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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에서 죽다 1 - 마티스, 피카소, 샤갈 편
조용준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프로방스에서 죽다① 마티스, 피카소, 샤갈 편
이 책은?
이 책 『프로방스에서 죽다 1 마티스, 피카소, 샤갈 편』은 <프랑스 프로방스 프로방스에서 정착하고 그곳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다 그곳에서 삶을 마감한 화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조용준, <「시사저널」과 「동아일보」에서 기자를 했고, 「주간동아」 편집장을 지냈다. 1992년 중편소설 『에이전트 오렌지』로 국민일보 국민문예상을 받았고, 1994년 장편소설 『활은 날아가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오로지 ‘내 책’을 쓰기 위해 마흔다섯 살이 되기 전에 기자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퇴사한 이후 70여 개국을 여행하면서 주제가 있는 문화탐구에 중심을 두고 글쓰기를 지속하며 ‘창조적 컬처트래블’을 지향하는 문화탐사 저널리스트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에서 살펴보고 있는 화가 3명은 마티스, 피카소, 샤갈이다.
마티스 (Henri Matisse) (1869 - 1954) 프랑스
피카소 (Pablo Picasso) (1881- 1973년) 스페인
샤갈 (Marc Chagall) (1887 - 1985) 러시아
그런데 그들 사이에 공통점이 보인다.
1921년 마티스는 건강을 위해 니스에 영원히 정착하기로 했고(61쪽), 피카소는 프로방스로 이주한지 정확하게 40년이 되는 때 사망했다. (197쪽)
샤갈의 경우는 그의 삶을 다음과 같이 시대 구분을 할 수 있다.
초기 러시아 시기 1906-1910
1차 파리 시기 1910-1914
후기 러시아 시기 1914-1922
2차 파리 시기 1923-1941
미국 망명 시기 1941-1948
프로방스 시기 1948-1985 (37년간)
그렇게 해서 위 세 사람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그들이 프랑스의 프로방스에서 살았던 기간이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 기간이 겹치기도 한다. 그러니 그 세 명의 화가가 우연하게도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점에 착안하여 세 명의 화가들을, 흔적을 찾아 보여주며 그들의 교집합을 살펴보고 있다.
세 사람은 어떻게 만났는가?
먼저 세 사람의 만남을 살펴보자. 유명한 화가 세 명이 동시대를 살았다 하더라도 같은 자리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만남의 현장 찾아가 보자.
먼저 마티스와 피카소가 만난다,
그들은 만났다.
1906년 3월 거트루드와 그 가족들은 마티스를 데리고 몽마르트에 있는 피카소 집을 방문한다. 마티스는 거기서 자신보다 11살 어린 피카소를 소개받았다. (146쪽)
그러니 프로방스 지역에서 살기 이전에 둘은 만났다.
샤갈과 마티스의 만남은?
1949년에 샤갈은 마티스 예배당과 가까운 방스에 집을 샀다. 그리하여 마티스, 매그 부부와 이웃이 되었다. (241쪽)
그렇게 해서 만나기는 하였지만 둘은 잘 어울리지 않았다. 서로를 의식은 했지만 그들의 관계에 대하여 특별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샤갈과 피카소의 만남은?
피카소와 샤갈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드디어 그 둘은 만나게 되는데, 그건 프로방스였다.
샤갈 가족이 프로방스로 이주한 다음, 샤갈은 발로이의 집으로 직접 피카소를 찾아갔다. (309쪽)
이후 둘은 서로의 스튜디오를 자주 방문하면서, 서로 영감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만남 후의 모습은
그렇게 만난 다음에 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또한 갈등도 하게 된다.
마티스와 피카소의 우정도 끝 무렵에 가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314쪽)
피카소와 샤갈의 경우, 도자기로 인해 둘은 갈라지게 된다.
먼저 피카소가 도자기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샤갈이 피카소가 사용하는 도자기 공방에서 같은 작업을 하면서 둘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샤갈은 몇 개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해 본 뒤에 피카소갸 처음 도자기를 만들었던 발로리의 마두라 공방을 찾아가 작업을 한 것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기분이 상했고, 결국 둘은 충돌하게 된다.
자세한 사연은 이 책 311쪽에서 314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는 지척에 잠들어 만나게 된다.
그들이 사망한 다음에는 서로 지척에 묻혀 있다.
먼저 무덤은 마티스 무덤은 생폴 드 방스의 샤갈 무덤과 지척지간이며, 피카소 무덤은 차로 1시간여 거리에 있다.
