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감 농사가 풍년이다. 1116일자 무등일보에 이런 보도까지 나왔다.

올해 감 농사가 풍년이 들면서 감 생산 농가들의 한숨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깊다. 영광군내 대봉감 15한 상자에 1만원에도 안 팔려 인건비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하략)”

내 기억에 감 풍년은 올해처럼 홀수 해마다 벌어졌다. 그렇게 말할 만한 추억이 있다.

    

친한 선배와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1977년 가을 어느 날, 거리는 온통 감 천지였다. 장사꾼 수레에 산더미처럼 쌓인 것도 감이요, 행상 아주머니가 큰 광주리에 담아 길가에 내놓은 것들도 감이었다. 터미널 주변 가게들도 감들을 가득 진열해 놓아, 선배와 나는 마치 감 세상 한복판에서 만난 듯했다.

삼척에서 근무하는 선배와 양양에서 근무하는 내가 모처럼 상면할 수 있는 중간 장소로 정한 곳이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우리는 붉은 감들이 아우성치는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감을 사지는 않았지만 헐값인 게 분명해 보였다. 수레에 쌓아놓은 감 더미가 일부 무너져 감이 여러 알 길바닥에 나뒹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아무리 감 풍년이라도 그렇지, 별나게 터미널에 감 장사들이 몰려 있던 풍경이 납득이 잘되지 않았는데오랜 세월 지난 이제 비로소 짐작이 간다. 감 농사짓는 분들이 감이 대풍을 이뤄 판로가 막히자, 궁여지책으로 외지인들에게 감을 팔 수 있는 장소로써 시외버스터미널을 선택했을 거라는 거.

 

선배와 내가 터미널의 감 천지 속에 서 있을 때 갑자기 처절한 음색의 여가수 노래가 어느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부근의 전파상 스피커 같았다.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이은하의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노래를 나는 그렇게 처음 들었다. 얼마 후 그 노래는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의 감들처럼 전국 각지를 붉게 물들였다

 

그 해로부터 40년 지난 2017년 올해도 홀수 해라 어김없이 감 풍년인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은하씨를 다룬 TV 프로를 보게 될 줄이야. 모 종편 TV '인생다큐 마이웨이'라는 프로에 등장한 이은하씨는 퉁퉁 부은 듯한 얼굴로 경제적으로 파산했다는 딱한 얘기를 전했다. 원인은 아버지의 사업실패와 빚. 그 때문에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사채 빚이 50억까지 돼, 결국 파산신청을 했고 이제 면책 받게 됐단다. 얼굴이 퉁퉁 부은 것처럼 된 것은 그 와중에 쿠싱증후군이라는 병까지 얻은 때문이란다.

많은 히트곡으로 1970~80년대 디스코의 여왕으로 불리며, 전성기 시절엔 9년 연속 '10대 가수상'은 물론 가수왕도 3번이나 차지했던 톱 가수 이은하.

하필 감이 대풍인 올해 그런 모습이라니 안타까웠다. 감은 홀수 해마다 풍년을 이루는 자연현상을 어김없이 지키는데 우리 인간사는 그렇지 못한 걸까? 하긴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선배와 나도 그 당시의 한창 젊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으니.

그래도 이은하씨는 절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스타의 꼭대기도 가봤고 어떤 면에서는 쓴 맛도 봤다. 지금은 많이 내려놨다. 내려놓으면 편하다. 가진 게 없으니 편하다.”

다시 다가올 어느 홀수 해에 재기에 성공한 가수 이은하라는 제목의 TV 프로를 보게 될 것을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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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차가 얼마나 신통하더냐! 날마다 100리 길을 아무 말 없이 너를 편안히 실어나르니 말이다. 아비가 보기에는 한 마리 준마(駿馬) 같구나.


  여물(휘발유)을 넉넉히 먹여야 함은 물론이고 출발 전에는 반드시 말발굽(바퀴)부터 살펴야 한다. 이상이 발견되면 즉시 갈거나 고쳐야  한다.
  말이 달리는 동안 주의태만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른 말과 부딪히면 네 말은 물론 너도 함께 다친다는 것을 잊지 마라.
  퇴근 후에는 바깥보다 마굿간(지하주차장)에 말을 재워야 한다. 그래야 말이 밤새 편히 지낼 수 있으며 다음 날 이른 아침, 먼 길을 힘차게  달려갈 수 있다.
  말이 짐승이라 병이 나도 말 못한다. 하지만 몸을 부르르 떤다든지 하는 어떤 이상 신호를  반드시 보낸다. 네가 틈틈이 말의 여기저기를 살펴봐야 함은 그 때문이다.


