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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로지 - 히어로 만화에서 인문학을 배우다
김세리 지음 / 하이픈 / 2021년 7월
평점 :
정의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마블로지』
이런 생각 해보자.
플라톤의 『국가.』
마이클 샌들 『정의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어려운 책들이다.
이런 책들을 공부하는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자료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누가 그런 질문하면, 난 당연히 히어로물 영화를 추천할 것이다.
특히 어벤져스 시리즈
그러니까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마블 시리즈가 되겠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이 책 『마블로지』는 <히어로 만화에서 인문학을 배우다>라는 부제를 가진, ‘마블 시리즈’를 토대로 ‘마블로지’를 구축하여 보여준다.
저자는 김세리, <홍익대학교 미학과에서 「카뮈(A. Camus)의 미학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2003)한 후, 프랑스 파리1대학(Pantheon-Sorbonne) 조형예술 예술학부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2009)하였다. 현재 홍익대학교, 한국 외국어 대학교, 인하대학교에서 시각 이미지와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다.>
‘마블로지’(marvel)란?
학문이나 담론을 지칭하는 용어인 ‘logy’를 ‘marvel’ 뒤에 붙여 만든 신조어이다.
즉 마블에 관한 학문, 담론.
그러면 마블은?
마블은 미국의 영화사 Marvel을 말한다. 그 회사에서 제작하는 히어로물 시리즈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 슈퍼 히어로가 되었나?
히어로물 영화를 제작하는 회사는 크게 두 개로 구분되는데, DC와 마블이다.
그런데 그 두 곳에서 만드는 히아로물의 주인공들, 차이가 있다.
DC(Detective Comics)와 마블 영웅의 차이:
선천적으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DC 영웅들에 비하여
선천적 능력을 지녔다기보다는 불의의 사고로 초자연적 능력을 갖게 된 인간들이 마블의 영웅이다. (36쪽)
마블에서 만든 히어로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파이더맨 : 우연히 방사능에 오염된 거미에 물려서
헐크 : 우연히 감사선에 노출되어서
엑스맨 : 초자연적 힘은 돌연변이성이다.
아이언맨 : 신체적 약점을 지닌 영웅이다.
캡틴 아메리카 : 슈퍼 혈청을 주입하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닥터 스트레인지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초자연적 마법의 세계에 입문한다.
데어데블 : 방사능 유해물질로 시각을 상실했지만,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이 극도로 발달된다.
히어로서의 자기 정체성
그래서 마블의 주인공들은 문제가 있다.
마블의 캐릭터들은 평범한 인간으로 살다가 한순간에 초인적인 능력을 얻었기 때문에 항상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39쪽)
DC의 초월적 영웅들과 달리,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현실적 고민을 짊어진 채 고뇌하는 불완전한 마블의 영웅들에게 독자들은 강한 연민을 느낀다. 히어로들의 약점은 도리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냈고, 청소년은 물론 성인까지도 포섭할 수 있었다. (40쪽)
슈퍼히어로물을 관통하는 과학은?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생긴다. 슈퍼 히어로들이 활동하는 모습에, 과학적인 근거는 있는가?
없다. 대신 그런 상황을 설명하는 용어가 있다.
테크노배블 (Technobabble) (38쪽)
테크노배블이란 과학적 횡설수설을 말한다.
무엇인가 기술적인 것과 연관이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과학적으로 증명될 필요는 없다.
슈퍼 히어로 만화 속의 과학적 용어들이 상당 부분 이러한 테크노배블에 의존하고 있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마블의 경우는 더욱 빈번하다. (38쪽)
수퍼 히어로와 그리스 신화
저자는 <III .마블과 신화>라는 파트에서 히어로들이 신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다. 히어로들은 신화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신들, 영웅들의 현대적 변용이며 부활인 셈이다.
수퍼맨 :
삼손, 헤라클레스, 그리고 지금까지 어디선가 들었던 모든 힘센 사람을 하나로 뭉쳐놓은 인물(26쪽)
아이언맨 :
아이언맨의 기원이 되는 신화속 주인공은 다이달로스 일 것이다. (110쪽)
블랙 위도우 :
그리스 신화 속 아르테미스 여신에 여전사 아마존을 더한 듯한 인물이다. (150쪽)
이밖에도 거의 모든 히어로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 또는 북유럽 신화에서 차용한 인물이라는 것, 흥미를 더해준다.
