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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홉 명작 단편선 2 ㅣ 체홉 명작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2월
평점 :
체홉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 『체홉 명작 단편선 2 』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에는 체홉의 단편 소설 일곱 편이 실려있다.
그동안 체홉은 그의 유명한 4대 희곡으로만 알고 있었기에, 단편소설은 새롭게 다가와, 열심히 분석하면서 읽었다.
뚱뚱이와 홀쭉이
작품의 특징은 일단, 단편소설이라 그런지 짧다는 것, 심지어 7쪽인 경우도 있다.
해서 줄거리가 복잡하지 않으며, 말하고자 하는 주제 한 가지를 바로 꺼내는 식이다.
예컨대 첫 번째 작품인 <뚱뚱이와 홀쭉이>는 몇 마디 대화를 통해, 그 상황을 반전시키며 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이나 지난 후에 학창 시절의 친구 두사람 - 뚱뚱이와 홀쭉이 - 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먼저 홀쭉이가 말을 걸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런 자랑 끝에 친구 뚱뚱이에게 묻는다.
“그런데 자넨 어떤가? 아마 5등관 정도는 되었겠지? 그렇지 않은가?”
“아닐세 이 사람아. 그것보단 좀 더 올려서 생각하게.”
뚱뚱이는 이렇게 말한 후 덧붙였다.
“난 이미 3등관까지 올라갔거든...훈장도 두 개 받았고.”
그러자 갑자기 홀쭉이는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온 몸이 굳어버렸다. 그러나 얼굴 가득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얼굴이 일그러졌다. (10쪽)
카멜레온
그의 작품은 어렵지 않다. 굳이 돌려말하지 않고, 직선적으로 상황을 묘사한다.
떠돌이 개가 사람을 물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경찰서장 오추멜로프가 그 사건을 보고 처리를 한다.
먼저 그 개가 누구의 개인가를 알아본다.
"이거 장군님 댁 개인가?"
"거 무슨 말씀을! 장군님 댁에선 이런 개를 키운 적이 전혀 없어요."
"그럼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겠군."
서장이 말한다.
"이개는 떠돌이 개야. 이 문제로 더 이상 이러쿵 저러쿵 할 필요없어. 장군님 댁에서 키우지 않은 개라고 하는 걸 보니 떠돌이 개임에 틀림없어, 죽여버리면 끝날 일이야."
그때 요리사가 말을 이어간다.
"이건 장군님이 키우는 개가 아니라, 얼마전에 방문차 와서 머물고 계신 장군님의 형님이 키우시는 개네요."
"(......).그리고 이건 그분 개라는 말이지. 정말 기쁘군, 개를 데리고 가게. 이 개는 아주 괜찮은 녀석이야. 아주 민첩하단 말이지."
개의 주인이 누구인가, 몇 번이나 혼선이 생기고, 그때마다 경찰서장의 발언은 카멜레온처럼 오락가락한다.
아뉴따
당시 러시아에서 불우한 환경에 처해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소설도 있다.
몸을 팔아 살고 있는 여인 아뉴따, 지금은 의대생과 같이 지내고 있다.
아뉴따는 남자의 말, 남자의 기분에 따라 당장 짐을 싸고 나가야만 하는 신세다.
그날도, 아뉴따는 남자의 기분에 따라 쫓겨날 처지가 된다. .
그 사이 아뉴따는 이미 자기 보따리를 다 싸서 들고는 작별 인사를 하려고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는 그녀가 불쌍해졌다.
‘일주일만 더 여기서 살게 할까?’
그는 생각했다.
자신의 약한 성격에 스스로 화가 난 그는 그녀에게 호되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그렇게 서있는 거야? 갈 거면 어서 가고, 가기 싫으면 어서 외투를 벗고 남아있어! 남으란 말이야!”
아뉴따는 말없이 조용히 외투를 벗은 후 역시 조용히 코를 풀고 한숨을 쉬었다. (33쪽)
약사의 아내
남편과 아내, 당시 러시아의 형편은 어땠을까?
대부분의 아내는 숨막히는 환경에 처해서, 삶의 가치와 목표도 없이 지내고 있다.
이런 작품을 읽어보자.
늦은 밤 약국에서, 약사는 이미 잠이 들었고, 약사의 아내만 깨어있는데 손님이 찾아온다.
