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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평점 :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 - 『체르노빌 히스토리』
왜 이 책을 읽었는가?
원자력이 요즘 화두에 오르고 있다. 안정성을 두고 말들이 많은 것이다.
과연 원자력 발전소가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는지, 그리고 사고가 발생할 시에 대처 방안은 충분히 고려되고, 알려지고 있는지?
또 하나 있다. 얼마전 『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는 소설을 읽었다.
1986년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대참사가 있었는데, 그걸 소재로 한 소설이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일단 이 소설에서는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살고 있다고 한다.
체르노보는 크지 않은 마을인데도 자체 묘지가 있다. 왜냐하면 말리치 도시에서 우리 시신을 더 이상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아 있지 않아도 시신에서 방사능이 계속 방출되는 까닭에 체르노보 사람들을 말리치에 매장하려면 납으로 만든 관을 써야 한다는 문제를 두고 도시 행정부에서 논의 중이다. (14~15쪽)
과연 소설에서 묘사된 그 마을, 형편이 어떤지 궁금했고, 소설에 묘사된 내용들은 사실인지 아닌지도 궁금했었다. 해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이 책 『체르노빌 히스토리』는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관한 ‘역사 연구물’(17쪽)이다.
저자는 세르히 플로히(Serhii M. Plokhy), <소련 고리키(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태어났다. 드니프로페트롭스크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91년 캐나다로 이주하여 앨버타대학교 역사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07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미하일로 흐루솁스키 석좌교수에 임명되었다. 강의와 저술을 병행하여 러시아·우크라이나 역사에 관한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
2018년에는 이 책 『체르노빌』로 최고의 논픽션 작가에게 주는 베일리 기포트 상(Baillie Gifford Prize, 사무엘 존슨 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내용은?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북쪽, 벨라루스 접경 지역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기 원자로가 폭발했는데. 이 책은 그 사고의 과정과 수습과정, 그리고 그 사고의 여파까지 추적한 ‘역사적 기록물’이다.
사고후 벌어진 참상들 - 끔찍한 지옥도
다틀로프는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경악했다.
“그것은 단테나 묘사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라고 그가 후에 회고했다. (155쪽)
단테나 묘사할 수 있는 광경은?
단테가 그의 책 『신곡』에서 지옥도를 묘사한 장면을 의미한다.
원자로가 폭발하여 만들어낸 것은 지옥이었던 것이다.
이건 히로시마에요.
악몽 속에서도 이런 일은 꿈꿔본 적이 없다. (158쪽)
원자로 4호의 지붕은 날아갔고, 벽의 상당부분도 사라져 있었다. 남아있는 벽들은 불길에 타고 있었다.(136쪽)
지붕에 올라갔을 때 나는 천장 일부가 파손되고 일부는 아래쪽으로 덜어진 것을 보았다. 원자로 4호기 지붕의 가장자리로 접근했을 때 불이 붙기 시작한 지점을 발견했다. 다가갔을 때 지붕이 흔들렸다. (137쪽)
소방관이 딛고 선 지붕은 휘발성이 아주 강한 석유에서 나온 역청으로 덮혀있었는데, 이는 안전 규정을 완전히 위반한 재질이었다.
지붕 위의 역청이 녹으면서 걷기가 힘들었다.
그 위에서는 한 발을 짚으면 다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뜨거운 역청이 장화를 찢었다. (138쪽)
흑연조각과 방사능 연료였다. 이 물질들은 사방으로 방사능을 뿜어냈다. 방사능 측정장비나 보호 장구를 갖추지 못한 소방관들이 먼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138쪽)
원자로 4호기 위에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았다. 모든 것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늘 전체에 높은 불길이 치솟고, 연기로 가득찼다. (139쪽)
(소방관들) 다른 대원들은 흑연 조각을 지붕에서 발로 차내느라 바빴다. 이들은 이 파편들이 원자로에서 튀어나왔고, 방사능을 방출해 주변의 모든 것을 죽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140쪽)
재앙이다. 소위 말하는 인재다. 지옥도를 연상하게 하는 재앙이 일어난 것이다.
발전소 직원들과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한 소방관들
그들은 전대미문의 고통을 겪는다. 영문도 모른채.
