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공지천 주변 공원에서 이런 문장이 쓰인 팻말을 보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평상적이지 못한 문장에 나는 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우선은그대를 무척 보고 싶었다 는 과다(過多)감정의 고백으로 해석해 봤다. 그러고도 개운치 않아서 보다 깊은 뜻으로 해석해 봤다. ‘지금 그대를 눈으로 보고는 있지만 내 마음 속 그대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다

철학적으로눈에 보이는 외물(外物), 외물 저편에 있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표현한 문구라 할까?

더 생각하려다가 자리를 떴다. 발이 시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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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있어요‘의 노랫말의 아름다움

 

노래 제목을 요즈음은애인 있어요라 하는데 발표 처음에는 분명히애인있어요라고 했다. 중간에 들어간 는 말없음표(말줄임표)로써 여기서는머뭇거림을 보여준다. 노랫말 속의 화자가 대화 상대에게 처음에는 애인이 없다고 말하려다가, 있다고 말을 바꾸는 머뭇거림의 가슴 아픔을 제목에서부터 보여주었다.

노랫말의 내용을 산문으로 구성해 봤다. 관련 TV 드라마와 무관한 상상력의 소산이다.

 

남자와 여자는 한 직장의 동료다. 남자가 여자보다 서너 살 위 선배다. 어느 날 퇴근길에 동행하게 돼 자연스레커피를 함께 마시게된 두 사람. 커피숍에서 남자가 먼저 왠지 외로워 보이는 여자한테 물었다.

아직도 넌 혼자인거니?”

여자는 머뭇거리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 혼자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요.”

서른이 다 됐는데도 짝사랑이나 한다니, 그런 여자가 안쓰러워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친구들 중에 취업이 늦었던 탓인지 애인도 없이 사는 한 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지, 이 여자와 그 친구를 한 번 만나도록 내가 나서보자.’

그럼 말이야, 내가 아는 좋은 사람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볼래?”

여자는 이번에는 미소도 짓지 않고 침묵한다. ‘거절의 의사가 여자의 굳어진 표정에 역력하다. 사실 여자는 지금 속으로 이런 항변을 하고 있다. ‘모르고 있군요. 내게 멋진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그럼 왜 그 애인을 안 보여주느냐고요? 그건내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 꼭 숨겨둔 거여요.’

굳은 얼굴로 고개까지 숙인 채 말없이 앉아 있는 여자. 남자는 속으로이 후배가 왜 이럴까? 내가 괜히 커피 마시자 했나 보다생각하며 난감해졌다. 여자는 여자대로 아랫입술까지 지긋하게 깨물며 마음속 항변을 이었다. ‘그 사람은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그냥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겁니다.’

남자는 별 생각 없이아직도 넌 혼자인 거니?’물었다가 뜻 모를 여자의 긴 침묵에 난감하다 못해 곤혹스럽다. 이 자리를 어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렇다고 불쑥 일어서기도 뭣해 핑계를 궁리한다. 사실, 지금 눈앞의 여자는 남자가 호감을 가질 만한 스타일이 아니다. 게다가 남자에게는 몇 달 뒤 결혼식을 올릴 약혼녀도 있다.

여자는 아랫입술까지 깨물며 슬픔을 참느라 눈가에 눈물까지 어린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고백한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걸 모르세요?’

 

노랫말 끝에 이런 기막힌 반전이 있을 줄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데 있지 않고아직도 넌 혼자인 거니?’물은 바로 그대라는 사실. 영화식스센스급의 반전결말이다. 제목을애인있어요라고 묘하게 붙인 까닭이 드러난 것이다. 짝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들 중 이런 기막힌 반전결말은 나는 처음 보았다.

한편, 왕년에 고복수라는 가수가 짝사랑이란 노래를 불렀다. 다음은 이 노래의 앞부분이다.

 

~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 출렁 목이 맵니다

 

혼자 하는 짝사랑이지만 으악새(억새)’라든가 조각달같은 사물로써 화자의 가슴 아픔을 드러냈다. 그건 화자가 남자라서 가능했을까? ‘애인있어요의 화자는 쉬 가슴 아픔을 드러내놓지 못한다. 눈앞의 그대한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에다가, 자신을 여성이 아닌 직장 동료로만 보는 눈빛에 일찍이 절망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대에 대한 슬픈 사랑 고백을입술에 영원히 담아둘수밖에 없다. 입술처럼 우리 얼굴에서 가벼이 움직일 수 있는 게 어디 또 있을까? 여자는 그런 입술로 사랑 고백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자신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결국 인내의 한계선까지, 서해 바닷가 밀물처럼 서서히 차오르는 슬픔의 눈물.

여자는나는 그대를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내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라며 끝내 그대에 대한 갈망을 순정으로 승화한다. 모든 것이 급변한 시대에 짝사랑 같은 감정은 구시대 유물인 듯싶었는데 이렇듯 지순할 줄이야.

