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설과 대화하다 사계절 1318 교양문고
문숙희 외 지음 / 사계절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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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너무 허투루 읽었었다

 

새삼스럽게 새로 소설 읽기를 배우다

 

나의 학창시설, 소설, 아니 문학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으나, 혼자 스스로 책을 읽는 선에서 그쳤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수시로 느끼곤 했었다. 아무래도 내가 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곤 했는데, 이 책에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 중 내가 소설을 허술하게 읽었나봐”(384)라는 말은 그래서 나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았다.

 

분명 저자가 의도하는 바가 있을 것인데, 소설을 허술하게 읽고, 나 혼자만 무언가 다르게 생각하고도, 소설을 잘 읽고 있다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그러한 생각으로 문학을 어떻게 한번 새로 공부해 보겠다는 마음 그치지 않았었는데, 마침 손에 들어온 책이 <청소년, 소설과 대화하다>였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에는 모두 총 9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그리고 한편의 소설이 끝날 때마다, 그 뒤에 <소설 읽고 대화하기>라는 장을 마련하여, 그 글을 읽은 다음에 학생들과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에서 그 소설에서 짚어봐야 하는 것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대화를 읽으면서, ‘아이들의 대화에서는 요즈음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읽었고, ‘선생님의 말씀에서는 내가 그 앞에서 문학 강의를 듣는다 생각하며 읽었다. 알고 있었던 개념은 더 확실하게,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면 받아쓰기 하면서 듣는다 생각하며 집중하며 읽었다.

 

이 책에서 건져 올린 것들

 

살아있는 표현들

 

기쁘다, 슬프다, 하는 감정들을 나타낼 때에, 어떻게 하면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그런 표현을 자주 접했다.

 

<엄마가 수술대위에 누워있는 광경을 떠올리면 심장이 호두처럼 쪼글쪼글해지는 것 같았다.>

<심장으로 따뜻한 피가 스며들어 오는 느낌.>

 

유하순의 <불량한 주스 가게>에서 건져 올린 표현들이다.

그저 기분이 따뜻해 졌다, 라는 말 대신에 심장으로 따뜻한 피가 스며들어 오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는 것, 얼마나 신선한가?

 

열린 결말

 

유하순의 <불량한 주스 가게>의 결말을 두고 토론이 벌어지는데, 그 결말이 딱 부러지게 되지 않고, 그저 중도에서 그친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열린 결말이라는 개념으로 정리가 된다.

 

<‘열린 결말이어서 작위적이지 않고 더 흥미로운 것 아닐까요?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것은 이야기로서 살아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요.>(41)

 

문학작품이 주는 힘

 

그런 문학 작품들이 주는 힘은 무엇일까? 문학은 읽는 사람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바로 '상상하는 힘'을 주는 것이라 말한다.(97)

 

<(이 소설을 읽으며) 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우정을 가꾸어 나갈지, 자기 꿈을 실현할지, 답이 없어 보이는 가족 문제는 어떻게 될지 등 앞날을 상상해 보게 되더라고.>

 

김유정의 소설 제목은 왜 봄봄일까? 177

 

김유정의 소설 <봄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왜 그 소설 제목은 을 두 번 썼을까? 그냥 이 아니고?

 

그런 나의 궁금증을 다소 풀어주는 대화가 여기에서 진행된다.

<봄만 되면 주인공은 장인에게 점순이와 성례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번번이 거절당해. 그러니까 작년에도 거절당하고 올해도 거절당하고, 그런 봄이 계속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해.>(177)

 

제목을 그렇게 한 김유정의 속내는 모르겠으나, 이 말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

 

서술자의 시점에 관하여는 3인칭과 일인칭 두개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새로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일인칭 시점에서도 나뉜다는 것. 바로 일인칭 주인공 시점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나뉜다.

 

이 책에서 그것은 두 번 언급이 되는데, 첫 번째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다.

그 소설의 화자는 어린 영희이다. 그러니 일인칭 시점으로 소설은 진행이 된다. , 그저 그렇게 일인칭 시점이면 분석이 다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과 일인칭 관찰자 시점'을 대비하는 발언은 현진건의 <고향>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등장한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렇지만 관찰자 시점을 잘 활용한 것 같아. 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황폐해진 고향이라는 점에서 조선 사람 모두의 고향이라고 여기게 되잖아. ‘를 지켜보던 또한 고향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함께 침통해하고.> (324)

 

이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그러니까 소설에서 전해지고 있는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를 관찰하고 그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관찰자 시점으로 소설을 이끌어 가는 이점이 무엇인지 학생들의 대화를 좀 더 읽어보자.