또한 그들을 기리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가까이에 있는데, 마티스 박물관에서 조금 걸어가면 샤갈 박물관이 있고, 30분 떨어진 곳에 피카소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308쪽)
그러니 그곳에 가면, 그들의 무덤과 작품들을 같이 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은? - 그들의 삶과 작품들
그들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게 있는데, 그 옆에서 염감을 불어넣어준 뮤즈의 존재다. 그 뮤즈의 역할을 한 여성들,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피카소의 여인들
이 책을 잘 읽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리가 필요한데, 그 중 하나는 피카소의 여인들이다.
해서 저자는 201쪽 전면에 피카소의 여인들을 정리해 놓고 있는데, 거기에 몇 가지 덧붙여 총정리를 해 놓고 싶다.
페르낭도 올리비에 (1881-1966)
피카소를 만날 때 그녀는 23살, 이혼녀였다. (145쪽)
에바 구엘 (1885-1915)
예쁜데다 가냘픈 청순가련형으로 조용했으므로, 피카소는 자신이 만난 여인중 가장 만족감을 얻었던 사람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200쪽)
올가 코클로바 (1891-1955) - 결혼 1918년, 이혼 1935년
아들 파울로 (1921-1975)
마리 테레즈 발터 (1909-1977)
딸 마야 (1935 - )
도라 마르 (1907-1997)
프랑스와즈 질로 (1921- )
도라 마르와 동거하고 있던 도중에 질로를 만나 그녀에게 흠뻑 빠져, 도라 마르의 눈길을 피해 그림을 그린다는 핑계로 질로와 함께 프로방스의 앙티브에 새로운 밀애 장소를 꾸몄다. (208쪽)
질로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했다.
매우 이성적이었던 질로만이 먼저 피카소를 버렸다.(192쪽)
질로와의 사이에 아들 클로드 (1947-), 딸 팔로마 (1949-)가 있다.
질로는 1961년 법적 소송을 통해 아이들이 피카소의 친자임을 인정받았다. (177쪽)
질로는 『피카소와 함께 한 세월』이란 자서전을 펴내, 피카소의 파렴치한 여성 편력에 대해 노골적으로 기록했다. 피카소는 이에 대해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었다.(177쪽)
자클린 로크 (1927-1986) - 결혼 1961년
1953년 72세의 피카소는 마도라 도자기 공장주 조카로 당시 공장일을 거들던 26세의 자클린과 동거를 시작한다. (175쪽)
80세가 되던 1961년에 이들은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그의 두 번째 결혼식이다. (175쪽)
피카소가 최고의 명성을 누릴 때 만난 자클린은 피카소가 오직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롣 여러모로 세심하게 보살폈던 것으로 보인다. (185쪽)
피카소는 1973년 4월 8일 92세의 나이로 자클린 옆에서 세상을 떴다.(231쪽)
자클린은 1986년 피카소의 마드리드 전시회를 앞두고 권총 자살을 했다. (195쪽)
피카소는 자클린 옆에 나란히 누워있다. (225쪽)
피카소의 여성 편력과 관련된 몇 가지 기록 덧붙인다.
피카소는 수많은 여자의 인생을 잔인하게 망쳐놓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가졌다. (179쪽)
여성과의 사랑에서 피카소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었다. 여인들은 그의 욕정, 고독, 공허를 채워주는 존재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사랑이란 다만 관능과 소유와 쾌락이었지, 희생이나 헌신은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피카소는 늘 한눈을 팔았다. 한 여인과 동거를 하면서도 계속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었고, 밀회를 위한 밀실을 마련했다. 피카소 주변에는 그의 명성에 현혹된 여인들이 언제나 넘쳐났고, 그는 그러한 여인들과의 일시적인 쾌락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186쪽)
버림을 당한 여인들은 피카소를 증오하지 않았다. 그와의 생활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맛볼 수 없는 명성을 그와 함께 향유하였고 매우 풍부한 물질적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보상이라는 것도 너무 간단했다. 그저 그의 그림 몇 점만 넘겨주면 해결되는 것이었다. (192쪽)
피카소의 작품들
‘그저 그의 그림 몇 점만 넘겨주면 해결되는’ 여성 편력을 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작품수 어마어마 하다. 피카소가 남긴 작품은 무려 45,000 여점에 달한다.
회화 1,885점, 조각 1,228점, 도자기 3,222 점
스케치 4,659점, 소묘 7,089 점, 판화 18,095점, 석판화 6,112점 등 (197쪽)
이런 것도 알게 된다.
빅토리아 (1819-1901) 여왕의 수행원 :
빅토리아 여왕이 치료와 휴양을 위해 니스에 있는 마티스 스튜디오 근처 레지나 레지던스에 묵을 때 영국에서 건너와 여왕의 수발을 들던 시종의 수는 100명이었다. 이들이 모두 레지나 레지던스에 묵었다.
이 백 명의 숫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떠올리게 한다.
백 명의 수행원이 많다고 딸들에게 구박받던 리어왕, 필요를 묻지 말라던 그의 모습이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과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