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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명산 금강산 유람기 - 영악록 瀛嶽錄
정윤영 지음, 박종훈 역주 / 수류화개 / 2021년 10월
평점 :
천하제일명산 금강산 유람기
이 책은?
이 책 『천하제일명산 금강산 유람기』는 금강산 유람기인 『영악록』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저자는 정윤영(1833~1898)은 <경기도 화성 출신으로,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군조君祚, 호는 석화石華·후산后山이다. 임헌회任憲晦의 문인으로, 이항로李恒老 학파와 교유하면서 심성이기론心性理氣論을 주기主氣의 입장에서 피력했다. 또한 신사척사운동辛巳斥邪運動때의 소장에 연루되어 함경도 이원현利原縣에 정배되었다. 소중화小中華 의식을 담아 《화동연표華東年表》 등을 저술했고 애국우민의 마음으로 《위방집략爲邦輯略》 등을 썼다. 특지特旨로 벼슬에 임명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은 채 포의布衣로 일생을 마쳤다.>
이 책의 내용은?
물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뜸하지만, 여행이 보편화되어서 그런지 많은 여행기를 읽게 된다.
이 책은 시대만 다르다뿐이지 그런 여행기이다. 금강산을 둘러보고 기록한 『영악록』이 원전이다. 그걸 한글로 번역해 놓은 것인데, 1833~1898년 조선 시대를 살았던 저자가 보고 쓴 것이니, 지금의 경향과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인용한 수많은 중국 고전들이다.
금강산을 보고 기록하면서, 저자는 중국 고전에서 많은 구절들을 빌려와 금강산을 묘사한다.
산에 들어온 날을 계산해보니 모두 5일이 지났다. 내금강의 구경은 대략 마쳤지만, 오직 비로봉과 망군대 두 곳은 찾지 못했다.(129쪽)
그리고 그 감회를 두보(杜甫)의 시를 인용해 표현한다.
그윽한 뜻이 갑자기 깨져버리니
돌아갈 때라 어쩔 수 없어서라네
문밖을 나서니 흐르는 물도 멈추고
머리 돌리니 흰 구름 가득하네
(129쪽)
그렇게 해서 이 책에서 수많은 고전과 고전의 인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해서 저자가 다녀온 금강산을 같이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저자의 글 여기저기에서 발견하는 고전의 풍미를 또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에서 발견하고, 음미하고, 깨달은 것이 무척 많은데 그중 몇 가지 적어둔다.
치도(馳道), 여기서 발견한다.
장안사 어귀로 들어가니 길이 갑자기 임금이 다니는 길처럼 넓어졌다. (74쪽)
위의 글 원문은 이렇다.
入長安寺洞口, 路忽闢若馳道 (입장안사동구, 모홀벽약치도) (222쪽)
역자는 그 말에 대하여 이런 설명을 붙여 놓았다.
임금이......길: 원문은 ‘치도’니, 군왕의 말이나 마차가 달리는 도로를 말하는데, 보통 말이나 마차가 다니는 큰 도로를 말한다.(74쪽 하단)
치도는 진나라 황제인 진시황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인데. 중국을 통일하고 중국 전역을 다스리기 위해 빠른 정보 전달을 위해 도로를 건설했는데, 그게 바로 치도(馳道)다.
도로 한 복판에 말이 달리기 좋게 도로를 조성한 것으로, 그래서 치도(馳道)의 치(馳)에 말 마(馬)자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 치도를 만난다.
해서, 중국의 치도가 조선에서는 ‘보통 말이니 마차가 다니는 큰 도로’를 말한다는 것, 알게 된다.
아, 그게 『논어』에서 비롯된 것이구나
임진일 아침에 비로봉으로 향하려고 해 승려에게 길을 물으니, 승려들이 모두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여 결국 가지 못한다. 이에 이런 감회를 덧붙인다.
이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서 우두커니 서서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고 우뚝하여 미칠 수 없다”는 것인가? (128쪽)
이 문장에서 인용된 저자의 발언은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논어』 <자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으시고, 파고 들어가 보려고 하면 더욱 견고하시구나.”
(『논어』, <자한>, 9-10 김원중 역, 234쪽)
이 글을 읽고나니 스승의 노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지네.