 

<작가가 노동자의 삶을 상상하면서 어설프게 묘사하는 것보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이 노동자나 농민 계층의 삶을 알게되고 같은 조선 사람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는 식으로 그리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해.>(325)

 

결국 현진건이 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그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이다.

 

사족 하나.

 

소설가 전상국이 웃음소리를 ㅎ ㅎ'로만 표현한 적이 있다. (227)

 

요즈음 문자를 보낼 때 흔히 쓰는 ㅋㅋ’, ‘ㅎㅎ의 원조가 바로 그일 줄이야!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그렇게 소설 한 편을 읽고, 그 소설을 허투루 읽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한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발견하고, 그래서 다시한번 문학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바로 타자에 대한 공감’(309) 이라는 것도.

 

다른 책을 더 읽게 하는 힘까지

 

그래서 지금껏 허투루 읽던 소설들을 이제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조차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대한 <소설 읽고 대화하기>에서 작가 박형서를 알게 되었다. 그가 이 소설을 패러디한 소설을 썼다는 것.(229)

그래서 찾아보니, 그의 소설집 <자정의 픽션>에 이런 제목의 작품이 있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 - '달걀'을 중심으로>

 

그래서, 읽었다. 새로운 의미의 소설. 이 책 읽고 조금은 나아진 독해력 덕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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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대 문명의 창조자들 - 10,000년 전 하이테크의 비밀
에리히 폰 데니켄 지음, 김소희 옮김 / 청년정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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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 책을 (읽다가 도중에) 내려놓지 말아주십시오.


 

이 책의 저자는 누구인가?


 

에리히 폰 데니켄, 나에게는 <신들의 전차>의 저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을 들고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찾아보았더니, 많은 책들을 썼는데, 거의 모두가 널리 읽히는 논픽션들이었다.

 

그는 이런 말로 자기를 표현한다.

석기시대 미스터리 전문가”(55)


 

그런 책들을 쓰기 시작한 계기 또는 동기


 

저자는 말하기를, 어느 날 믿어온 종교에 대한 갑작스러운 의구심으로 인해 괴로워졌다 한다. 호기심이 많던 시기라 의문을 캐보고 싶었고, 그때부터 저자의 연구는 시작되었다. 온갖 곡절을 겪으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도서관과 고고학 발굴지를 찾았고, 최고의 지성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많은 책을 쓸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런 저자의 패기가 부럽다.


 

<솔직히, 내가 계속해서 책을 내는 건 글을 쓸 재료가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글쎄,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나는 그런 선입견을 체계적으로 파괴해 보겠다. 한번에 하나씩.> (서문 중)


 

그가 제시한 자료들


 

이 책에서 저자는 자기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많은 자료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료들에 대한 확신을 다음과 같이 밝혀 놓고 있다.

<내가 제시한 증거들 가운데 일부는 확실성이 좀 떨어질지 몰라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들은 너무나 많다. 실제로 상당한 시간을 들여 검토한다면 내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잠시만이라도 내 말에 집중해 주기 바란다.>(96)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만은 분명하다.(59)

왜 그런가? 저자는 거기에 대한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석기 시대 문명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도구들.

두 번째는 기술상으로 상당히 복잡한 사전계획이 필요한 프로젝트라는 점.


 

이 책의 궁국적 목표


 

조르지오Giorgio A. Tsoukalos (<Legendary Times Magazine> 발행인)는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적으로 발달한 문명에서 온 방문객들이 기술적으로 원시적인 문명에서 잠시 살다가 떠났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토착민들은 방문객들의 발달된 기술을 보고는 실제로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한 그들을 신으로 간주하고 숭배하기 시작한다. 그때 방문객들은 토착민들과 접촉하면서 물건이나 음식물을 제공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화물이다! 그리고 신들이 떠난 뒤 토착민들 사이에서는 정성을 다해 제물을 바치고 숭배하면 신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퍼진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사상이 탄생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고대 우주인 이론이다. 즉 수만 년전에 기술적으로 발달한 외계인들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도착했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당시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그들이 어떻게 지구에 도착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외계인들을 신으로 오해하게 되고, 결국 그들을 신으로 생각했고, 그 결과 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결국 신의 탄생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중대한 오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 결과,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런 노력은 큰 지지를 얻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저자가 그렇게 자기 제시한 자료의 신빙성을 강조하고, 읽어주기를, 읽다가 중간에 그만 두지 말고 끝까지 읽어주기를 부탁하는 그 심정 백분 이해가 된다.


