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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랑과 욕망 세계사
호리에 히로키 지음, 이강훈 그림,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1년 12월
평점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사랑과 욕망 세계사
이 책 흥미로운 사실이 가득하다.
하지만 흥미로만 읽기에는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로 읽기에는 지나치게 ‘추정, 추측’이 많다. 예컨대 이런 기록들이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희대의 악처였을까?>
왜냐하면 도박에 중독된 모차르트가 가정 경제 문제에 아내가 일절 관여하지 못하게 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119쪽)
나는 당시 모차르트가 아내에게 모종의 죄책감을 가질 만한 일이 있었기에 위에 언급한 편지에 지나치다 싶은 표현을 남발한 게 아닌가 추정한다. (121쪽)
물론 그 공연 당시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확증이 없고 모차르트 스스로 아내 콘스탄체 이외의 여성 관계를 분명하게 언급한 적이 없으므로 이는 순전히 나의 억측에 가까운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둔다. (122쪽)
저자가 그런 추정, 추측으로 기록한다고 해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모두 무시하기 어렵다는 데, 역사 기록의 아이러니가 있다.
원래 역사 기록은 보는 사람 입장에 따라, 기록하는 사람 입장에 따라 다르게 기록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해석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서 이 책의 기록 일단 역사의 한 단면으로 알고 읽어도 될 것이다.
나폴레옹 한 사람을 위해 무려 3,000명이...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여 다시 유배를 간 곳은 영국령 세인트 헬레나 섬이었는데, 그를 위해 동원된 인원이 무려 3,000명이었다.
우리는 들어 알고 있다. 백제가 망할 때에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궁녀의 수가 역시 3,000명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숫자가 가공의 수라는 것.
그러나 나폴레옹의 경우는 사실이다.
3,000명에 달하는 많은 호위병과 시종, 의사, 측근을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데려간 나폴레옹은 그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장면을 빠짐없이 글로 남겨달라고 요청했다. (50쪽)
프랑스에서 왕비 한 번, 영국에서 또 왕비 한 번
이런 말을 들으면,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한 사람이 두 나라 왕비였다니, 아, 그렇다면 그 왕비가 결혼한 왕이 프랑스와 영국의 왕을 겸했나 보다고. 예전에는 그런 일이 흔했으니까. 그러나, 그건 아니다.
이 사람은 프랑스 왕과 결혼했으니 프랑스 왕비였고 그 후 프랑스 왕과 이혼하고 영국 왕과 결혼했으니, 두 나라의 왕비를 각각 한 번씩 지낸 것이다. (281쪽)
<영국 - 프랑스 백년 전쟁의 불씨가 된 여인, 알리에노르 다키텐 왕비 이야기>
다키텐은 프랑스 왕 루이 7세의 부인, 즉 프랑스 왕비였다. 그러나 그녀는 왕과 이혼한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왕녀의 친권은 루이 7세에게 갔지만 왕비는 결혼 지참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다. 당시 교황청이 두 사람 사이의 결혼을 무효로 하여 이혼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그 후 다키텐은 영국의 헨리왕자와 결혼하여 이번에는 영국의 왕비가 된다.
영국 왕자 헨리와 결혼한 뒤 다키텐은 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러 명의 왕자에게 프랑스에 있는 광대한 영토를 상속했다. 흥미롭게도 훗날 영국과 프랑스 왕국이 무려 1세기라는 긴 세월에 걸쳐 영토를 둘러싼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 발단이 모두 다키텐의 이혼 및 재혼과 관련된 영토 상속이 빌미가 된 것이다. (283쪽)
그렇게 시작된 영국 왕비 생활은 순탄하지 않아, 왕과 별거하면서 프랑스로 돌아가 살면서 왕자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도록 한다.
그는 자신과 친밀한 왕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아버지인 헨리 2세를 증오하게 만들어 모반을 일으키도록 부추겼다. (284쪽)
이런 사실을 알고, 영국과 프랑스 역사를 읽으면, 역사는 그야말로 흥미 만점의 이야기라는 것,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의문, 일리가 있다.
<고흐의 귀를 자른 ‘진범’은 누구일까?>
고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잘라냈다고 하는데,,,,,,
아무리 고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자기 힘과 의지로 그렇게 귀를 무참히 잘라내는 게 과연 가능했을까? (135쪽)
이런 의문 들게 된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희대의 악처였을까?>
모차르트는 도박을 무척 좋아했고 심지어 “음악보다 도박을 더 사랑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모차르트가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도박에 관한 기록을 모두 말소하여 오늘날까지 제대로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119쪽)
그러면 의문이 생긴다. 모든 기록이 말소되었다면, 저자는 이런 주장을 어디에 근거를 두고 하고 있는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생 요약 (171쪽)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 왕가로 시집와 왕자와 공주의 어머니가 되었으나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로웠던 여인, 타국에서 온 몸이다 보니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도 거의 없었고, 오랫동안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 끝에 민중 혁명의 희생양이 되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여인, 앙투아네트. (171쪽)
명언으로 기록해 두고 싶은 말들
단점은 하나의 매력이 될 수 있는데도 모두 감추려고만 한다. 단점을 지혜롭게 활용하면 된다. - 코코 샤넬 (145쪽)
스무 살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에서는 당신의 가치가 묻어나온다.- 코코 샤넬 (149쪽)
불행한 처지가 되면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 마리 앙투아네트. (173쪽)
다시, 이 책은? - 역사적 사건, 해석하기
저자는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책을 통해 단지 재미만이 아니라 작게나마 역사에 대한 혜안과 통찰을 얻기를 바란다. (7쪽)
그런 혜안과 통찰을 얻기 위해, 이런 기록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해석이 가능할지 생각해 보자.
<앙투아네트 왕비를 향한 페르센 백작의 은밀하고 독한 사랑>
1792년 2월 13일 늦은 밤, 페르센은 국왕 부부가 감금되어 있는 튀일리 궁에 침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그는 감시의 눈을 피해 작은 방에서 은밀히 앙투아네트와 다시 만났다.
다음날 아침까지 페르센은 궁을 떠나지 않고 거기서 밤을 보냈다.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날 밤 나는 그 궁에 머물렀다.”
이 간결한 한 문장이 많은 사람의 상상력을 발동시켰고 온갖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36쪽)
이런 기록 한 줄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생각을 가지고 역사적 사실로, 혹은 가십거리로 만들어 써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으면, 역사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서 이 책은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흥밋거리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기록이라 할 것이다.
그 밖에 다른 해석도 있는데....(35쪽)
일설에 따르면 ....(120쪽)
스탈린의 죽음을 둘러싼 몇 명 유력자의 증언이 제멋대로 엇갈려 있어서...(290쪽)
이런 전제를 가지고 이 책을 읽었는데, 역사는 의외로 흥미로운 사실로 가득하다는 것, 해서 역사에서 의미를 챙겨 보면서 또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