이들이 (화재 현장인) 지붕에서 보낸 시간은 30분도 채 안 되었는데,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그것이 화재 탓이 아님을 모두가 알아차렸다. (142쪽)
그는 극심한 두통과 구역질을 느꼈다. (143쪽)
원전 운영자 모두 두통과 목구멍의 건조함, 구역질을 호소했다.(143쪽)
나는 바퀴 아래애 깔린 금속조각들을 맨손으로 치우거나 발로 차냈다.
내 살이 벗겨나갔다. 금속 조각이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145쪽)
나는 구토가 났고 힘이 모조리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내 다리는 솜뭉치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145쪽)
그는 몸이 온통 부어오르고 눈이 튀어 나와 있었다. (148쪽)
이들은 화재는 진압했지만 방사능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방사능은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누출되었고, 이들의 몸과 환경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148쪽)
그때, 그들은 어떤 사고인지조차 몰랐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경,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가 폭발했다.
4월 26일 새벽 2시경, 원자력 발전소 소장 빅토르 브류하노프에게 보고.
4월 26일 새벽 5시경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에게 보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과 화재가 있었으나 원자로는 무사하다는 내용) (177쪽)
후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사고가 난 후 심지어 첫날에도 원자로가 폭발해 거대한 양의 방사능이 대기 중에 누출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177쪽)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다틀로프는 통제실에 있던 인턴직원들에게 원자로 홀로 달려가서 손으로 기계 레버를 당겨 제어봉을 핵반응 영역까지 더 깊숙이 내리라고 지시했다. (154쪽)
손으로, 맨손으로?
사고 현장에 도착한 소위 책임자급 인사들, 현장을 둘러보는데, 이렇다.
그는 산산이 부서진 폐허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는 욕을 하며 흑연조각을 발로 걷어찼다. (182쪽)
그는 이 흑연 덩어리가 시간당 2000 뢴트켄의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걸 한참 후에야 알게 된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는 소설, 팩트 체크
체르노보 사람들을 말리치에 매장하려면 납으로 만든 관을 써야 한다는 문제를 두고 도시 행정부에서 논의 중이다. (위의 책, 14~15쪽)
이와 같이 묘사된 부분은 실제 어땠을까?
이들의 시신은 관에 들어가기전 플라스틱 백에 싸였고, 관도 플라스틱 백에 싸여서 좀 더 큰 아연 관에 들어갔다. 그렇게 한 다음에 하관된 관 위에 시멘트 타일을 붙여 외부와 차단했다. 유가족은 시신에 방사능이 너무 강해서 가족에게 인계되거나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매장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320쪽)
팩트 체크, 소설에 묘사된 부분 사실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그 후
4월 26일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주민들을 소개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195쪽)
4월 28일, 제한 구역 내의 모든 주민들을 시켰다. (231쪽)
4월 28일,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원자로 4호기는 파괴되었으니 매몰해야 한다고 보고. (229쪽)
모래, 납, 진흙, 붕소를 공중에서 투하하여 원자로를 매몰함 (229쪽)
석관 (공식적으로는 보호막) 으로 원자로를 덮어 씌웠다.
11월 말까지, 약 40만톤의 콘크리트를 이용해 석관을 완성했다. (350쪽)
원자로 잔해 주변에 6 미터 콘크리트 벽을 만들어 이 지역으로의 접근을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 (349쪽)
1986년 5월 14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TV 연설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 발표.
‘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통제에서 벗어난 원자력 에너지의 위협적인 힘과 맞닥뜨렸습니다.“(325쪽)’
1989년 2월 23일, 미하일 고프바초프 체르노빌 원전 방문.(409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으로 말로만 들었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현황을 알게 되었다.
그 사건은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리 경미한 사고라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일” (69쪽)이다.
그래서 그 사고는 우리에게 반면교사 역할을 한다..
레닌그라드 원전에서 일어난 사고가 남긴 교훈은 전혀 학습되지 않았다. (106쪽)
이러한 문제들을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은 오늘날에도 여러 곳에서 보인다. (21쪽)
저자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우리가 꼭 기억해 두어야 한다.
“세계는 이미 한 번의 체르노빌 사고와 제한구역으로 크나큰 곤욕을 치렀다. 세계는 이와 유사한 일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470쪽)
세계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말, 우리에게도 해당이 된다는 것,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