  수많은 인연 중 지금의 말과 너도 한 인연을  맺었다. 정성을 다해 말을 보살핀다면 그 인연이 오래오래 갈 수 있음을 잊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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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 보면 극히 평범한 숲이다. 하지만 나는 저 숲에서 산토끼를 두 마리나 봤다. 두더지도 봤다. 땅 위로  나온 그 놈이 퇴화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던 게 지금도 선하다. 보호색을 믿고 낙엽들 사이로 산책하던 까투리까지.
  동네 가까이 있는, 극히 평범해 보이는 저 숲. 비밀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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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다 아는 장면일 게다.

아름답게 핀 노란 꽃이 그대로 땅 위에 있다가 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땅을 향하는 그 기괴한 모습을. 그 기괴한 장면에 놀랐을 때 아내가 농업센터에서 배운 지식을 말했다.

그 아래 비닐을 찢어줘야 된대요.”

파종하기 전에, 잡초 방지를 위해 비닐부터 씌워놓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로 두었다가는 땅을 향하던 게 비닐에 막혀 결실을 맺는 데 지장이 생겼을 것이다. 꽃 바로 아래의 비닐을, 이랑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찢어주자 과연 그 노란 꽃들이 떨어지며 뾰족한 줄기처럼 되더니 땅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뿌리도 아닌 줄기가 땅속으로 파고들던 광경 또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하필 우리가 농사짓는 데가 인적 없는 산속이라 한낮이라 해도 그 으스스함은 어쩔 수 없었다.

몇 달 후 그 줄기들은 뿌리처럼 땅 속에서 많은 땅콩들을 달아, 포기를 뽑으며 수확할 때 주렁주렁 나오던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하 이래서 한자로 땅콩을 낙화생(落花生)이라 하는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낙화생이란 한자어보다 더 멋진 표현이 우리 말 땅콩이었다. 대부분의 콩 류()가 지상에서 결실을 맺지만 이것만은 땅속에서 결실을 맺질 않던가? 그러니 땅콩이라 지칭한 우리말만큼 간단명료한 것도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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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모든 만남이 소중하지만 바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우리는 일정한 얼굴과 체구를 갖춘 외형적 존재들을 접촉하는 데 익숙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마다 살아온 삶의 내력이 반드시 있는 존재라는 생각에 미쳤을 때 어찌 만남을 소홀히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이겨낸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일 수 있고, 그 사람은 훗날 인류에 남길 귀중한 정신적 유산을 준비한 위인일 수 있고, 그 사람은 어쩌면 당신을 위기에서 구출해낸 의인일지도 모른다.

, 그 사람이 그냥 눈인사만 하고 스쳐지나갈 존재라 해도 만남의 소중함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지구상에 있는 수십억 인구 중 방금 나와 유일하게 만난인연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기에.

 

과거뿐만이 아니다. 당신처럼 그에게도 앞으로 전개될 미래가 있다. 눈앞의 그가 혹시 실망스런 모습이라도 당신이 그를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는 건 그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다치기 쉬운 마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당신처럼 말이다. 당신은 그를살며시 부는 바람이 책갈피를 소리 없이 하나하나 넘기듯정성껏 맞이해야 한다. 그의 마음을 다치지 않는 환대는 그렇게 이뤄진다.

 

이 시의 내용은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뉠 수 있다. 전반부는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일생이 온다는 뜻이다는 내용으로, 후반부는살며시 부는 바람이 책갈피를 소리 없이 하나하나 넘기듯 그를 정성껏 맞이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간추릴 수 있다. 전후반부 모두,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듯하면서 점층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같거나 비슷한 리듬의 반복이라는 내재율(內在律)과 연관된다.

이 시의 주제는만남을 소중히 하자이다. 정현종 시인은 철학적이고 교훈적일 수 있는 주제를 극히 평이한 언어들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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