 

그러니. 이런 글 꼭 읽어보자.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제발 이 책을 내려놓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전달하려는 정보를 읽은 후에 행여나 의사를 불러 이 불쌍한 저자에게 찬 물을 한 잔 처방해달라는 부탁은 하지 말아주시오. 사실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그리고 곧 터져 나올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게 저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란 점을 알아주십시오.>


 

이 책 73쪽에 등장하는 말이다. 에드먼드 키스라는 학자가 고대 티와나쿠의 거주자들이 사용했다는 달력을 해석하면서 한 말이다.


 

에드먼드 키스가 한 그 말, 이 책 전반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여러분들, 제발 이 책을 (읽다가 도중에) 내려놓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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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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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전이 있다는 말도, 스포일러?

 

<존스는 마지막으로 홈즈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하시오. 나도 홈즈 선생의 방식을 배워야겠소. 반드시 배울거요. 놓친 부분이 그렇게 많고 파악한 부분은 그렇게 없다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겁니다.”>(419)    반드시의 이탤릭체는 원문에 의함.

 

이 책에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하나는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단편 <세 명의 여왕>이다. 위의 글은 뒤에 실려 있는 <세 명의 여왕>에서 인용한 글이다.

 

홈즈가 존스가 의뢰한 사건을 해결하자, 존스가 홈즈에게 감탄하며 다짐한 말이다. 홈즈의 사건 처리 방식을 배워보겠다는 다짐이다. 반드시!’

 

반드시라는 다짐은 이루어졌을까?

 

글쎄다. 그런 질문에 답을 한다는 것이 혹시 스포일러가 되는 것일까? 그래도 존스가 한 말로 대답하면 스포일러는 되지 않을 듯하니, 그의 말로 대답을 대신하자.

<놓친 부분이 그렇게 많고 파악한 부분은 그렇게 없다니....>

 

놓친 부분은 무엇이고, 파악한 부분은 무엇일까?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있으니, 바로 이 책의 앞부분에 수록된 소설,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이다.

 

사건의 시작,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

 

사건의 시작은 모리어티의 죽음이다. 홈즈와의 대결에서 모리어티는 물에 빠져 죽는다.

그 증거는 분명하다.

<지역 경찰이 가슴 위로 포개 놓은 팔뚝에 꼬리표를 달아놓았다. 그 위에 이름이 적혀있다. 제임스 모리어티.>(22)

 

그런 죽음을 두고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 이 사건은 두사람의 만남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 사람은 홈즈의 사건 해결솜씨를 반드시배우겠다는 다짐을 한 애설니 존스, 영국 런던 경시청 소속이다.(22) 또 한사람은 미국의 핑거턴 탐정 사무소의 수석 탐정으로, 그 때 처음으로 영국을 찾은 자로서 이름을 프레데릭 체이스라고 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한 사람. (13)

 

이렇게 두 사람을 만나 의기투합하여 일을 해결해 나간다. 물론 우여곡절은 있지만 얼마나 죽이 잘 맞는지, 존스는 체이스에게 미국에서의 활동을 멈추고 영국에서 탐정사를 차려 동업을 하자고 제의할 정도이다.

 

존스는 홈즈 솜씨를 잘 따라 하고 있다,

 

그러면 존스는 어느 정도 홈즈를 따라 배우고 있는가?

 

저자는 군데군데 존스의 배움이 어디까지인가를 독자들에게 밝혀 놓는다.

<존스가 셜록 홈즈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또 하나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설명하지 않는, 사람 미치게 만드는 습관까지 물려 받은 것이다.>(241)

 

그런 예가 또 있다.