참 되거라 잘 되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의 은혜는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스승의 은혜> 가사가 바로 논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 이제 알게 된다.
『맹자』 한 구절, 그 뜻을 깨치다.
『맹자』 <진심>(하)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진심, 하, 14-35)
대인에게 유세할 때는 그를 내려다 봐야지 그의 드높은 위세를 염두에 두어서는 안된다. (『맹자』, 박경환 역, 427쪽)
대인을 설득하려면 그들을 예사롭게 여기고 그들의 높디높은 지위를 보지 말아야 한다. ((『맹자』, 김원중 역, 475쪽)
이 책에서 역자는 이를 이렇게 번역했고, 해설을 붙여 놓았다.
대인을 설득할 때는 하찮게 여겨서 그의 드높음을 보지 말아야 한다. (137쪽)
이런 해석에 다음과 같은 해설을 덧붙인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서는 그 지위를 하찮게 여기면서 그 부귀와 권세에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31쪽)
『맹자』 한 구절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의미를 새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말의 뜻 -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 을 여기에서 제대로 새기게 되었으니 의외의 수확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산에 제 이름 새기는 건 매한가지
저자의 탄식 소리 들리는 듯한데, 읽어보자.
바위 면의 위아래에는 사람의 성명이 빽빽하게 새겨져 조금도 비어 있는 곳이 없으니, 또한 장관이라 하겠다. 명나라 중랑 원굉도가 “법률에 산의 재목을 도둑질하거나 광물을 채굴하면 모두 일정한 형벌이 있는데, 세속의 선비가 명산을 훼손하여 더럽히는 것은 법률로 금하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청산의 흰 바위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아무 까닭 없이 그 얼굴에 묵형을 가하고 그 피부를 찢는단 말인가. 아, 매우 인하지 못하도다.”라고 했으니, 아마도 중국의 인사는 또한 이러한 것을 안타까워했단 말인가. (107쪽)
저자의 인생이 담겨있다.
대개 천하의 낙지(樂地)는 그것을 소유한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소유하지 못한다. (67쪽)
대개 산수와 목석은 일찍이 아픔을 겪은 이후에 비로소 기이하게 된다. 산은 끊어진 다음에 우뚝하게 되고 물은 세차게 쏟아지다가 굽이치며 나무는 옹이가 난 뒤에 뒤틀리고 바위는 위태로운 뒤에 울퉁불퉁해지니, 이러한 것 때문에 기이하다고 일컬어진다. 산수와 목석이 모두 아픔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또한 어찌 사람들에게 칭송되겠는가? (69쪽)
이 말이 어찌 산수와 목석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저자 정윤영의 삶을 살펴보니, 이 말은 분명 그가 인생을 살아보고 난 뒤 얻은 인생관이 아닐까 생각된다.
덧붙일 것은, 조선조 말의 정치에서 저자가 취한 척화의 신념이 이 책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여러 가지 언급도 그래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해서 이 책을 다만 금강산 여행기로만 읽을 게 아니라, 인생을 관조하는 선비의 인생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원래 이 책은 가을이라 읽고 싶었던 책이다.
가을엔 금강산에 단풍이 유명하다고 정평이 나서, 가을에는 금강산을 풍악산(楓嶽山)이라 부른다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못가보는 금강산 단풍을 와유(臥遊)하고 싶었다.
해서 이런 구절로 그런 나의 심사를 달래본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 영원동으로 향했다. 이곳부터는 길을 따라 맑은 시내와 흰 돌이 있으며, 기이한 바위와 높다란 암벽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온 산에 단풍이 한창이었는데, 완연히 붉은 비단 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79쪽)
더구나 가을에 하늘이 높아 기상이 맑고 단풍까지 들 때, 바위산의 뼈대가 더욱 가팔라 보이며 석양이 거꾸로 비춰 붉고 푸른색이 온갖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205쪽)
그렇게 단풍이 든 금강산, 이 책으로 다녀왔다.
그러니 저자의 이런 말,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나보다 뒤에 금강산을 유람하는 사람이 이 글을 먼저 보고 길을 간다면 또한 길을 잃어버리거나 멋진 풍경을 놓치는 탄식은 없을 것이다, (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