능하지만 인간이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성선(性善)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286쪽)
성선이 어떻게 사람의 도덕적 완전성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바로 ‘만물이 모두 내게 갖춰져 있다.“라는 맹자의 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286쪽)
이렇게 맹자와 마테오 리치의 생각을 서로 비교해보는 것도, 의외로 흥미로운 일이다.
이 책에서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를 만난 것, 즐거운 일이다.
다시, 이 책은?
고전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읽으면서 깨닫는 게 많기 때문이다.
위에 밝힌 것처럼 마테오 리치가 『맹자』를 읽으면서 해당 구절을 만나 얼마나 당황했을까? 아니면 생각할 거리를 만났다고 얼마나 반색을 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같은 생각을 해 본다.
『맹자』를 읽는다고 하긴 했지만 놓친 것이 얼마나 많은지, 하는 마음에 반색 아닌 반성을 하게 되었으니, 이 책 잘 읽었다. 읽고 읽고 더 읽으면 마치 샘물처럼 시원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으니, 그래서 고전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