슈퍼 히어로의 정의관 - 플라톤의 『국가』에서
<워치맨>과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 이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 엔드 게임>
과거의 히어로들을 보다 현대적으로 분석하며,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사회 속에서 히어로들이 직면한 문제점들을 제시한다. (93쪽)
글라우콘과 소크라테스가 인간의 정의를 두고 벌인 이 모든 사고 실험은 슈퍼 히어로 만화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제이다. 아마도 글라우콘의 주장에 가장 강한 반견을 표명할 이들은 슈퍼 히어로들일 것이다. ‘귀게스의 반지’ 일화를 통한 글라우콘의 주장은 곧 슈퍼 히어로들의 존재 부정과도 같기 때문이다. (61쪽)
초인등록법을 둘러싸고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갈등한다.
그 갈등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철학이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미국의 현실과도 관련이 있다. 이를 도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248쪽)
공리주의 | 원칙주의 |
아이언맨 | 캡틴 아메리카 |
초인등록법 찬성 | 초인등록법 반대 |
안보(안전한 통제) | 자유 (자유에 기반한 정의 구현) |
미국의 현실 | 미국의 이상 |
빌런의 존재
히어로물이 현실에서도 적용이 되는 것이 바로 빌런의 존재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는 항상 선악의 구분이 존재하고, 또한 그 구분이 애매한 경우 또한 존재한다.
또한 히어로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전개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런 상황에 자기 자신을 이입해서,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며 빌런과 같이 싸우는 것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도 히어로와 빌런은 존재한다. 빌런은 때때로 히어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조커와 배트맨, 타노스와 어벤져스는 서로의 존재를 더욱 확실하게 해주는 반사경이다.
빌런은 스스로를 악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구현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들을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
힘이 있음에도 약자 편에 서는 자들은 영웅이다. 힘 있는 자들에게는 감히 대적하지 못하면서 약자만을 괴롭히는 자는 빌런이다. 부정확한 윤리적 잣대로 내키는 대로 측정하는 자는 빌런이다. 반면 모두를 정확한 잣대로 측정하는 자는 히어로이다. (282쪽)
정의에 관한 진지한 물음
각자의 서사를 지닌 매력적인 영웅들이 서로의 서사에 개입하고, 그 서사를 공유하며 연대해 나가는 과정은 어벤져스 시리즈를 이끄는 주된 동력이었다. (277쪽)
히어로들의 행위는 물리적 위협(혹은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이가 과연 최고선에 이를 수 있는가의 문제에 결부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다.
힘을 지녔음에도 결코 부패하지 않을그들의 정의관은 소크라테스의 행복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나아가 칸트의 정언명령을 상기시킨다.
결국 정의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데에 있다는 샌델의 마지막 결론은 정확히 마블 시리즈를 토대로 살펴본 모든 논의의 흐름과 일치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결론에 이른다.
마블의 세계는 곧 슈퍼 히어로들이 설명해주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다름 아니다. (278쪽)
마블의 세계는 공상과학과 판타지적 요소들로 가득한 슈퍼 히어로들의 활약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건들과 그에 따른 윤리적 고심들을 형상화한 방식에 있어서도 가히 독창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류의 원형적 상상력 속에서 시대를 거치며 변형되어 온 신화 속 영웅들과, 그들 내면에 자리한 변치 않는 인간의 본성과 조우해 보았다. (282쪽)
다시 이 책은? - 왜 이 책을 읽었는가?
얼마 전에 영화 <시빌 워>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거기에서 보게 된 희한한 장면, 어벤져스 팀들이 서로 싸우는 게 아닌가?
힘을 합해도 강력한 힘을 가진 빌런들에게 당하는 판인데, 서로 싸우기까지?
이유는, 소코비아 협정, 유엔의 관리하에 어벤져스 팀이 통제를 받아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 의견이 갈린 것이다.
하기야 그전에도 히어로물을 볼 때, 이런 문제 나올 줄 알았다.
히어로들이 빌런들과 싸우다 보면 불가피하게 생기는 일, 바로 애꿎은 민간인들이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영화니까, 그냥 스처 지나갔지만, 그게 실제라면?
그러니까 그런 것이 문제가 되게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 있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처리하지?
그래서 이것 저것 알아보니 쉽게 풀리는 문제가 아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히어로물 영화에 깊은 ‘철학적’ 담론이 담겨있었다.
덕분에 이 책으로 그런 궁금증을 풀면서 한바탕 철학 공부를 시원하게 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