군의관과 중위, 두 사람은 약사의 아내가 미인이라는 걸 알고, 찾아와 노닥거리며 수작을 붙인다. 그런데 약사의 아내, 역시 그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기분이 좋아지고, 대화도 기꺼이 참여하고, 깔깔대며 심지어 애교를 떨기까지 한다.
그런 약사의 아내를 바라보던 두 사람, 이윽고 밖으로 나간 다음에.....
마침내 두 남자는 서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약사 아내의 손에 키스를 한 후, 마치 뭔가 두고 가는 것은 없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까지 짓다가 주저하듯 약국 문을 나섰다.
군의관과 중위가 약국을 나가 어슬렁거리며 스무 걸음쯤 가다가... 5분쯤 지나자 중위는 되돌아왔다. 그는 약국 앞을 한 두 번 왔다 갔다 했다.......그는 약국 문 앞에 멈춰섰다 다시 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마침내 약국 문의 벨이 조심스럽게 떨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중위를 맞이한 것은?
...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잠옷을 걸친후 반쯤 잠에 취해 ....판매대로 갔다. (47-48쪽)
불행
가정은?
가정과 남편에 대한 애정, 애착이 견고하지 않은 여인이 유혹을 받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런 여인의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려낸 작품이 <불행>이다.
유부녀인 소피아는 알고 지내던 변호사 일리인으로부터 사랑고백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같이 다른 곳으로 떠나자고 유혹을 한다.
그러자 그녀는 남편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한다. 그런 제안에 남편은 혼자 가라고 대꾸할 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대답이 없자 그녀는 혼자 밖으로 나갔다.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녀는 바람도 어둠도 느끼지 못한 채 계속 걷고 또 걸었다. 극복할 수 없는 힘이 그녀를 계속 앞으로 몰아댔기에, 걸음을 멈추기라도 하면 그녀의 등을 확 밀어버릴 것만 같았다.
“부도덕한 년!”
“추잡한 년!”
하지만 그녀를 앞으로 계속 떠민 것은 수치심보다, 이성보다, 공포보다 더 강한 어떤 것이었다. (85쪽)
목 위의 안나
관등도 높고 젊은 나이도 아닌 쉰두 살의 신랑 모제스트와 결혼한 신부 아냐는 이제 막 열여덟살을 넘긴 나이었다. 그녀는 찌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늙은 신랑과 결혼한 것이었다.
해서 결혼 생활은 늘 좌불안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무도회가 열리고, 그 자리에서 아냐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끌며 인기인이 된다. 그런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바로 그때 남편이 들어왔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환희를 느끼며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와 경멸의 마음을 담아, 이젠 이런 말을 해도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확신하며 매 단어를 또박또박 내뱉었다.
“저리 가요, 멍텅구리 같으니!”
이날 이후 아냐는 피크닉이나 야유회를 가거나 연극에 참여하는 등 하루도 쉴 날이 없었다. (117-118쪽)
약혼녀
결혼은 여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당시 러시아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 특히 여성의 시각으로 결혼이란 제도롤 바라보고 있다.
스무 세 살 나쟈는 안드레이 안드레이치와 약혼한 사이다.
7월 7일에 결혼식이 거행된다.
결혼식을 준비하던 중, 그녀는 약혼자도 마음에 들긴 한데, 시간이 가는 사이 기쁨은 느껴지지 않았고, 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으며 즐거운 마음은 사라져 버렸다. (124쪽)
결혼식까지 한 달 남은 지금, 그녀는 왠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 아주 무거운 것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34쪽)
결국, 이 소설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그 중간에 아냐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녀는 짐을 꾸리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도시를 떠났다. 이제는 영원히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174쪽)
다시, 이 책은?
체홉의 단편중 7 편을 살펴보았는데, 체홉의 수많은 작품 중 겨우 7편이다.
그러니 단편적인 평가밖에 할 수가 없다. 그게 아쉽지만 편자가 체홉의 작품 중에서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것일테니, 어느 정도 대표성을 지니고 있으리라 본다.
이 작품들은 모두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드러내고, 약자를 향한 따스함이 유머러스하게 표현되고 있으며, 약자 중 특히 여성을 향해서는 그의 심정이 얼마나 극진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끝의 두 작품이 더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