 

<예전에 홈즈씨가 단서로 주목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이 사람에게 독실한 신자냐고 물었죠?“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게 분명했으니까요. 기도를 하다 나왔더라도 무릎이 그렇게 쭈글쭈글 햇을 것 아닙니까? 그가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대답한 순간, 내가 내린 결론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245)

 

길 앞에 있는 귀중품 보관소롤 땅굴을 파고 들어가려고 계획을 세운 존 클레이의 범행을 파악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지하로 들어가 무릎 꿇고 흙을 파내는 흔적을 그렇게 발견했다는 것이다. 홈즈처럼, 존스는 예리하게 추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사건의 범인인 클래런스 데버루 (다른 이름은 콜먼 디부리스)를 쫓아 다닌다. 미국 공사관으로 숨어버린 그를 잡기 위해 그 둘은 트릭을 만들어 밖으로 유인할 계획을 세우나, 도리어 잡히게 되고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천우신조라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도움을 받아 빠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미국 공사관을 공식적으로 방문하여 드디어 클래런스 데버루의 정체를 밝히고 그를 경시청으로 호송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존스는 홈즈의 멋진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증거를 원하는 미국 공사관의 직원들에게 존스는 자기가 받았던 편지를 제시한다.

 

<네 딸을 데리고 있다.

범인이 데드 맨스 워크라는 공동묘지로 저를 불러 내려고 보낸 편지입니다. 데버루가 이런 수법을 써서 체이스씨와 저를 생포했죠.

"그런데요?" 이섬이 물었다.

"책장을 찢은 건데 이 편지를 본 순간 이런 서재에 꽂혀 있는 책에서 찢은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존스는 책꽂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방은 창문 너머로 해가 비치는 각도가 특이합니다. 그래서 햇볕을 쪼인 책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길에 보았더니 맨 끝에 있는 몇 권은 빛이 바랬더군요. 이 편지의 상단도 변했죠. 

..중략..그런데 한권만 누군가가 최근에 꺼냈다가 제대로 꽂아 놓지 않았네요."

그가 책을 펼쳤다,

면지가 뜯어지고 없었다. 울퉁불퉁하게 뜯긴 자국이 확연했고, 누가 보아도 납치범이 보낸 편지의 가장자리가 딱 들어맞았다.> (345- 346)

 

그렇게 존스는 홈즈의 후계자라 불려도 될 정도로 완벽한 솜씨를 구사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잠시 홈즈의 부재를 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존스가 체이스에게 미국에서의 활동을 멈추고 영국에서 탐정사를 차려 동업을 하자고 제의할 때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할 것이다. ‘그 정도면 이제 존스도 홈즈 따라가겠네..괜찮아!’ 라는 평가를 내릴 것이다. 그래서 <놓친 부분이 그렇게 많고 파악한 부분은 그렇게 없다니....>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아직 결말을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위에 인용한 글은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소설 중 뒤에 나오는 대목이라는 것, 유념하자. 아직 그런 판단을 하기에는 이르다는 말이다.

 

그렇게 쉽게 일이 해결된다면 누가 이 소설을 코난 도일 재단이 공식 출간한 새로운 시리즈이자 '실크하우스의 비밀'을 쓴 앤터니 호로비츠가 쓴 셜록 홈즈의 이야기라고 하겠는가? 그러니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미국 공사관 문을 나와 경시청으로 향하는 마차 - 클래런스 데버루를 호송하는 - 뒤를 따라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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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 네버랜드 클래식 48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허버트 포즈 그림, 김주경 옮김 / 시공주니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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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새는 날아갔어도 행복은 (남아) 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를 읽었다. 지금껏 읽었다고 생각했던 책, 그래서 훤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책이다. 그런데 확실한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래도 읽었다고 생각드는 것은 웬일일까? 아마도 많이 들어서 일 것이다. 내 곁에 이미 파랑새는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밖으로 밖으로만 찾으러 다니다가,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 행복의 파랑새가 있더라, 는 줄거리만 알고 있는 그 책, <파랑새>를 이제 제대로 된 것으로 읽었다.

 

시공주니어에서 발간한 이 책 <파랑새>는 원작 형태 그대로인 희곡이다. 그래서 소설체로 만들어진 다른 책들과는 차별성을 보인다. 따라서 소설체로 바뀐 내용보다는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알 수 있고, 이야기의 흐름을 더 세밀하게 알 수 있다.

 

주인공 이름, ‘치르치르미치르가 아니다.

 

또한 지금까지 주인공 두 아이 이름을 치르치르미치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알려진 이유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일본 번역본에서 옮겨 오면서 일본식으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따라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올바른 이름은 틸틸미틸이다.

 

그런데 그게 쉽게 바뀔까? 아무래도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혜은이가 부른 노래, <파란 나라>에 이런 가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가사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 찌루 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

난 안델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 넘어>

 

이 노래 가사에는 치르치르도 아닌, ‘찌루찌루로 나온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과 기쁨

 

9행복의 정원에서를 보면 ,저자가 생각하는 행복과 기쁨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고 있다.