 

사실애인 있어요가 어느 날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맨발의 디바 이은미씨 공이 아닌가 싶다. 짝사랑 상대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을 머금는 여자그렇기에 너무나 아픈 가슴을 이은미씨는 처절한 창법으로 구현해냈고 그 결과 우리나라 대중가요 사()에 한 획을 그었다. 가수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따로 있는데 애인있어요도 그 중 하나가 됐다. 쟁쟁한 여러 가수들이 이 노래를 경쟁하듯 부르기 시작했다.

이 대단한 노랫말을 지은 분이 어떤 분인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최은하라는 분이었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광고홍보학 박사 학력에,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남서울대학교 광고홍보학 외래교수를 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참고로 애인있어요노랫말 일부를 인용한다.

 

아직도 넌 혼잔거니 물어보네요

난 그저 웃어요 사랑하고 있죠

사랑하는 사람 있어요

그대는 내가 안쓰러운 건가 봐

좋은 사람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 말하죠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거야

가끔씩 차오르는

눈물만 알고 있죠

그 사람 그대라는 걸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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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남쪽에 구곡폭포가 있다. 춘천의 명소로써 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로, 한겨울에는 산악등반 훈련지로 명성이 드높다. 그런데 그 구곡폭포가 문배 마을의 조촐한 시냇물이 벼랑을 만나 떨어지는 물줄기라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지.

 우리 삶에는 절대적이라는 게 없다한 마을의 조촐한 시냇물이 거창한 폭포와 한 줄기로 이어져 있는데 어떻게 한 쪽은 작고 다른 한 쪽은 크다고 분리해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살고자 열심히 노력할 때, 같은 순간 다른 존재들이 그만큼의 고통을 받으며 죽어갈 수 있음을. 우리의 생존 조건과 다른 것의 멸실 조건이 이어져 있음을.

우리 모두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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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과 밭뿐이던 곳에 어느 새 전원주택 동네가 들어서 있었다. 부근에 있는 '비밀의 숲'마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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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비밀의 숲>

 

무심포토비밀의 숲을 블로그에 올린 뒤 뜻하지 않는 반응에 놀랐다. 짧은 글인데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읽은 조회수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몇 달 전에 같은 제목의 TV드라마가 있었다고 한다. ‘무심이란 호가 말해주듯 나는 TV드라마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아내가 말했다.

이건, 사람들이 TV드라마비밀의 숲과 관련 있는 글인가 싶어 방문한 결과야.”

나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길게 하고 싶었다.

여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이제 내 얘기를 들어 봐. 비밀은 별난 데에만 있는 게 아니야. 극히 평범한 데에도 비밀은 있어. 당신도 살아오면서 이런 경우가 분명히 있었을 거야. ‘아니, 어떻게 점잖은 분이 그런 비리를?’ 혹은 아니, 동네 어른들께 인사 잘하는 그 착한 아이가 골목에 숨어서 담배 피는 게 눈에 뜨였다고?’어디 그뿐인가? 짐작이지만 우리 애들도 우리한테 말 않고 숨기는 비밀이 몇 가지 있을 거야. 하긴 우리 또한 애들한테 숨기는 비밀이 있을 거고. 부모 자식 간 비밀 따위는 없이 사는 게 좋을 듯싶지만 사람 사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지. 어쩌면, 부모 자식 간에도 각자 간직해야 할 비밀이 있어야 삶이 더 풍성해지는 게 아닐까? 내가 우리 동네 가까운 숲에서 산토끼, 두더지, 까투리를 보았다는 비밀 얘기를 썼는데 사실 비밀이 더 있어. 뱀도 봤어. 아주머니들이 숲속 공터에 모여서 간단한 체조를 하는 뒤편으로 뱀 하나가 조용히 기어가더라고. 내가 아주머니들이 놀랄까 봐 그 사실을 일러주지 않고 숲을 지나갔지. 이제 알겠지? 그 숲에 비밀이 있다는 블로그 얘기를. 사실 그 숲에 비밀이 그 외도 더 있지만 말하지 않을 거야. 왜냐면 의미 없는 일이니까. 가만 있자. 딱 한 가지만 더 말해줄게. 매년 11일 아침에 사람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본다고 머나먼 동해안의 정동진이나 높은 태백산 정상을 찾는데우리 동네 그 숲이 있는 작은 산 위에서도 새해 첫 일출을 볼 수 있어. 물론 동해안이나 태백산 꼭대기보다야 그 시간이 늦지만 고작 몇 십 초의 차이라고! 그 숲 만만치 않아. 평범해 보이지만 갖가지 비밀이 있어. 내가 그 중 극히 일부를 블로그에 올려 소개했던 거라고. 평범한 그 숲에 비밀이 있다는 지난번 블로그 내용, 이제 이해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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