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세 남자 중 한 사람이 누구냐?
실화 장편소설 ‘세 남자의 겨울’에서 세 남자란 나와 나의 아버지, 그리고 이외수를 말한다. 그런데 독자에 따라서는 나의 아버지 대신 ‘박장호’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만하다. ‘나’의 후배 ‘박장호’가 ‘나의 아버지’보다 더 많이 소설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장호는 사실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이외수에게 ‘마침 겨울방학이라 비어 있는 자기네 하숙집 뒷방을 내준 고마운 후배’로서 충분하다. 이 말은 소설 속의 ‘세 남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의 아버지’가 ‘나’ 및 ‘이외수’와 함께 세 남자 중 한 남자라는 사실은 이 소설의 영광 연탄직매소 사무실에서 벌어진 부자간 대화의 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외수가 대화 중재자로 나섬으로써 비현실이 특징인 나, 아버지, 이외수 만남이라는 포복절도할 장면이 탄생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이 장면은 이렇게 표현된다.
『돌이켜보면, 1974년 1월 중순 어느 날 영광 연탄직매소 사무실에서 외수 형의 중재로 부자간 대면이 이뤄진 일은‘사건’이었다. 비록 부자간 대화는 무산됐지만 그 중재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형이기 때문이다. 부자는 물론이고 형까지 얼마나 현실부적응이 심한 사람들이던가.
우선 형의 경우다. 2년제 교대를 10년 가까이 다니다가 그만둔 것도 그렇지만, 산골짜기 분교의 소사로 있다가 그만두고는 이 추운 겨울에 얇은 나일론 잠바 차림으로 춘천에 올라와 초라한 연탄직매소 사무실 신세를 지고 있으니… 같은 교대 동기들이 일선 초등학교에서 신참교사로서 한창 활약하고 있을 텐데 그런 처지라니 얼마나 현실부적응이 심한가.
우리 아버지도 만만치 않았다. 요즈음으로 치자면 수십 억대의 제지공장을 부도낸 것을 시작해서, 예총 일을 하면서 김유정 문인비 건립 자금을 대느라 물려받은 산 하나를 헐값에 팔아버리고도 대우받지 못한 채 현재는 초라한 연탄직매소의 사장을 하는 신세. 연탄직매소 운영마저 뜻대로 되지 않아 그 먼 태백산맥의 상동까지 오가며 새 사업을 벌이려는 모습이지만 문제는, 어머니를 포함해서 식구 중 누구 하나 그 새 사업이 잘 될 거라 믿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천명 나이에 다다른 아버지의 현실 부적응이라니!
나는 또 어떤가. 대 작가가 될 꿈에 부풀어 다니는 대학을 업신여기며 학점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에… 두 과목이나 해결하느라 갖은 고생을 다하고도‘과연 졸업사정회를 통과했을까?’하는 불안이 수시로 엄습하는 처지. 뒤늦게 자신의 현실 적응 능력에 자신감을 완전히 잃은 모습이다.
이런 세 사람이 한겨울에 자리를 함께했다는 건‘사건’이 아닐까.』
결정적인 사실은 이 소설의 결말에서다.
‘나’와 ‘나의 아버지’ 그리고 ‘이외수’에 대한 언급만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다.
한편, 임해중 기자(네이버 채널 뉴스1)가 쓴‘신간 세 남자의 겨울 출시’라는 짧은 소개 글의 한 줄이 세 남자가 누군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설에선 문학을 사랑했던 세 남자가 등장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 방황하다 떠난 남자, 꿈을 이룬 남자, 현실과 타협했지만 꿈을 버리진 않았던 남자 얘기를 시간대를 자연스럽게 넘나들며 서술한다.』 여기서
‘꿈과 현실 사이에 방황하다 떠난 남자’는 나의 아버지며,
‘꿈을 이룬 남자’는 이외수이며
‘현실과 타협했지만 꿈을 버리진 않았던 남자’는 ‘나’를 말한다.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세 남자 중 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말이다.
하지만 어떤 독자가 ‘나는 박장호라고 생각합니다.’하며 주장을 물리지 않는다면 작가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작품이 일단 작가의 품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