 

행복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128쪽 이하)

 

사치스러운 행복

소유하는 행복

허영심이 충족되는 행복

목마르지 않아도 마시는 행복

배고프지 않아도 먹는 행복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행복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행복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행복

잠만 자는 행복

시도 때도 없이 웃는 행복

어린 시절의 행복

 

그런데 그런 행복들은 진짜가 아니다. 그런 행복들은 시련이 오자, <행복들이 썼던 만족스러운 표정의 가면들도 다 찢어진 채 땅에 떨어져서,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행복들 발밑에 나뒹군다....오직 아무 것도 모르는 행복만이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조용하고 평안해 보인다.>(132)

 

집에 있는 행복들 (136쪽 이하)

 

그런데 그런 행복 말고 저자는 집에 있는 행복을 말한다. 그런 행복들은 늘 곁에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함께 먹고, 마시고, 잠들고, 깨어나고, 숨 쉬면서 지내는 행복, 그런 행복이 진ᄍᆞ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 집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건강하게 지내는 행복

맑은 공기의 행복

부모를 사랑하는 행복

파란 행복의 행복

숲의 행복

햇빛이 비치는 시간의 행복

봄의 행복

해질 녘의 행복

별을 바라보는 행복

빗방울의 행복

겨울 난로의 행복

투명하고도 커다란 기쁨

천진난만한 생각의 행복

이슬 속을 맨발로 달리는 행복

 

저자가 나열해 놓은 집에 이미 있는 행복들을 과연 우리는 행복으로 여기고 살아왔던가? 저자는 어쩌면 네가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몰라’(136)라고 한다. 그렇다. 집에 있는 행복을 우리가 눈여겨 보지 않았기에,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행복을 통하여 느끼는 기쁨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140쪽 이하)

 

정의의 기쁨

선하게 사는 기쁨

일을 마쳤을 때의 기쁨

생각하는 기쁨

깨달음의 기쁨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기쁨

사랑하는 기쁨

아름다운 것을 보는 기쁨

 

이런 행복과 행복에서 느끼는 기쁨을 살펴보면서 새삼 다음과 같은 말들을 새겨본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행복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복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요.> (134)

<단지 네가 그걸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거지....앞으로는 우리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어. 그러다보면 더 고귀하고 고상한 행복들을 만나게 될거야.>(137)

 

, 여기 덧붙일 기쁨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남을 귀찮게 하는 기쁨

저자의 유머가 작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 본 것일까?

<(그 것은) 불행의 동굴에서 도망친 녀석인데, 아무도 가둬놓을 수가 없어. 어디서든 도망쳐 나오거든. 불행들도 이제는 저 녀석들을 데리고 있으려 하지 않아.>(139)

 

그런 기쁨은 누가 좀 데리고 있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주면 좋겠는데....

 

아직도 파랑새는 없다, 있다?

 

이 책의 결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내가 기억하는 <파랑새>의 결말은 집에 돌아온 두 남매가 집에 원래부터 있던 새가 파랑새인 것을 알고 행복을 찾았다고 기뻐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옆집에 사는 소녀에게 그 파랑새를 준다. 그런데 그 소녀의 품에서 피랑새는 날아가 버린다.

그 것을 본, 주인공 틸틸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그 새를 보면 우리에게 둘려주시겠어요? 우리는 그 새가 꼭 필요해요. 행복을 위해서.....>(195)

 

, 파랑새는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틸틸은 그 새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이에 따른 생각 두 가지, 첫째는 파랑새가 날아갔다고 해서, 집안에 있는 행복은 사라진 것일까?

두 번째 생각, 틸틸이 가지고 있던 파랑새는 인간 전체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자기 집에 그 파랑새를 둘 생각하지 않고 옆집 소녀에게 주었으니. 그래서 틸틸이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말한 것은 자기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 행복은 이미 틸틸의 집에 있고, 다만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파랑새를 언급한 것, 그것이 저자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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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남편
방현희 지음 / 푸른영토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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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남편은 어떻습니까?

 

제목 우리 모두의 남편이 의미하는 것

 

우선 제목이 의미있다. ‘우리 모두의 남편이라니!

우리는 복수이고 남편은 단수이니, 그 단어의 조합이 뭔가 의미를 지니고 있을 듯하다.

게다가 우리 모두라고 하여, 복수인 것을 명확하게 해 놓고 있으니, 저자는 이 책의 제목에 무언가 의미를 담아놓았음이 분명하다.

 

무슨 의미일까?

혹시 우리 모두란 것은 남편을 가진 여자들을 총칭하는 것은 아닐까? 해서 남편이란 존재는 부인 누구에게나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 해서 부인들이 남편이란 존재는 설령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런 면이 있다, 그래서 여기 글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총합이 우리들이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가 아닐까?

 

다른 말로 바꿔보자. 내가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은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옆집의 아무개 남편은 저러저러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 남편과 아무개의 남편을 모두 합해놓으면 우리 모두가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모습으로 내 남편이 살아가고있지만, 언젠가 다른 모습을 나타내 보일 때, ‘, 그 때 아무개 남편의 모습이 그랬다는데하는 식으로 이해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마 저자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무개 남편, 저기 저 쪽 집에 사는 남편, 서울에 사는 사람의 남편, 잘 나가는 남편, 이런 식으로 남편들 이야기를 모아 놓은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이 책은 단지 여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책일까?

아닐 것이다. 남자들도 - 그래서 남편인 사람들도 - 혹 자기가 지금은 그런 모습이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그러한 모습으로 나타날 지도 모르니, 자기 이해의 한 방편으로 이 책은 유용할 것이다.

 

인간이란 어느 한도에서는 모두다 같은 법이니까, 남편이란 존재도 어느 한계 안에서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한 전제를 하고 이 책을 읽었다.

 

그런 나의 생각은 저자가 <초대하는 글>에서 밝힌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타인의 삶을 응시하는 것은, 나의 삶을 응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타인의 삶에는 내가 걸어온 길과 겹쳐져 있기도 하고, 타인이 먼저 간 길을 따라가기도 할 것이며, 내가 먼저 길을 내고 갔다면 타인에게 이정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에 마땅한 스승이 없다고 한탄하는 지금, 가까운 타인과 따뜻하고도 깊은 응시로 결속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삶을 응시하는 것은, 나의 삶을 응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니, 남의 남편의 모습을 응시하는 것 역시 나의 남편의 삶을 응시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겠다. 그러니 우리 모두의 남편이라는 제목이 말이 되는 것이다.

 

남편은 어떤 점에서 존재가치가 있는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가족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이차적 조건이다. 가족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자기를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나는 하나일 때보다 둘일 때 힘이 세어질 것이고, 셋일 때 더욱 세어질 것이다.>(초대하는 글 중에서)

 

그러니 저자의 이런 발언에 비추어 보면 남편은 여자 측에서 볼 때에 타인이며, 가족을 만드는 는데 필요한 대상이니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결국은 자기를 확장하는 셈이 되는 것이니,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존재다. 물론 이것은 남편 측에서 부인을 볼 때에도 해당되는 말이겠다.

 

우리 모두의 남편의 모습

 

그럼 우리 모두의 남편의 모습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해외지사에 근무하는 남편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잘 묘사한 첫 번째 이야기.

해외지사에서 십년째 근무하는 남편을 만나러 갔는데, 그 남편은 아내에게 어머니가 해주시던 배추전을 만들어 주기를 부탁한다.

배추전을 만들면서 그 아내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잘 알고 있던 나의 남편에서 어머니의 아들이 되는 그 낯설고도 차가운 순간이 그녀의 가슴 저 편에서 차오르는 것이다.>(18)

 

퇴근한 후에 자기 일을 위하여 부인을 홀로 두는 남편에게서 느끼는 감정을 그린 두 번째 이야기

<함께 있으나 함께 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소외감이란 오랜 시간 누적되면서 자칫 분노와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34)

 

기러기 아빠로 살아가면서, 아내와 떨어져 살아왔는데 이제는 재결합을 생각하는 의준의 경우.

그런데 지나간 세월이 벌써 9, 의준은 과연 아내가 선선히 돌아올까 그것이 걱정이다.

그런 의준의 바람.

그것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는 지금까지 미뤄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영원히 아내와 아들들과는 함께 한 공간에서 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의준의 바람을 소박했지만, 세상에는 소박한 바람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던가. 스스로에게 말미를 주기로 했다.>(162- 163 

 

그런 남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친구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친구들이 전해준 많은 남편의 이야기들, 거기 어디쯤 내 이야기도 들어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이 책의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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